불설아유월치차경(佛說阿惟越致遮經) 05. 하권-1

불설아유월치차경(佛說阿惟越致遮經) 05. 하권-1

13. 여래품(如來品)

그때 세 보살이 각각 먼 곳으로부터 와서 이런 변화를 보고 또 부처님께서 연설하시는 법문을 듣고 일찍이 없었던 일을 증득하게 되었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세 보살은 어느 곳에서 왔습니까?”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동쪽으로 항하강 모래알같이 많은 국토를 지나가면 거기에 한 세계가 있으니 그 이름이 신초수미산(身超須彌山)인데 그 본토(本土)에 머물고 있다가 이 경을 설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여기에 왔느니라.”

그때 세 보살이 부처님 앞에 이르러 모두 향과 꽃을 세존께 공양하고 함께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희들은 모두 이 법을 믿고 즐거워하며 조금의 의혹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가슴 속이 시원하고 상쾌하기 때문입니다. 비유하면 마치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의 은혜가 널리 이 세계를 덮고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첫째 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진실로 거짓이 아닙니다. 저는 정말 이 경을 듣고 전혀 의심이 없었습니다.”

둘째 보살이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도 이 법에 대하여 또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드린 말씀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른바 부처란, ‘제가 곧 부처’라고 말하더라도 이 경을 밝게 깨달아 안다면 의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 이 모임에 와 있던 무수한 백천 대중들이 모두 합장하고 자리에 앉기를 즐거워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 계시는데 어째서 이 무리들은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그밖에 다른 중생들도 각각 잠자코 있으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하였다.

‘지금 여기 계신 부처님께서 스스로 분별해 주실 것이다.’

아난이 또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들 보살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첫째 보살의 이름은 득여래주(得如來住)이고, 둘째 보살의 이름은 지득세존음(疾世尊音)이며, 셋째 보살의 이름은 지체득불성(志逮得佛聲)이니라.

이와 같아서 아난아, 저들의 말과 전혀 다름이 없으므로 그들은 여기에 온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여기 모인 무수한 백천 대중들이 놀라서 소란을 피우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각각 일심으로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한 채 그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중생들의 공덕은 점점 증가(增加)하고 있으니, 비유하면 마치 단정하고 매우 특이하며 얼굴 모양이 수려한 어떤 사내가 깨끗한 물로 목욕하고 전단향(栴檀香)을 그 몸에 쐬여 향기가 배게 하고 좋은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의 몸 색깔이 더더욱 희고 빛나는 것처럼, 이 무리의 공덕에 있어서도 큰 도를 믿고 즐거워하며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니, 그 복덕은 미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때 게송을 설하셨다.

여래께서 과거를 알거나 
미래에 대해서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법이 본래 없음을 본다면 
그런 까닭에 여래라 말하네.



현재의 일 다 깨닫고 
미래도 모두 깨달아 알며 
세 가지 행을 지어 건립하지 않으면 
마침내는 여여(如如)하여 생각이 없어지리라.



비유하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 
깨달은 것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네.


어디서부터 온 것도 아니요 한결같이 평등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의지함이 없는 성인의 도 구하셨네.


깨달은 이도 마땅히 그러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모든 법이 본래 머무는 바와 
도의 소리는 모두가 적연한 선정이라네.


소리가 돌아갈 곳 얻을 수 없으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오로지 과거의 계율 따르고 
미래에도 또한 그렇게 하며 
현재에도 본래 없음을 증득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만일 용맹스럽게 인욕 행하여 
보살행 하는 사람이 되며 
저 배움도 또한 이와 같이 하면 
이 사람은 최상의 경지에 이르리라.



본래 보살이 되었을 때부터 
부지런한 힘 얻음이 이와 같고 
굳은 의지로 정진하면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모든 법이 평등한 것처럼 
설법도 특별히 다르지 않네.


집착하지 않는 마음 있으면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평등하여 집착 없으며 
항상 자연 그대로 평등하고 바르되 
평등하다는 생각조차 없으면 
생각도 없고 기억도 일으키지도 않으리라.



본래 삼매를 성취하여 
이 음성을 원만히 갖춤도 없고 
선정[定意]을 따르고 닦으면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모든 법은 본래 다 청정하여 
근본도 없고 처소도 없네.


모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연 또한 형상이 없네.


지혜의 모양 밝게 깨달으면 
법 또한 그렇게 공한 것임을 밝게 하리라.


진실로 의심하는 바 없으면 
지혜도무극(智慧度無極:智慧波羅蜜)이라 하네.



만일 성인의 저 언덕에 이르면 
근본을 체득함이 무사의(無思議)하나니 
그 지혜 얻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한량없는 적멸의 경지에 이르리라.



지혜의 상쾌함을 얻으면 
저 언덕에 이르름도 또한 그러하며 
이 지혜는 머무는 곳 없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불도(佛道)는 얻을 수 없는 것 
마음 속에 생각도 또한 그러하며 
일체법은 얻을 수 없으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무위법(無爲法) 성취하여 
가령 많은 지혜 체득하면 
모든 법은 헤아릴 수 없으며 
도를 찬탄함도 한정할 수 없으리라.



세존의 위엄과 광명 
그 궤적(軌跡) 닦을 수 없나니 
저 도의 청아한 진리 
모두가 지혜 따라 일어나리.


도가 높으면 무루와 같나니 
각각 이와 같이 분별해 알면 
그 도는 곧 정진(正眞)이요 
일체 중생의 뜻도 마땅히 자연 그대로이리라.



성인의 교화 밝게 깨달아 알고 
모든 법 평등함을 알아 
장차 중생들에게 본래 없다는 이치 깨닫게 하니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성인과 평등법은 동일한 것 
밝은 법 따라 머물러야 하리.


도와 몸은 모두 본래 없는 것이므로 
그런 까닭에 여래라고 말하네.



지금 내가 법을 강설하지만 
음성도 이와 같이 평등한 것이니 
가령 여기에 머물면 
너는 곧 큰 도를 구한다 하리.



아난아, 나는 이런 까닭에 
이런 이치를 설법하였나니 
이 일도 설법한 바와 같아 
곧 지식 있는 이가 행해야 할 것이니라.



불퇴전(不退轉)의 법 밝게 깨달으면 
곧 용맹한 보살이라네.


열심히 닦고 정진하는 까닭에 
그 이치를 찬양하였네.



아난아, 이런 인연으로 
보살의 의지 연설하였나니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는 
용맹한 보살의 지혜 설법하셨네.




[그때 아난이 게송으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인연 따르는 
그런 법은 어떤 유(類)이며 
무슨 까닭에 여래께서는 
보살에게 두려움 없는 자신감을 수행하라 말씀하셨나이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억백 겁에 도를 강설하여서 
그로 인해 대도(大道)를 성취하였으니 
불도(佛道)란 생각으론 어려운 것 
혜명(慧明)의 자취 성취하였네.



모두 스스로 몸을 위해 구하나니 
영원히 두려움 없음을 보았네.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하나니 
일찍이 나고 죽음 두려워 않네.



나고 죽음에 머물지 않으니 
이로써 중생을 제도하네.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하나니 
어찌 나고 죽음 두려워한다 말하리.



어찌 나고 죽음에 머무르면서 
어떠한 인연으로 중생을 제도하리.


세존은 최상의 깨달음 성취한 분으로 
이익의 법을 말씀하지 않으시네.



법은 무너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견고하지도 않고 흩어지는 일도 없네.


중생들을 수고롭고 괴로운 걱정에서 건져주시니 
이것이 곧 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네.



이 법은 나고 죽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니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하네.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하나니 
일찍이 모든 법을 두려워 않으시네.



영원히 모든 이치와 
일체 부처님의 경을 두려워 않고 
중생들로 하여금 무수한 법 듣게 하여 
밑바닥도 없고 변두리도 없게 하네.



중생법이 모두 공(空)한 것은 
모든 불도(佛道)가 자연이기 때문이니 
여러 가지 법의 근본 보지 않고 
곧 이 법만을 의지하고 따라야 하리.



모든 법에 대하여 오로지 정진하며 
법은 공하여 자연 그대로라는 이치 깨달으면 
두렵지도 않고 두려워할 것도 없으며 
도혜(道慧)의 공법(空法) 깨달아 알리라.



모든 법은 속임이 침노한 것인 줄 알고 
분별하여 의지하는 바 없으며 
정진의 차례를 연설하면 
이는 곧 모든 법의 근본을 아는 것이리라.



일체의 어려운 일 힘써 넘기고 
갖가지 악한 세계 다 버리니 
일찍이 두렵고 무서움 없어서 
중생의 악한 세계 면하게 됐네.



억 중생을 제도하여 
나고 죽는 큰 두려움 초월케 하고 
언제나 나고 죽음에 동요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중생을 제도함일세.



생사의 바다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러 
최상의 높은 경지 무위(無爲)에 머물게 하여 
명성 얻은 사람을 
세존이라 말하네.



중생 위해 분별하여 설법하지만 
그 설법 오히려 허공과 같고 
또한 두렵거나 어려움조차 없으니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말하네.



일체법을 의지함으로 인하여 
여러 곳에서 열어 인도하네.


도(道:菩提道)는 평등하여 다름이 없고 
성현도 또한 집착할 것 없다네.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모두 부처님의 도 성취하리니 
분별해 설법한 것처럼 수행하면 
두렵고 어려운 것 없으리라.



닫히고 막힌 중생 열어 교화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 제도하고 
모든 두려움에서 초월하게 하나니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말하네.



모든 중생이라는 생각 끊어버리고 
오로지 도의 생각만 닦아 
중생의 뜻 뽑아버리면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고 말하네.



중생이 고정관념 여의고 
보살에 대해서도 사모함이 없으면 
그런 까닭에 명호 얻으니 
이를 곧 세존이라 말하네.



적멸과 모든 법은 평등한 것 
이러한 이치를 밝게 깨닫고 
미래에 뜻 세우면 
이를 곧 세존이라 말하네.



최상의 미묘한 도 구하지 않고 
저 명자(名字) 또한 구하지 않으며 
무위라 일컬음까지 해탈하고서 
중생들 위해 경(經)의 이치 강설하네.


갖가지 교만 버리라 말하고 
소원도 세우지 않으며 
중생들은 존귀한 명칭 구하지만 
불도(佛道)까지 사모하지 않아야 하네.



모든 음성도 존재하지 않는 것 
말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리라.


보살은 방일하지 않나니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말하네.



대성(大聖)께서 설법하실 적에 
이와 같이 상법(像法)에 비유하셨으며 
보살의 이름도 임시로 붙인 것이라 하시니 
그런 까닭에 세존이라 말하네.



그러므로 분별을 일으키면 
미혹하지 않을 이 없으리니 
지성으로 부처님 도 구하여 
헤아려 생각 안하면 번뇌[有漏]가 없어지리라.



이 인연법과 그 밖의 일들 
세존께서 음성으로 찬탄하여 말씀하시니 
아난아, 그 원인 따를 줄 알면 
그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리라.



아난아, 나는 그런 까닭에 
이런 설법 하였을 따름이니 
인연한 바 밝게 깨달아 알면 
부처님께서 이름하여 세존이라 하시네.


온갖 진애(塵埃) 깨달아 알면 
일찍이 미혹되지 않으며, 
평등함을 깨달아 욕심 제거하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무슨 까닭에 세존이라 하는가 
이 이름을 나타내 보였네.


어찌 말만을 좇아 부처님께 
도법(道法)을 강설한다 아뢰리.



부처님 법은 존재하는 실체 없으니 
공하여 적멸함을 깨달아 아네.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 이름하네.



이 몸은 다 공한 것임을 깨달아 알고 
이 몸이 소속된 곳 없음을 알면 
저것은 견고한 게 아니요, 
이 몸뚱이 오래도록 부지할 수 없네.



어리석고 둔한 이는 혜명(慧明) 여의고 
긴요치 않은 것을 항상 긴요하다 말하네.


이 모두가 본래 없음을 깨달아 알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밝은 지혜로 모든 것은 없는 것임을 분별하면 
자연 형체가 없는 것임을 알리라.


큰 성현의 지혜 체득하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과거에 일으켰던 생각 
분별해 알면 생각 없음을 깨달으리니 
갖가지 생각이 처소 없음을 깨달으면 
생각 때문에 미혹되지 않으리라.



과거의 색음[色] 깨달아 알면 
남도 없고 머무르는 곳도 없거늘 
어리석은 이는 생각으로 미혹되어 
색음을 헤아려 성취할 게 없다고 하네.



물질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깨달으면 
그 근원(根源) 얻을 수 없나니 
일체법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아프고 가려운 느낌도 없어지리라.



생각은 환상 같은 것임을 깨달아 알면 
어떤 물질이든 형상 없다네.


이미 이런 지혜 분별하면 
일체법 또한 이와 같다네.



총지법(總持法) 행할 바 없고 
온갖 몸 과거도 없네.


공하여 다스릴 게 없는 까닭에 
이 몸도 얻을 수 없다네.



사람의 몸 견고하거나 요긴치 않아 
마치 파초나무와 같네.


이런 이치 다 분별해 알면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한.


저 인식작용은 자연 그대로의 공한 것이요 
몸도 헤아려보면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밖에서도 얻을 수 없으니 
어떠한 등류(等類)의 인식작용 일어나리.



인식작용 존재하는 실체가 아님을 알면 
모든 법 또한 그러하리라.


처소도 형상도 없으니 
궁극에 이르러도 얻을 수 없으리라.



인식작용 이러함을 알면 
근본은 다 적멸과 같음을 알리니 
만약에 모든 생각 밝게 깨달으면 
곧 볼 것도 없으리라.



밝게 깨달아 이런 견해 일으키지 않아야 하니 
모든 중생도 그렇게 해야 하리.


온갖 중생의 무리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까닭에 인식할 것도 없느니라.



자연 그대로여서 열어 보일 것도 없고 
모든 법 또한 작용 없으며 
일체법에 느낌을 받지 않나니 
중생법도 또한 다 그러하니라.



일체 법인(法忍)의 과거도 
깨닫고 보면 일찍이 생겨난 적 없네.


약간의 방일함도 없었으니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부처님의 온갖 경(經) 깨달아 알면 
그 경은 곧 바른 진리인 것을 
일체법은 처소가 없나니 
그런 까닭에 부처라고 말하네.



4제(諦)법도 그러하여 공과 같으니 
깨달은 바 경(經)도 본래 없는 것 
부처님의 도도 다름이 없으니 
그 근본 얻을 수 없네.



애초에 발심한 이래로 
오직 뜻한 건 큰 도(道)뿐이나 
그 뜻도 없는 것임을 깨달아 알면 
모든 법도 얻을 게 없네.



무슨 인연으로 그런 마음 내어 
성인의 도 사모하고 구하였던가.


그 마음과 도는 같은 것 
깨달아 알면 형체 없으리라.



아난아, 나는 그런 까닭에 
이 경을 연설했을 뿐이니 
성인의 법 강설한 까닭에 
나는 불ㆍ도사(導師)가 되었느니라.



이 법상(法像)과 비슷한 까닭에 
부처라는 이름 얻었으니.


가령 그 가르침대로 따라 행하면 
곧 불도(佛道)를 구하게 되리라.


바른 도에 가까워질 수 있으면 
이 법을 안다고 하리라.


다시는 두 마음 품지 않아야 하니 
모든 법도 이와 같다네.



부처님의 경적(經籍) 의심치 않으면 
세간에서 최상의 경지 이루리라.


이렇게 강설한 법 깨닫게 하기 위해 
널리 이와 같이 법을 설하셨네.

부처님께서 이 여래(如來)ㆍ세존(世尊)ㆍ부처님의 뜻을 분별하여 설하실 때에 무앙수(無央數) 백천 중생들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저희들은 의심을 제거하여 다시는 번뇌의 그물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보살의 이름을 여래ㆍ세존ㆍ부처님이라고 하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법을 깨달아 알았으므로 스스로 마음 속에 모든 법은 공(空)한 것이건만 사람들이 의혹을 품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 알았습니다.

부모와 처자가 서로 연모하고 애처로워 하는 것 같은 은혜로운 마음으로 여래께서 심오하고 절묘한 이치를 설하여 주셨으므로 그 마음이 견고하게 머물러 다시는 경솔하게 발동하지 않고 동요하지 않는 법을 깨달았으니, 그것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흔들리지도 않고 흔들 수도 없다는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변천하여 움직임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 모든 법이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무수히 많은 백천 대중들이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대어 예를 올리고 부처님의 주변을 세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14. 개화품(開化品)

그때 어떤 보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제근상열(諸根常悅)이었다. 그는 이런 게송을 설하였다.

중생들이 과보의 생각 일으킴으로 
다른 생각에서 구제 받았네.


진실한 도와 평등하게 해주셨기에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언제나 덕의 실상 강설하시고 
과보도 평등함을 연설하시어 
평등한 정각(正覺) 증득케 하시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무수히 많은 중생 과보 탐하고 
중생의 실상에 의지하여 행하지만 
부처님은 이런 것에서 해탈하셨으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설법에 특별히 다름 없고 
머무르는 곳도 바르고 골라 
모든 법이 평등함을 깨달았으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중생들은 흔히 덕의 과보 사모하지만 
힘써 그들로 하여금 집착하지 않게 하시고 
갖가지 뒤바뀜에서 해탈케 하셨으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온갖 덕을 원만히 갖추시고 
중생들로 하여금 도에 굳게 머물게 하시어 
일체의 덕 성취하게 하셨으므로 
세간의 밝으신 지혜에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그때 제근상열보살이 게송을 설하여 부처님을 찬탄하고 나서 부처님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거룩한 존안(尊顔)을 우러러 보면서 싫어함이 없었으며, 마음이 활짝 열려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때 연화수장(蓮花首藏) 보살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위에 연꽃을 뿌리고는 찬탄하며 말하였다.

중생들을 모두 망상 품이나 
이들을 모든 집착해서 해탈시키고 
영원히 두려움에서 떠나게 하셨으므로 
최상의 능인(能仁)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모든 처소 적멸하게 없애시고 
법 설하여 경계도 없애주시며 
영웅으로서 모든 집착 초월하셨으므로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모든 법은 공(空)한 것임을 알려주시고 
자연 그대로 견고하지 못함도 깨우쳐 주시며 
평등법으로 어려움 초월케 하셨으므로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모든 근주(根株) 끊어 없애고 
번뇌에 집착한 중생을 
제도하여 두려움 없애주셨으므로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무서움과 나약함도 없애주셨고 
큰 사자후(師子吼)로써 
모든 경계에서 해탈시켜 주셨으므로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갖가지 근심 걱정 없애주시고 
슬픔과 번뇌 이미 다 끊게 하셨네.


흉악함과 해로움 끊어 멀리 하셨으므로 
최상의 능인께 머리 숙여 예배합니다.

연화수장보살대사가 부처님을 찬탄하여 마치고 나서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약 어떤 중생이 이 법을 수행하면 저는 마땅히 예배를 하겠습니다. 최후의 세간에 이 심오한 경을 들으면 지혜가 밝아지고 모든 일을 통달하여 일찍이 두려움과 나약함이 없어질 것입니다.”

또 어떤 보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이욕적(離欲迹)이었다. 그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이 심오한 경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는 이가 있으면 그를 곧 밝은 지혜를 가진 이라 말할 것이니 저는 마땅히 꽃과 향으로써 밤낮으로 그를 공양할 것입니다.”

광심(廣心)이라는 또 다른 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이 경의 법을 설하여 부처님의 도를 일으키고 이를 의심하지 않는 이는 그 덕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공양의 이익을 이룩하고 그 마음이 견고(堅固)하며, 이 경을 믿는 이가 있으면 원하는 것은 모두 다 얻을 수 있지만, 만약 믿지 않는 이가 있으면 마군의 법에 견고하게 되어 곧 마군의 행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또 연화목(蓮花目)이라는 보살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고 게송으로 찬탄하여 말하였다.

만약 이 경을 믿는 이가 있으면 
그는 세간에서 눈 밝은 이 되어 
의심하는 마음 없을 것이며 
사람들에게 가야 할 길을 지시할 것입니다.

또 심신열(心信悅)이라는 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말하였다.

이 경의 법을 들은 이가 
기뻐하며 믿으면 최상의 사람 되리니 
이러한 사람들은 
곧 세간의 신명(神明)이 될 것입니다.

희신령(喜神靈)아리는 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이 경을 들은 이가 
믿음 가져 의심하지 않으면 
세간에서 위신력(威神力) 갖추어 
중생들 중에 가장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보살이 있으니 그 이름은 상척(常慼)이었다. 부처님 앞에 나아가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약 이 경을 의심하면 
마땅히 비애(悲哀)를 일으켜 
허망한 법에 뜻을 두어 
자주 생사를 윤회할 것입니다.

또 보의(寶衣)라는 보살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수없이 많은 의복(衣服) 
청정하고 가장 미묘합니다.


빨리 교화하여 존장(尊長)이 되어 
중생들로 하여금 의심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또 선식(禪食)이라는 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어떤 사람이 심오한 경 믿으면 
마땅히 그를 위해 좋은 음식 베풀겠나이다.


온갖 맛 다 갖추어 
오로지 큰 성인의 정진 수행을 돕겠나이다.

또 견인주성(見人住聖)이라는 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이 경을 의심하는 이 있으면 
마땅히 그를 위해 비애(悲哀) 일으켜 
소리 높여 울면서 눈물 흘리리니 
심오한 경의 법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은 지옥에서 오거나 
또는 악한 세계에 들어가는 이는 
아주 잠깐 동안이라도 
이 상법(像法)을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악한 친구에게 포섭되거나 
심오하고 미묘한 이치 알지 못하여 
의심 그물에 얽매이게 되면 
그런 까닭에 머물지 않아야 할 곳에 돌아가게 됩니다.



바른 계율 지키지 않고 
진에(䐜恚)와 고뇌 품어서 
이러한 데에 머무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사나운 짐승과 같습니다.



이미 도술(道術)을 닦지 않고 
게으름 피우며 정진하지 않으면서 
삿된 것만 믿고 지혜 없으므로 
이 경전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들 생사[始終]에 집착하여 
나라는 견해와 은애(恩愛)에 끄달리며 
3계의 근심에 머물러 있기에 
이 미묘한 법 믿지 않습니다.



어리석고 어두워 해칠 마음 품고 
욕망과 즐거움에 집착하며 
스스로 제 몸만 탐하고 의존하면서 
이 도의 가르침을 비방합니다.



좋은 의복이나 탐하고 집착하거나 
맛있는 음식이나 좇으며 
잠시도 청백(淸白)한 법엔 머물지 않나니 
그런 까닭에 이 경전 비방합니다.



중생들은 욕계에 머물기를 즐거워하고 
덕과 진실 없음을 탐하고 사모하나니 
그런 사람은 스스로 도를 멀리하여 
세존을 친근히 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보살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기악법(棄惡法)이었다.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마땅히 이런 사람 버리기를 
비유하면 변소를 멀리하듯 해야 하네.


어리석은 사람 이 경을 의심하면서 
경계에 의지하여 해탈 구합니다.



마땅히 그런 사람 멀리하기를 
죽은 시체와 같이 해야 하고 
심오한 경 의심하는 이를 
멀리하는 것도 마땅히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이런 행을 비방하는 사람은 
도적이 마을을 약탈함과 같나니 
도적이 어두운 곳에 머물고 있으면 
악한 마음 알고 달아나듯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보고서 그것에 치달리나니[馳] 
도적 같은 흉악한 사람 보듯 해야 합니다.


만약 이 경전 비방하면 
마음에 혼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아난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아뢰었다.

“일찍이 없었던 일이옵니다, 천중천이시여. 이 모든 보살들이 경을 분별하는 지혜가 이와 같습니까? 아니면 삼매(三昧)의 힘으로 인하여 이런 말을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밝게 깨달은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들고 이 경의 이치로 인연하여 삼매의 힘을 얻었으며 무위(無爲)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느니라. 왜냐 하면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는 족성자(族姓子) 등은 60억이나 되는 부처님의 처소에서 이 경전을 듣고는 믿고 즐거워하며 찬송(讚誦)하였기 때문이니라. 또한 지금 여기에서 삼매력에 뜻을 두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이 경을 강설하였느니라. 왜냐 하면 그의 말은 평등하여 다름이 없는 것을 명백하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만일 이 경을 듣고 곧 기뻐하면서 믿어 의심하지 않으면 족성자(族姓子)와 족성녀(族姓女)는 어떤 복을 얻게 됩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족성자와 족성녀가 마음으로 더할 나위 없는 정진(正眞)의 도를 구한다면, 가령 이 천하에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칠보(七寶)로써 여래에게 보시하는 이가 있고, 만일 또 어떤 사람은 이 심오한 경을 듣고 곧 기뻐하면서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그 복은 저것보다 더 많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 천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보배로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은 모든 세계의 부처님을 공양하거나 이 세계를 가득 채운 진귀한 보배로써 여래를 공양하는 이가 있고, 또한 이 경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기만 하더라도 그 복은 저것보다 훨씬 뛰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그때 게송을 설하셨다.

가령 이 천하를 
가득 채울 만한 칠보로써 
여래를 공양하고 보시하여 
세존의 진리의 지혜 성취하게 할지라도 
지혜 있는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고 즐거워하며 동요하지 않으면 
이 복은 최상(最上)이 될 것이요 
그 덕은 한정할 수 없으리라.



가령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고 
모든 부처님 세계와 같이 많은 보배로써 
거룩하신 세존을 공양한다 하여도 
이 경을 듣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족성자와 족성녀가 이 경의 법을 듣고 기뻐하면서 믿어 지니고 외워 독송한다면 그 복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족성자와 족성녀가 무상정각(無上正覺)을 구하기 위해 백 겁을 여래에게 공양하고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일심(一心:禪定)ㆍ지혜(知慧)를 닦고, 또 다섯 가지 신통을 얻어 각각 백 겁 동안에 이 세간을 밝게 깨달아 의심할 게 없다고 하더라도 이 경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부처님을 공양하지 않은 것과 같느니라.”

부처님께서 그때 게송을 설하셨다.

만약 백 겁이 넘도록 
세존을 받들어 공양하되 
음식을 모두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곧 부처를 공양하지 않은 것이니라.



만일 이 경을 받아들인 이는 
큰 성현 받들되 
도의 생각에 의지하려는 생각 버리고 
모든 부처님께 법공양을 하여라.



이와 같이 가르침을 따르고 받들면 
곧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리라.


등각(等覺)께 법공양하는 것은 
여래는 곧 법신(法身)이기 때문일세.



가령 백 겁이 지나도록 
좋은 의복 가려내어 
세존 정각을 받든다 해도 
이것은 부처님을 공양함이 아니니라.



만일 이 경을 받아서 
곧 세존을 공경하고 따르면 
이것은 마땅히 부처를 받들어 섬기는 것으로 
의복을 공양한 것보다 나으리라.



만약 백 겁이 넘도록 
맑은 구슬과 좋은 꽃과 향을 
세존 등각에게 진상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을 공양함이 아니니라.



가령 이 경을 받아 지니고 
과보에 의존하는 생각 모두 없애면 
이것은 곧 세존 최상의 지혜로운 분을 
공양함이 되리라.



만약 칠보탑을 세우되 
세웅(世雄)을 위해 세우며 
그 높이 수미산과 같게 하여도 
그것은 부처님을 공양함이 아니니라.



가령 이 경전 받아 
스스로 나라고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은 최상존(最上尊:世尊)을 공양함이요 
일체의 더 높을 이 없는 분 공양함일세.



만약 백 겁이 지나도록 
어떤 사람 금계(禁戒) 지켜도 
이 경전 지니지 않으면 
그의 계율은 이름 떨치지 못하리라.



만일 이 경전 받아 지니면 
이 계행으로 큰 이름 떨치리니 
만약 청정한 계율 받들면 
이 계율은 가장 높으리라.



밝은 지혜로 이 경을 따르는 공덕 한량없고 
그것을 인연하여 받들어 섬기면 
그 금계는 항상 갖추어 만족하리라.



저 금계를 끝까지 잘 지키면 
계율을 깨뜨렸다 말하지 않으리.


만일 이 경전 배우게 되면 
곧 마땅히 위에서 가르친 것과 같으리라.



만일 이 경을 배우지 않으면 
불도(佛道)를 구하지 않는 것이니 
성인을 받들어 비록 원만히 갖추었다 해도 
이 또한 배우는 것 없네.



계율 닦아 이와 같이 지키며 
이 경의 이치 분별해 알고 
계율 지켜 이렇게 기르면 
금계(禁戒)를 원만히 갖추게 되리라.



가령 백 겁이 지나도록 
일심으로 인욕 행하면 
비록 성내고 꾸짖는 이 있다 할지라도 
일체를 다 참는 사람 되리라.



만약 이 경을 받아들여서 
듣고 지니고 외우며 
인욕하면 이것은 최상이 되니 
그 미묘함 헤아릴 수 없으리라.



혹 손과 발을 끊을지라도 
마음 속에 일찍이 원한 품지 않으며 
싫어하지 않고 극한 지경 이르지 않으면 
그 마음은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와 같이 인욕을 
백 겁 동안 행한다 해도 
이와 같이 따르고 행하면 
이런 인욕은 가질 필요조차 없게 되리라.



만약 이 경을 받아서 
듣고 지니고 외워 독송하면 
이 인욕은 가장 으뜸이 되니 
미묘하기 한량이 없네.



괴로울 때 이 경을 가지면 
그 인욕 가장 으뜸이 되리.


높고 높아 짝할 수 없으면 
곧 헛되고 거짓되지 않으리라.



지극하고 정성스런 가르침 끊지 않으면 
부처님의 지혜 이보다 더 높을 것 없네.


이 경을 경솔하게 헐뜯지 않으면 
일체를 소원대로 이루리라.



가령 백 겁 동안을 
정진하되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밤낮으로 자지 않고 닦으면 
일체를 소원대로 성취할 수 있으리라.



만약 이 경을 배워 닦으며 
남을 위해 강설하여 밝은 지혜 이루게 하면 
이것은 가장 으뜸가는 정진이 되고 
부지런한 수행 비유할 데 없으리라.



만약 백 겁 동안을 지내면서 
5통신선(通神仙)이 되었다 해도 
이 경전을 듣지 못하면 
신족통이 없는 이라 하리라.


가령 이 법을 받아 
분별해 알고 집착하지 않으면 
신통력을 통달해 이룩하여 
일체가 이보다 더 높음이 없으리라.



가령 백 겁 동안을 
지혜를 닦고 받들어 
세간을 초월한 밝음이 되고 
행하고 의지하는 바를 즐긴다 해도 

만약 이 책 배우지 않으면 
지혜를 이루지 못하겠지만 
이 성인은 용맹스러워 
심오한 경전 지닐 수 있네.



이런 이는 도의 지혜 있어서 
거룩하고 밝은 지혜 깨달아 아나니 
만약 심오한 경전 중요함을 들으면 
기뻐하며 받아 지니고 받드네.



깊은 지혜 분별해 알고 
모든 법의 이치 깨달아 알아 
마땅히 이 경을 통해 말하면 
이것은 상법[像]의 지혜라 하리.



바른 경전 닦고 익히면 
일체지 증득하여 두 가지 법 없으리니 
그런 까닭에 정진하여 닦아 행하고 
중요한 경전 지니고 따르리라.

그때 현자 아난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을 설하였다.

가령 4천 리가 넘거나 
또한 4천 리의 머나먼 길일지라도 
그곳까지 가서 이 경전 듣고 
부처님의 덕과(德果)를 증득하겠나이다.



문득 그 집에 이르러야 하는 일이라면 
그 길은 어려움 되지 않으리니 
지혜로운 이는 마땅히 빨리 가서 
그 경이 있는 곳 찾겠나이다.



만약 속히 선정을 닦아 
일체를 초월하여 해탈하려면 
이 경의 도를 외우고 강설하며 
받아 지녀 그 뜻을 알아야 하네.



가령 모든 편안함을 구하기 위해 
보살행을 마음 속으로 사모하거든 
이 경전을 강설하게 되면 
곧 안락(安樂)한 국토에 이르게 되리라.



평등각(平等覺:佛)과 
아미타(阿彌陀) 부처님을 뵙고자 하면 
이 경의 이치대로 닦아서 
모든 부처님께서 연설하신 것과 같이 하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아난아. 진실로 네 말과 같아서 모든 법은 평등하여 다름이 없으니, 족성자와 족성녀가 이 경을 찬양하고 외워 독송할 때엔 그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일체의 생각을 여의며 그가 사는 곳에서 자재(自在)로우리라.

만일 불ㆍ세존을 뵙고자 할 경우, 이 경을 찬양하여 혼란에 빠지지 않으면 목숨을 마칠 즈음에 눈앞에 무수한 여러 볼ㆍ세존이 보일 것이니라. 왜냐 하면 족성자와 족성녀들은 모든 부처님께서 모두 구원해 주시기 때문이요, 이 경전을 받다 지니고 독송하였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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