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십지경(佛說十地經) 제7권

불설십지경(佛說十地經) 제7권

09. 보살선혜지(菩薩善慧地)

보살의 제8지를 다 설명하자 
여래께서는 큰 신통력을 나투시어 
시방의 모든 국토를 모두 진동시키시니 
한량없는 억수(億數)는 사의(思議)할 수 없도다.



모든 지견(知見)의 위없는 세존께서 
그 몸으로 큰 광명을 두루 놓아 
한량없는 모든 국토를 두루 비추어 
모든 유정들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신다.



한량없는 백천억 보살들은 
한꺼번에 허공에 솟아올라서 
모든 하늘 최상의 묘한 공양거리보다 더 훌륭한 공양으로 
이 가운데 연설하는 가장 훌륭한 이에게 공양하였다.



대자재천왕은 자재천에서 
모두 함께 다 같은 마음으로 한량없이 기뻐하면서 
각각 갖가지 온갖 공양구로 
매우 깊은 공덕의 바다에 공양하였다.


다시 천만억의 천녀들이 
몸과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여 
모두 각각 무량한 음악을 연주하여 
인간과 천상의 큰 스승께 공양하였다.



이 때에 모든 음악이 동시에 소리를 내나니 
천백만억 가지로 한량이 없는 차별된 것인데 
그것들 모두 선서의 위신의 힘으로 
묘한 소리를 내어 금강장보살을 찬탄하였다.


"고요하고 부드럽게 조화되어 더러움의 해침이 없어서 
들어가는 자리[地]를 따라 잘 닦고 익혔나니 
그 마음은 허공과 같이 시방을 두루하여 
부처님의 도를 널리 설명해 중생의 미혹을 깨우치네.



천상과 인간의 모든 곳에서 
그 짝이 없는 묘한 장엄을 다 나타내나니 
그것은 여래의 공덕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자로 하여금 부처 지혜를 즐기게 하네.



한 국토의 모든 중생들조차 여의지 않음은 
마치 달이 모든 세간을 두루 비추는 것 같고 
그 음성도 마음의 생각도 모두 다 사라졌음은 
마치 빈 골짝의 메아리가 답이 없는 것과 같네.



만일 마음이 하열(下劣)한 유정 있으면 
그를 위해서 성문의 행을 설명해 주고 
만일 마음이 예리해 독각을 즐기면 
그를 위해서 중승(中乘)의 도를 설명해 주네.


만일 자비심이 있어 남을 이롭게 하기를 좋아한다면 
그를 위해 보살이 행할 일을 설명해 주고 
만일 가장 훌륭한 지혜의 마음이 있으면 
여래의 최상의 법을 보이네.



비유하면 요술쟁이가 갖가지 일과 온갖 형상 만들어도 
그것이 모두 진실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살 지혜의 요술도 이와 같아서 
비록 일체를 나타내지만 있고 없음을 떠나네."



이와 같이 천만 가지의 아름다운 음성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고는 묵묵히 있었다.


해탈월이 말하기를 "지금 대중이 청정해졌나니 
원하노니 제9지의 행할 도를 설명하시라."

그 때 금강장보살이 해탈월보살에게 말하였다.

“불자여, 만일 이 보살이 이와 같은 무량한 지혜와 헤아리는 슬기로 다시 최상의 적멸 해탈과 정근과 사모에서 다시 최상 구경의 지혜를 사찰(思察)하여 여래의 비밀한 문에 들어가서는 불가사의한 지혜와 대아(大我)의 성품을 이치에 맞게 선택하고 모든 다라니와 삼마지의 문을 깨끗이 다스려서 선택하며 바르고 넓은 신통을 잘 일으키고 세계의 차별을 두루 잘 살피며 여래의 힘과 무외(無畏)와 불공법(不共法)의 가릴 수 없는 성품을 빛내고 모든 부처님을 따라 오묘한 법륜을 굴리며 웅대하고 기특한 성품에 들어가서 얻은 바 대비(大悲)의 가지(加持)를 버리지 않으면 보살의 제9 지지(智地)에 증득해 들어간다 합니다.

보살이 이 지(地)에 안주하면 모든 선(善)과 악(惡)과 무기(無記)의 법의 행, 유루와 무루 법의 행, 세간과 출세간 법의 행, 사의(思議)할 수 있고 사의할 수 없는 법의 행, 결정하고 결정하지 않는 법의 행, 성문·연각 법의 행, 보살행의 법과 여래행의 법, 그리고 유위법의 행, 무위법의 행을 여실히 다 압니다
그는 이와 같이 지혜의 행을 따르는 지혜로 모든 유정의 마음에 가까운 조림(稠林)의 행과 번뇌에 가까운 조림의 행과 업에 가까운 조림(稠林)의 행과 근(根)에 가까운 조림의 행과 승해에 가까운 조림의 행과 종성(種性)에 가까운 조림의 행과 의요(意樂)에 가까운 조림의 행과 수면(隨眠)에 가까운 조림의 행과 수생(受生)에 가까운 조림의 행과 습기 상속에 가까운 조림의 행과 3취(趣)의 안립(安立)에 가까운 조림의 행 등을 여실히 다 압니다.

이리하여 보살은 유정들 마음의 갖가지 성품을 여실히 아나니, 이른바 마음의 잡된 성품과 마음의 상이 빨리 변해 무너지고 무너지지 않는 성품과 마음에 본질이 없는 성품과 마음이 끝이 없어 일체의 곳에 다 차는 성품과 마음이 본래 깨끗한 성품과 마음에 더러움이 있고 더러움이 없는 성품과 마음이 계박되고 풀리는 성품과 마음에 허깨비가 일어나는 성품과 마음이 모든 취(趣)를 따라서 현전(顯前)하는 성품과 나아가서는 무량 백천 가지의 마음의 차별을 여실히 다 압니다.

또 이 보살은 번뇌가 먼 수행성(隨行性)이 가행(加行)에 있어서 끝이 없는 성품과 모두 함께 생겨 서로 떠나지 않는 성품임을 압니다. 수면(隨眠)과 결박과 한곳에 머무르는 성품, 마음과 상응하고 상응하지 않는 성품, 생을 받음이 상속하고 취(趣)를 따라 머무르는 성품, 삼계 안에서의 차별된 성품, 갈애(渴愛)와 무명과 견(見)의 화살촉이 마음에 죄가 되는 성품, 3업(業)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는 성품을 압니다. 간략히 말하면 8만 4천 번뇌행의 차별된 성품을 다 여실히 압니다.

또 이 보살은 모든 업의 선하고 악하고 무기(無記)인 성품을 압니다. 유표(有表)와 무표(無表)의 성품의 성품, 마음과 함께 생겨 서로 여의지 않는 성품, 제 모양의 인(因)이 무너지고 쌓여 과(果)를 잃지 않고 상속하는 성품, 과보가 있고 과보가 없는 성품, 검은 업과 흰 업과 검고 흼이 함께하는 업과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 업이 받는 차별된 성품, 업전(業田)의 무량한 성품, 성인과 범부와 유정들 업의 차별된 성품, 현재에서 생겨 뒤에 받는 성품, 승(乘)과 승 아님에서의 정(定)·부정(不定)인 성품, 나아가 무량한 백천 가지의 갖은 업의 차별되는 성품을 다 여실히 압니다. 또 이 보살은 모든 근의 연중승(中勝)의 성품을 압니다. 과거와 미래에 차별이 있거나 차별이 없는 성품, 상·중·하의 성품, 번뇌와 함께 나서 결코 서로 떠나지 않은 성품, 승(乘)과 승 아님에서 정·부정인 성품, 이미 성숙했거나 성숙하지 못한 성품과 근(根)의 그물이 변함을 따라 빨리 무너져 상을 취하는 성품, 근(根)의 왕성함으로 말미암아 파괴할 수 없는 성품, 물러남이 있고 물러남이 없는 근의 차별된 성품, 오랫동안 행을 따라 함께 나되 다른 성품을 압니다. 간략히 말하면 무량 백천 가지 근(根)의 차별된 성품을 다 여실히 압니다.

또 이 보살은 승해(勝解)의 연중승(中勝)의 성품을 압니다. 과거와 미래에 차별이 있고 차별이 없는 성품, 상·중·하의 성품, 번뇌와 함께 생겨 결코 서로 떠나지 않는 성품, 승(乘)과 승 아님에서 정·부정인 성품을 알고 이미 성숙했거나 성숙하지 못한 성품, 근(根)의 그물이 변함을 따라 빨리 무너졌다가 다시 상을 취하는 성품, 승해의 왕성함으로 말미암아 파괴할 수 없는 성품, 물러남이 있고 물러남이 없는 승해의 차별된 성품, 오랫동안 행을 따라 함께 나되 다른 성품을 압니다. 요약해 말하면, 무량 백천 가지 승해의 차별된 성품을 다 여실히 압니다.

또 이 보살은 종성(種姓)의 연중승의 성품을 압니다. 과거와 미래에 차별이 있고 차별이 없는 성품과 상·중·하의 성품, 번뇌와 함께 생겨 결코 서로 떠나지 않는 성품, 승과 승 아님에서 정·부정인 성품을 알고, 이미 성숙했거나 아직 성숙하지 못한 성품, 근의 그물이 변함을 따라 빨리 무너져 다시 상을 취하는 성품, 종성이 왕성함으로 말미암아 파괴할 수 없는 성품, 물러남이 있고 물러남이 없는 종성의 차별된 성품, 오랫동안 행을 따라 함께 나되 다른 성품임을 압니다. 요약해 말하면, 무량 백천 가지 종성의 차별된 성품을 다 여실히 압니다.

또 이 보살은 의요(意樂)의 연중승의 성품을 압니다. 과거와 미래에 차별이 있고 차별이 없는 성품, 상·중·하의 성품, 번뇌와 함께 나서 결코 서로 떠나지 않는 성품, 승과 승 아님에서 정·부정인 성품을 알고 이미 성숙했거나 아직 성숙하지 못한 성품, 근의 그물이 변함에 따라 빨리 무너져 다시 상을 취하는 성품, 의요가 왕성함으로 말미암아 파괴할 수 없는 성품, 물러남이 있고 물러남이 없는 의요의 차별된 성품, 오랫동안 행을 따라 함께 나되 다른 성품임을 압니다. 간단히 말해 무량 백천 가지 의요의 차별된 성품을 다 여실히 압니다.

또 이 보살은 수면(隨眠)이 의요와 함께 생김을 압니다. 마음과 함께 생기는 성품, 마음과 서로 응하거나 서로 응하지 않고 또 서로 여의지도 않는 성품, 오랫동안 행을 따르는 성품, 무시이래로 토해낸 적이 없었던 성품, 모든 정려(靜慮)와 해탈과 등지(等持)와 신통으로도 굴복시키기 어려운 성품, 삼계를 결박하고 생을 받아 상속하는 성품, 본래부터 마음을 결박하여 현행(現行)하는 성품, 문에 있으면서 분별을 모으는 성품, 대치(對治)할 일을 얻는 성품, 다른 곳과 화합하고 화합하지 않는 성품, 오직 성인의 도로써만 토해 내게 하는 성품을 다 여실히 압니다.

또 이 보살은 생을 받음의 갖가지 다른 성품을 압니다. 업을 따라 생을 받는 성품, 지옥·축생·귀신·아수라·사람·하늘이 안립(安立)하는 유색계(有色界)·무색계(無色界)에 생을 받는 성품, 유상(有想)·무상(無想) 계에 생을 받는 성품, 모든 업이 밭이 되고 갈애(渴愛)가 윤택케 하고 무명이 덮고 식(識)이 종자가 되어 후유(後有)의 싹을 내는 성품, 명색(名色)이 함께 나서 서로 떠나지 않는 성품, 어리석음과 갈애 그리고 희구가 상속하여 생을 받는 성품, 욕애(欲愛)가 유정의 즐거움을 냄에 시종(始終)이 없는 성품, 삼계의 상에 집착해 그것을 끌어내는 성품을 다 여실히 압니다.

또 이 보살은 습기(習氣)가 행하고 행하지 않는 성품을 압니다. 취(趣)의 상속처를 따라 훈습(熏習)하는 성품, 유정들의 행을 따라 훈습하는 성품, 업과 번뇌의 관습을 따라 훈습하는 성품, 선과 불선과 무기의 관습을 따라 훈습하는 성품, 후유(後有)의 행을 따라 훈습하는 성품, 차례를 따라 훈습하는 성품, 멀리 의혹(疑惑)을 행하여 끊어지거나 멸하지 않음을 따라 훈습하는 성품, 진실한 일의 본체를 훈습하는 성품, 성문·독각·보살·여래를 보고 듣고 친근하여 훈습하는 성품을 다 여실히 압니다.

또 이 보살은 유정들의 정정취(正定聚)와 사정취(邪定聚)와 부정취(不定聚)의 성품을 압니다. 정견(正見)으로 말미암아 정정취에 떨어지는 성품과 사견(邪見)을 말미암아 사정취에 떨어지는 성품과 이 두 가지를 모두 떠남으로서 부정취에 떨어지는 성품, 그리고 5무간(無間)에서 하나만을 지어도 사 정취에 떨어지는 성품과 5근(根)을 닦음으로 하여 정정취에 떨어지는 성품과 8사(邪)를 익힘으로 인하여 사정취에 떨어지는 성품과 8정도(正道)를 닦음으로 말미암아 정정취에 떨어지는 성품과 더 이상 짓는 것이 없어 이 두 가지를 다 떠남으로써 부정취에 떨어지는 성품과 아끼고 질투하여 자비가 없는 현행(現行)이 쉬지 않음으로 사정취에 떨어지는 성품과 최상의 성인의 도를 가르치고 닦음으로 정정취에 떨어지는 성품과 이 두 가지를 다 떠남으로 부정취에 떨어지는 성품 등 이런 일체를 다 여실히 압니다.

불자여, 보살이 이미 이와 같은 지혜를 수순하였다면 그를 보살의 선혜지에 머무르는 것이라 합니다. 그가 보살의 선혜지에 머무를 때는 이와 같이 일체 유정들의 모든 차별의 행을 알아 그에 응하여 해탈하는 방편을 가르쳐 주고, 유정들을 성숙시키고 유정을 조복할 줄을 잘 알아서 성문승의 법과 독각승의 법과 보살승의 법을 잘 설하고 따라서 여래지(如來地)의 법을 알고 연설합니다.

이 보살은 이렇게 알아서 유정들로 하여금 진여의 성품을 얻게 하기 위하여 묘한 법을 연설합니다. 그리고 유정들의 의요(意樂)의 차별을 따르고 수면(隨眠)의 차별을 따르며 근기의 차별을 따르며 승해의 차별과 행하는 바의 경계를 따라서 갖은 현행(現行)의 관습(慣習)과 모든 행처(行處)의 지혜를 분별하나니 이는 그 행(行)을 따르기 때문이고, 종성의 조림행(稠行)을 따르기 때문이며, 번뇌의 업에 수순하기 때문이요, 생을 받는 습기(習氣)가 영원히 그치기 때문이고 취(聚)의 안립(安立)에 따른 행을 따르기 때문이며 승해를 따라 해탈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법을 연설하는 것입니다.

불자여, 보살이 이 선혜지에 머무를 때는 큰 법사가 되어 항상 여래의 법장(法藏)을 잘 수호합니다. 그러므로 이 보살은 법사의 행을 갖추고서 무량한 지혜로 행의 선교(善巧)를 따르고 보살의 4무애해(無碍解 : 막힘이 없는 앎)가 끌어낸 음성과 말로 법을 연설하니, 이 보살의 원만하고 잡됨이 없는 무애해를 따라 항상 전전(展轉)하나니 어떤 것이 4가지인가? 이른바 법의 무애해와 뜻의 무애해와 언사(言詞)의 무애해와 변설의 무애해입니다. 법의 무애해로 모든 법의 자상(自相)을 알고 뜻의 무애해로 모든 법의 차별을 알며 언사의 무애해로 잡됨이 없이 모든 법을 잘 연설하고 변설의 무애해로 모든 법이 차례로 상속하는 끊임없는 성질을 잘 압니다.

또 법의 무애해로 모든 법의 성품이 없는 본체를 잘 알고 뜻의 무애해로 모든 법의 나고 멸함[生滅]을 여실히 알며 언사(言詞)의 무애해로 모든 법이 임시로 건립됨에 따라 끊임이 없이 바른 법을 연설하며 변설의 무애해로 시설된 그대로의 모든 법을 파괴하지 않고 끝없는 법을 연설합니다.

또 법의 무애해로 현재의 모든 법의 차별을 알고 뜻의 무애해로 과거·미래의 모든 법의 차별을 바로 알며 언사의 무애해로 과거와 미래와 현재에 잡됨 없이 설법하고 변설의 무애해로 낱낱의 세상에 끝없는 법명(法明)으로 설법을 할 수 있습니다.

또 법의 무애해로 법의 차별을 알고 뜻의 무애해로 뜻의 차별을 알며 언사의 무애해로 모든 말과 음성을 따라 바른 법을 연설하고 변설의 무애해로 의요(意樂)와 지혜를 따라 법요(法要)를 연설합니다.

또 법의 무애해로 드러난 법지(法智)에 의지해 잡됨 없는 방편의 차별을 알고 뜻의 무애해로 비지(比智)에 의지해 모든 법의 여여한 성안(性安)을 알며 언사의 무애해로 세속지에 의지해 해석을 드러내 보이고 변설의 무애해로 승의지(勝義智)에 의지해 잘 설법합니다.

또 법의 무애해로 한 이취(理趣)의 파괴됨이 없는 성질을 알고 뜻의 무애해로 행을 따라 온(蘊)·계(界)·처(處)·진리[諦]·연기(緣起)의 선교에 들어가며 언사의 무애해로 모든 세간이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는 음성과 말과 문구에 의지해 연설하고 변설의 무애해로 더욱 계속하는 끝없는 지혜의 밝음에 의해 이치답게 해석합니다.

또 법의 무애해로 1승(乘)에 들어가는 문의 차별을 알고 뜻의 무애해로 모든 승(乘)의 차별을 알아 잘 분별하며 언사의 무애해로 모든 승(乘)을 잡됨없이 잘 연설하고 변설의 무애해로 그 낱낱을 각각 끝없는 법의 밝음으로 해석합니다.

또 법의 무애해로 모든 보살행, 지행(智行), 법행(法行)에 들어가 지혜를 따라 행하고 뜻의 무애해로 10지(地) 건립의 차별을 해석하며 언사의 무애해로 근기를 따라 잡됨 없는 연설을 하여 모든 지(地)의 도를 가르쳐 주고 변설의 무애해로 낱낱 지지(智地)를 끝없는 행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법의 무애해로 모든 부처님이 한 찰나 사이에 등정각을 이루심을 알고 뜻의 무애해로 갖가지 시(時)와 사(事)와 상(相)의 차별을 알며 언사의 무애해로 바로 깨달은 그대로를 분별하고 해석하여 설법하고 변설의 무애해로 낱낱 법구(法句)를 무량한 겁 동안 해석하여 다함이 없습니다.

또 법의 무애해로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힘과 무외(無畏)와 불공법(不共法)과 대자와 대비와 변재와 가행(加行)과 큰 법륜을 굴리심과 일체지지를 수순하는 행을 알고 뜻의 무애해로 여래께서 모든 유정들의 8만 4천의 행의 차별을 따르고 그 의욕을 따르며 그 근을 따르고 그 승해를 따라 연설하신 음성과 말을 알며 말의 무애해로 모든 유정들을 위해 그 행의 차별을 따라 부처님의 음성과 말로 바른 법을 연설하고 변설의 무애해로 여래지의 청정한 행과 승해를 따라 설법합니다.

불자여, 보살이 제9 선혜지에 안주하고서 이와 같은 무애해의 지혜를 성취하여 부처님의 법장을 얻고 큰 법사가 되어 뜻의 다라니를 갖추고 법의 다라니을 갖추고 지혜를 일으키는 다라니를 갖추고 광명이 비치는 다라니를 갖추고 좋은 슬기의 다라니를 갖추고 온갖 재물의 다라니를 갖추고 위덕의 다라니를 갖추고 걸림없는 문의 다라니를 갖추고 한계가 없는 다라니를 갖추고 갖가지 뜻의 다라니를 갖춥니다. 그리하여 이런 원만한 백만 아승기야 다라니를 얻고는 이내 백만 아승기야 음지(音支)의 방편과 여러 무량한 변재와 해석하는 문(門)으로 남을 위해 설법합니다.

이 보살은 이와 같은 무량 백천 아승기야 다라니문에 의하여 무량한 부처님 처소에서 묘한 법을 듣고, 듣고 나서는 잊지 않고 들은 법을 무량한 차별로 연설할 수 있습니다.

한 부처님 앞에서 모두 백만 아승기야 다라니문으로 바른 법을 받는데 한 부처님 앞에서와 같이 무량한 부처님 앞에서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이 보살이 한 찰나 사이에 부처 세존·정등각 앞에서 받는 무량한 법문은 저 많이 듣고 들어서는 지니는 성문으로서는 백천 겁에도 받지 못합니다.

이 보살은 이런 모든 다라니를 성취하고 변재를 얻고는 법좌에 앉아 삼천대천세계에 두루하여 저 유정들의 의요의 차별을 따라 그들을 위해 설법하는데 그 법좌는 가장 수승하여 모든 부처님과 관정(灌頂)을 받은 상지(上地) 보살을 제외한 그 이외 보살의 위덕과 광명으로는 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보살이 법좌에 앉으면 그 스스로의 즐김을 따르므로 한 음성과 말로 묘한 법을 연설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고 혹은 스스로 하고자 함을 따라 갖가지 말과 음지(音支)와 분석으로 대중들로 하여금 다 깨침을 얻게 하며 혹은 스스로 하고자 함을 따라 큰 광명을 놓고 거기서 무량한 법문을 연설하고 혹은 스스로 하고자 함을 따라 그 몸의 낱낱 털구멍에서 다 법음(法音)을 내며 혹은 스스로 하고자 함을 따라 이 삼천대천세계에 드러난 색상(色像)에서 모두 묘한 법음을 내며 혹은 스스로 하고자 함을 따라 한 음성과 말로 일체의 법음을 두루 나타내며 혹은 스스로 하고자 함을 따라 일체의 음성과 말을 가지(加持)하여 모두 미묘한 법음을 짓게 하며 혹은 스스로 하고자 함을 따라 한 세계에 속한 노래와 음악소리에서도 모두 법음을 내며 혹은 스스로 하고자 함을 따라 한 글자 소리에서 일체 법의 차별된 소리를 내며 혹은 스스로 하고자 함을 따라 말할 수 없는 무량한 땅·물·불·바람 등 4대(大) 모임에 있는 모든 티끌에서 낱낱 티끌로 하여금 다 말할 수 없는 많은 법문을 연설하게 합니다.

설사 1천 세계에 계박 당한 유정들이 모두 그 앞에 와서 한 찰나·순식·잠깐 사이에 모두 무량한 말과 음성으로 어려운 질문을 함에 그 질문이 각각 다르더라도 이 보살은 한 생각 사이에 그 말과 음성과 문구를 따라 다 받아 들이고는 곧 한 음성으로 두루 해석하여 그들의 의요를 따라 모두 기쁘게 해줍니다. 또 설사 2천 혹은 3천 혹은 말할 수 없는 삼천대천세계에 매인 일체 유정들이 한 찰나 사이에 각각 무량한 말과 음성으로 어려운 질문을 함에 그 어려운 질문이 각각 다르더라도 이 보살은 한 생각 사이에 다 받아들이고 또 한 음성으로 두루 해석하여 그들의 의요를 따라 각각 기쁨을 얻게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세계에 가득 찬 유정들의 의요와 근기를 따라 묘한 법을 연설함에 얻은 법을 강론하고 부처님의 가지를 구하고 법륜을 잘 굴려 불사를 널리 짓고 유정들을 두루 위하여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바가 됩니다.

또 이 보살은 다시 이와 같은 법을 받아 지니고 이렇게 발원하여 말합니다.

‘설사 한 털 끝에 말할 수 없는 세계의 티끌 수 같은 부처님이 계시어 여러 대중모임에서 설법하시고, 또 하나하나의 여래께서 몇몇 유정들을 위하여 그 마음의 차별을 따라 설법하시며 각각 낱낱 유정들의 의요를 따라 약간의 무량한 법문을 주신다 하여도 한 여래의 대중 모임 가운데 있는 일체 여래의 대중 모임이 역시 그러한 것처럼 한 털 끝에 일체 법계 가운데의 모든 것이 그러하니 우리는 그 속에 마땅히 이러한 한량없는 생각을 내어 저 여래에게서 일체 법의 등불을 모두 다 받으리라.’

보살이 이 선혜지에 머무르면 밤낮으로 더욱 남음이 없는 작의(作意)를 하여 부처님의 경계에 들어가 부처님을 친근해서 매우 깊은 보살의 해탈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보살은 이와 같은 지혜를 따라 항상 선정에 들어 모든 부처님을 보되 잠깐도 떨쳐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낱낱의 겁 안에서 무량 부처·무량 백 부처·무량 천 부처·무량 백천 부처·무량 백천나유타 부처님과 무량 구지 부처·무량 백구지 부처·무량 천구지 부처·무량 백천구지 부처 나아가 무량 백천구지 나유타 부처님을 보고는 항상 미묘한 공양거리로 공양하고 섬기면서 그 부처님께 갖가지로 물어 법의 총지를 얻고 또 잘 연설할 수 있게 됩니다. 이리하여 이 보살의 선근은 더욱 밝고 깨끗해져 아무도 그 빛을 가릴 수 없게 됩니다.

불자여, 비유하면 훌륭한 연금사가 담금질한 금으로 장엄거리를 만들어 잘 빛내었을 때, 전륜성왕이 그것으로 그 머리를 장엄하거나 혹은 목에 걸면 그 이외의 일체 속산왕(粟散王)과 4주(洲) 안의 모든 신하와 백성들의 장엄거리로서는 견줄 수 없는 것처럼, 불자여, 이 선혜지에 머무르는 보살의 이 모든 선근도 이와 같아서 일체의 성문 독각과 또 하지(下地)에 머무르는 보살로서는 미칠 수 없습니다.

또 이 보살의 선근의 광명은 유정들의 번뇌와 마음의 울창한 숲을 다 비추고 거기서 회전합니다. 불자여, 비유하면 2천 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이 그 몸에서 광명을 내면 2천 세계 안에 있는 빽빽한 숲의 깊숙한 곳을 다 비출 수 있는 것처럼, 보살이 이 선혜지에 머무를 때 그 선근의 광명도 이와 같아서, 저 유정들의 마음과 번뇌의 밀림 등을 다 비추고는 거기서 회전합니다.

그는 10바라밀다 중에서 힘바라밀다를 증상하고 다른 바라밀다는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르지마는 수행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불자여, 이상이 대충 설명한 보살의 제9 선혜지인데 만일 자세히 말하려면 무량한 겁 동안에도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선혜지의 보살이 생을 받으면 대체로 대범천왕이 되어 큰 위세를 갖추고 2천 세계의 왕으로서 가장 수승하여 아무도 가리우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익을 잘 보고 큰 자재를 얻어서는 유정들을 위하여 성문·독각·보살의 바라밀다행을 연설합니다. 유정들의 의요를 따라 문답할 때에도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그의 짓는 업으로서는 보시(布施)거나 애어(愛語)거나 이행(利行)거나 동사(同事)거나 이런 일체는 다 부처님의 작의(作意)와 법의 작의와 승가(僧伽)의 작의와 보살의 작의와 보살행의 작의와 바라밀다의 작의와 모든 지(地)의 작의와 부처님 힘의 작의와 무외(無畏)의 작의와 불공법(不共法)의 작의를 떠나지 않고, 나아가 일체 행상의 승묘(勝妙)와 상응하는 일체지지의 작의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발원합니다.

‘나는 모든 유정들 중에서 그 으뜸이 되고 훌륭함이 되고 뛰어남이 되며 묘함이 되고 미묘함이 되며 위가 되고 최상이 되며 길잡이가 되고 장군이 되며 장수가 되리라 나아가서 일체지지가 의지하는 곳을 얻기를 원합니다.’

만일 즐겨 이와 같은 정진을 일으키면 이 정진으로 말미암아 한 찰나·순식·잠깐 사이에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삼마지(三摩地)를 얻고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부처님을 보며 그 부처님의 가지를 잘 알게 되고 또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세계를 진동시킬 수 있으며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모든 불국토에 갈 수 있고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세계를 비추며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유정들을 성숙시키고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겁을 살고 과거와 미래의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겁을 살고 과거와 미래의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겁에 각각 들어가며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법문을 생각해 가지고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몸을 나타내어 몸몸마다 백만 아승기야 불찰의 티끌 수 같은 보살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나투어 보입니다.

이상부터는 모든 원력이 있는 보살의 훌륭한 원력으로 말미암는 모든 유희로서 혹은 몸이거나 광명이거나 신통이거나 눈이거나 경계거나 음성이거나 행동이거나 장엄이거나 승해거나 혹은 지음 등 이런 것들로 나아가서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에도 다 셀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 금강장보살은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앞에서 한량없이 매우 깊은 지혜로도 
훌륭한 그 해탈을 구하기를 좋아하지 않다가 
부처님의 지혜를 관찰하고 부처님의 비밀에 들어가 
선택한 묘한 지혜는 불가사의하다.



총지(摠持), 등지(等持)의 문을 깨끗이 다스리고 
큰 신통을 얻고 모든 국토에 들어가 
10력(力)과 무외(無畏)와 불공법(不共法)을 닦아서 
대비(大悲)를 수순하여 제9지에 들어간다.



보살이 이 선혜지에 머무르면 
선(善)과 불선(不善) 및 무기(無起)를 알게 되고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와 세간과 출세간과 
사의(思議)와 불사의(不思議)를 다 잘 알게 된다.



법으로서 결정된 것이거나 결정 안 된 것이거나 
3승(乘)이 행하는 것이든 또 부처의 자리든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행의 차별 
이와 같은 것을 모두 알아서 세간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곧 유정들의 마음과 
번뇌와 업보와 또 승해(勝解)와 
종성(種性)과 의요(意樂)와 또 수면(隨眠)과 
수행(受生)과 습기(習氣)의 쌓임 등 빽빽한 숲을 안다.


마음의 갖가지 빨리 변화하는 성질과 
질료가 없고 한계가 없는 등의 온갖 모양과 
번뇌가 끝없이 맞대어 서로 내는 것과 
수면과 번뇌가 함께 하여 상속시키는 모든 취(趣)를 안다.



업성(業性)의 갖가지 차별과 
인(因)의 허물어짐, 과(果)의 쌓임을 아나니 
모든 근의 가지가지 상·중·하와 
과거 미래 등의 한량없는 차별, 그리고 
승해(勝解)와 종성(種性) 및 의요(意樂) 등 
모두 이와 같이 모르는 바가 없다.



수면(隨眠)은 언제나 유정들 견해를 미혹시켜 
비롯함이 없는 빽빽한 숲을 베어 버리지 못하고 
의요(意樂)와 더불어 마음이 함께 생겨 
언제나 서로 묶고 얽매어 끊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망상일 뿐 실체가 없고 
항상 마음을 떠나지 않지만 있는 곳 없나니 
비록 선정(禪定) 등을 닦더라도 없애기 어렵고 
오직 금강(金剛)의 도라야 비로소 멸할 수 있다.



6취(趣)에서 생을 받음이 각기 달라서 
업의 밭에 애욕이 물을 주고 무명으로 덮어 주면 
식(識)이 종자가 되고 명색(名色)이 싹이 되나니 
그리하여 삼계(三界)가 영원히 상속된다.



갈래[趣]에서 행한 업과 번뇌의 습기가 모여서 
점차 다시 태어나매 의혹이 떠나지 않나니 

유정들은 모두 이 3취(聚) 속에 있으면서 
때로는 견해에 빠지며 때로는 도를 행한다.



이 9지의 보살은 잘 관찰하고 
그 의요(意樂)와 근(根)과 해(解)를 따라 
모두 다 걸림이 없는 묘한 변재로 
그 차별됨에 응하여 각기 다르게 법을 연설한다.



법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사자와 같고 
또한 우왕(牛王)이나 보배산왕과 같고 
또는 저 용왕이 구름을 짙게 드리워 
단비를 내려서 큰 바다를 채움 같다.



법상(法相)과 그 오묘한 뜻을 잘 알고 
그 말을 수순하여 잘 변설하며 
백만 아승기를 총지(摠持)하나니 
비유하면 큰 바다가 모든 비를 받음과 같다.



총지(摠持)와 등지(等持)가 다 맑고 깨끗하여 
한 찰나 사이에 많은 부처님을 뵈올 수 있고 
그 낱낱 부처님에게서 다 법을 듣고는 
다시 또 묘한 음성으로 그 법을 연설한다.



의욕을 따라서 삼천대천세계의 
일체 모든 유정들을 다 교화시키나니 
마치 구름이 널리 퍼져 미치지 않은 곳 없음 같아 
그 근기와 의요를 따라 모두 기쁘게 한다.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유정들이 
모두들 와서 친근하고 모임에 앉아 
한 생각에 마음을 따라 각각 어려운 것을 물어도 
한 음성으로 두루 대답해 모두 만족시킨다.



한 털끝에 부처님 셀 수 없이 많고 
유정들의 의요(意樂) 또한 끝이 없어서 
그 마음에 상응하여 모두 법문을 해 주나니 
일체의 법계 역시 이와 같도다.



보살은 부지런히 정진의 힘을 더하고 
다시 공덕을 얻어 더욱 훌륭해지며 
모든 법문의 글자글자를 다 들어서 수지하나니 
마치 이 땅이 모든 종자를 다 지님과 같다.



법을 계승하는 이 태자 자리에 머물러 
그 근기를 따라 가르치고 인도함에 게으름 없고 
밤낮으로 부처님을 뵈어 잠깐도 버리지 않고 
깊은 적멸(寂滅)의 지혜와 해탈에 들어간다.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여 선근이 더욱 밝아지매 
마치 전륜성왕 정수리 위의 황금 장식과 같고 
다시 유정들로 하여금 번뇌를 멸하게 하나니 
비유하면 저 범천왕의 광명이 두루 비침과 같다.



여기 머무르면 대개 대범천왕이 되어 
3승(乘)의 법으로써 유정들을 교화시키고 
행하는 바의 선업(善業)으로 널리 이롭게 하나니 
나아가서는 장차 일체지(一切智)를 이루리라.



한 찰나 사이에 능히 백만 아승기의 
부처님 국토의 티끌 수 같은 선정에 드는데 
부처님을 뵈옵는 등의 일도 또한 이와 같으며 
서원의 힘으로 짓는 것은 이보다도 더 훌륭하다.



이것이 곧 제9 선혜지의 
큰 지혜를 가진 보살이 행하는 것으로서 
매우 깊고 미묘하여 보기 어렵나니 
나는 불자들을 위하여 대충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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