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십지경(佛說十地經) 제5권
06. 보살현전지(菩薩現前地) ②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무르면 허물어지지 않는 의요(意樂)가 전전하여 더욱 원만해지고 결정하는 의요와 어질고 착한 의요와 깊고 깊은 의요와 퇴전하지 않는 의요와 쉼이 없는 의요와 허물 없는 의요와 끝이 없는 의요와 지혜를 구하는 의요와 방편과 지혜가 상응하는 의요가 모두 다 원만해집니다.
이에 보살은 이 모든 의요로 부처님의 보리를 수순하고 모든 이론(異論)을 상대하며 정진하여 물러나지 않아서 지지(智地)로 들어가며 성문승과 독각승의 자리를 버리고 한 마음으로 결정코 부처의 지혜로 나아감으로써 어떠한 악마의 원한과 번뇌의 현행(現行)도 그것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는 보살의 지혜의 광명 속에 머무르면서 공(空)·무상(無相)·무원법(無願法)의 현행을 잘 수습하며 항상 방편과 지혜의 관찰과 상응하며 보리분의 법을 끌어냅니다.
보살이 이 현전지(現前地)에 머무를 때에는 지혜바라밀에 머무름이 증상되고 또 제3의 날카로운 순인(順忍)을 증득하나니, 이는 모든 법의 이치에 따라 수순하여 거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무르면서 광대한 소견과 원력으로 나타난 많은 부처·많은 백 부처·많은 천 부처·많은 백천 부처·많은 백천나유타 부처와 많은 구지 부처·많은 백구지 부처·많은 천구지 부처·많은 백천구지 부처와 많은 백천구지 나유타 부처님을 봅니다. 보살은 여래(如來)·응공(應供)·등정각(等正覺)을 뵈옵고는 모두 광대하고 증상된 의요(意樂)로 공경하고 존중하며 섬기고 공양하되 의복·음식·침구·의약과 모든 살림살이를 보시합니다. 보살의 모든 묘한 오락거리를 승가(僧伽)에 바치어 공경을 나타내고 이 선근으로 무상정등보리에 회향합니다. 그리고 모든 부처와 여래를 존중하고 섬기매 희유하다는 생각으로 바른 법을 들으며 바른 법을 듣고는 받아 지니어 전도(顚倒)되지 않는 등지(等持)와 지혜의 광명을 수행하며 바른 행을 견고히 하고 억념(億念)하여 잊지 않으며 전전하여 여래의 법장에 들어갑니다.
그리하여 보살이 제6의 현전지에 머무르면 무량한 겁 동안 이 선근은 더욱 왕성하게 빛나고 더욱 밝고 깨끗해집니다. 무량 백 겁·무량 천 겁·무량 백천 겁·무량 백천나유타 겁·무량 구지 겁·무량 백구지 겁·무량 천구지 겁·무량 백천구지 겁·무량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 모든 선근이 더욱 치열하고 더욱 밝고 깨끗해집니다.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연금사가 담금질한 금으로 장엄구를 만들고는 유리 보배로 곁을 장식하면 그것이 더욱 빛나고 깨끗해지는 것처럼, 불자들이여, 보살이 현전지에 머무를 때에 이 모든 선근도 그와 같아서 방편과 지혜로 생각하고 관찰한 바를 따른다면 그것이 더욱 빛나고 더욱 밝고 깨끗하며 더욱 적멸(寂滅)해져서 아무도 그 빛을 가릴 수 없습니다.
또 불자들이여, 비유하면 달빛이 유정들의 몸을 흐뭇하게 하여 네 가지 바람이 불어도 파괴할 수 없는 것처럼,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무르면 그 모든 선근도 이와 같아서 무량 백천구지 나유타 유정들 번뇌의 불꽃을 끌 수 있으니 네 가지 마도(魔道)라 할지라도 이것을 파괴하지 못합니다. 그는 10바라밀 중에서 지혜바라밀이 증상되고 다른 바라밀은 분수를 따르고 힘을 따르되 수행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불자들이여, 이상은 보살의 제6 현전지에 대해 대충 설명한 것입니다.
보살이 이 현전지에 머무르면서 생을 받으면 대개는 묘화천왕이 되어 신통이 자재하고 유정을 잘 교화시켜 그들의 증상만(增上慢)을 필경에는 쉬게 하고 항상 어떤 성문의 어려운 질문이라도 그를 압도하지 못하게 하며 유정들로 하여금 연기법을 깨우쳐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가 짓는 일로서 보시(布施)거나 애어(愛語)거나 이행(利行)이거나 동사(同事)거나 이 모두 다 부처님의 작의(作意)와 법의 작의와 승가의 작의와 보살의 작의와 보살행의 작의와 바라밀의 작의와 모든 지(地)의 작의와 부처님 힘의 작의와 무외(無畏)의 작의와 불공법(不共法)의 작의를 떠나지 않고, 나아가 일체 행상의 묘함과 상응하는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작의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원합니다.
‘나는 일체 유정들 중에서 으뜸이 되고 훌륭함이 되고 수승함이 되며 묘함이 되고 미묘함이 되며 위가 되고 위없음이 되며 길잡이가 되고 장군이 되며 장수가 되고 나아가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의지처가 되리라.’
만일 이런 정진을 즐거이 일으키면 이 정진으로 말미암아 한 찰나 한 순식 사이에 보살의 백천구지 삼마지에 들고 백천구지 부처님을 뵈오며 그 부처님의 가지(加持)를 다 잘 알 수 있고 백천구지의 세계를 진동시키며 백천구지의 불찰에 가고 백천구지의 세계를 비추며 혹은 백천구지의 유정들을 성숙시키고 백천구지의 대겁(大劫)을 살며 과거와 미래의 백천구지의 겁에 각각 들어가고 백천구지의 법문을 생각해 가리며 백천구지의 몸을 나투되 그 몸마다 백천구지의 보살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을 나타내 보입니다.
이상 원력이 있는 보살의 훌륭한 원력에서 비롯되는 모든 유희로서 혹은 몸이거나 광명이거나 신통이거나 눈이거나 경계거나 음성이거나 행이거나 장엄이거나 승해거나 혹은 지음 등 이런 것들을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 세어도 다 셀 수 없을 것입니다.”
그때 금강장보살은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살이 제5지를 깨끗이 하고는
법에 상(相)도 없고 자성(自性)도 없고
일어남도 없고 생김도 없으며 언제나 고요하고
성품은 본래 맑고 깨끗해 희론(戱論) 없음을 관찰하네.
또한 취하고 버림도 없고 환술 등과 같은 것도 없으며
유·무가 둘이 아니니 분별을 떠났네.
법의 성품을 수순하여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이 지혜로 말미암아 제6지에 들어간다.
씩씩하고 날카로운 순인(順忍)의 지혜를 구족하고
모든 세간의 생멸상(生滅相)을 관찰하면
아집(我執)으로 말미암아 세간이 생기지만
아집을 없애면 세간은 없어진다는 것을 아네.
이치에 맞게 연기(緣起)의 공함을 통달했건만
가립(假立)과 화합(和合)의 작용을 무너뜨리지 않네.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으며 수명도 없지만
모든 행은 구름과 같이 두루 일어나네.
진리에 무지(無知)함을 무명이라 하고
어리석음이 지은 업의 과보를 행(行)이라 하며
날 때의 처음 마음을 식(識)이라 하고
함께 생기하는 다른 온(蘊)을 명색(名色)이라 한다.
이것이 증장한 것을 6처(處)라 하고
세 가지의 화합을 촉(觸)이라 하며 수(受)를 함께 내
수(受)를 즐거워함을 애(愛)라 하고 애는 취(取)를 내니
거기서 유루(有漏)의 업과 유온(有蘊)이 생긴다.
온(蘊)이 노숙한 것을 늙음, 온이 허물어지는 것을 죽음이라 하니
순전한 괴로움의 덩어리는 이와 같이 쌓이네.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뿐이요
12유지(有支)가 마음에 의해 있다는 것을 아나니
나고 죽음이 다 마음으로 비롯해 지어진 것이어서
만일 이 마음이 멸하면 나고 죽음도 없어지네.
무명이 짓는 것엔 두 가지가 있으니
미혹을 반연함으로 말미암아 행의 인(因)이 됨일세.
이렇듯 나아가 늙어 죽나니
여기에서 괴로움이 생겨 다함이 없도다.
무명이 반연하는 성품을 모든 행이라 하고
끊어지지 않고 다시 또 도와 이룸일세
이로부터 까닭이 없이 모든 행이 끊어지면
더는 도움이 없으니 다른 것도 그러하다.
어리석음과 애(愛)와 취(取)는 곧 번뇌의 흐름이니
행에 이 업이 있고 나머지는 다 괴로움이다.
무명과 행은 과거가 되고
식(識)에서 수(受)까지는 현재이다.
애(愛)와 취(取)와 유(有)는 미래의 괴로움을 내니
관대(觀待)하여 이 괴로움의 끝을 끊으리.
행에서 6처(處)까지는 이 행의 괴로움이고
촉(觸)과 수(受)가 자라나면 괴로움의 괴로움이 되도다.
나머지의 유지(有支)는 곧 무너지는 괴로움이며
만일 아(我)가 없음을 보면 세 가지 괴로움도 멸하노라.
인연을 좇아서 행 등이 일어나니
인연을 여의면 끊어지는 까닭에 성품이 공이요
무명을 반연하는 것이 생의 결박이니
그 반연을 여의면 결박은 없어진다.
무명을 수순하여 모든 유(有)를 일으키니
만일 수순하지 않으면 모든 유가 끊어지도다.
이것으로 인하여 저것이 있게 되는데 없음 또한 그와 같으니
10가지의 사유하는 마음은 집착을 떠난다.
유지의 상속은 한 마음에 포섭되나니
제 업을 버리지 않으면 세 가지 흐름이 있다.
3제(際)의 세 가지 괴로움은 인연으로 생기나니
연이은 계박이 생하고 멸함은 그대로 다함 없다.
이와 같이 연기(緣起)의 행을 두루 관찰하면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고 자성도 없음이라
요술 같고 꿈 같고 그림자와 같으니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아지랑이를 쫓는 것과 같다.
이것을 관찰하여 공해탈문에 들어가고
반연의 성품을 알아 여의고서 무상(無相)에 들어가며
그 허망함을 깨달아서 원하는 바 없게 되나니
오직 자비심으로 유정들을 구제함은 예외이다.
큰 스님들은 해탈의 문을 닦아 행하고
대비(大悲)를 더욱 더하여 부처님 법을 구하며
유위(有爲)는 화합을 좇아 존재하는 것임을 알아서
기꺼이 결택하여 부지런히 정진한다.
공(空)의 등지(等持)를 증득해 백만을 갖추었으니
상(相)이 없음과 원(願)이 없음도 또한 그와 같구나.
반야와 순인(順忍)이 다 증상되어
해탈과 지혜가 원만히 이루어진다.
다시 또 의요로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부처님의 가르침 안에서 도를 닦아 익히며
부처님의 법의 창고를 얻어 선근을 늘리나니
마치 금을 유리로 빛나게 장식하는 것과 같다.
마치 달이 맑고 시원함이 만물에 두루하여
네 가지 바람이 와 닿아도 부서뜨릴 수 없는 것처럼
이 성스러움은 네 가지 악마의 도를 뛰어넘나니
세상의 뜨거운 미혹을 식히는 것도 그와 같도다.
여기에 머물러 대개 훌륭히 교화하는 왕이 되어서
유정들을 교화시켜 아만(我慢)을 제거하누나.
짓는 것 다 일체의 지혜를 구하나니
모두가 이미 성문(聲聞)의 도를 뛰어넘었도다.
이 자리에서 정근하면
백천구지의 보살의 삼마지를 얻고
또 약간의 한량없는 부처님을 뵈옵거니
비유하면 한여름날 저 하늘의 해와 같다.
매우 깊고 미묘하여 보거나 알기 어려워
성문이나 독각으로는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은 보살의 제6지를
나는 불자들을 위해 이미 설명하였노라.
07. 보살원행지(菩薩遠行地)
이 때에 대중들은 마음으로 기뻐하여
공중에 보배를 흩어 구름을 이루었고
모두들 가지가지의 묘한 음성을 내어
가장 훌륭하고 맑고 깨끗한 어른에게 사뢰었다.
"승의(勝義)를 통달하고 지혜가 자재로워서
백천억의 공덕을 다 성취하였네.
사람 중의 연꽃으로서 번뇌하는 바 없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 깊은 행을 연설하시네."
자재천왕은 공중에서
큰 광명을 놓아 부처님의 몸을 비추고
또한 최상의 묘한 향 구름을 흩뿌리어
근심과 번뇌를 제거하는 이에게 널리 공양하였다네.
그 때에 대중들은 다 기뻐하면서
모두 큰 소리를 내어 함께 찬탄하였다.
"우리들은 이 지(地)의 공덕을 다 듣고
이미 훌륭한 이익을 얻었네."
이 때에 천녀들도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천만 가지의 음악을 다투어 연주하며
모두 여래의 위신력 때문에
그 소리 속에서 함께 이렇게 말하였네.
"위의(威儀)가 적정하고 최상이어서 비할 데 없고
조복하기 어려움을 조복하니 세상 공양 받을 만하여
일체의 모든 세간을 초월하여
이 세상에 다니면서 묘한 도를 밝히네.
비록 갖가지의 한량없는 몸을 나타내지만
그 몸이 하나하나 모두 없는 것임을 알며
교묘하게 말과 소리로 모든 법을 설명하건만
문자와 음성의 상(相)을 취하지 않네.
백천의 모든 국토를 다니면서
갖가지의 훌륭한 공양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며
지혜가 자재로와 번뇌함이 없어
나다 부처다 국토다라는 생각을 내지 않네.
비록 부지런히 모든 유정들을 교화시키더라도
나와 그라는 일체의 마음이 없고
비록 이미 넓고 선(善)을 닦아 이루었어도
그 선법에 대해 집착을 내지 않네.
이 일체의 모든 세간이
탐욕과 분노와 우치의 불에 항상 타는 것 보고는
모든 상념(想念)을 다 떨어버리고
대비(大悲)의 정진력을 일으키네."
일체의 모든 천왕과 천녀들
갖가지로 공양하고 찬탄하고는
모두 다 일시에 묵묵히
사람 중의 높은 이를 우러러보며 법 듣기를 원하네.
그 때 해탈월보살은 다시 청해 말하였다.
"이 모든 대중의 마음은 청정하나니
제7지의 모든 행상을
원하노니 불자들을 위해 연설하시라."
그 때 금강장보살은 보살 대중에게 말하였다.
“불자들이여, 만일 보살이 제6지에서 닦은 지도(地道)를 잘 원만히 하여서 제7지에 들어가고자 하면 10가지 묘한 방편과 지혜가 끌어내는 불공진도(不共進道)의 훌륭한 행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것이 10가지인가? 이른바 공·무상(無相)·무원(無願)의 삼마지를 닦고 광대한 복덕의 자량(資糧)을 모아서 모든 법에 아상(我相)이 없고 수자상(壽者相)도 없으며 중생상(衆生相)도 없음을 증득해 들어가 4무량심(無量心)의 닦음을 버리지 않고 광대한 복덕과 법과 증상된 바라밀행을 닦는 마음을 일으키어 모든 법에 조그만 집착도 없으며, 이미 일체 삼계를 멀리 떠나 삼계의 장엄을 유발하여 필경에 고요한 적멸을 얻어 모든 번뇌의 불꽃을 멀리 여윕니다. 모든 유정들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불꽃에서 적멸의 행을 자아내어 모든 법이 환화와 같고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와 같고 물 속의 달과 같고 거울 속의 영상과 같음을 압니다. 또 자성(自性)이 둘이 아님을 알아서 업용의 무량한 차별의요(差別意樂)를 유발하고 선(善)에 의지하여 모든 국토의 도(道)가 허공과 같음을 닦아서 불찰의 청정하고 장엄한 행을 끌어내며 모든 부처님 법신의 성품이 허공과 같음을 알면서 묘한 색의 상호(相好)를 일으키어 그 몸을 장엄하는 것입니다.
또 모든 부처님 음성의 본성이 적정(寂靜)하여 언설로 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일체 음성의 차별된 장엄을 유발할 수 있음을 알고, 모든 부처님이 한 찰나에 삼세를 단박에 깨치어 수순해 들어가 갖가지 상과 겁수(劫數) 등을 드러내 보임을 아나니 이는 모든 유정들의 마음의 의요(意樂)를 관찰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이와 같이 이 10가지 묘한 방편과 지혜가 끌어낸 불공진도(不共進道)의 훌륭한 행을 따라서 제6지로부터 제7지로 들어갑니다. 그리하여 여러 불자 보리살타여, 이 10가지 묘한 방편 지혜가 이끌어낸 불공진도(不共進道)의 수승한 행이 현전(現前)에 드러나는 까닭으로 말미암아 이미 제7지에 들어갔다 합니다.
보살이 이 제7지에 머무를 때는 무량한 유정의 세계에 들어가고, 모든 부처님이 유정들을 조복(調伏)하는 업(業)을 성취함에 들어가고, 무량한 모든세계 그물에 들어가고, 무량한 모든 불세존 불찰의 청정함에 들어가고, 무량한 법의 차별된 성품에 들어가며, 무량한 불세존 지혜의 정등각(正等覺)에 들어가고, 차별된 무량한 겁수에 들어가고, 무량한 불세존이 삼세를 깨달은 그 깨달음에 들어가고, 무량한 유정들 승해(勝解)의 차별된 상(相)에 들어가고, 무량한 모든 불세존이 나타내 보이신 갖가지 명호와 색신(色身)에 들어가고, 무량한 유정들의 의요근(意樂根)의 차별에 들어가고, 무량한 불세존이 그 음성으로 저 유정들을 기쁘게 함에 들어가고, 무량한 유정들의 갖가지 심행(心行)의 차별에 들어가고, 무량한 불세존의 광대한 지혜행[智行]에 들어가고, 무량한 모든 성문승의 노니는 길과 승해와 신해(信解)에 들어가고, 무량한 불세존께서 연설한 도에 들어가고, 무량한 모든 독각승의 수증(修證)을 성취함에 들어가고, 무량한 모든 불세존이 연설해 들어가신 깊고 깊은 지혜의 문에 들어가고, 무량한 보살행이 닦는 가행(加行)에 들어가고, 무량한 불세존이 연설하고 들어가신 대승의 모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가 이렇듯 무량하여 백구지겁에도 다 셀 수가 없고 천구지 겁·백천구지 겁·나아가 백천구지 나유타 겁에도 다 셀 수 없다. 나는 이러한 부처님의 경계를 일으켜서 공용(功用)이 없고 분별이 없으며 다른 어떤 분별도 없이 원만하게 하리라.’
보살은 이와 같이 많은 선관지통(善觀智通)으로 끊어짐과 결함 없이 부지런히 수행하여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방편과 지혜로 훈습하고 닦은 불공진도(不共進道)의 훌륭한 행(行)에 안주하는 것이라 합니다.
또 이 보살은 한 찰나 사이에 도(道)를 유발할 수 있어 선정관행(禪定觀行)에서 일어나지 않은 때에도 이와 같이 바른 지혜를 일으키어 부지런히 수학(修學)해 머뭅니다. 또한 서고 앉고 누울 때, 심지어 잠자고 꿈꿀 때에도 번뇌를 여의어 모든 위의(威儀) 가운데서 마음대로 한다 하지 않고 오직 바른 생각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는 한 마음 한 찰나 사이에 10바라밀을 구족하고 성취합니다. 왜냐 하면 이 보살이 일으키는 일체 마음의 생각이 그 생각생각마다 모두 다 대비(大悲)를 으뜸으로 삼아서 닦고 증득한 모든 불법을 여래의 지혜로 나아가는 데 에 회향하기 때문입니다.
이 보살의 모든 선근은 부처의 지혜를 구하여 유정들에 보시하기 위해서이니 이것은 저 보시바라밀다요, 자비를 으뜸으로 하여 모든 유정을 해치지 않나니 이것은 저 안인(安忍)바라밀다요, 싫증이 없이 후후(後後)의 선법을 증진시키나니 이것은 저 정진바라밀다요, 일체지(一切智)의 도가 항상 앞에 나타나 있어 산란하는 일이 없나니, 이것은 저 선정바라밀다요, 성품이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서 법 가운데 현전(現前)에 나타나는 인(忍)이니 이것은 저 반야바라밀다요, 무량한 지혜를 끌어내나니 이것은 저 방편선교바라밀다요, 후후의 지혜를 끌어내나니 이것은 저 원바라밀다요, 일체의 이론(異論)과 모든 악의 대중들이 도를 파괴할 수 없나니 이것은 저 힘바라밀다요, 일체의 모든 법을 여실히 건립하나니 이것을 저 지혜바라밀다라 합니다.
여러 불자들이여, 보살이 이 원행지(遠行地)에 머무르면 이와 같은 10바라밀다가 찰나 사이에 모두 구족케 되고, 4섭사(攝事)와 4가지(加持) 그리고 37보리분법(菩提分法)과 3해탈문(解脫門), 간단히 말해 일체 각분(覺分)의 법(法)이 찰나찰나에 모두 원만하게 합니다.”
이렇게 말을 하자 해탈월보살이 금강장보살에게 물어 말하였다.
“불자여, 보살이 제7지에서만 일체의 각분을 원만히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체 보살 자리[地]에서도 원만히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보살은 모든 10가지 중에서 일체의 각분을 다 원만히 할 수 있지마는 그 중에서도 제7지가 가장 수승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불자여, 이 보살지에서는 지금 가행이 있어 그 행을 원만히 하여 전전해 지혜 신통의 행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초지(初地)에서는 일체의 큰 원(願)에 반연되는 각지(覺支)가 원만하고, 제2지에서는 마음의 때[垢]를 씻기 때문이며 제3지에서는 바른 원(願)이 증장하여 법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제4지에서는 도(道)에로 나아가기 때문이고 제5지에서는 일체 세간의 사업에 수순하기 때문이며 제6지에서는 깊고 깊은 모든 법의 문에 들어가기 때문이고 지금 이 제7지에서는 모든 불법을 구족하게 일으키기 때문에 각지(覺支)가 원만해지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보살은 초지에서부터 7지까지 일으킨 지혜의 가행분(加行分)이 이 8지(地)부터는 공용(功用) 없이 모두 절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비유하여 두 세계가 있는데 하나는 염정(染淨)의 세계요, 다른 하나는 순정(純淨)의 세계라 한다면 오직 큰 신통을 가진 이를 제외하고는 이 두 세계의 중간을 통과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불자여, 보살의 오염과 청정이 뒤섞인 행(行)의 문도 그와 같아서 오직 큰 서원의 방편·지혜·신통의 힘을 가진 이를 제외하고는 통과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해탈월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앞의 7지(地) 중 보살의 바른 행은 번뇌로 인해 오염된 것입니까?”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초지로부터의 모든 보살행은 모든 번뇌의 업을 멀리 떠난다고 할 수 있으니, 그것은 보리의 증상력(增上力)에 회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류에 따른 도가 평등하기 때문에 7지에서는 아직 번뇌의 행을 초월했다 할 수 없습니다.
불자여, 비유하면 저 전륜성왕은 천상의 코끼리를 타고 4대주(大洲)의 인간 세간을 돌 때 빈곤과 고통과 번뇌를 잘 알면서도 그 온갖 우환에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람의 자리[人位]를 뛰어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왕의 몸을 버리고 범세(梵世)에 나서 범궁(梵宮)을 타고 천상 세계를 돌면서 범천의 광명과 위덕을 나타내 보이면 그제서야 사람의 위치를 뛰어넘었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불자여, 보살도 이와 같아서 처음 초지에서 보살의 바라밀다를 타고 세간을 두루 돌 때 모든 유정들의 번뇌와 허물과 애환을 알면서도 그 온갖 허물과 애환에 더럽혀지지 않나니, 그것은 정도(正道)를 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지까지도 아직은 번뇌의 애환을 초월했다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일체의 공용(功用)을 버리고 7지에서 8지에 들어가서 보살의 청정한 수레를 타고 세간을 두루 돌 때 번뇌와 허물과 애환을 알면서도 그것에 더럽혀지지 않나니 이는 이미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여기 보살 제7지에 안주하면 대체로 탐욕 등 일체의 번뇌를 초월했다 합니다.
모든 보살이 이 원행지를 닦을 때는 마땅히 번뇌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라 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일체의 번뇌가 현행(現行)하지 않기 때문에 번뇌가 있다고 말할 수 없고 부처 지혜를 희구하여 아직 얻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고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이 제7지에 머무를 때는 증상된 의요(意樂)와 청정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성취하여 모든 여래께서 꾸짖는 일체의 불선업도를 초월하여 항상 부처님이 칭찬하시는 10선업을 호지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제5지에서 일으킨 세간의 모든 정교한 업들은 제7지의 보살에게는 공용(功用)이 없이 저절로 움직이므로 그래서 여래·정변등각과 제8지에 안주하는 의요와 가행이 그 아무와도 짝할 수 없는 큰 보살 등을 제외하고는 삼천대천세계에서 모두 그를 스승으로 받듭니다. 그리고 모든 선정과 등지(等持)와 등지(等至) 그리고 신통과 해탈 등 일체가 현전(現前)하는 것은 수행의 상(相)이 현전하기 때문이지 이숙(異熟)으로 성취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8지에서와 같이 이 제7 원행지(遠行地)에 머무르는 보살은 모든 심념(心念) 가운데서 묘한 지혜·방편으로 닦는 힘이 원만히 성취하여졌으므로 일체 각지(覺支)가 더욱 원만해지는 것입니다.
또 이 보살이 이러한 보살 제7지에 머무를 때, 이름하여 잘 생각해 가리는 보살의 삼마지, 이름하여 뜻을 잘 생각하는 삼마지, 이름하여 수승한 지혜의 삼마지, 이름하여 분별의(分別義)를 갈무리하는 삼마지, 이름하여 일체의 이치를 가리는 삼마지, 이름하여 견고한 근(根)에 잘 머무르는 삼마지, 이름하여 지혜 신통의 문 삼마지, 이름하여 법계를 빛내는 삼마지, 이름하여 여래의 훌륭한 이익 삼마지에 들면 그것을 갖가지 이치의 창고[義藏]와 생사(生死)·열반(涅槃) 문의 삼마지에 든다고 이름합니다. 보살은 이와 같은 큰 지혜와 신통을 으뜸으로 하여 백만의 삼마지에 들어가 이 지(地)를 깨끗이 다스리나니, 그것은 이와 같은 묘한 방편과 지혜로 훈습하고 닦은 삼마지이기 때문에, 대비를 얻었기 때문에 성문과 독각승의 지위를 초월하여 지혜로 관찰하는 지(地)가 현전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살이 제7지에 머무르는 보살은 무량한 신업(身業)이 상(相)을 여의어 그대로 전전(展轉)하고 무량한 어업(語業)이 상을 여의어 그대로 전전하며 무량한 의업(意業)이 상을 여의어 그대로 전전하니 지극히 훌륭하고 청정한 무생법인(無生法忍)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해탈월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초지보살에게는 어째서 모든 성문과 독각의 행(行)을 뛰어넘는 그런 무량한 신(身)·어(語)·의(意)·업(業)이 없습니까?”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비록 이 행이 있으나 그것은 다만 불법이 연(緣)하는 바의 증상된 힘 때문이지 스스로 깨달은 지혜로 관찰한 것이 아닙니다. 이 보살의 제7지에서는 스스로 깨달은 지혜로 경계를 관찰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불자여, 비유하면 왕자가 왕가에서 태어나 정후(正后)의 소생으로서 왕의 상을 구족하면 나자마자 곧 신하들을 압도하지마는, 그것은 다만 그 부왕(父王)의 훌륭한 자재(自在) 때문이지 자신의 지혜로 생각하고 살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몸이 자라서 모든 기예의 업을 다 이루었다면 그것은 곧 자기 지혜의 힘으로 지닌 것이 되기 때문에 일체 신하들의 짓는 바를 초월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자여, 보살도 그와 같아서 처음 발심함으로 일체 성문과 독각을 압도하는 것은 다만 광대하고 뛰어난 의요 때문이지 스스로 깨달은 지혜로 관찰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보살 제7지에서는 스스로 안립(安立)하는 지혜를 행하기 때문에 일체 성문과 독각이 짓는 일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불자여, 보살이 이 7지에 머물러 비록 매우 깊고 적정하여 설사 행이 없는 신·어·의·업을 얻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용맹스런 가행을 구함을 버리지 않습니다.”
해탈월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보살이 어떤 지(地)에 오르면 멸정(滅定)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금강장보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보살은 7지에서부터 멸정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보살의 7지에 머무르면 낱낱의 마음이 찰나 사이에 멸정에 들어갈 수는 있지마는 멸을 작증(作證)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보살이 매우 깊고 희귀한 신·어·의·업을 성취하였다 하더라도, 이른바 항상 실제주(實際住)에 안주한다 하더라도 적멸을 작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큰 배를 타고 큰 바다에 나아갈 때, 그 배의선교(善巧)를 얻고 물의 상황을 잘 알면 그는 끝내 큰 바다에서 수난(水難)을 당하지 않는 것처럼, 불자여, 보살이 이 7지에 머무르는 것도 이와 같아서 바라밀의 배를 타면 항상 실제주(實際住)에 안주할 수 있으면서도 적멸을 작증하지 않습니다.
불자여, 보살이 이 지혜를 얻은 뒤엔 삼마지의 지혜의 힘을 닦아서 일으킨묘한 지혜와 큰 방편의 선교한 힘으로 말미암아 생사의 문을 보이지마는 그 생각은 열반에 머물러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항상 멀리 떠남을 즐깁니다. 그러나 원력으로 하여 삼계에서 생을 받았지마는 세상 법의 허물에 오염되지 않습니다. 항상 적멸하면서도 방편의 힘으로 도리어 활활 타는 듯 하지만 비록 활활 타는 듯 하여도 거기에 타지 않고 항상 부처의 지혜를 따릅니다.
성문과 독각의 지위를 드러내 보이면서도 부처님 경계의 창고를 얻으며, 마의 경계에 머무름을 보이면서도 4마(魔)의 도(道)를 초월하여 마법(魔法)을 행하고 일체 외도의 행을 행함을 보이면서도 그의 마음은 불법을 버리지 않습니다. 또한 일체 세간 업에 따라 행하되 항상 즐거이 출세간법에 들고, 일체의 장엄한 일에 나아가며, 일체 사람·하늘·용·야차·귀신 및 제석천·범천·호세천의 모든 소유를 다 초월해 법을 즐기는 마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불자여, 보살이 이와 같은 지혜를 성취하여 보살의 원행지에 머무르고는 광대한 지견 및 원력으로 나타난 많은 부처·많은 백 부처·많은 천 부처·많은 백천 부처·많은 백천나유타 부처님과 많은 구지 부처·많은 백구지 부처·많은 천구지 부처·많은 백천구지 부처님과 많은 백천구지 나유타 부처님을 봅니다. 보살은 이 여래·응공·정등각을 보고는 모두 광대하고 증상된 의요(意樂)로 공경하고 존중하며 섬기고 공양하되, 의복·음식·침구·의약 등 모든 생활거리를 보시하고 보살의 묘한 오락 도구를 승가(僧伽) 대중에 바치어 공경을 표하며 이 선근으로 최상의 정등보리에 회향합니다.
모든 부처님을 존중하고 섬기며 공경하면서 희유하다는 생각으로 바른 법을 들으며 그 법을 듣고는 수지(受持)하여 전도(顚倒)가 없는 등지(等至)와 지혜의 광명을 수행함으로써 모든 부처님이 호지(護持)하시는 거룩한 가르침을 성취하여 일체 성문과 모든 독각이 스스로 드러낸 관행 가운데서 어떤 어려운 질문이라도 그를 꺾지 못하므로 거기서 유정들을 이롭게 하는 많은 법인(法忍)이 깨끗해집니다.
보살이 이 원행지에 머무르면 무량한 겁에 걸쳐 이 모든 선근이 더욱 빛나고 청정하며 감수하는 능력이 더욱 밝고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무량 백 겁·무량 천 겁·무량 백천 겁·무량 백천나유타 겁과 무량 구지 겁·무량 백구지 겁·무량 천구지 겁·무량 백천구지 겁·무량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 이 선근은 점점 더 밝고 깨끗해집니다.
불자여, 비유하면 연금사가 담금질한 금으로 장엄 도구를 만들고는 마니보배를 사이사이에 박아 장식하면 매우 빛나고 아름다우며 극히 밝고 깨끗하여 다른 장엄구가 따르지 못하는 것처럼, 불자여, 보살이 이 제7 원행지에 머무르면 이 모든 선근도 그와 같이, 방편과 지혜로 일으킨 것이라서 더욱 밝고 더욱 깨끗하여 일체 성문과 독각의 선근으로는 그 빛을 무색케 할 수 없습니다.
불자여, 또 비유하면 저 햇빛은 별이나 달빛으로 가릴 수 없으며 이 염부제의 온갖 더러운 진창을 다 말리는 것처럼, 불자여, 제7 원행지에 머무르는 보살의 선근도 그와 같아서 일체 성문과 독각의 선근으로는 가릴 수 없으며 일체 유정들의 번뇌와 더러움을 많이 말립니다.
그는 10바라밀다 중에서 방편선교바라밀다가 증상(增上) 되고 다른 바라밀다는 힘을 따르고 분수를 따르되 수행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불자여, 이상이 보살의 제7 원행지의 대강의 설명입니다.
보살이 이 7지에 머물 때 생을 받으면 대개는 타화자재 천왕이 되어 일체 성문과 독각에게 현관(現觀)의 방편을 가르쳐 주고 유정들로 하여금 생을 떠나는 바른 성품에 들게 합니다. 그리고 그가 짓는 모든 일, 혹 보시(布施)거나 애어(愛語)거나 이행(利行)이거나 동사(同事)거나 이런 모두가 다 부처님의 작의(作意)와 법의 작의와 승가의 작의와 보살의 작의와 보살행의 작의 와 바라밀다의 작의와 모든 지(地)의 작의와 부처님 힘의 작의와 무외(無畏)의 작의와 불공법(不共法)의 작의를 떠나지 않고, 나아가 일체 행상(行相)의 승묘(勝妙)와 상응하는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작의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항상 이런 원을 세웁니다.
‘나는 일체 유정들 중에서 으뜸이 되고 훌륭함이 되고 수승함이 되며 묘함이 되고 미묘함이 되며 위가 되고 위없음이 되며 안내자가 되고 장군이 되며 장수가 되고 내지 일체지지의 의지처가 되리라.’
만일 즐겨 이런 정진을 일으키면 이 정진으로 말미암아 한 찰나·한 순간·잠깐 사이에 백천구지 나유타의 삼마지를 증득하고 백천구지 나유타의 부처님을 보며 그 부처님이 가지(加持)하시는 것을 잘 알게 되고 백천구지 나유타 세계를 진동시키며 백천구지 나유타의 불찰에 가고 백천구지 나유타의 세계를 비추며 백천구지 나유타의 유정을 성숙시키고 백천구지 나유타 겁을 살며 과거와 미래의 백천구지 나유타의 겁에 각각 들어가고 백천구지 나유타의 법문을 잘 생각해 가리며 백천구지 나유타 몸을 나타내며 그 몸몸마다 백천구지 나유타 보살 권속에 둘러싸여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이 이상은 원력이 있는 보살이 그 원력으로 말미암은 모든 유희로서 혹은 몸이거나 광명이거나 신통이거나 혹은 눈이거나 경계거나 음성이거나 행동이거나 또는 장엄이거나 승해거나 혹은 지음이거나 이런 것들은 심지어 백천구지 나유타 겁 동안 세어도 다 셀 수 없습니다.”
그 때 금강장보살은 이 뜻을 거듭 밝히기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6지의 행을 다 잘 갖추고는
방편과 지혜에 각인된
불공진도(不共進道)의 수승한 행을 닦나니
이로써 제7지에 들어간다.
3가지 해탈문에 있으면서 복덕을 쌓고
무아(無我)를 통달하여 자비심을 닦나니
복덕과 법이 언제나 충만하여
피안에 이르기까지 행하여도 집착이 없노라.
삼계(三界)를 멀리 여읜 것으로 장엄하고
적연(寂然)히 멸한 세계에 번뇌가 없으며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알면서도 업에 힘쓰고
국토가 허공과 같음을 알면서도 즐거이 국토를 장엄한다.
몸에 상(相)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상호(相好)를 모으고
소리가 말을 떠난 줄 알면서도 잘 연설하며
찰나 사이에 깨치고 온갖 상을 나타내나니
지혜로운 사람은 이로써 제7지에 오른다.
이 법을 관찰하여 명료해지면
널리 미혹한 중생들을 위하여 이익을 일으키고
그 끝이 없는 유정 세계에 들어가나니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교화하는 업 또한 한량이 없다.
국토와 법과 겁의 수와
훌륭한 이해와 뜻의 즐거움과 마음의 행에 들어
한량없이 3승(乘)의 법을 연설하니
이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들을 교화시킨다.
찰나찰나에 쌍운(雙運)의 도를 끌어내고
4위의(威儀) 가운데서 항상 지혜를 닦아
그 하나하나를 부처님의 보리에 회향하고
생각생각에 10바라밀다를 두루 갖춘다.
유정들에게 잘 베풀어 주는 것을 보시라 하고
의혹(惑)을 없애 계율 해치지 않음을 인욕이라 하며
선을 구하매 싫증이 없음을 정진이라 하고
도에서 흔들리지 않음을 정려(靜慮)라 한다.
법의 무생인(無生忍)을 지혜라 하고
한량이 없는 지혜를 일으킴을 방편이라 하며
후후(後後)의 지혜를 끌어냄을 원(願)이라 하고
꺾어서 항복 받을 수 없음을 힘이라 한다.
여실히 법을 세우는 것이 지혜이니
이와 같은 것을 생각생각에 모두 원만히 하리라.
초지는 훌륭한 서원과 각지(覺支)가 원만하고
2지는 마음의 때[垢]를 멀리 떠나는 까닭이요
3지는 서원이 증장되고 법이 밝아지는 까닭이요
4지는 도에 들어가는 까닭이다.
5지는 세간의 모든 사업을 수순하기 때문이요
6지는 깊고 깊은 법의 문에 들어가기 때문이며
7지는 마음을 일으킴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부처님 법의 각지가 원만해진다.
이로써 제8지에서 짓는
모든 일이 다 맑고 깨끗이 되리니
이 지는 초월하기 어려워 오직 지혜로운 자의
큰 서원과 지혜로만이 뛰어넘을 수 있네.
마치 잡스러움과 깨끗한 두 세계 사이는
오직 신통에 의해서만 뛰어넘을 수 있는 것과 같고
또 전륜성왕에게 염착(染着)이 없다지만
아직은 사람의 자리를 초월하지 못한 것과 같다네.
만일 제8지에 머무르면
그제서야 마음의 경계를 넘어
마치 범천 세계에 나서 사람의 자리를 뛰어넘는 것과 같고
마치 연꽃이 물에 있으되 염착(染着)하지 않음과 같다.
이 지(地)에서 비록 모든 미혹을 초월했으나
미혹이 있다거나 미혹이 없다거나 할 수 없다네.
아무 번뇌 없이 현행(現行)함이니
부처의 지혜를 희구하나 아직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간의 모든 뭇 기예와
경전과 사론(詞論)을 밝게 다 알고
고요한 생각과 등지(等持) 그리고 또 신통
이런 것은 수행함으로써 속히 성취한다.
보살은 이 7지의 도를 닦아
일체 2승(乘)의 행을 초월하나니
초지는 서원으로 인하고 이 지는 지혜로
비유하면 왕자의 힘이 구족한 것과 같노라.
성취가 매우 깊어져야 도(道)에로 나아가나니
멸정(滅定)에 자주 들면서도 작증(作證)하지 않음일세.
비유하면 배를 타고 바다에 들어
물에 있으면서도 물에 빠지지 않는 것과 같노라.
방편과 지혜와 행의 공덕을 두루 갖추었는데
일체 세간에는 아무도 아는 이 없다.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여 마음이 더욱 밝나니
마치 묘한 보배로 금을 장엄한 것과 같다.
이 지(地)의 보살은 지혜가 가장 밝아
마치 햇빛이 애욕의 물을 말리는 것과 같고
또 타화자재천의 왕이 되어
중생들을 교화시켜 바른 지혜를 닦게 한다.
만일 용맹스러운 정진의 힘을 더하기만 한다면
많은 등지(等持)를 얻고 많은 부처님 뵙고
백천구지 나유타
원력이 자재함이 이보다 더하리.
이것이 바로 보살 원행지의
방편과 지혜와 청정한 도이니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
성문과 독각들은 측량치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