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와 법륜
부처님은 허공장경(虛空藏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여기에 하나의 큰 수레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거기에는 네 바퀴(輪)가 있고 그 바퀴들에는 열개의 바퀴살(輻)이 있고 또 그 바퀴에는 각각 속바퀴(執)가 있다.
그리고 그 바퀴에는 못 굴레빗장 그 밖에 다른 쇠붙이들이 달려 있어야 한다.
이 수레는 잘 길들여진 좋은 흰소가 멍에채를 매고서 있다.
좋은 어자가 채찍을 들고 그 수레에 올라 타 가슴걸이에 연결된 일곱 개의 끈을 쥐고 소를 몰아 움직이게 한다.
수레에 매달린 깃발이 나부끼고 평평하고 바른길을 발걸음도 가볍게 착실히 앞을 향해 간다.
이렇게 갈 때 이 큰 수레(一大乘)는 그가 목적한 저쪽언덕(彼岸)에로 틀림없이 도달하고야 마는 것이다. 원효성사는 그의 명저 기신론소에서 이것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네개의 수레바퀴는 4섭법(四攝法)이다. 보시란 베풀어 주는 일이다.
인색한 이기주의적 모든 경향을 자기 마음속에서 죽이고 탐욕을 부리지 않는 깃이다.
둘째 애어(愛語)는 자비스럽게 이야기 하는 것이니 거짓말을 말하지 않고 욕을 부리지 않고 남을 모함하지 않으며 오직 자비로운 마음에서 우러나 이야기하는 것이다.
셋째 이행(利行)은 누구에게나 참된 이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그 본연의 참된 모습으로 되돌아가게끔 하는 이익 말이다.
넷째 동사(同事)는 남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같이 일하는 것이니, 그 마음에 준해서 거짓 없이 진실하게 보시, 애어, 이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일로써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될 수 있으므로 4섭법(四攝法) 혹은 4섭사(四攝事)라 하기도 한다.
이것은 수레의 네 바퀴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 네 바퀴는 다시 열개의 살들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다.
그 열개의 살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열 가지 착한일(十善)에 비유하는 것이다.」
첫째, 죽이지 않는 것(不殺生)
둘째, 훔치지 않는 것(不倫盜)
셋째, 간음하지 않는 것(不邪淫)
넷째, 망녕 된 말을 하지 않는 것(不妄語)
다섯째, 욕하지 않는 것(不惡口)
여섯째, 이간질하지 않는 것(不兩舌)
일곱째, 잡되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는 것
여덟째, 욕심 부리지 않는 것
아홉째, 화내지 않는 것
열째. 잘못 보지 않는 것(不邪見)
그리고 속 바퀴는 그 밖의 모든 착한 마음에 비유되고 못과 굴레빗장, 그 외의 여러 가지 쇠붙이들은 굳은 결심, 순박한 마음, 한결같은 의지에 비유되며, 잘 길들여진 흰소는 한없는 마음에 비유된다.
한없는 마음이란 자애롭기 그지없는 마음(慈), 고난을 같이 나누는 마음(悲), 항상 기쁜 마음(喜). 집착을 버리는 마음(捨)을 말한다.
이 네 마음은 크고 넓고 깊음이 한량이 없으므로 사무양심(四無量心)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 마음이 한 덩어리가 되어 멍에채를 맬 때 비로소 그 수레는 영원한 생명의 은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멍에채는 흔들림이 없는 마음,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이니 곧 선정에 비유된다. 수레를 몰고 가는 어자는 선지식이고, 채찍은 경종이고 가슴걸이에 연결된 일곱 개의 밧줄은 사리를 분별하여 악한 것을 버리고 참되고 착한 것을 선택하는 지혜며, 깃발은 자비의 상징이고 똑바로 바른 길은 여덟 가지 바른 길(八正道)이니, 이미 뭇 성인네들이 지나가신 길이다.
선지식(善知識)이란 훌륭한 스승을 말한다. 잘 알고 가르쳐 주는 분이니까 말이다.
이제 때가 오면 소는 수레를 끌고 갈 것이다.
때 아닌 때 출발하면 별로 이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떠날 때가 있고 떠나지 말아야할 때가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제가 다급하게 되면 처자고 권속이고 다 잡아 팽개치고 홀로 떠나 산중으로 도망친다. 이것은 출가가 아니라 은둔이고 도피이다.
그래서 이것을 소승찬배(小乘淺輩)라 하는 것이다.
참 선지식은 떠나고 떠나지 않는 것이, 이 사회 모든 중생들과 관련하여 있으면서도 둘이 이해로움이 없을 때(자리리타.自利利他) 떠남을 실행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행함이 되므로 선지식이 되는 것이다.
수레를 끌고 나설 때 크게 소리치는 채찍은 이 세상만사와 자기 자신의 참 모습을 깨닫는 데 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영원불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무상.無常), 인생은 고통스럽다는 사실(고.苦),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인과 관계 속에 얽혀 있으며 확고 부동한 실체가 없다는 사실(공.空), 심리적 감관과 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나는 이름일 뿐 진짜 나라고 부를 만한 것은 본질상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무아.無我),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소리가 깨끗한 양심에 메아리쳐 몸이 전율하고 마음이 부르르 경각을 느낄 때 들리는 소리 이것이 바로 채찍의 소리인 것이다.
무상, 고, 공, 무아를 알리는 채찍의 소리를 들으며 수레가 앞으로 나아갈 때 일곱 개의 아름다운 밧줄이 소의 가슴에 굳건히 걸려 뗑개질하게 된다.
일곱개의 밧줄은 사리를 분별하여 악한 것을 버리고 참되고 착한 것을 선택하는 지혜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1. 잊지 말고 기억하며 생각하는 일(염.念)이고
2. 사물을 분석하여 진리를 탐구하는 일(택법.擇法)이고
3. 끊임없이 부지런히 노력하는 일(정진.精進)이며,
4. 부드럽고 환희에 넘쳐 있는 일(희.喜)이고
5. 몸과 마음을 경쾌하고 고요하게 하는 일(경안.輕安)이고
6.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는 일(정.定)이고
7. 아무 것이나 아무 일에도 집착하지 않는 일(사.捨)이다.
이렇게 하여 대자대비를 이상으로 표방하는 깃발이 나부끼고, 수레의 뒷 턱에는 부단한 노력을 다짐하는 횡목이 굳건히 차체를 유지하며, 그 밖의 여러 가지 덕목을 실천하며 모든 성현네들이 이미 지나가고 일체 중생들이 장차 마땅히 지나갈 8정도(八正道)의 넓고 평탄한 길을 똑바로 달려갈 때 그 수레는 모든 중생의 이상이 되고 모든「붓다」가 현존하시는 영원하고(常) 안락하고(樂) 자유롭고(我) 깨끗한(淨) 저 세계에 가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8정도(八正道)는
1. 바로 생각하고(正思)
2. 바로 말하고(正語)
3. 바로 일하고(正業)
4. 바로 생명을 유지하고(正命)
5. 바로 노력 하고(正勤)
6. 바로 보고(正見)
7. 바로 기억하고(正念)
8. 바로 마음을 잡는 것(正定)이다.
실로 장엄하기 그지없는 수레요, 모든 인류가 다 함께 타고 가고 싶은 성스러운 수레이다.
사람다운 사람만이 탈 수 있는 수레, 자기를 알고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만이 올라설 수 있는 이 수레는 오직 스승의 말귀나 얻어 듣고 몇 낱의 글귀나 외우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성문승이나 벽지불들은 오히려 쳐다보기도 힘든 수레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수레는 이 하나의 수레 속에 모든 것을 다 잡아 넣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1승이 되는 것이고, 이에 한번 오르기만 하면「붓다」의 모든 덕을 구족할 수 있으므로 불승(佛乘)이다.
수레는 곧 마음이다. 작은 수레(小乘)는 작은 마음이고 큰 수레(大乘)는 큰 마음이다.
길고도 고요하고 맑고 또 평화로운 마음 영원과 현실이 함께 이루어지고 동정시비(動靜是非)가 다 하나가 되는 마음, 다섯 눈(오안.五眼)으로도 능히 볼 수 없고 네 가지 걸림 없는 웅변(사변.四辯)으로도 다 말할 수 없는 근원적 진리의 원칙이 곧 이 마음이요. 큰 흰 소의 수레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수레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윤보(輪寶)가 산과 바위를 마음대로 부숴버려 온 세상을 평탄하게 만들듯이 부처님의 큰 수레는 중생의 번뇌를 마음대로 부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법은 수레의 바퀴에 비유해서 법륜이라 이르기도 하는 것이다.
법륜의 기원은, 원래 전륜성왕은 세계를 통일하고 국토와 인민을 통어하는 세계 제왕이다.
그는 세계를 통일할 때 수레바퀴와 같은 윤보(輪寶)를 굴려서 세계를 통일함이 되므로 그 윤보는 곧 전륜성왕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고대 인도에서는 이 윤보를 나라의 대소를 표식하는 뺏지로서 사용하여왔다.
가장 큰 나라는 금륜국(金輪國), 다음을 은륜국(銀輪國), 다음을 동륜국(銅輪國), 다음을 철륜국(鐵輪國)이라하고, 금륜국의 왕이 가지는 윤보를 금륜이라 하고 은륜국의 왕이 가지는 것은 은륜, 동륜국의 왕이 가지는 것은 동륜, 철륜국의 왕이 가지는 것은 철륜이라 하였다.
부처님은 진리의 수레를 굴려 세계를 통일하고 모든 인류를 고통의 바다에서 구제하는 구원의 성자가 되므로 부처님을 일러 법왕(法王) 또는 윤왕(輪王)이라 이르기도 했다.
이 윤왕의 상징은 탑의 꼭대기에 장식하는 노반(謠盤)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윤상(輸相)이라 한다.
또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순번을 따라 집을 지키고 절을 수호하는 당번(當番)을 윤번(輪番)이라 하거니와, 수레바퀴처럼 빙빙 돌아가며 불을 켜고 있는 등을 윤등(輪燈)이라 한다.
중생이 3계를 윤회하되 지옥, 아귀, 축생, 인, 천, 수라를 개미 채 바퀴 돌듯 인과를 따라 윤회하므로 인과윤회라 하고 그 세계는 괴롭고 귀찮고 참기 힘든 곳이라 하여 고륜(苦輪)이라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고인(故人)의 법(法)에
삼계유여급정륜(三界猶如汲井輪)
백천만겁역철(百千萬劫歷徹)
차신불향금생도(此身不向今生度)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度此身)
이라 하였으니 언제 이 몸을 제도하여 정륜(井輪)의 고(苦)를 다 할 것인가?
수레는 이와 같이 싣고 운반하고 부수고(破) 윤회하는 것에만 비유된 것이 아니고 시주를 주고받는 물건에까지 비유를 보태고 있다.
즉 시주하는 사람, 시주를 받는 사람, 시주되는 물건 이것은 마치 세 개의 수레바퀴와 같으므로 3륜(三輪)이라 하고, 그것은 가장 깨끗한 마음으로 주고받음이 되고 가장 깨끗이 선사되는 물건이 되므로 3륜청정(三輪淸淨)이라 하며 또 그것은 수레바퀴가 한번 지나간 뒤에는 다시 되새기며 돌아오지 않은 것같이 다시 집착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3륜체공(三輪龍空)이라 하는 것이다.
절에서는 여러 스님들이 시주의 물건을 받아쓰면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외인다.
능시소시급시물(能施所施及施物)
어삼계중불가득(於三界中不可得)
아등안주최승심(我等安注最勝心)
공양십방제여래(供養十方諸如來)
이것은 3륜(三輪)의 청정(淸淨)을 규계한 것이므로 3륜(三輪) 청정계(淸淨戒)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