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법인경(佛說法印經)

불설법인경(佛說法印經)

서천(西天)역경삼장(譯經三藏)
조봉대부(朝奉大夫) 시홍려경(試鴻臚卿)
전법대사(傳法大師) 신(臣) 시호(施護)가 조서를 받들어 한역
최민자 번역

그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에서 필추(苾芻: 비구) 대중과 함께 계셨다.

이 때 부처님께서 필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성법인(聖法印)이 있으니, 내가 지금 그대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연설할 것이니, 그대들은 마땅히 청정한 지견(知見)을 내어 잘 듣고 잘 받아서 선법(善法)에 따라 생각하여 기억하고 사유하여라.”

그 때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즐겨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공(空)의 성품은 존재하는 것이 없고, 망상(妄想)이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고, 소멸하는 것도 없고, 모든 지견(知見)을 벗어났다.

무엇 때문인가? 공의 성품은 머무는 곳이 없고, 색(色)에 대한 상(想)이 없고, 생각[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본래 생겨나는 것이 없고, 지견으로 이를 것이 아니고, 모든 집착을 벗어났다. 집착을 벗어났기 때문에 모든 법을 포섭하여 평등한 견해에 머무니, 이것이 진실한 견해이다.

필추들이여, 공(空)의 성품이 이와 같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법도 역시 그러하니, 이것을 법인이라고 한다. 또 모든 필추들이여, 이 법인에는 세 개의 해탈문(解脫門)이 있으니, 이는 모두 부처의 근본법이며, 모든 부처의 눈[眼]이며 이는 바로 모든 부처가 나아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잘 듣고 잘 받아서 기억하고 사유하여 여실히 관찰해야 한다.

또 필추들이여, 수행자라면 마땅히 숲 속이나 혹은 나무 아래나 여러 고요한 곳에서 여실히 관찰하여 색(色)은 괴롭고, 공(空)하고, 무상하여 마땅히 싫어하고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내어 평등한 견해에 머물러야 한다. 이렇게 관찰하여 수(受)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괴롭고, 공하고, 무상하여 마땅히 싫어하고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내어 평등한 견해에 머물러야 한다.

모든 필추들이여, 모든 온(蘊)이 본래 공하지만, 마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니, 마음이라는 법[心法]이 없어지면 모든 온(蘊)의 작용이 없다. 이와 같이 분명하게 아는 것이 곧 바른 해탈이요, 바른 해탈을 얻고 나면 모든 지견에서 벗어나니, 이것을 공해탈문(空解脫門)이라고 한다.

다시 삼마지(三摩地)에 머물러 모든 색(色)의 경계가 모두 사라져 없어질 것임을 관찰하여 모든 상(想)을 벗어나야 한다. 이와 같이 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ㆍ법(法)의 경계도 역시 모두 사라져 없어질 것임을 관찰하여 모든 상(想)을 벗어나야 한다. 이와 같이 관찰하는 것을 무상(無想)해탈문이라고 한다.

이 해탈문에 들어가고 나면 곧 지견이 청정하게 된다. 이 청정함으로 말미암아 곧 탐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모두 다 사라져 없어지고, 그것이 사라져 없어지면 평등한 견해에 머무른다. 이 견해에 머무르면 곧 내가 항상 존재할 것이라는 견해[我見]와 내 것이라는 소견을 벗어나 곧 모든 소견은 생기는 것도 없고 의지하는 것도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또 아견을 벗어나면 곧 보는 것이 없고 듣는 것이 없고, 느끼는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어진다. 무엇 때문인가?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식(識)이 생겨나니, 저 인연과 그로 말미암아 생기는 식도 모두 무상(無常)하다. 무상하기 때문에 식을 얻을 수 없고, 식온(識蘊)이 이미 공하니, 조작(造作)이 없다. 이것을 무작(無作)해탈문이라고 한다. 이 해탈문에 들어가면 법의 구경(究竟)을 알아서 법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고, 법의 적멸(寂滅)을 증득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것을 성법인이라 하며 바로 이것이 세 개의 해탈문이니, 그대 모든 필추들이 만일 이것을 닦고 배우면 곧 지견이 청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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