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범망육십이견경(佛說梵網六十二見經)
월지(月支)우바새(優婆塞) 지겸(支謙) 한역
최민자 번역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구류국(俱留國)을 유행하시다가 대비구 대중 1천2백50명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외도[異道] 수비(須卑)와 그의 제자 범달(梵達) 마납(摩納)이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을 따르고 있었다.
외도 수비는 부처님을 한없이[無央數] 비방하였고, 또 법(法)과 비구 스님들을 비방하였고, 제자 범달 마납은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찬탄하였다. 이들 스승과 제자는 곧 서로 다투며 각각 상대방이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면서 항상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이 청을 받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이 때 부처님께서 구류국에서 사위국(舍衛國)에 이르시어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머무셨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가리라(迦梨羅) 강당에 모여 앉아 함께 의논하였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외도 수비와 그의 제자 범달 마납이 항상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이 청을 받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외도 수비는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비방하고, 그의 제자 범달 마납은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찬탄합니다.”
부처님께서 천이통(天耳通)으로 모든 비구들이 함께 이 일을 의논하는 것을 멀리서 들으셨다. 부처님께서 곧 일어나시어 강당에 이르셨다. 부처님께 서 곧 앉으시며 모든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아까 가리라 강당에 모여 의논한 것이 무엇인가?”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까 모여 함께 의논하기를, ‘외도 수비와 제자 범달 마납이 항상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이 청을 받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외도 수비는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비방하고, 그의 제자인 범달 마납은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을 한없이 찬탄한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모든 비구여, 반드시 항상 두 가지의 일을 행하여야 하니, 무엇이 둘인가? 첫째는 설법(說法)이요, 둘째는 사유(思惟)이다.”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비방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이 성내지 않고 악행(惡行)이라고 생각하여 근심하면 선(善)이 될 것이요, 만일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비방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이 곧 성내고 근심하면 쇠(衰)함이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찬탄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은 곧 기뻐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근심하지도 말아야 한다. 또한 기뻐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면 그대들은 곧 쇠함이 있을 것이다. 만일 또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비방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은 곧 ‘저 사람이 말하는 것은 진실한 말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여야 하니, 부처에게는 이런 일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나와 법과 비구승들을 찬탄하는 이가 있을 때, 그대들은 마땅히 ‘참으로 이러한 일이 있구나’라고 생각하여야 하니, 왜냐 하면 지혜가 적은 이는 다만 계행만 있고 많이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곧 부처를 찬탄하기 때문이다.”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무엇을 지혜가 적은 이는 다만 계행만 있고 많이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라고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살생(殺生)하지 않으시고, 맺힌 원한[怨結]이 없으시고, 칼이나 몽둥이를 지니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선(善)을 행하도록 가르치시고, 모든 중생과 날아다니거나 꿈틀거리는 곤충류까지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시며, 또한 남의 재물을 취하지 않으시고, 다만 보시하려고 하시며, 마음도 또한 보시하기를 생각하시고, 사람들이 남의 것을 약탈하는 것을 보면 불쌍히 생각하시고, 몸소 청정하게 수행하시고, 사람들이 죄법(罪法)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시고, 청정한 범행을 닦고 청정한 행을 좋아하시며, 나쁜 애욕법을 좋아하지 않으시며, 또한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하는 말이 진실하시고, 참된 것을 좋아하고 헛되지 않으시며, 세간 사람들이 모두 그 말씀을 믿고 다른 뜻이 없으시며 또 허망한 생각을 하지 않고 양쪽에 서로 다른 두 가지 말을 전하여 남들이 싸우도록 하지 않으시고, 만일 언쟁하는 이가 있으면 화해시켜 각기 편안하게 하시며, 욕설과 거친 말을 하지 않으시고, 하는 말마다 많은 사람이 기뻐하도록 하시며, 다만 좋은 것만을 말씀하시고 속이는 말을 하지 않으시며, 때를 아시고 진실하시며, 옳은 수행과 법을 지녀 말하는 것마다 부드러우시며, 높고 화려한 평상에 앉지 않으시고, 또한 향이나 꽃으로 장식하지 않으시며, 노래와 춤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술을 마시지 않으시며, 또한 금ㆍ는ㆍ보배를 지니지 않으시며, 항상 법다운 음식을 드시되 그 시간을 어기지 않으시며, 남자든 여자든 노비를 받지 않으시고, 자라는 곡식을 따지 않으시고, 또한 닭ㆍ양ㆍ돼지를 받지 않으시며, 집을 지니지 않으시고 또한 사고 팔지도 않으시며, 저울과 말과 자로써 사람을 속여 손해를 입히지 않으시며, 칼이나 몽둥이로 때려서 두렵게 하는 것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비유하면, 외도들은 먹을 것을 탐내고 집착하여 이 집착 때문에 곡식ㆍ술ㆍ가축ㆍ의복의 약품을 많이 쌓아 두고 있지만, 사문 구담(瞿曇)은 이런 일들1)이 전혀 없다.
비유하면,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항상 어리석은 업만 짓고, 천천히 다니면서 출입하고, 비방하고 질투하며, 다만 자신을 공경(恭敬)해 주기를 바라지만, 부처님께서는 항상 이러한 어리석은 업을멀리하신다.
비유하면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ㆍ마을ㆍ집ㆍ곡식ㆍ나무ㆍ과일ㆍ채소밭을 소유하고 스스로 가꾸어 먹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높고 넓고 화려한 평상 위에 누웠다 일어나고, 금ㆍ은으로 훌륭한 그림을 그려 넣고, 그 위에 깔개를 깔고, 코끼리ㆍ말ㆍ가축의 가죽이나 나는 새의 털을 그 자리 위에 깔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을 모두 멀리하신다.
비유하면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곧 왕은 어떤지 도적은 어떤지 군인은 어떤지, 전쟁은 어떤지 대신은 어떤지, 나라ㆍ현ㆍ읍은 어떤지, 여자는 어떤지 음방(房)2)의 일은 어떤지를 서로 묻고, 세간의 일을 말하고, 관(關)3)에 관한 일, 바다에 관한 일들을 말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수행은 헛되이 하고 겉으로만 진실한 체하여 겉과 속이 부합되지 않고, 법의 광명을 나타내어 재물의 이익을 구하고 항상 발우를 탐내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어리석은 견해를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곧 서로 다투되, ‘나는 법과 계율을 알고 그대는 법과 계율을 모른다. 그대는 삿된 견해를 지니고 있으니, 법과 계율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바른 견해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앞뒤가 뒤바뀌어 ‘나는 바른 소견이요, 그대는 소견이 삿되며, 그대는 졌고 나는 이겼으며, 그대는 악견(惡見)과 변견(邊見)을 지니고 있으니, 다시는 그 말을 들을 것도 없다. 그대는 배우고 수행해야 하니, 그대가 하는 것 중에 간직할 것이 있을까?’라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축생(畜生)의 가보를 받을 일을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항상 저포(蒲)ㆍ육박(六博)ㆍ의전(意錢)[朴掩]4)을 하고, ‘나는 이것으로 동개[鞬:활과 화살을 꽂아 등에 지는 물건]ㆍ재갈ㆍ갑옷을 얻었고, 저포에서 군(君)에서는 독(犢)을 얻었고, 새(塞)에서는 로(盧)5)를 얻었다’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목욕하고 여러가지 향을 몸에 발라 스스로 장엄하고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큰 비단 일산을 들고 신을 신고 머리를 묶고 구슬과 깃털로 장식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항상 나쁜 일을 행하고 보이니, 즉 손과 발로 싸우고, 머리와 얼굴을 서로 부딪치고, 코끼리ㆍ말ㆍ소ㆍ양에게 싸움을 붙이고, 남자ㆍ여자ㆍ어린아이들에게 싸움을 붙이고, 닭ㆍ돼지ㆍ오리에게 싸움을 붙이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삿되고 나쁜 소견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칼ㆍ창ㆍ활ㆍ화살을 분별하여 알고, 남녀ㆍ노소를 분별하여 관상을 보고, 코끼리ㆍ말ㆍ소ㆍ양을 분별하여 상을 보아 알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남자ㆍ여자와 어린아이의 의원이 되고, 코끼리ㆍ말ㆍ소ㆍ양의 의원이 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귀신을 섬기고, 옷과 이불을 만들고, 의원 노릇을 하고 여인의 의원 노릇도 하며, 주문으로 여인을 희롱하고, 오고 갈 때에 풀을 맛있는 음식인 듯 화작(化作)하여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하고, 곧 속임수로 좋은 물건을 찾게 하여 밥그릇과 옷을 화작(化作)하여 사람들에게 주고 날아다니도록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약을 남에게 주어 토하게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사람을 불러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가라고 말하며, 주문으로 서로 싸우고, 말다툼하고, 서로 사람을 치게 하며, 사람을 땅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주문으로 여인을 낙태시키기도 하고, 주문으로 갈대를 사람의 팔에 붙게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은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주문으로 밤 껍질에 독이 들게 하고 포도씨에 연기가 나게 하며, 주문으로 쥐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이기도 하며, 주문을 배워 사람이 나고 죽는 때를 알려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한 사람은 홍수가 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가뭄이 들 것이라 말하고, 한 사람은 쌀과 곡식이 풍년들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흉년이 들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쌀과 곡식이 비쌀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값이 쌀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큰 전염병이 돌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그렇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도적이 와서 이 나라를 파괴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왕이 죽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왕이 새로 즉위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땅이 크게 진동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달의 월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달의 월식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해의 일식이 있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해의 일식이 없을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해가 동에서 서로 운행한다고 하고 한 사람은 해가 서에서 동으로 운행한다고 하고, 한 사람은 달과 성수(星宿 : 28宿)가 동에서 서로 운행한다고 하고, 한 사람은 달과 성수가 서에서 동으로 운행하기 때문에 길(吉)ㆍ흉(凶)6)이 있다고 하고, 한 사람은 해와 달과 성수가 동에서 서로 운행한다고 하고, 한 사람은 그러므로 해와 달과 별이 나왔다고 하고, 한 사람은 그러므로 해와 달과 별이 들어갔다고 하고, 한 사람은 구름이 해를 가릴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해가 구름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하늘이 맑고 구름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어떤 외도들은 사람들이 신심으로 보시하는 음식을 받으면서 가축을 기르고 생업을 영위하여 스스로 생활하며 한 사람은 이 나라 왕이 가서 저 나라를 파괴시키고, 저 나라 왕이 와서 이 나라를 파괴시킬 것이라고 하고, 한 사람은 이 나라 왕의 수레와 말과 가축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고, 사람들에게 해몽(解夢)해 주기도 하고, 주문으로 사람이 말을 못하게 하고, 사람이 입을 다물도록 하고, 남에게 글씨를 써 주고 그 값을 받고, 남에게 옷7)의 값을 계산해 주고 그 값을 받고, 물건이 좋고 나쁨을 분별해 주고 그 값을 받지만,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멀리하신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문은 밥을 한 번만 먹고 해가 저물면 먹지 않아야 하니, 정해진 때에만 먹고[時食] 때 아닐 때에 먹는 것을 멀리해야 하고, 행동에는 그칠 줄을 알고, 가사와 발우에 만족하고, 식사는 얻는 것에 만족하여야 하며, 다니는 곳마다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다녀 몸을 따르게 하는 것이 마치 나는 새가 가는 곳마다 두 날개를 그 몸을 따르게 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비구도 또한 그와 같이 해야 하니, 가사ㆍ이불ㆍ밥ㆍ음식ㆍ발우는 얻는 것으로 만족하게 여겨야 하고, 가는 곳마다 가사와 발우를 몸에 지녀야 한다.
비구는 또한 그렇게 해야 하니, 현자(賢者)의 계(誡)를 받으면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몸을 관(觀)하고 다투거나 송사하지 말고, 도를 사유하고, 하는 일마다 편안하고 세밀하게 하며, 물건[色]을 보아도 상(想)을 일으키지 말고, 또한 서로 싸우는 사람을 보지 말고, 마음이 어지러운 이는 고요함을 유지하여 어리석지도 산란하지도 않게 하면 뜻에 맞지 않는 나쁜 일이나 좋지 않은 법도 그 뜻을 어지럽힐 수 없으니 모두 안근(眼根)을 지키기 때문이다.
이것이 비구로서 현자의 계품(誡品:戒法)을 받드는 것이다.
현자는 이와 같이 6근(根)의 문(門)을 고요히 안정시켜 안으로도 싸움이나 산란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밥과 음식은 얻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요, 많이 먹지도 적게 먹지도 않아 적당히 중도를 지키며, 항상 한끼만 먹고 늘리거나 줄이지도 말고, 생명을 지탱할 정도로 먹고 근력(筋力)을 쓰려고 하지 말고, 다만 몸을 편안하도록 하고 고통스럽지 않을 정도의 기력(氣力)이 있어야 선정 수행을 할 수 있다.
미래세의 비구일지라도 마땅히 이 현명하고 훌륭한 법을 계(戒)로 삼아 받들어 행하며, 현명하고 훌륭한 법으로 밥과 음식을 얻는 것에 만족하고, 도를 사유하여야 한다. 초저녁과 새벽에 도를 수행하되, 묘법(妙法)에 상응하고, 치우쳐서 행동하지 말고 도를 구하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낮에도 좌선하거나 경행(經行)하며 나쁜 법을 생각하지 말고, 초저녁에도 경행하거나 좌선하며, 밤중에는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두 다리를 포개고 눕고, 뜻에 곧 생각이 일어나면 항상 그것을 알아 밝히려고 하며, 새벽에는 다시 앉아 도를 생각하고, 경행하더라도 나쁜 법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군(郡)ㆍ국(國)ㆍ현(縣)ㆍ읍(邑)에 들어가 탁발[分衛:걸식]할 때도 이른 아침에 일어나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군ㆍ국ㆍ현ㆍ읍에 들어가 탁발하되, 몸과 모든 근(根)을 지켜 항상 생각이 뜻에 부합되도록 하고, 탁발을 마치면 곧 군ㆍ국ㆍ현ㆍ읍을 나와야 한다. 식사를 마치면 손과 발을 씻고 발우를 거두어 곧 집어넣어야 한다.
홀로 밤에 좌선할 때에는 인가에서 떨어진[空間] 나무 아래, 한데[露處], 산중, 바윗돌 사이, 오두막집, 물살이 세찬 곳에 바로 앉아 좌우를 돌아보지 말고 세간의 어리석음을 멀리하며, 마음으로 행하기를 생각할 때에도 나쁜 뜻을 내지 말고, 자비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과 날아다니고 꿈틀거리는 무리들까지도 불쌍히 여기며, 뜻에 나쁜 것을 생각하지 말고 애욕을 버리며, 잠을 멀리하고, 항상 선정의 행(行)과 뜻을 빨리 얻기를 생각하며, 잠을 생각하지 말고, 의심하여 망설이는 모든 망상을 버리고, 나쁜 것을 말하지 말고 또한 생각하지도 말며, 안으로 뜻을 고요하게 안정시키고, 밖으로도 의심을 멀리하며, 많은 망상을 버리며, 행할 때는 나쁜 법을 행하지 말고, 뜻에도 또한모든 망상을 생각하지 말고, 5개(盖)와 번뇌[塵勞]의 뜻을 모두 버려야 한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이자돈을 빌려 다니며 장사하다가 마음대로 되어 돌아와 빚을 갚고도 남는 것이 있으면 풍족하게 스스로 생활하면서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노비가 되었다가 노비의 신분을 벗어나 출입이 자유롭게 되어 스스로 ‘나는 본래 종이었는데 지금은 벗어나 양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감옥에 갇혔다가 사면(赦免)의 기회를 만나 풀려나면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중병을 얻어 여러 해 동안 앓다가 양의(良醫)를 만나 치료하여 병이 낫고 기력이 생겨 걸어다니고 출입하며 밥을 먹게 되면, 그 사람이 ‘옛날에 여러 해 동안 앓다가 지금은 치유되고 기력이 생겨 밥도 먹고 출입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험한 길을 지나다가 재물과 가축이 편안하게 좋은 길에 이르면, 그 사람이 스스로 ‘마음 또한 기쁘다’라도 생각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역시 그와 같아서 5개(盖)를 버리는 것은, 마치 빚을 갚는 것과 같고,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고, 오랜 병이 치유되는 것과 같고, 종이 해방되어 양민이 되는 것과 같고, 험한 길을 통과하여 벗어난 것과 같이 마음이 기쁘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지식이 적거나 혹시 들은 것이 많지 않은 이는 곧 여래를 비방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깨달은 법은 깊고 미묘하여 내가 아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이와 현자와 제자가 그것을 들으면 곧 여래를 찬탄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깊고 미묘한 법이기에 내가 아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현자와 제자가 그것을 듣고 곧 여래를 찬탄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무앙수(無央數:아승기, asamkhya)의 도(道)로 각각 그 일을 배워 그 때의 일을 알게 되면 모두 18견(見)에 빠진 것이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미래의 일을 배워 무앙수의 도로 각각 그 일을 분명하게 알게 되면 모두 44견(見)에 빠진 것이다.
저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 일을 보고 무앙수의 도로 각각 그 일을 분명하게 알게 되면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니, 그 중 어떤 외도가 상견(常見)을 수행하고, 항상 스스로 세간을 향하여 유상(有常)을 말하면 이는 4견(見)에 빠진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외도가 무엇 때문에 4견에 빠져서 유상(有常)을 보고 스스로 세간을 향하여 유상을 말하는가? 만일 어떤 외도가 애욕을 끊고 선(禪)을 수행하여 법[像]에 여여하게 삼매정수(三昧正受)8)에 들면 과거 20겁의 일을 기억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아(我)와 세계는 유상(有常)하다. 왜냐 하면 나는 과거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는 알고,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는 모른다’고 한다. 그 사람은 곧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알지만 미래의 일을 버리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애욕을 끊고 법[像]에 여여하게 나아가면 삼매정수에 들어 미래 40겁의 일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아(我)와 세계는 유상하다. 왜냐 하면 나는 과거겁이 이루어지 소멸되는 때는 모르고, 다만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는 안다’고 한다. 그 사람은 곧 과거의 일을 버리고 그것을 모르지만 미래의 일을 생각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셋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애욕을 끊고 정진하여 적정(寂定:선정)을 수행하여 법에 여여하게 나아가면 삼매정의(三昧定意)9)에 들어 과거와 미래 80겁의 일을 기억한다. 그 사람은 곧 ‘아(我)와 세계는 유상(有常)하다. 왜냐 하면, 나는 과거와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를 알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 사람은 곧 과거와 미래에 아는 것을 생각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넷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정진하여 적정(寂定)을 일심(一心)으로 수행하며 악행을 끊고 법에 여여하게 나아가면 삼매정의에 들어 생각은 고요하지만 근(根)은 어리석은 생각에 머물러 그 사람은 스스로 세간을 향하여 ‘유상(有常)하다. 왜냐 하면 나는 과거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를 모르고, 또한 미래겁이 이루어지고 소멸되는 때를 모른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외도가 유상을 말하고 유상을 보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유상을 말하는 것은 모두 이 4견에 빠져 그것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래는 이것을 모두 알고, 그 이상의 것도 미묘하게 안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가르치지 않고, 그러한 가르침을 멀리하고 무위(無爲)를 증득하였다. 여래는 통양(痛痒:受)으로 바뀌는 즐거움[樂]이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을 알고, 그러한 것이 일어난 유래[所從起]를 안다. 부처는 받아들임이 없는 뜻으로 보아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깨달은 법은 심오(深奧)하고 깊이 비추어 현자와 제자들이 그것을 들으면 곧 부처를 찬탄한다.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과거의 일을 기억하여 무앙수의 도(道)로 각각 그 때의 일을 아는 것을 즐겨 말하는 것은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다. 무엇을 그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무앙수의 도로 각각 그 때의 일을 알고 있음을 즐겨 말한다고 하는가? 어떤 외도가 각각 유상(有常)을 말하고, 유상을 보고 각각 세간 사람들에게 유상을 말하는 것은 모두 4견에 빠진 것이다.
무엇을 그 외도가 유상을 말하고 유상을 보고 세간 사람들에게 유상을 말한다고 하는가? 한 겁이 소멸할 때에는 하늘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곧 제12 아위화라천(阿衛貨羅天)에 올라 태어나고, 한 겁이 무너질 때에 그 천상 세계의 복덕이 줄어들어 목숨이 다하면 차츰차츰 내려와 범천(梵天)이라는 빈 허공에 태어난다. 곧 그곳에서 가장 존귀한 범천이라고 여기고, 스스로 ‘내가 모든 일을 만들고 이곳에서 가장 높고 모든 것을 만든 아비이며, 이치를 아는 것도 모든 천인 중에 가장 훌륭하다’라고 한다. 그 범천이 스스로 ‘마땅히 어느 곳에서 사람들을 오게 하여 이곳에 태어나게 할까?’라고 생각하였다.
마침 이런 뜻을 내는 사이에 하늘 아래 있던 사람들이 곧 알고 그 천상에 태어났다. 그 때 범천은 이것으로 인하여 소견을 내어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사람들을 화작(化作)하였다.’
그 사람들도 역시 스스로 소견을 내어 말하였다.
‘범천이 우리들을 모두 화작하였다. 왜냐 하면, 범천이 먼저 태어났고 우리들이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화작하였다.’
그 먼저 태어난 범천이 가장 단정하고 아름답고 정결하며, 위엄과 신령스러움이 높고 당당하다. 그 밖의 모든 천인(天人)들은 법에 따라 복덕이 엷어져 목숨이 다하면 차츰차츰 내려와 인간 세상에 태어나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一心)으로 수행하면 곧 법(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三昧定意)에 들어 옛날에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말한다.
‘천상 세계에 가장 먼저 태어난 범천은 항상 존재하며 영원히 옮기거나 변동이 없다. 또한 죽지도 않으며 항상 존귀한 천상 세계인 범천에 존재하며 우리들을 화작(化作)하고, 항상 변하지도 죽지도 않는다.’
이것을 유상(有常)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것은 옳지 않다. 이것이 첫 번째의 견해이다.
둘째는 어떤 외도가 그가 범천에 있던 것으로 인하여 소견을 내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에게는색법(色法)ㆍ통양(痛痒:受)ㆍ사상(思想:想)ㆍ행(行)ㆍ식(識)이 있는데, 이러한 법(法)들 또한 유상하고, 변동하거나 죽지 않는다. 나에게는 지종(地種:地大)ㆍ수종(水種)ㆍ화종(火種)ㆍ풍종(風種)ㆍ공종(空種)이 있는데, 이것은 무상(無常)하고 견고하지도 않다.’
그 범천에 있던 사람 중에 복록과 복덕이 엷은 이는 마침내 죽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태어나는데, 그 사람이 정진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의 범천을 기억하고 그 사람이 말한다.
‘저 범천의 색법ㆍ통양ㆍ사상ㆍ행ㆍ식의 법은 유상하고 견고하지만 이 인간 세상의 지종ㆍ수종ㆍ화종ㆍ풍종ㆍ공종의 이러한 법은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아 마침내 없어진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셋째, 어떤 외도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름이 기타파도(幾陀波屠)인 천상 세계에서는 그곳에 있으면 서로 즐기고 쾌락한다. 그 후에도 언제나 몸에 병이 들어 병상에 눕는 것을 다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복록과 복덕이 엷어지면 마침내 죽어서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나 그 사람이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여 그 사람이 곧 말한다.
‘그 천상 세계의 천인들의 즐거움과 쾌락은 항상 존재하여 변동하거나 마침내 없어지지 않지만 이 인간 세상의 즐거움은 무상하고 견고하지도 않아 마침내 없어진다. 저 천상 세계는 유상하지만 이 인간 세상은 무상하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넷째, 어떤 외도가 말하는 것은 이름이 산제(散提)인 하늘이 있는데, 그 천상 세계에는 함께 머물다가 갑자기10) 서로 성을 내어 본래의 자리를 벗어나기도 한다. 그 천상 세계의 천인 중에 복록과 복덕이 엷은 이는 마침내 죽어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난다. 그 사람이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수행하면 곧 법에 여여하게 삼매정의에 들어 옛날에 태어났던 천상 세계를 기억하고, 그 사람이 말한다.
‘저 모든 천인들이 함께 머물면서 서로 즐기는 것은 항상 존재하고 견고하여 영원히 없어지지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인간 세상은 무상하고 견고하지도 않아 마침내 없어지니, 저 천상 세계는 유상하고 우리 인간 세상은 무상하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모든 외도들이 각각 말하는 유상과 각각 세간 사람들에게 유상을 말하는 것은 모두 이 4견에 빠진 것이고, 이 4견을 벗어날 수 없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다시 이것을 벗어나 그 이상의 것을 절묘(絶妙)하게 안다. 그런 까닭에 꾸짖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無爲)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痛痒:受)으로 인하여 바뀌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고, 방편이 생긴 유래와 그것에서 비롯된 견해임을 알아 받아들이는[受] 뜻이 없이 잘 해탈하였다. 부처가 아는 법은 심오하고, 깊이 비춘다. 나는 모두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떤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알면 곧 여래를 찬탄한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며 옛날의 행을 기억하여 헤아릴 없는 도로, 각각 그 일을 아는 것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외도는 하기를, ‘나는 이곳에 저절로 태어났고 다른 곳에서 와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어느 곳에 태어난 기억이 없는 것으로 인하여 소견을 내어 ‘본래 세간이 없다가 지금 세간이 있다’고 하니, 모두 2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이기에 ‘나는 이곳에 저절로 태어났고, 다른 곳에서 와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세간이 없었는데 지금 세간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름이 무상입(無想入)인 하늘이 있는데, 그곳은 사상(思想:想)도 없고, 통양도 없다. 그 곳의 천인이 만일 사상을 내면 복록과 복덕이 곧 엷어지고 없어져서 마침내 죽어 인간 세상에 내려와 태어난다. 그 사람이 정진을 행하고 애욕을 멀리하고, 일심으로 정의(定意:선정)를 닦으면 뜻이 곧 법에 여여하게 된다. 그러나 그 삼매는 옛날에 태어났던 곳을 기억할 수 없어서 그 사람이 곧, ‘본래 세간이 없다가 지금 마침 세간이 있다. 나는 옛날에는 없다가 지금 저절로 태어났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는 만일 어떤 외도가 뜻과 생각이 어리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생각한다.
‘본래 세간이 없다가 지금 마침 세간이 있구나. 나도 본래 없다가 지금 저절로 생겨나 있구나. 왜냐 하면 나는 본래 없다가 지금 저절로 생겨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본래 세간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그 외도가 ‘나는 본래 태어나게 된 곳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태어나게 된 곳에 대한 기억이 없어서이니, 이것으로 인한 견해로 ‘본래 세간이 없고 지금 마침 세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모두 이 2견에 빠진 것이다. 이 2견은 앞에서 말한 것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이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다시 그것을 벗어나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꾸짖지도 않고, 또한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인하여 바뀌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고, 방편이 생긴 유래와 그것에서 비롯된 견해임을 알아 부처는 곧 받아들이는 뜻이 없이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고 깊게 비춘다. 나는 그것을 모두 분명하게 깨달아 아니, 만일 어떤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를 찬탄할 것이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 일을 보고 옛날에 행한 것을 기억하여 헤아릴 수 있는 수의 도(道)로 각각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좋아한다면 그것은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다.
어떤 외도 중에 어느 사람은 ‘내가 보기에 한계[崔底]가 있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내가 보기에 한계가 없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내가 보기에 한계가 있기도 하고 한계가 없기도 하다’고 하고, 어느 사람은 ‘내가 보기에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한계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데, 모두 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들이 아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어떤 외도가 이와 같이 행하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유한(有限)하다’라고 말하면서, ‘내가 말한 것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고 허망하다. 어떤 이는 세간 사람들에게(무한(無限)하다)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고 하기도 하지만 후자의 말들 역시 허망한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말[誑語]을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내가 보기에는 세간이 유한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내가 행하는 것과 보는 것은 무한하니, 아(我)와 세간은 무한함을 알겠다’고 말한다. 그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고 여기고, 그 사람은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 나만이 진실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리석으면서도 도리어(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라고 하는데, 이러한 말들은 속이는 말을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아(我)와 세간은 무한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셋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한 것을 안다. 내가 말하는 것만이 진실하고 나머지 말들은 어리석고 허망하면서도 도리어(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다)고 하지만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말이다. 왜냐 하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넷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사람은 ‘나는 이와 같이 행하고 이와 같이 본 것을 기억하여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은 것을 안다. 내가 말한 것만이 진실하고, 그 나머지는 어리석고 허망한 말인데도, 도리어(아(我)와 세간은 유한하다),(아(我)와 세간은 무한하다),(아(我)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라고 말하니,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속이는 말이다. 왜냐 하면 아(我)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또 무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외도들이 어떤 이는 ‘유한하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무한하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고 말하며, 어떤 이는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다’고 한다. 아(我)와 세간에 대한 견해는 모두 이 4견에 빠져 있어서 이 4견을 벗어날 수 없지만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다시 이것을 벗어나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꾸짖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알고, 방편이 일어난 유래를 알고 받아들임도 집착도 없이 부처는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고 깊게 비추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를 찬탄할 것이다.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옛날에 태어났던 곳을 기억하고, 헤아릴 수 없는 도로 각각 그 일을 아는 것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 18견에 빠진 것이다.
각각의 외도 등이 함께 논쟁하여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르다. 어떤 사람이 와서 일을 물으면 곧 함께 논쟁하며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르니, ‘나는 아무개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어느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니, 모두 이 4견에 들어 있다.
그 외도 등이 함께 논쟁하며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각각의 외도들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나는 후세(後世)가 있는지 후세가 없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또한 보지도 못했다,’ ‘나는 후세가 없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나 또한 보지 못했다,’ ‘나는 보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하고, 이러한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지 않으니, 그 사람이 독단적으로 자기의 말만 한다,’ ‘내가 보는 것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삿된 소견을 받아들인 사람은 몸이 죽어 니리(泥犁)지옥의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다. 만일 사문과 바라문이 수행과 지식이 많고, 영리하고 슬기로워 그 뜻을 해설하며, 그 말이 틀림이 없는가 자세히 관찰하며, 그의 명성이 먼 지방까지 알려지고 다른 이의 소견을 버렸더라도 그곳에 와서 자세히 묻는 이를 깨우쳐 주어 보내지 못하면, 그 외도는 죽어서 악도에 떨어진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그 외도의 견해가 이와 같고, 말하는 것이 이와 같다.
‘나는 선과 악의 재앙과 복이 있는 것을 모르고, 또한 선과 악의 재앙과 복이 없는 것을 모른다.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한 보지 못하니, 만일 선과 악의 재앙과 복이 있다고 말하면 내가 집착하는 것이요, 선과 악의 재앙과 복이 없다고 말하면 내가 집착을 벗어난 것이요, 만일 내가 집착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도리어 받아들인[受] 것이다.’
만일 사문과 바라문이 수행과 지식이 많고 영리하고 슬기로워 그 뜻을 해설하고, 그 말한 것이 틀림이 없는가를 잘 관찰하며 명성이 먼 지방까지 알려지고, 다른 소견을 버리고, 그곳에 와서 자세히 묻는데, 깨우쳐 보낼 수 없으면 그 외도가 와서 물을까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만일 와서 묻는 이가 있으면 곧 논쟁하며 아무개에게는 이와 같이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또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또한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셋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말하는 것이 이와 같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며, 어떤 것을 행해야 하고, 어떤 것을 행하지 않아야 하며, 어느 곳이 악도(惡道)이고 어느 곳이 선도(善道)이며, 무엇이 현세의 보배이고 무엇이 후세의 보배이며, 평상시에 무엇을 행해야 괴로움이되고, 무엇을 행해야 즐거움이 되는지를 나는 모른다’고 한다.
만일 사문과 바라문이 수행과 지식이 많아 그 뜻을 풀이하고, 그 말하는 것이 틀림이 없는지를 자세히 관찰하며 명성이 먼 지방에까지 알려지고, 다른 소견을 버리며, 어떤 사람이 그곳에 와서 자세히 묻기를, ‘무엇이 선과 악이며, 행해야 할 것과 행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무엇이 선도이고 악도이며, 무엇이 현세와 후세의 보배며, 평상시에 무엇을 행해야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는가?’라고 와서 묻는데, 깨우쳐 보낼 수 없으면 악도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여, 만일 어떤 일을 묻는 이가 있으면 곧 함께 논쟁하며 말하는 것이 각각 달라 아무개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또한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넷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그 외도의 뜻과 생각이 어리석어 만일 어떤 일을 묻는 이가 있으면 곧 함께 논쟁하고 그 말하는 것이 각각 달라 아무개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이렇게 해야 하고 또한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또한 이렇게 해야 하고, 또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이른바 외도들이 함께 논쟁하고, 또한 말하는 것이 각각 달라 만일 어떤 일을 묻는 이가 있으면 곧 함께 논쟁하며, ‘아무개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되며, 또한 이렇게 해야 하고, 또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이 4견 중에 빠져 있어 이 4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아는 것이 다시 그것을 벗어나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꾸짖지도 않고, 또한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인 것을 알고, 방편이 일어난 유래를 알아 부처는 지금 받아들이는 것 없는11) 뜻으로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듣고 아는 이는 곧 부처를 찬탄한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알고 옛날에 행했던 일을 기억하여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도로 각각 그 일들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좋아하는 것은 모두 이 18견에 빠져 있어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와 같은 것을 모두 알고 또 그 이상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꾸짖지 않고 비방하지 않고 부처는 지금 받아들임이 없는 뜻으로 잘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를 찬탄할 것이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미래의 일과 행을 생각하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도로 각각 그 일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좋아한다면 이것은 모두 이 4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과 행을 알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도로 각각 그 일들을 알고 있는 것을 말하기 좋아한다. 만일 어떤 외도가 행에 대한 상[行想]과 견해에 대한 상[見想]을 지니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상(想)을 말하면 16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행에 대한 상과 견해에 대한 상을 지니고 스스로 세간을 향하여 상을 말하면 16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서 ‘아(我)와 색(色)이 있어 후세의 상이 된다’고 하면서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라고 말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어떤 외도가 ‘색은 없고 아(我)가 있어서 후세는 없다’고 말하면서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어떤 외도가 행에 대한 상과 견해에 대한 상을 지니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상을 말하기를, ‘색이 있기도 하고 색이 없기도 하며 아(我)는 있다. 내가 말한 것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어떤 외도가 ‘또한 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이 없는 것도 아니며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째, 어떤 외도가 ‘세간은 유한하고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여섯째, 어떤 외도가 ‘세간은 무한하고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견해이다.
일곱째, 어떤 외도가 ‘세간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며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 견해이다.
여덟째, 어떤 외도가 ‘세간은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으며 아(我)는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덟 번째 견해이다.
아홉째, 어떤 외도가 ‘하나의 상(想)이 있는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라고 하니, 이것이 아홉 번째 견해이다.
열째, 어떤 외도가 ‘몇몇의 사상(思想)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들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 번째 견해이다.
열한째, 어떤 외도가 ‘가지가지의 사상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한 번째 견해이다.
열두째, 어떤 외도가 ‘끝없이 많은 수의 사상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두 번째 견해이다.
열셋째, 어떤 외도가 ‘하나의 즐거움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세 번째 견해이다.
열넷째, 어떤 외도가 ‘괴로움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네 번째 견해이다.
열다섯째, 어떤 외도가 ‘괴로움과 즐거움을 지닌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다섯 번째 견해이다.
열여섯째, 어떤 외도가 ‘또한 괴롭지도 않고 또 즐겁지도 않은 것이 아(我)가 있는 것이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열여섯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외도가 행에 대한 상과 견해에 대한 상을 지니고 세간 사람들에게 상(想)을 말하는 것은 모두 이 16견에 빠져 있어 다시 이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아는 것이 이것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으며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痛痒)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알고, 방편이 일어난 유래를 알아 지금 집착도 받아들임도 없는 뜻으로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를 찬탄할 것이다.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옛날의 행을 기억하고,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도로 각각 그 일을 알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 이 4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는 무엇을 말하는가? 어떤 외도가 행(行)이 무상(無常)하고, 보는 것이 무상하다는 견해를 지니고 세간 사람들에게 무상을 말하는 것은 모두 8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 행(行)에 대한 (想)이 없고 견해에 대한 상(想)이 없다는 견해를 지니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상(想)이 없다고 말한다. 그 외도의 견해가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색(色)이 있고, 아(我)가 있지만 상(想)이 없어 죽은 후에 후세가 없다’고 말하면서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둘째, 어떤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행에 대한 상이 없고 견해에 대한 상이 없다는 견해를 지니고, 스스로 세간 사람들에게 상(想)이 없음을 말하며, 즉 ‘색(色)이 없고 아(我)가 있고 상(想)이 없어서 죽은 후에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색이 있기도 하고 색이 없기도 하며, 아(我)는 있지만 상(想)이 없어 죽은 후에 후세가 없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네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색이 없는 것도 아니며,아(我)와 세계는 있지만 죽은 후에 후세가 없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아(我)와 세계는 유한하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여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아(我)와 세계는 유한하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견해이다.
일곱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 견해이다.
여덟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유한하지도 않고 또한 무한하지도 않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덟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은 모두 4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 견해에 상(想)이 없고, 행에 상(想)이 없으며, 또한 상이 없지도 않다는 견해를 지니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我)와 세계에 대한 상(想)이 없음을 아는 것이니, 모두 8견(見)에 빠진 것이다.
첫 번째 견해, 어떤 외도의 소견이 이와 같고 행이 이와 같아, ‘색(色)이 있고, 아(我)가 있고, 상(想)은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없는 것도 아니어서 죽은 후에 후세가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어떤 외도가 ‘색이 있기도 하고 색이 없기도 하며, 아(我)가 있으며 상(想)은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아 죽은 후에 후세가 있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색이 있기도 하고 색이 없기도 하며, 아(我)가 있으며, 상은 있지도 않고 또한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네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색이 있지도 않고 색이 없지도 않으며, 아(我)가 있고, 또한 상(想)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세계는 유한하고, 아(我)가 있으며 또한 상(想)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여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세계는 무한하고, 아(我)가 있으며 또한 상(想)이 있지도 않고 상이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견해이다.
일곱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세계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며, 아(我)가 있으며, 또한 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 견해이다.
여덟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세계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으며, 아(我)가 있으며, 또한 상(想)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아 후세까지 이어진다. 나의 말만이 진실하고, 그 밖의 것은 어리석다’고 하니, 이것이 여덟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외도들이 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며, 행에 대하여 상이 있지도 않고 상이 없지도 않으며, 견해에 대하여 상이 있지 않으며, 또한 행에 대해 상이 있지 않다는 등의 견해를 지닌 것은 모두 이 8견에 빠져 있어 이 8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아는 것이 이것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으며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알고, 방편이 일어난 유래를 알아 지금 집착이 없는 뜻으로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고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의 공덕을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무앙수의 도로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은 모두 44견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외도가 ‘행이 없고 견해가 없으며, 사람ㆍ생각ㆍ허공ㆍ지(知)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7견(見)에 빠진 것이다.
그 외도가 ‘행이 없고 견해가 없으며, 사람ㆍ생각ㆍ허공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외도의 견해가 이와 같고 이와 같아서 ‘4대(大)로 이루어진 아(我)라는 색(色)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음식을 먹고 자라지만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어서 그 몸을 목욕시키고 옷을 입혀도 죽으면 땅에 묻혀 뼈마디가 떨어져 나가 뿔뿔이 다른 곳으로 흩어지고, 바람이 불면 그 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무너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소멸되어 없어진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두 번째 견해, 또 어떤 어떤 외도가 ‘죽으면 이와 같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또 그곳을 뛰어넘어 올라가니, 어느 곳으로 이 아(我)가 그곳을 뛰어넘어 올라가는가? 그 아(我)는 색천(色天)과 욕행천(欲行天:欲天)으로 올라간다. 그 아(我)가 죽으면 무너지고 부서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어도 이와 같이 무너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다른 아(我)가 있어서 그곳을 뛰어넘어 올라가는데, 그 아(我)는 색에 대하여 생각이 없다. 그러므로 그 아(我)가 죽으면 무너지고 부서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네 번째 견해, 또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어도 이와 같이 무너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다시 그곳을 뛰어넘어 위로 올라가니, 그 아(我)는 무엇인가? 그 아(我)는 색에 대한 상(想)을 지닌 하늘을 모두 뛰어넘고, 성내는 상(想)을 지닌 하늘을 모두 뛰어넘어 가지가지 무앙수(無央數)의 허공지천(虛空知天:空無邊處)에서의 가행(加行)을 생각한다. 그 아(我)가 죽으면 무너지고 없어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 번째 견해,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으면 이와 같이 무너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그곳을 뛰어넘어 위로 올라간다. 그 아 (我)는 무엇인가? 그 아(我)는 모든 허공지천(虛空知天)을 뛰어넘어12) 무앙수의 이름이 식지천(識知天)인 하늘에서의 가행(加行)을 생각한다. 만일 그 하늘이 무너져 없어지지 않을 때에는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여섯 번째 견해, 또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어도 이와 같이 무너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그곳을 뛰어넘어 위로 올라간다. 그 아(我)는 무엇인가? 모든 식지천(識知天)을 뛰어넘어 다시는 집착하지 않고 이름이 무식지천(無識知天)인 하늘에서의 가행을 생각한다. 그 하늘에서 아(我)는 죽어서 무너지고 없어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여섯 번째 견해이다.
일곱 번째 견해, 또 어떤 외도가 ‘아(我)는 죽어도 이와 같이 무너져 없어지지 않는다. 다시 아(我)가 있어서 그곳을 뛰어넘어 위로 올라간다. 그 아(我)는 무엇인가? 모든 무식지천(無識知天)을 뛰어넘은 그 하늘의 천인들은 상(想)이 없기도 하고 상(想)이 있기도 하며 가행을 생각한다. 그 하늘에서 아(我)는 죽어서 무너지고 없어져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일곱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이른바 외도들이 단멸견[滅壞見]을 행하며, 행(行)도 없고 상(想)도 없고, 사람ㆍ생각ㆍ허공도 없다고 하는 것이니, 모두 이 7견에 빠져 있어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그 아는 것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도 않고 비방하지도 않고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안다. 그러므로 그것이 생긴 유래를 알고, 현재 부처는 집착이 없는 뜻으로 잘 해탈하였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 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의 공덕을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무앙수의 도로 말하는 것이 각기 다른 것은 모두 44견에 빠진 것이다.
어떤 외도가 스스로 ‘지금 현재 생각과 행(行)의 무위(無爲)를 얻었고, 현재 견해의 무위를 얻었다’고 말하며, 만일 어떤 사람이 그가 있는 곳으로 오면, 곧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말하니, 모두 이 5견에 빠진 것이다.
어떤 외도의 견해가 이와 같고 말과 행이 또 그러하여 그가 집에 있으면서 스스로 기뻐하고, 5욕(欲)으로 스스로 즐기며, 그 사람은 ‘나는 현재 무위를 얻었다’고 하니, 이것이 첫 번째 견해이다.
두 번째 견해, 또 어떤 외도가 ‘다른 사람들이(아(我)가 있어서 무위를 얻었다)는 것과는 다르니, 다른 아(我)가 있어서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 무엇을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가 욕망을 멀리하고 좋지 못한 나쁜 법을 벗어나면 뜻ㆍ생각ㆍ행(行)이 있어도 훌륭하게 안락을 성취하니, 곧 제1 선정이다. 그 사람이 죽어 없어지면 아(我)는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현재에 무위를 얻은 것이다’라고 하니, 이것이 두 번째 견해이다.
세 번째 견해, 또 어떤 사문 도인(道人)이 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이 아(我)가 현재에 무위를 얻은 것이 아니고, 다른 아(我)가 있어서 또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 것과 다르고, 그보다 훌륭하다. 무엇을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가? 그 비구의 뜻이 소멸되고 마음속이 적정(寂定)하여 그 뜻이 전일하고 생각도 일어나지 않고 또 행도 없으면 삼매에 들어 희락(喜樂)을 성취하니, 이것이 곧 제2 선정을 행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지만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니, 이것이 세 번째 견해이다.
네 번째 견해, 또 어떤 사문 도인(道人)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이 아(我)가 현재에 무위를 얻은 것이 아니고, 또 다른 아(我)가 있어서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 것과 다르고, 그보다 훌륭하다. 무엇을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가? 그 비구가 즐거이 음욕을 멀리하고 관행(觀行)을 즐거워하며, 언제나 적정(寂靜)의 즐거움을 누리며, 현자(賢者)가 관행을 하는 것과 같아 항상 안락하면 곧 제3 선정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니, 이것이 네 번째 견해이다.
다섯 번째 견해, 다시 어떤 사문 도인이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이 아(我)가 현재에 무위를 얻은 것이 아니고, 다른 아(我)가 있어서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 것과 다르고, 그보다 훌륭하다. 무엇을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가? 그 비구가 즐거움도 끊고 괴로움도 끊었으며, 지난 일에 대하여 뜻에 맞음과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한 괴롭지도 않고, 또 즐겁지도 않으며, 항상 청정(淸淨)을 받들어 행하면 곧 제4 선정을 행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현재에 무위를 얻어 죽어 없어진 후세에 다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것이 다섯 번째 견해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른바 어떤 사문 도인이 말하는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 견해에 대한 현재의 무위를 얻었다, 생각에 대한 현재의 무위를 얻었다고 하는 것은 모두 이 5견에 빠져 있어 이 5견을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는 이것을 모두 알고, 그 아는 것이 다시 그것을 뛰어넘어 절묘하게 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 않고 비방하지도 않으며 무위를 얻었다. 부처는 통양으로 바뀌는 즐거움임을 알고 방편이 생긴 유래를 알아 지금 집착하는 마음 없이 잘 해탈하였다.
내가 아는 법은 심오하여 깊게 비추며 나는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니, 만일어떠한 현자와 제자라도 그것을 듣고 안다면 곧 부처의 공덕을 말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외도가 유상(有常)을 생각하고 유상을 보아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가 유상하다’라고 말하며 4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13)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이것이 습기(習氣)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외도가 상품(上品)의 행과 중품의 행을 말하면서 각각 보이는 것이 다르고, 각자 사람들14)에게 세계가 유상하다고 말하여 2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이것이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각각 유상(有常)을 생각하고 유상을 보아 각자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는 유상(有常)하다’라고 말하며 4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아(我)와 세계에 대하여 유한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또 무한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또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또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이도 있어 4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함께 논쟁하며 말하는 것이 각각 달라 4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행을 익히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상(想)을 말하고 상(想)을 지어[行]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에는 상(想)이 있다’고 말하여 16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상(想)이 없음을 생각하고 상(想)이 없음을 보고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에는 상(想)이 없다’고 말하여 8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상(想)을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상(想)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아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에는 상(想)이 없다’고 말하여 8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괴멸(壞滅)을 말하며, 언제나 사람들에게 ‘아(我)와 세계는 괴멸한다’고 말하여 7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 여러 외도들이 현재의 무위(無爲)를 말하며, 현재의 무상을 보고 사람들에게 ‘현재에 무위를 얻었다’고 말하여 5견에 빠져 있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기 때문에 도를 증득하지 못하고 정진을 행하여 습기에 의한 인연이기도 하고, 습기에 의한 인연이 아니기도 하여 이것이 인연이 되기도 하고 이것이 인연이 되지 않기도 하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은 잘못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외도가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무앙수(無央數)의 도(道)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18견에 빠진 것이고, 저 여러 외도들이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무앙수의 도(道)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44견에 빠진 것이니, 모두 합하여 62견에 빠진 것이다. 그 속에서 맴돌고 그 속에 머물러 있으며 그 속에 태어나 함께 만나 행(行)을 계속하여 그 그물 속에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며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물고기를 잘 잡는 스승이 있는데, 그의 제자가 그물 코가 작은 그물을 작은 샘물 속에 쳐 놓고 곧 그 앞에 서거나 앉거나 하면, 그 사람이 ‘샘물이 작아 모든 고기들이 떠다니다가 모두 그물 위로 올라와 그 속에서 갔다 왔다 하며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모든 외도들이 과거겁에 대하여 과거의 일을 보고, 옛날에 행하던 것을 알아 무앙수의 도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18견에 빠진 것이고, 어떤 외도가 미래겁에 대하여 미래의 일을 보고 미래의 일을 생각하여 말하며 무앙수의 도로 말하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은 44견에 빠진 것이니, 모두 62견에 빠져 있다. 그 속에서 맴돌고 그 속에 머물러 있으며, 그 속에서 나고 죽음을 되풀이하며 함께 만나 행(行)을 계속하여 그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부처의 몸은 모든 집착을 끊고 항상 거기에 머물러 있어 모든 천인과 사람들이 모두 보지만, 부처가 반니원(般尼洹:열반)에 든 후에는 볼 수 없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실 때 삼천대천(三千大千)세계가 여섯 가지로 바뀌며 진동하였다.
그 때 나야화류(那耶和留)비구가 부처님 앞에 서서 부처님께 부채를 부쳐드리고 있었다.
그 때 현자(賢者) 나야화류가 장궤(長跪)하고 차수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껏 없었던 일입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이 경의 깊이가 이와 같아 깊게 비칩니다. 하늘 중의 하늘이시여, 이 경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고, 그 이름을 어떻게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나야화류에게 말씀하셨다.
“구루진(拘樓秦)부처님ㆍ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께서 이 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이름을 법망(法網)이라고 하셨으며, 가섭(迦葉)부처님ㆍ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 이 경을 말씀하실 때에는 이름을 『견망(見網)이라고 하셨다. 지금 내가 또한 이 경을 말하니, 이름을 범망(梵網)이라고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