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대생의경(佛說大生義經)
서천(西天)역경삼장(譯經三藏)
조봉대부(朝奉大夫) 시홍려경(試鴻臚卿)
전법대사(傳法大師) 신(臣) 시호(施護) 명을 받들어 한역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로(俱盧) 부락에서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에 존자 아난(阿難)은 혼자 조용한 곳에 있으면서, 초저녁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은 그 이치가 매우 깊어 알기 어렵다. 오직 부처님 세존만이 바르게 두루 아시어 능히 펴 잘 말씀하신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밝는 날 아침에 그 곳을 떠나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얼굴을 발에 대어 예배하고 문안 드린 뒤에, 한쪽에 물러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혼자 초저녁에 한곳에서 생각하기를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은 그 이치가 매우 깊어 알기 어렵다’고 하였나이다.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우리를 위해 말씀해 주소서.”
그 때에 세존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러하고 그러하다. 그 인연으로 생기는 법은 매우 깊고 미묘하여,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생각하기도 또한 어렵다. 오직 성인만이 좋고 묘한 지혜로 잘 분별할 수 있고, 어리석은 자가 능히 이해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왜냐 하면 어리석은 중생은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멸하였다가 다시 나는 것이 마치 시간의 수레바퀴가 도는 것과 같아서, 인연으로 생기는 법을 알지못하기 때문이니라.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모든 법은 다 인연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서로 생기기 때문에, 윤회를 능히 끊지 못하는 것이다. 생(生)을 인연하는 법이란 이른바 늙음과 죽음이니, 생이 인연이 되어 곧 늙음과 죽음이 있다. 만일 생의 법이 없다면 늙음과 죽음이 어찌 있겠는가.
이 생을 인연하여 계속해서 서로 생기나니, 이른바 물의 족속을 인연하기 때문에 물의 족속이 생기고, 나는 새를 인연하기 때문에 나는 새가 생기며, 중생의 무리를 인연하기 때문에 중생의 무리가 생기고, 나아가 인류(人類)를 인연하기 때문에 인류가 생기는 것이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모든 중생은 서로 인연하여 생기게 되느니라.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이 생의 법이란 허망한 법으로서 구경(究竟)이 아니다. 이 모임과 원인과 남과 인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다. 그러므로 늙음과 죽음도 또한 구경이 아니니라.
또한 생(生)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유(有)의 법이 인연이 된다. 그 유의 법이 원인이 되어 곧 생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유의 법이 없다면 생의 법이 어떻게 있겠는가. 그러므로 유의 법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무리를 계속해 서로 내어 끊어지지 않게 한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이 유의 법은 허망한 법이어서 구경이 아니다. 이 모임과 원인과 남과 인연으로 생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생의 법도 또한 구경이 아니니라.
또한 유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취(取)의 법이 인연이 된다. 이 취의 법으로 말미암아 곧 유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취의 법이 없다면 유의 법이 어떻게 있겠는가.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이 취의 법은 허망한 법이어서 구경이 아니다. 이 모임과 원인과 남과 인연으로 유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유의 법도 또한 구경이 아니니라.
또한 취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애(愛)의 법이 인연이 된다. 애를 인연하여 곧 취의 법이 생긴다. 만일 애의 법이 없다면 취의 법이 어떻게 있겠는가.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이 애를 인연하기 때문에 곧 희구(希求)가 생기고, 희구가 인연이 되어 곧 얻을 바가 생기며, 얻을 바가 있기때문에 마음이 결정하지 못하고, 마음이 결정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만족할 줄 모르며, 마음의 만족이 없기 때문에 곧 기뻐함과 탐함이 생기고, 탐하는 인연으로써 곧 나라는 소견이 생기며, 나라는 소견이 생기면 집착[取著]이 있고, 집착을 인연하여 마음이 산란(散亂)하며, 산란으로 말미암아 곧 거짓말과 소송과 다툼과 칼과 막대기로 서로 다스리게 되고 ,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곧 모든 착하지 않은 법을 짓게 된다. 이러한 모든 업(業)은 다 산란으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나니, 만일 산란이 없으면 모든 업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산란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집착이 인연이 된다. 집착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산란하게 되나니, 만일 집착이 없으면 산란이 어떻게 있겠는가.
이 집착하는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나라는 소견이 인연이 되어 집착이 생긴다. 만일 나라는 소견이 없으면 곧 집착이 없어질 것이다. 이 나라는 소견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기뻐함과 탐함이 인연이 되어 나라는 소견이 생기나니, 만일 기뻐함과 탐함이 없으면 나라는 소견이 없어질 것이다.
이 기뻐함과 탐하는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마음의 만족이 없는 것이 인연이 되나니, 만족이 없기 때문에 곧 기뻐함과 탐함이 있다. 만일 마음의 만족이 있으면 곧 기뻐함과 탐함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마음의 만족이 없는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결정하지 않는 것이 인연이 된다.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곧 만족이 없나니, 만일 마음이 결정하면 곧 만족이 생길 것이다.
이 결정하지 못하는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얻을 바가 있기 때문에 곧 결정하지 못하나니, 만일 얻을 바가 없으면 마음은 곧 결정할 것이다.
이 얻을 바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희구가 인연이 된다. 희구하기 때문에 곧 얻을 바가 있나니, 만일 희구가 없으면 곧 얻을 바가 없어질 것이다.
이러한 모든 법은 다 애(愛)와 희구(希求)가 서로 인연함으로 말미암아 계속해 서로 생기는 것이다. 마땅히 알라. 애의 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욕애(欲愛)와 유애(有愛)다. 이 두 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허물이 생기는것이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이 애의 법은 곧 허망한 법이어서 구경이 아니다. 이 모임과 원인과 남과 인연으로 취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취의 법도 또한 구경이 아니니라.
또한 애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수(受)의 법이 인연이 된다. 수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곧 애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수의 법이 없으면 애의 법이 어떻게 있겠는가.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이 수의 법은 곧 허망한 법이어서 구경이 아니다. 이 모임과 원인과 남과 인연으로 애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애의 법도 또한 구경이 아니니라.
또한 수(受)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촉(觸)의 법이 인연이 된다. 촉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곧 수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촉의 법이 없으면 수의 법이 어떻게 있겠는가. 그러므로 눈의 촉이 인연이 되어 마음에 온갖 수가 생긴다. 이른바 즐거운 수ㆍ괴로운 수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수이니라.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촉이 인연이 되어 마음에 온갖 수가 생기는 것이니, 이러한 모든 수가 다 촉의 법을 인연으로 하기 때문이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이 촉의 법은 허망한 법이어서 구경이 아니다. 이 모임ㆍ원인ㆍ남ㆍ인연으로 수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수의 법도 또한 구경이 아니니라.
또한 촉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6처(處)가 인연이 된다. 6처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곧 촉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여섯 곳이 없으면 촉의 법이 어떻게 있겠는가.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이 육처의 법은 허망한 것이기 때문에 구경이 아니다. 이 모임과 원인과 남과 인연으로 촉의 법이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촉의 법도 또한 구경이 아니니라.
또한 6처는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명색(名色)이 인연이 된다. 명색으로 말미암아 곧 6처가 생기는 것이니, 만일 명색이 없으면 6처가 어떻게 있겠는가. 이 명색이란 곧 빛깔 법[色法]과 마음 법[心法]의 무더기다. 즉 이 명색은 저 식법(識法)과 서로 인연이 되고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명색이라 하느니라.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명색의 법은 허망한 법이어서 구경(究竟)이 아니다. 이 모임과 원인과 남과 인연으로 6처가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6처도 또한 구경이 아니니라.
또한 명색의 법은 무엇을 인연으로 하는가. 이른바 식(識)의 법이 인연이 된다. 식의 법으로 말미암아 곧 명색이 생기는 것이니, 만일 식이 없으면 명색이 어떻게 있겠는가. 이 식의 법은 최초로 생(生)을 받아 어머니 태 안에서 갈라람(羯羅藍) 을 의지하여 식의 법이 갖춰진 뒤에는 더하고 덜함이 없고, 식을 인연하기 때문에 모든 온(蘊)이 생기는 것이니, 이렇게 하여 명색이 원만히 갖춰지는 것이다. 마땅히 알라. 이 식은 그 명색과 서로서로 인연이 되어 생기게 되느니라.
다시 마땅히 알라. 이 식이 인연하는 것은 곧 명색이다. 그러므로 식은 명색의 인연이 되고, 명색은 식의 인연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괴로움의 결과가 생기고, 괴로움의 결과가 생긴 뒤에는 곧 늙음과 죽음이 있어, 서로 계속해 옮기게 되지만, 그것은 이 모임과 원인과 남과 인연을 말미암는 것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결과는 허망한 법이어서 구경이 아니다. 이와 같이 식을 인연하고, 식은 명색을 인연하며, 명색은 6처를 인연하고, 6처는 촉을 인연하며, 촉은 수를 인연하나니, 이리하여 하나의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제 알아야 한다. 모든 말과 말의 길과 말이 아닌 것과, 말의 길이 아닌 것과, 나는 것과 나는 길의, 이와 같은 두 종류는 다 명색을 떠나지 않는다. 아난이여, 만일 이와 같이 알면 곧 평등한 소견에 머무르게 되리니, 이것을 인연으로 생기는 법을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 인연으로 생기는 법이란, 곧 모든 부처님의 근본되는 법이요, 모든 부처님의 눈이며, 모든 부처님의 돌아가는 곳이니라.”
이 때에 존자 아난은 이렇게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을 잘 말씀하시어, 저와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다 이익과 즐거움을 얻게 하였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해 수(受)가 없는 법을 말하리니, 너는 자세히 듣고 자세히 받고, 잘 주의하고, 기억하고, 생각하여야 한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아라. 나라는 상(相)이 없으면 곧 수의 법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일 나라는 법이 있으면 수가 따라 생기기 때문이다. 나라는 법이 공(空)한 줄 알면 어떻게 수가 있겠는가. 아난이여, 나와 수의 두 법이 모두 없어지면 곧 아무 것도 없어, 평등한 소견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아난이여, 수의 법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즐거운 수ㆍ괴로운 수ㆍ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수이니라. 즐거운 수라는 것도,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여지는 법의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만일 그것은 없어지는 법이라고 밝게 알면, 곧 즐거운 수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받아들여지는 법은 없는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마땅히 알라. 즐거운 수는 곧 덧없는 법이다. 즐거운 수가 멸하면 곧 나라는 상(相)에서 떠나게 될 것이니, 나라는 상이 이미 없으면 무엇이 있어 받아들이겠는가.
또 괴로운 수라는 것도, 이른바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여지는 법의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만일 그것은 없어지는 법이라고 밝게 알면, 곧 괴로운 수는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받아들여지는 법은 없는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마땅히 알라. 괴로운 수는 곧 덧없는 법이다. 괴로운 수가 멸하면 곧 나라는 상에서 떠나게 될 것이니, 나라는 상이 이미 없으면, 무엇이 있어 받아들이겠는가.
또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수도 또한 그러하다. 이른바 수의 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만일 이 둘이 다 없어지는 법인 줄을 밝게 알면, 괴로움과 즐거움과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세 가지 법은 평등하여 받아들임이 없게 된다. 무슨 까닭인가. 이 세 가지 수의 법은 다 덧없어 마침내 실(實)이 없는 것이다. 이 수가 멸하면 곧 나라는 상에서 떠나게 될 것이니, 나라는 상이 이미 없으면 무엇이 있어 받아들이겠는가.
아난이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모든 수는 마음에서 생김을 알아야 한다. 마음에 움직임이 없으면 곧 안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없을 것이요, 법이 실(實)이 없으면 곧 바깥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이여, 이와 같이 밝게 알아 평등한 소견에 머무르고, 이 소견에 머무르면 곧 수가 없는 법을 밝게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수가 없는 법은 모든 부처님의 근본되는 법이요, 모든 부처님의 눈이며, 모든 부처님의 돌아가는 곳이니라.”
그 때에 아난은 다시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을 잘 말씀하셨나이다. 저희들은 듣고, 믿어 이해하고 잘 받아 지니겠나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나가 없는 법을 말하리니,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받아, 잘 주의하고 기억하며 생각하여야 한다. 아난이여, 수가 없는 줄을 알면 곧 나라는 소견에서 떠날 것이요, 나라는 소견에서 떠나면 평등한 소견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이 소견에 머무르면 상(相)에서 평등하고, 평등함으로 말미암아 곧 세간에 대해서 일어날 것이 없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남[生]이 없음을 알면 곧 내 생(生)이 다하게 될 것이요,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뒷몸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나라는 소견이 생기지 않으면 평등한 소견에 머무르나니, 이리하여 곧 마음의 해탈을 얻고, 앎도 없고 봄도 없으며, 얻음도 없어, 모든 생각에서 떠나게 된다. 그리하여 얻음에 있어서 얻음이 없고, 얻음이 있는 것도 아니요, 얻음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모두 밝게 아느니라. 이와 같이 밝게 알면, 곧 말과 말의 길과, 말이 아닌 것과 말의 길이 아닌 것과, 남[生]과 남의 길에 있어서, 앎도 없고 봄도 없게 된다.
이렇게 밝게 알면 곧 나라는 소견을 떠나고, 평등한 소견에 머물러 참다이 밝게 아나니, 이것을 나가 없는 법을 아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것은 곧 모든 부처님의 근본되는 법이요, 모든 부처님의 눈이며, 모든 부처님의 돌아가는 곳이니라.”
이 때에 아난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다시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을 잘 말씀하셨나이다. 저희들은 듣고 믿어 이해하고, 잘 받아 지니겠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를 위해 다시 말하리니, 너는 자세히 듣고 받아, 잘 주의하고 기억하며 생각하라.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색상(色相)은 얻을 것이 없느니라.
나라는 집착을 떠나 참다이 알고, 이미 참다이 안 뒤에는 이 몸은 무너져 실(實)이 아니어서 사랑할 것이 아니라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여 모든 세상을 떠나면, 나라는 집착이 생기지 않을 것이요, 나라는 상(相)이 이미 멸하면 곧 이 몸은 무너져 실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다. 이리하여 평등한 소견에 머무르게 되고, 이 소견에 머무르면 모든 온(蘊)은 다 공(空)한 줄을 알 것이요, 모든 온이 이미 공하면 나와 색상을 어디서 보겠는가.
또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식(識)의 머무르는 곳에 일곱 가지가 있고, 식의 머무르지 않는 곳에 두 가지가 있다. 식이 머무르는 일곱 곳이란, 이른바 빛깔과 중생이 있어, 갖가지 몸과 갖가지 생각[想]이니, 이것이 첫째의 식이 머무르는 곳이니라. 혹은 빛깔과 중생이 있어 갖가지 몸과 한 생각으로서 이른바 초선천(初禪天)이니, 이것이 둘째의 식이 머무르는 곳이니라. 혹은 빛깔과 중생이 있어, 한 몸과 갖가지 생각으로서 이른바 2선천(禪天)이니, 이것이 셋째의 식이 머무르는 곳이니라.
혹은 빛깔과 중생이 있어, 한 몸과 한 생각으로서 이른바 3선천(禪天)이니, 이것이 넷째의 식이 머무르는 곳이니라. 혹은 빛깔도 없고 중생도 없어, 그 일체 곳은 모든 빛과 생각을 떠나 완전히 한 허공으로서, 이른바 공무변처천(空無邊處天)이니, 이것이 다섯째의 식이 머무르는 곳이니라. 혹은 빛깔도 없고 중생도 없어 그 모든 곳은 허공과 생각을 떠나 완전한 한 식으로서 이른바 식무변처천(識無邊處天)이니, 이것이 여섯째의 식이 머무르는 곳이니라. 혹은 빛깔도 없고 중생도 없어 그 일체 곳은 식무변(識無邊)을 떠나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서 이른바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이니, 이것이 일곱째의 식이 머무르는 곳이니라.
아난이여, 식의 머무르는 곳이 아닌 두 가지란, 이른바 빛깔과 중생은 있어도 중생[想]이 없는 하늘이니, 이것이 첫째의 식이 머무르지 않는 곳이니라. 혹은 빛깔도 없고 중생도 없어 그 일체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떠나,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즉 비상비비상처천(非想非非想處天)이니, 이것이 둘째의 식이 머무르지 않는 곳이니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이와 같이 빛깔과 중생이 있어, 갖가지 몸과 갖가지 생각이면,이것이 첫째의 식이 머무르는 곳이다. 너희 비구들은 그것을 참다이 알아, 다니거나 앉았거나 말하거나 항상 이 법문을 칭찬하고 남을 위해 두루 분별하고 연설하여, 나아가 일곱째의 식이 머무르는 곳과 두 가지의 식이 머무르지 않는 곳도 또한 그렇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다니거나 앉았거나 말하거나, 항상 모든 부처님의 말씀을 칭찬하고 깨끗한 믿는 마음을 내어 참다이 알아야 한다. 만일 참다이 알면 곧 슬기의 해탈[慧解脫]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아난이여, 마땅히 알라. 여덟 가지 해탈법문이 있다. 이른바 만일 안에 색(色)이 있어 바깥 색을 관(觀)하면, 이것을 첫째 해탈이라 하느니라. 만일 안에 색이 없어 바깥 색을 관하면, 이것을 둘째 해탈이라 하느니라. 만일 몸으로 청정한 해탈을 증(證)하면, 이것을 셋째 해탈이라 하느니라. 만일 청정을 얻은 뒤에 모든 색이라는 생각을 떠나 끝없는 한 허공을 관하고, 이 관을 성취하면, 이것을 넷째의 공무변처해탈(空無邊處解脫)이라 하느니라. 식(識)을 관하여 식도 또한 끝이 없고, 이 관을 성취하면, 이것을 다섯째의 식무변처해탈(識無邊處解脫)이라 하느니라. 만일 식무변처를 떠나 일체가 아무것도 없는 것을 관하고, 이 관을 성취하면, 이것을 여섯째의 무소유처해탈(無所有處解脫)이라 하느니라. 만일 무소유처를 떠나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관하고, 이 관을 성취하면, 이것을 일곱째의 비상비비상처해탈이라 하느니라. 만일 비상비비상처를 떠나, 받아들이는 생각을 없애고 삼마지(三摩地)에 머물러 그 몸으로 증득하면, 이것을 여덟째의 멸수상해탈(滅受想解脫)이라 하나니, 이것을 여덟 가지 해탈법문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