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무구녀경(得無垢女經)
원위(元魏) 구담반야류지(瞿曇般若流支) 한역 번역
득무구녀경(得無垢女經) 제1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바가바(婆伽婆)께서는 사바제성(舍婆提城) 기타수림(祇陀樹林) 급고독원(給孤獨園)에서 큰 비구들 1,250인과 함께 계셨는데, 그들은 다 아라한(阿羅漢)으로서, 번뇌를 다 없애어 마음의 자재를 얻었고 마음의 해탈을 잘 얻었으며 지혜의 해탈을 잘 얻어 사람 가운데 큰 용이었다.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지을 바를 다 마치고 온갖 무거운 짐을 다 버려 제 이익을 얻었고, 모든 생존의 맺음을 없애어 바른 지혜를 잘 얻어 일체를 벗어나 마음이 자재하게 되어 저 언덕에 이르렀다. 존자 아난 한 사람을 제하고 다른 사람은 다 큰 아라한이며, 큰 보살 10천인은 다 물러나지 않는 자리를 얻은 오직 일생박(一生縛)이었다.
그 보살들의 이름은 보명(寶明)보살, 혜취(慧聚)보살, 승장(勝藏)보살, 명칭의(名稱意)보살, 변취(辯聚)보살, 관세자재(觀世自在)보살, 득대세(得大勢)보살, 미륵(彌勒)보살, 득무우(得無憂)보살, 문수사리동자(文殊師利童子)보살, 불미행(不迷行)보살, 불미견(不迷見)보살, 제악(除惡)보살, 괴일체비암(壞一切悲闇)보살, 공덕보화장엄(功德寶華莊嚴)보살, 금영광덕(金纓光德)보살, 장일체죄(障一切罪)보살, 불괴사유(不壞思惟)보살 등 이런 우두머리보살이었다.
그 때 존자 사리불(舍利佛), 존자 대목건련(大目犍連), 존자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 수보리(須菩提), 존자 부루나미다라니자(富樓那彌多羅尼子),존자 리파다(離波多), 존자 아니루대(阿尼樓大), 존자 아난타(阿難陀) 등 이런 8명의 큰 성문과 문수사리동자보살, 제악(除惡)보살, 보당(寶幢)보살, 불미견(不迷見)보살, 장일체죄(障一切罪)보살, 관세자재(觀世自在)보살, 변취(辯聚)보살, 불미행(不迷行)보살 등 이런 8명의 보살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기 위해 사바제성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그 가는 길 중간에서 서로 말하였다.
“우리들의 마음은 여색삼매(如色三昧)에 있으면서 걸식하기 위해 사바제성으로 들어간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일체 인민들은 성제(聖諦)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존자 사리불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여색삼매에 안주하여 걸식하러 사바제성에 들어갑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일체 인민들은 성제(聖諦) 가운데서 걸림이 없는 지혜와 부술 수 없는 지혜를 얻어 그 지혜는 어둡지 않을 것입니다.”
존자 대목건련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여색삼매에 안주하여 걸식하러 사바제성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일체 인민에게 악마의 업이 없을 것입니다.”
존자 대가섭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여색삼매에 안주하여 걸식하러 사바제성에 들어갑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모든 부인과 모든 사내로서 남자나 여자나 다 우리에게 음식을 주고 모두 무궁한 복의 과보와 내지 열반을 얻을 것입니다.”
존자 수보리는 말하였다.
“내 마음은 여색삼매에 안주하여 걸식하러 사바제성에 들어갑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모든 인민은 아란야(阿蘭若)를 얻을 것입니다.”
존자 부루나미다라니자는 말하였다.
“내 마음은 여색삼매에 안주하여 걸식하러 사바제성에 들어갑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모든 인민은 다 삼매를 얻을 것입니다.”
존자 리파다(離波多)는 말하였다.
“내 마음은 여색삼매에 안주하여 걸식하러 사바제성에 들어갑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일체 외도인 차라가바리(遮羅迦婆離), 바라사가니(婆羅闍迦尼), 니건타(尼揵陀), 아지비가(阿祗毘迦) 바라문 거사들이 다 악한 견해를 버릴 것입니다.”
존자 아니루다는 말하였다.
“내 마음은 여색삼매에 안주하여 걸식하러 사바제성에 들어갑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일체 인민은 질투하지 않는 즐거움을 얻을 것입니다.”
존자 아난타는 말하였다.
“내 마음은 여색삼매에 안주하여 걸식하러 사바제성에 들어갑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일체 인민들은 법을 듣고 곧 알 것입니다.”
문수사리동자는 말하였다.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합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문과 창ㆍ벽ㆍ그릇ㆍ장엄거리 나뭇잎ㆍ꽃ㆍ과일ㆍ가사 등 가운데서 공(空)과 무상과 무원 등의 소리를 내고 불생(不生)의 소리를 내며, 또한 나는 소리도 내며 무아(無我)의 소리도 낼 것입니다.”
제악보살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합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으로 들어가면, 저 중생들이 악업으로 그 과보를 받을 자는 법을 보기 때문에 현세에서 가볍게 받을 것입니다.”
보당보살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합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으로 들어가면 일체의 좋은 보배가 가득 찬 창고가 모두 열릴 것입니다.”
불미견보살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합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어떤 중생 보리를 견딜 수 있겠습니까? 부인이나 사내나 남자나 여자로서 눈으로 나를 보는 자는 다 부처님의 신색과 같다고 보고는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입니다.”
장일체죄보살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합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모든 인간은 5개(蓋)의 장애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관세자재보살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합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결박을 당해 죽게 될 중생이다 풀려나 아무 두려움도 없게 될 것입니다.”
변취보살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합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일체 인민이 다 나쁜 마음을 버리고 인자한 마음으로 서로 칭찬하며 그 음성과 말은 다 변재를 얻을 것입니다.”
불미행보살은 말하였다.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합니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으로 들어가면 어떤 중생이라도 눈으로 나를 보는 이는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그 성문과 보살들은 이런 법에 의해 이렇게 말하면서 사바제성을 향해 들어갔다. 이 때에 교살라의 바사익왕에게 득무구(得無垢)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미 무량한 부처님을 친근하여 오랫동안 선근을 심고 많은 부처님께 공양하면서 매우 깊은 법을 알고 다섯 가지 신통을 얻었었다. 그리하여 남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저 성문과 보살들이 길에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다 보고 들었다. 그녀는 단정하고 아름다워 그 짝이 드물고 매우 사랑스러웠으며 묘한 색을 구족하여 부모들이 매우 사랑하고 모든 궁녀와 인민들이 다 만나기를 즐거워하였다.
그녀의 나이 12세 때, 2월 6일 불사성(弗沙星) 날에 길상(吉相)을 구해 나가 놀려고 하니 그 부모가 승낙했다. 그리하여 5백 명의 바라문을 데리고는 우유와 꽃과 과일과 부와(符坘) 등을 가지고 함께 나가 풀어주고 모으고[解奏]하려 하였다. 저 바라문은 보살과 성문들을 보고 곧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저 길상(吉相)을 가진 좋은 사람들을 보리라’ 하였다.
그 시종하는 바라문 가운데 범천(梵天)이라는 장로 바라문이 있었다. 그는 득무구를 보고 말하였다.
“그대는 아십시오, 내가 지금 보는 것은 다 불길한 상입니다. 전에도 이런비구들이 살고 있었는데 돌아서 성안에 들어가십시오. 이런 상을 보면 하는 일이 다 불길합니다. 그 때문에 혹은 풀어주고[解] 혹은 모으고[奏] 하는 것이니 불길(不吉)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때 득무구녀는 곧 게송으로 범천 바라문에게 답하였다.
이 무장승(無障勝)을 보라.
많은 사람의 악을 잘 물리친다.
이들은 깨끗한 4제(諦)를 보고
바른 생각으로 해탈을 믿는다.
2족(足)은 훌륭한 복밭.
그에게 보시하여 천상에 나기를 원하면
감로수의 과보를 얻고
보시한 이는 악을 얻지 않는다.
계율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흐림을 떠나 악한 생각이 없고
세간에 다니면서 병을 다스려
괴로워하는 중생을 구제해 준다.
부처님께서는 세간에서 가장 훌륭하시고
제일의 법왕이신데
이들은 저 부처님의 제자로서
티끌과 때의 더러움 없다.
이 여러 위대한 보살들
그 어떤 법을 멀리 떠났는가.
나쁜 법들을 다 멀리 떠나
항상 근신해 정도를 넘지 않는다.
세간에서 가장 계율을 잘 지키는 어른
좋은 사람을 보는 이는 훌륭하다.
티끌만큼이라도 공양 올리면
그는 법다운 재물 얻으리.
이 만족한 훌륭한 모습
이 좋은 마음은 깨끗한 복밭
바라문이여, 믿음 얻으면
많은 복 얻고 인간에 태어나리.
그 때 범천 바라문은 득무구녀(得無垢女)를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우치한 마음 따라 말하지 말고
재(齋)할 때의 비구를 보라.
가사 입고 머리를 깎았지만
길(吉)한 일 찾는 것 보잘것없다.
존자는 오늘 아침 너를 좋아하지 않나니
나는 반드시 비웃음을 사리.
재계를 가질 수 없으면
부디 비구를 보지 말라.
만일 비구를 보지 않으면
그것은 아주 유쾌한 일이다.
그 때 득무구는 범천 바라문을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오늘 아침
우리 부모를 구하지 못한다.
친척도 구하지 못하고 재물도 구하지 못하고
또 장엄한 장식도 구하지 못한다.
이 공덕을 가진 사람들
유위(有爲)의 행에 들어가나니
이 사람들 나를 구하고
또한 우리 부모도 구한다.
나는 오늘 아침
몸도 버리고 목숨도 버린다.
그보다 불법을 매우 사랑해
세상의 부귀와 즐거움 바라지 않는다.
다른 가르침에 귀의하면
중생들을 구호할 수 없고
오직 불ㆍ법ㆍ승
이 3보만이 잘 구호한다.
그 때 범천 바라문은 득무구에게 말하였다.
“당신 말은 크게 옳지 않습니다. 당신은 일찍이 부처님을 보지 못했고 법을 듣지 못했으며 스님께 공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법을 듣고 어떻게 부처님을 믿습니까?”
득무구는 말하였다.
“내가 난지 이레 만에 바라문이 내 몸을 전단전(栴檀殿)의 금보배 평상 위에 두었는데 5백 천자들이 내 위의 공중으로 지나갔습니다. 나는 그 때 그 5백 천자 중의 한 천자가 여래를 갖가지로 찬탄하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설명하고 법과 스님을 찬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 5백 천자들이 그에게 이렇게 묻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대는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는가? 부처님 형상은 어떠하며 어떤 것을 아는가?’
그 때 그 천자는 내 신심을 알고 5백 천자들의 신심을 내게 하려고 게송으로 말했습니다.”
더러운 욕심에 물들지 않은 머리털은
청정하고 부드럽게 구부러져 돌았는데
얼굴은 마치 백 잎의 꽃과 같고
또 밤하늘의 보름달 같네.
눈 빛 같이 흰 털[毫]은
눈썹 사이에서 참으로 곱고
여러 권속 사이에서 뛰어나신
부처님의 말씀은 매우 미묘하여라.
사람의 주인이요 사자의 뺨에
그 눈은 뛰어나고 묘하며
가지런한 마흔 개의 치아
중생들 중에 마음이 뛰어나네.
그는 또 넓고 긴 혀와
좋고 깨끗하고 원만한 얼굴인데
이롭게 하는 좋은 말씀은
나쁜 말과 이간질하는 말을 멀리 떠났네.
뜻이 없는 말은 하지 않으며
헐뜯거나 칭찬하는 말 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거니
무수한 중생들 모두 다 믿네.
목의 모양은 마치 조개와 같고
인간세(人間世)의 주인의 팔과 손가락이 길어
마치 큰 코끼리의 코와 같아서
드물고 깨끗한 재(齋)에 잘 드네.
생식기는 마치 코끼리 그것 같고
또한 저 해의 광명 같으며
몸의 털은 다 위로 구부러졌고
발바닥은 사슴처럼 편편하네.
나쁜 말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는
일체의 모니왕은
나쁜 견해를 파괴했나니
나쁜 견해는 다 없어졌네.
억의 중생이 어려움을 물어도
바로 답하여 기쁘게 하고
저 2변(邊)을 멀리 떠나서
중도의 법을 말씀하시니
누구나 들으면 그것은
첫째가는 적멸의 즐거움이네.
곧아서 굽지 않은 훌륭한 말씀
모두들 기뻐하고 또 사랑하며
법의 구름으로 두루 덮으며
법의 비를 골고루 내리시네.
여래께서는 이미 스스로를 제도하고
또한 저 중생을 제도하거니
제도하심에 제일이어서
세간을 관찰해 상응하시네.
그 나머지 무량한 공덕
나는 다 갖추어 말할 수 없네.
저 천자들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열리어 부처님을 믿었다.
그 때 득무구는 이 게송을 말하고 범천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나는 난 지 이레 만에 이 불법의 공덕을 듣고 그 뒤로는 잠깐도 우치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욕심에 집착하지 않고 질투에 집착하지 않으며, 탐심에 집착하지 않고 훔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며,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고 또 기억하지 않으며, 애착할 줄을 몰라서 부모ㆍ형제ㆍ자매ㆍ친척에게 애착할 줄 모르고 장식하는 일에 애착할 줄 모르며, 도성과 촌락과 신명에 애착을 내지 않습니다.
큰 바라문이시여, 나는 다른 상을 기억하는데 이른바 부처님의 상입니다. 큰 바라문이시여, 내 마음은 항상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그 세 가지란 어떤 것인가. 어떤 방향을 따라서든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나는 여래께 묻습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면 그 일체를 나는 다 섭수하여 한 자도 잊지 않고 한 뜻도 잊지 않으며 한 말씀도 잊지 않고, 하루나 하룻밤 동안 어디에 있든지 나는 항상 부처님을 보는데 이것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며 나는 항상 법을 듣고 스님께 공양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큰 바라문이시여, 이렇게 부처님을 보고 이렇게 법을 들으며 또 스님들에게 공양하면서도 나는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때 범천 큰 바라문은 일동 중에 있는 작은 바라문에게 명령했다.
“마나바(摩那婆)야, 너는 지금 빨리 돌아가서 득무구가 아까 말한 그 법을 모두 대왕과 왕부인에게 말하여라.”
그리하여 마나바는 분부를 받고 가서 보고 들은 그 법을 모두 대왕과 왕부인에게 말하였다.
그 때 득무구는 부처님의 공덕을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고 법의 공덕을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고 스님의 공덕을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그리하여 5백 바라문은 이 말을 듣고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다.
그 때 득무구는 가마에서 내려 여러 시종 바라문들과 함께 보살과 성문들에게로 가서, 예배하고 공경 존중하면서 존자 사리불 앞에 서서 합장하고 물었다.
“대덕 사리불이여, 모든 여인은 지혜가 매우 적고 더러운 욕심은 극히 많아, 오로지 방일을 행하고 마음은 좁으며 선법은 생각하지 않고 악법만 많이 생각합니다. 장하십니다. 대덕이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나를 생각하시고 알맞게 설법하시어, 나로 하여금 긴 밤 동안에 큰 이익을 얻어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소서.”
이 말을 마치기 전에, 교살라의 바사닉왕은 마나바 바라문의 말을 듣고 빨리 달려 성문과 보살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딸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딸과 보살과 성문들에게 말하였다.
“집은 매우 즐거운 것이다. 무엇 때문에 여기 앉아 그런 말을 하느냐? 나는 지금까지 우치에 덮이지 않아 쾌락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일으킨 일이 없었다.”
그리고 교살라 바사닉왕은 곧 그 딸을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너는 단정하여 하늘과 같고
아름다운 자태는 장기(莊己) 같은데
무엇 때문에 나쁜 견해 일으켜
모든 집착 않는다고 말하는가.
왕의 국토는 풍요하고 즐거우며
네 어미는 네 말을 따르는데
딸아, 무엇을 생각했기에
몸의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는가.
모든 사람들 너를 높이고 공경하며
너를 보는 사람은 다 사랑하며
온갖 공덕으로 장엄했는데
무엇 때문에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는다 하는가.
너는 무엇을 보고 들었기에
즐거움에 근심과 두려움을 내는가.
좋은 마음으로 내게 말하라.
너에게 무슨 소원 있는가.
그 때 득무구는 곧 부왕을 위해 게송으로 말하였다.
대왕은 집의 악을 깨닫지 못하였구나.
그것은 위험하고 위험한 온갖 음(陰) 속에 있네.
유위(有爲) 속에서 산다는 것은
마치 기생 아이들의 놀이터 같네.
거기는 독사가 사는 곳이어서
목숨은 잠깐도 멈추지 않고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 없거니
어떻게 고요히 잘 수 있으리.
4대(大)는 마치 독사와 같고
3유(有) 어디에 즐거움 있으랴.
원한의 나쁜 싸움이 있고
넓은 들판 험한 곳에 이른 것 같네.
번뇌의 악이 둘러싸는데
어떻게 편하고 즐거울 수 있으리.
어떤 것이 그 즐거움이기에
어떻게 즐기어 집착할 수 있으리.
독을 마시라는데 어떻게 자며
죽여라 명령하는데 어떻게 기뻐하며
험한 벼랑인데 어떻게 편안하리.
사람의 목숨도 또한 그러하네.
여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되
유(有)의 무더기는 수미산과 같다 하셨네.
저러한 뒤바뀐 뜻이거니
누가 무상(無常)의 겁(劫)을 믿으리.
부모와 형제들
그 모두는 적의 경계인데
선지식의 아이들은
친우로서 다 둘러싸네.
마치 거울 속의 형상처럼
일체가 다 무상이건만
그 어떤 무리들이
이 진실 아님을 능히 믿으리.
처음에 자연의 지혜를 보고
곧 보리심을 내고
보리심을 낸 뒤로는
보살행을 잃은 적 없네.
그 어떤 보살의 행이
세간 쾌락에 탐착하던가.
나는 저 여래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보네.
저 선서(善逝)의 설법을 듣고
이 부처님의 제자를 보고
그 때문에 이 세간의
속세의 5욕의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 때 교살라국의 바사닉왕은 그 말의 말을 듣고는 잠자코 말이 없었다. 그러자 득무구는 그 아버지가 침묵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곧 존자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 사리불이시여, 나는 어려움을 묻고 싶습니다. 나를 가엾이 여겨 주십시오. 부처님 말씀에 대덕의 지혜는 인간에서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대덕이시여, 지혜란 어떤 것입니까? 그 지혜란 상(常)입니까, 무상입니까? 만일 상이라면, 부처님의 말씀에 모든 법은 다 무상이라 하셨으니, 부처님의 이 말씀은 곧 망설이며 미혹한 설법이 되는 것입니다. 또 만일 그것이 무상이라면 그 법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생기지 않으면 그것은 무(無)이니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곧 지혜라는 법을 생각하거나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 말씀에, 대덕의 지혜는 인간에서 제일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존자 사리불은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존자 대목건련이 존자 사리불에게 물었다.
“왜 저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존자 사리불이 말하였다.
“저 여자는 내게 무상의 법을 묻지 않고 불생(不生)의 법을 물었기 때문에 내가 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때 득무구가 존자 대목건련에게 물었다.
“대덕 목건련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대덕의 신통은 인간에서 제일이라 하십니다. 대덕은 중생의 생각에 머물러 신통을 나타내 보이십니까? 법의 생각에 머물러 신통을 타나내 보이십니까? 만일 중생의 생각에 머물러 신통을 나타내 보이신다면 중생이 이미 없거니 어떻게 대덕은 신통을 나타내 보이십니까? 만일 법의 생각에 머물러 신통을 나타내 보이신다면 법에는 분별이 없으며 대덕도 그러하여 분별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분별이 없거니 어떻게 대덕은 신통을 나타내 보이십니까?”
존자 목건련은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존자 부루나미다라니자가 존자 목건련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존자 목건련은 말하였다.
“그 여자는 내게 분별을 묻지 않고, 내게 분별이 없어 취하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는 여래의 보리도를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때 득무구는 존자 부루나미다라니자에게 물었다.
“대덕 부루나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대덕의 설법은 인간에서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대덕은 수지(受持)하여 설법하십니까? 수지하지 않고 설법하십니까? 만일 수지하고 설법하신다면 저 모든 우치한 범부 등과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우치한 범부들도 수지하기 때문입니다. 대덕이시여, 이와 같다면 우치한 범부들의 법을 떠나지 못합니다. 만일 수지하지 않고 설법하신다면 법에는 이미 물건이 없는데 어떻게 대덕의 설법이 인간에서 제일이 되겠습니까?”
존자 부루나미다라니자는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존자 마하가섭이 존자 부루나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존자 부루나는 말하였다.
“저 여자는 내게 세제(世諦)의 이치로 진제(眞諦)의 이치를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득무구는 존자 대가섭에게 물었다.
“대덕 마하가섭이시여, 대덕은 8해탈에 들었다가는 다시 나와 남을 위해 설법하시고, 어떤 사람에게서 조그마한 도시락의 밥이라도 받으시면 그 보시한 사람[施者]은 다 천상에 난다고 합니다. 그는 대덕께 어떻게 보시합니까? 몸의 깨끗한 보시입니까? 마음의 깨끗한 보시입니까? 몸과 마음의 깨끗한 보시입니까? 만일 몸의 깨끗한 보시라면 몸은 지각이 없고 움직이지 않아 초목과 같고 벽이나 흙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몸은 깨끗한 보시를 할 수 없습니다. 만일 마음의 깨끗한 보시라면 마음은 요술과 같아서 잠깐도 머물지 않으므로 깨끗한 보시를 할 수 없습니다. 또 몸과 마음에는 물건이 없는데 어떻게 보시할 수 있겠습니까?”
존자 대가섭은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존자 수보리가 존자 대가섭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존자 대가섭은 말하였다.
“저 여자는 내게 취하는 법을 묻지 않고, 취하지 않는 법을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답하지 않습니다. 저 여자는 나에게 실제(實際)를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때 득무구는 존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대덕 수보리시여, 부처님 말씀에 대덕은 아란야행이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대덕이시여, 아란야란 물건이 있어서 닦는 것입니까? 법이 있어서 닦는 것입니까? 만일 물건이 있어서 닦는다면 그것은 무상(無常)이며 만일 법이 있어서 닦는다면 법에는 생멸의 상이 없습니다. 만일 법이 생멸하지 않는 상이라면 그것은 평등이요, 그것이 만일 평등이면 곧 평등이 아니며, 그것이 만일 진여라면 곧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는 진여가 아니요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으면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며, 만일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생각할 수 없고 만일 생각할 수 없으면 그것은 말할 수 없으며, 만일 말할 수 없으면 그것은 물건이 아니요 만일 물건이 아니면 그것은 진실이 없으며, 만일 진실이 없으면 성인이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존자 수보리는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존자 리파다(離波多)가 존자 수보리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존자 수보리는 말하였다.
“조그만 법까지도 말할 것이 없으므로 잠자코 있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저여자는 실없는 말을 하지 않는 법을 물었습니다. 말로 말하는 모든 것은 다 불선이며 말하지 않는 경계가 바로 아란야(阿蘭若)입니다.”
그 때 득무구는 존자 리파다에게 물었다.
“대덕 리파다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대덕의 좌선은 인간에서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대덕이시여, 마음이 선정을 의지합니까? 마음이 선정을 의지하지 않습니까? 만일 마음이 선정을 의지한다면 마음은 요술과 같아서 진실하지 않은 분별입니다. 만일 그와 같이 진실하지 않으면 그 분별도 진실하지 않을 것이요 의지하는 선정도 진실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무심(無心)으로 선정을 생각하면 모든 죽은 사람도 다 기뻐할 것이요 모든 초목과 벽과 파라사나무도 다 선정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물건은 다 무심이기 때문입니다.”
존자 리파다는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존자 아니루대가 존자 리파다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존자 리파다는 말하였다.
“저 득무구는 부처님의 경계를 물었으니, 그것은 성문이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득무구는 말하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래의 법계와 성문의 법계는 다릅니까? 만일 법계가 다르다면 그것은 법계를 부수는 것이요 만일 법계가 부숴진다면 법계가 둘이 되며 법계가 둘이 아니라면 진여라 할 수 있고 이런 진여는 둘이 아니며, 진여가 이렇게 둘이 아니라면 그것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덕은 어째서 그렇게 말하십니까?”
그 때 득무구는 존자 아니루대에게 물었다.
“대덕 아니루대시여, 부처님 말씀에, 대덕의 천안(天眼)은 인간에서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대덕의 천안은 있는 물건을 보십니까? 없는 물건을 보십니까? 만일 있는 물건을 보신다면 그것은 상견(常見)에 떨어지고 만일 없는 물건을 보신다면 그것은 단견(斷見)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존자 아니루대는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존자 아난타가 존자 아니루대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존자 아니루대는 말하였다.
“저 여자는 지혜를 가지고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득무구는 존자 아난타에게 물었다.
“대덕 아난타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대덕은 다문(多聞)에서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대덕이시여, 어떤 것을 다문이라 합니까? 뜻이 있는 앎입니까? 구경의 앎입니까? 만일 뜻이 있는 앎이라면 뜻은 말이 없는 것이니 말할 수 없으며, 귀의 의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요 그것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구경의 앎이라면 세존의 말씀에서 그 뜻을 들어야 하니, 문자에서 듣지 마십시오. 그것은 듣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대덕 아난타이시여, 어떤 것을 다문이라 합니까?”
존자 아난타는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문수사리동자가 존자 아난타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존자 아난타는 말하였다.
“일체 문자가 성품을 떠난 것은 메아리와 같습니다. 저 여자는 내게 문자를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평등과 마음 없음과 마음 떠남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은 학인(學人)의 경계가 아닌데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여래 법왕께 물어 보십시오.”
그 때 득무구는 동자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시여, 부처님 말씀에 당신은 여래의 매우 깊은 해탈을 잘 아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보살 중에서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그 인연법은 어떻게 매우 깊습니까? 인연이 깊기 때문에 매우 깊습니까? 그 자체가 매우 깊습니까? 만일 그 인연이 깊기 때문에 매우 깊다면 그 인연과 화합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인연은 가지도 오지도 않는 것이요 눈의 의식으로 볼 것도 아니며, 내지 의식으로 알 것도 아니요 둘이 아닌 화합의 인연으로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체가 매우 깊은 것이라면 그 매우깊은 자체는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실제(實際)의 뜻은 매우 깊고 매우 깊은 것입니다.”
득무구는 말하였다.
“문수사리시여, 그 실제는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며, 이와 같이 그 지혜는 곧 지혜가 아닙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말이 없으면 실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득무구는 말하였다.
“문수사리시여, 만일 소득이 없으면 말이 없을 것이며 말을 벗어났기 때문에 소득이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말하였다.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남을 위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득무구는 말하였다.
“여래의 보리는 말을 벗어났으므로 그것은 말할 수 없습니다.”
문수사리는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그 때 득무구는 불미견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시여, 미(迷)하지 않은 소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즉 ‘내 마음을 안주하여 여색삼매(如色三昧)를 관찰한다. 만일 이렇게 하여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어떤 중생이 보리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부녀나 장부를 보는 자는 다 내 몸이 여래의 신색과 같음을 볼 것이다’고 했으니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당신은 여래의 색신을 보이는 것입니까? 그 신법을 보이는 것입니까? 만일 색신을 보이는 것이라면 저 중생은 부처님의 몸을 보지 못할 것이요, 만일 부처님 몸을 본다면 그것은 부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게송을 외우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색신으로 나를 보거나
또는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하면
그는 사도(邪道)를 행하는 사람
그러므로 나를 보지 못하리.
또 만일 법신을 보이는 것이라면 부처님의 법신은 나타내 보일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래의 법신은 눈의 의식을 벗어났기 때문에 그것은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불미견보살은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보당보살이 불미견보살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불미견보살은 말하였다.
“저 여자는 내게 물건 없음을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득무구가 말하였다.
“나는 물건 없음을 묻지 않았습니다. 물건이 없으면 물을 수 없습니다. 나는 법 배움을 말했습니다. 그렇게 아셔야 합니다.”
불미견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그 때 득무구는 보당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시여,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한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일체 좋은 보배가 가득한 창고가 다 열릴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인자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음이 있으면서 복덕을 바라야 합니까? 마음이 없으면서 복덕을 바라야 합니까? 만일 마음이 있으면서 복덕을 바란다면 당신은 저 우치한 범부와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치한 범부들은 다 바람에 애착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마음이 없으면서 복덕을 바란다면 그것은 마음 없는 바람의 무더기일 것입니다.”
보당보살은 잠자코 답하지 않았다.
그 때 득무구는 제악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시여,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한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악업을 지은 중생으로서 그 과보를 받아야 할 자가 법을 보기 때문에 현세에서 가볍게 받을 것이다’고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부처님 말씀에 업을 생각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당신은 부처님 말씀을 어길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업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미래의 무거운 업과 현세의 가벼운 받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모든 법은 다 공이어서 주인이 없는데 당신은 어떻게 법왕이라 할 수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무거운 업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부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제악보살은 말하였다.
“나는 원력으로 이렇게 무거운 과보를 받을 업을 가볍게 받는 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득무구는 말하였다.
“원력으로 그것을 돌릴 수 없습니다. 만일 돌릴 수 있다면 저 낱낱 부처님께서 다 본래의 소원이 있어 ‘일체 중생을 내가 모두 큰 열반을 얻게 하리라’고 하셨으나 그 원력으로 그렇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원력으로 돌릴 수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제악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그 때 득무구는 장일체죄(障一切罪)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시여,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한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일체 인민은 5개(蓋)의 장애를 받지 않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만일 당신의 선정이 중생들로 하여금 5개의 장애를 받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든 법은 다 공이어서 주인이 없는 것이니,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이 아니요 나는 나가 아닌데, 어떻게 남을 위해 은혜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장일체죄보살이 말하였다.
“먼저 자심(慈心)을 닦습니다.”
득무구는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께서 큰 자심을 행하지만 어떤 부처님 국토의 중생들은 5개의 결박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장일체죄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그 때 득무구는 성자 관세자재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시여,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한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어떤 중생이라도 결박되어 죽게 된 자가 곧 벗어나게 되어 아무 두려움이 없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취하여 닦습니까? 취하지 않고 닦습니까? 만일 취하여 닦는다면 그것은 우치한 사람의 취함이니 옳지 않으며, 만일 취하지 않고 닦는다면 그것은 무상(無常)이 아니요 만일 무상이 아니면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관세자재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그 때 변취보살이 관세자재보살에게 물었다.
“왜 그 여자의 물음에 잠자코 답하지 않습니까?”
관세자재보살은 말하였다.
“저 여자는 내게 생기는 법도 묻지 않고 멸하는 법도 묻지 않으며,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법을 내게 물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득무구는 말하였다.
“관세자재보살이시여, 당신은 왜 어느 곳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느냐고 묻지 않습니까?”
관세자재보살은 말하였다.
“어느 곳이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조그만 명자(名字)도 옮겨 다님이 없습니까?”
득무구는 말하였다.
“만일 옮겨 다니지 않으면 모든 법에는 지혜롭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명자가 옮겨 다니는 일이 없어, 명자에 집착하지 않고 법계에 장애가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이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관세자재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그 때 득무구는 변취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시여, 당신은 말하기를, ‘내 마음은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한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어떤 나쁜 마음의 중생이라도 인자한 마음으로 맞이하여 서로 찬탄할 때, 그 음성과 말이 다 변재를 얻을 것이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인자시여, 이 변재가 일어남은 인연이 있어서 일어나는 것입니까? 인연이 없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만일 인연이 있어서 일어난다면 일체의 무상(無常)이 다 인연으로 일어날 것이니 만일 그렇다면 고요함을 얻지 못할 것이며, 만일 인연이 없이 일어나 그렇게 진실이 없는 것이라면 변재가 일어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변취보살은 말하였다.
“나는 처음 보리심을 낸 뒤로부터 항상, 만일 어떤 중생이라도 나를 보는 자가 있으면 다 변재를 얻기를 원했습니다.”
득무구는 말하였다.
“선남자시여, 당신은 마음이 있는 변재를 말합니까? 마음이 없는 변재를 말합니까? 만일 마음이 있는 변재라면 그것은 상(常)의 허물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이 없는 변재라면 저 모든 말을 당신은 왜 진실이 아니라고 말합니까?”
변취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그 때 득무구는 불미행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시여, 당신은 말하기를, ‘내 마음을 안주하여 여색삼매를 관찰한다. 만일 이렇게 사바제성에 들어가면 어떤 중생이라도 나를 보는 자는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어떤 것이 보리입니까? 그 보리란 유(有)입니까, 무(無)입니까? 만일 유라 한다면 당신은 상(常)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불미행보살은 말하였다.
“보리란 지혜로운 사람의 말을 보리라 합니다.”
득무구는 말하였다.
“그 지혜란 어떤 것입니까? 생기는 체(體)입니까? 고요한 체입니까? 만일 생기는 체라면 생기는 것은 다 무상(無常)이니, 만일 다 무상이면 바른 생각이 아니며, 만일 다 무상한 것이 곧 바른 생각이라면 모든 우치한 사람이 다 바른 생각일 것입니다. 또 만일 고요한 체라면 그것은 얻을 바가 없을 것이요, 만일 얻을 바가 없으면 그것은 분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요 보살의 말이며 아라한의 말이요 혹은 범부들의 말입니다. 왜냐 하면 보리의 도는 분별이 없기 때문이니 어리석은 범부는 분별이 있고 분별이 있으면 그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불미행보살은 잠자코 말하지 않았다.
그 때 존자 수보리 등 여러 성문과 그 여러 보살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돌아가자. 저 사바제성에 들어가 걸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아침에 묘하고 좋은 법식(法食)을 먹고 곧 만족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 득무구에게서 훌륭하고 묘한 법을 얻었다. 우리는 아침에 법식을 충분히 얻었다.”
그 때 득무구는 존자 수보리에게 말하였다.
“대덕 수보리시여,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것이 성문의 법입니다. 당신들은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항상 생각하십니까? 대덕 수보리시여, 희론(戱論) 없음이 곧 성문의 법입니다. 만일 희론에 집착하면 성문법이 아닙니다. 대덕 수보리시여, 의지함이 없음이 곧 성문법입니다. 성인의 경계는 의지함이 아니며 의지하지 않으면 흔들림을 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