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애경(大哀經)제6권
21. 십팔불공법품(十八不共法品) ②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조금도 상(想)도 없고 또 뭇 생각을 말미암아 그 마음을 미혹시키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없으시나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마치 다함 없는 허공처럼 아무런 상이 없고 그 본래가 청정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중생을 관찰함에 있어서 각각 다르게 생각하지 않으며, 그 법계를 파괴할 수 없고 지혜의 평등함을 이룩함으로써 모든 부처님도 갖가지 종류가 없다고 관찰하며, 또 욕심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에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래께서는, 계율을 파괴함이 없이 잘 받드는 자이기 때문에 그를 치우치게 사랑하거나 순조롭게 생각하지도 않으시고, 또 계율을 범한 자이기 때문에 그를 헐뜯거나 나무라지도 않으시며, 수도(修道)한 자이기 때문에 그를 가서 보고 공경하거나, 수도하지 않은 자이기 때문에 그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며, 율교(律敎)가 바로 내 것[我所]이라고 계교하지도 않으며, 설령 삿된 소견에 아주 빠져 있더라도 그를 소홀히 여겨서 버리지 않고 언제나 그 모든 법을 평등하게 행하시나니, 그러므로 여래 지진은 아무런 상(想)이 없다고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무런 상이 없는 그것을 널리 설하여 중생을 개화하되 각각 다르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의 뭇 상을 제거하기 위해 설법하시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19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도에 편히 머무시어
아무런 상이 없으신
가장 뛰어난 여래께서는
모든 불토를 널리 보시고
또 경전을 널리 설하시네.
그러므로 중생을 관찰하되
각각 다름없이 생각하여
큰 명칭(名稱) 얻고
그 소행이 다 평등하며
계율을 준수하는 자에게나
계율을 범하는 자에게나
교화하기 쉬운 중생이나
교화할 수 없는 중생을
양족존께서는 평등한 마음으로
각각 차별 없이 제도하시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모든 것을 관찰하시고 그 근원을 다 보되 다시 생각하지 않으시나니,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큰 성인이어서 도덕을 이미 다 성취하셨고 몸의 행을 삼가하는 동시에 마음이 부드러우며 계율이 선명하고 지혜가 뛰어남으로써 감히 우러러보거나 헤아려 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으니, 여래의 성스러운 지혜보다 뛰어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지혜로써 항상 관찰하고 널리 보호하시기 때문에 어리석음을 따르지 않고서 곧 세간을 제도하시되 세속의 미혹된 행에 떨어지지 않으시며, 또 여래께서 보호하심은 성현에게 따르게 하시므로 중생들이 성현 아닌 이를 따르지 않고 더없는 청정한 범륜(梵輪)을 굴리시므로 중생을 가엾이 여겨 자유를 얻게 하시며, 시방을 홀로 걷되 다른 사람을 따르지 않으며,어떤 명예를 바라지 않고 치우치거나 무리 짓지 않는다. 또 여래께서 살피시고 보호하시는 이는 조금도 난폭하지 않고 항상 질서에 순응하며 그릇됨이 없으며, 어떤 생각의 머무는 처소와 받고 버림이 없으므로 모든 두 가지 갈래를 여의고, 한량없는 겁(劫)에 네 탁류[四瀆]를 건너 그 끝없는 본말(本末)을 생각하되 각각 차별을 두지 않으며, 과거의 모든 일까지 다 기억하되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그 공을 스스로 나타내지 않아 이러한 사실을 다 차별 없이 그대로 관찰하시니, 이것이 바로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는 여래의 관찰인 동시에 그 대비의 거룩함이라 한다. 그러기에 모든 중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구족히 설법하시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여래의 제20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여래께서 보호하시는 자는
한 번도 게으르거나 지친 적 없이
그 도의 이치를 잘 닦았으므로
높고도 뛰어난 행을 이룩했으며
그 마음과 몸도 그와 같이
계율과 지혜를 잘 닦았으므로
가장 존귀한 대인 되시어
그 소행이 항상 지성이시라.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언제나
모든 위해(危害)를 벗어나고
또 어떤 생각과 기억도 없어
거짓된 일을 하지 않으며
또 그 보호하심이
진리이고 꾸밈이 없으므로
곧 이러한 이치로써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탐욕으로 손해 입으시는 일이 없나니, 이른바 탐욕이란 오직 그 착한 법이 무엇인가를 탐하여 즐거워함이요, 손해라 함은 여래의 대비는 언제나 손해가 없고 치우침도 없이 한결같이 대비를 근본 삼아 경전을 설하시므로 그릇되거나 잃어버림이 없는 것이다.
또 여래께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탐욕을 따라 미혹되지 않게 하시고 중생을 개화하시되 애초부터 잘못되게 하지 않으시며 고요한 경지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 계도(啓導)함에 있어도 어긋나거나 멈추는 일이 없으시며, 나아가서는 보살들을 권유하여 조금도 잊어버림이 없이 3보(寶)를 항상 받들어 끊지 않게 하신다. 이와 같이 여래 지진께서는 도덕을 즐거워하시기 때문에 탐욕을 말미암아 손해 입는 일이 없으시고 중생들을 위해 경전을 선설하시되 그들로 하여금 더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사모하고 좋아하게 하여 모든 지혜를 갖추게 하시나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21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가장 수승한 여래께선
항상 다른 탐욕이 없고
오직 착한 덕업을 즐겨하는 한편
자비로써 법을 보시하며
그 중생을 도탈케 하되
미혹 없이 기쁜 맘 내도록
때를 따라 계도(開導)하시어
그 도에 아무런 손모 없이
3보를 끊지 않게 권유하시네.
그러므로 탐욕과 질투와 미워함 없고
어리석음을 따른 금기(禁忌)도 없고
모든 신통의 지혜를 말미암아
경전의 교훈을 사모하게 하며
중생들의 게으름을 보고는
몸소 부지런히 닦아 교화하되
한량없는 지혜의 업을 쌓아
이것으로 뭇 백성들을 제도하시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정진하는 일에 있어서 손해 입으시는 일이 없나니, 이른바 여래의 정진이란 중생을 개화하되 정성껏 그들의 각자 소재(所在)를 관찰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도탈케 하고, 경전을 들음에 있어서 항상 청정히 관철케 하시니 이것이 여래의 정진이니라.
그리고 여래 지진께서는 이렇게 중생들에게 경전을 듣게 하고 또 그들을 법기(法器)에 걸맞게 하기 위하여 1겁(劫) 동안 게으름 없이 그 깊은 법을 듣게 하시되, 식사 시간을 어겨 가면서 경전을 연설하여 중생들을 이끌어 주시니, 이와 같이 여래께서는 한 사람만을 위해서도 항하사 같은 불국토에 홀로 다니면서 그를 개화하여 도심(道心)을 내게 하신다. 여래께서는 몸과 마음과 말씀이 게으르지 않음은 물론이요, 몸과 마음이 더욱 고요하여 방편에 따라 정진하고 부지런히 닦으므로 찬탄하지 않을 자가 없으며, 또 평등을 따라 자신이 정진한 것으로 중생을 개화하여 성인의 해탈에 이르게 하고 그 참된 도를 이룩하게 하며 내지 여래의 공훈을 통달하게 하나니, 이것이 여래의 제22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그 사람 세계 중의 사자께선
정진의 힘이 손모되지 않으므로
언제나 뭇 사람들의 찬탄 받으면서
경전의 법을 연설하시며
또 중생을 법기에 걸맞게 하고자
더욱 정진에 편히 머물러
구창(究暢)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몸·입·마음이 게으르지 않으시네.
그러므로 정진하신 평등에 따라
아무런 허물이 없음은 물론
그 자비하신 뜻에서
항상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그 생각하는 뜻을 중간에 잊어버림이 없으시고 또 손해를 입지도 않으시나니, 왜 여래의 생각하심은 끝내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없느냐 하면, 족성자야, 여래께서는 처음 발심 때부터 가장 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때까지 모든 중생들 과거·미래·현재의 생각하는 마음을 널리 보아 그것을 죄다 기억하여 중간에 잊어버리는 일 없고, 또 중생들의 행을 널리 통달하되 언제나 중복됨이 없이 지혜로써 관찰하는 한편 사실 그대로를 기억하여 아무런 손해 없이 중생들 3계의 모든 성품에 들어가 그 근기에 따라 중생들의 행을 관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래께서는 관찰하려는 생각을 일부러 일으키거나 그러한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중생을 위해 경전을 강설하시되, 미리 그 시기와 나아가고 물러남과 더디고 빠름을 알아서 중생들의 근기를 분별하여 그 결정을 내려 주시니, 왜냐 하면 그 생각하는 뜻을 길이 간직하여 중간에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의 정함에 따라 잊어버림 없이 중생들을 기억하고 곧 설법하시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23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세웅(世雄)께서 생각하심은
그 마음에 언제나 잊은 적 없고
또 중복된 생각도 없이
거니는 국토마다
그 바른 깨달음 성취한 그대로
중생들의 마음을 모두 아시네.
그러므로 한 사람도 빠짐없고
다시 누구에게 치우침도 없이
널리 그들의 성품과 소행을 알아
올바른 사업을 세우게 하시니
중생의 법왕(法王)이시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올바른 선정을 잃어버린 적이 없이 모든 법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대로 법을 관찰하시나니,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올바른 선정을 잃지 않으시느냐 하면 무리 없이 평등한 행을 닦으므로 그 삼매가 또한 평등하기 때문이다.
여래께서는 욕심의 즈음에도 평등하고 욕심 없는 즈음에도 평등하며, 생사의 즈음에도 평등하고 열반의 즈음에도 평등하다. 평등하기 때문에 바른 선정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또 여래의 삼매에 대하여 그 잃어버린 적이 없음을 찬탄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역시 평등하기 때문에 경솔히 여기거나 잃어버린 적이 없고 물러난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의 선정은 눈[眼]에 화합하지 않고, 귀·코·몸·입·뜻에 화합하여 같이 더럽혀지지도 않으며, 땅에 의지하지 않고, 물·불·바람·허공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욕계(欲界)에 의지하지 않고,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금세를 그리워하지 않고 후세를 믿지도 않아 아무런 집착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손해를 입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래 지진의 선정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하며, 또 중생들을 위해 경전을 강설함에 있어서도 그들로 하여금 법기(法器)에 걸맞도록 선정을 이룩하게 하나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24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가장 수승한 여래께선
항상 선정에 계시는데
그 선정 줄어들지 않고
모든 법에 평등하시네.
그러기에 여래의 바른 선정은
땅·물·불·바람에 의지하지 않고
욕계·색계·무색계에 의지하지도 않아
그 모든 것에 집착이 없으므로
큰 성인의 손해 없는 삼매라 하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의 지혜는 줄어든 적이 없으니 그 지혜란 어떤 것인가. 모든 법에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을 우러러하지 않고서 다만 중생을 위해 성스러운 지혜를 선포하며, 방편으로 때를 따라 그 모든 것을 결정하되 장구(章句)를 명백히 요달하고 그 자취를 나타내어 1품(品)에 들어가게 하는 한편 경전을 설하기 위해 억백천 겁을 머무시니, 그러므로 설령 어떤 중생이 와서 거래(去來)와 진퇴(進退)를 묻더라도 그를 위해 의심을 풀어 주되 막히는 것이 없고, 그 지혜가 널리 3승에 들어가 모든 귀취(歸趣)를 판단하되 중생들 8만 4천의 행에 따라 8만 4천의 모든 경의 법장(法藏)을 강설하신다. 이것이 바로 여래의 지혜가 끝없고 다함 없다고 하는 것이며, 아무리 많은 설법을 하여도 그 지혜엔 줄어듦이 없고 다만 중생을 위해 이러한 다함 없는 지혜를 나타내어 설법하시니, 이것이 이른바 여래의 제25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부처님께서 바르게 깨달으신 지혜는
현재도 그 뜻이 승(乘)을 사모하므로
모든 것을 잘 분별하여 선포하고
온갖 바라밀에 자재하시네.
그러므로 중생들 위해 설법하시되
그들 성품의 즐겨함에 따라
곧 한 가지 문자(文字)로써
끝없는 장구(章句)에 들어가며
또 중생들의 행을 아시므로
그 그지없는 즈음을 관찰하여
8만 4천의 중생들에게
8만 4천의 법을 널리 설하시며
아무리 많은 설법을 하여도
그 지혜는 줄어들지 않으니
이것이 열 가지 힘의 업이요,
사람 세계 중의 높은 이라 하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는 그 해탈이 줄어든 적이 없나니, 무엇을 여래의 해탈이라 하는가. 이른바 성문은 그 소리로 인하여 해탈하고, 연각은 그 인연을 환히 알기 때문에 해탈하고, 세존은 모든 거리낌과 두 가지 갈래를 다 벗어나 해탈을 얻는 것이다. 해탈이라 이름하는 까닭은, 여래의 해탈은 과거의 경계가 없고 미래의 경계도 없으므로 모든 경계가 합동되어 현재의 경계에 머물지 않으며, 그 눈이 색에 대한 두 가지 느낌을 여의므로 해탈이라 하고, 귀는 소리에 코는 냄새에 혀는 맛에 몸은 감촉에 마음은 법에 대하여 모두 다 두 가지 느낌을 여의므로 해탈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여래께서는 그 마음이 본래의 청정함을 따라 다 요달하므로 발심하는 찰나에 곧 더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성취하시게 되며, 수시로 모든 중생들을 위해 경전을 강설하시되 그들로 하여금 치우침과 느낌을 여의고 모든 집착을 다 없애게 하시나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26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그 모든 성문들은
음성에 의지해 해탈하고
또 연각들은
인연으로 지혜를 삼지만
여래의 해탈은
모든 거리낌을 다 벗어나
허공처럼 더러움 없으므로
그리하여 부처가 되신 것이네.
그러므로 의지함도 치우침도
그 마음의 얽매임 없고
과거의 경계와 현재의 경계 없이
오직 청정한 그대로 해탈하며
그 집심(執心) 또한 해탈한 그대로
중생들의 근기를 관찰하여
그 근기에 따라 제도하시니
여래의 해탈은 언제나 줄어들지 않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과거의 모든 몸으로 지은 업을 아시되 그 근본을 분명히 기억하여 폐퇴(廢退)하지 않으시며, 또 여래께서는 모든 수승한 행을 갖추셨으므로 그 행을 인하여 수시로 중생을 교화하시되 법을 설하여 제도하기도 하시고 잠잠한 태도로 제도하기도 하시고 음식의 절차로 제도하기도 하시고 위의와 예절을 중생들에게 나타내 보여 계율에 따르게 하기도 하시며, 혹은 32가지 특징을 나타내어 구제하시고 혹은 80가지 미세한 모습을 보여 제도하기도 하시며, 혹은 여래의 정수리 모습을 보려는 자가 있을 때엔 그 해와 달보다 뛰어난 광명의 거룩함과 높은 위신(威神)을 보여 주어 그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하여 제도하시며, 혹은 중생이 직접 와서 부처님을 뵙고 계율에 따르려는 자가 있을 때엔 광명을 연출하여 그 빛깔을 보여서 제도를 받게 하기도 하시고, 부처님께서 경행(經行)하실 때에 발을 들거나 발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 주어 이로써 제도를 받게 하기도 하시고, 성곽(城郭)에 드나들 때의 그 모습을 보여 주어 개화를 받게 하기도 하시나니, 부처님의 이러한 거동과 진퇴나 위의와 예절은 다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므로 그 교화를 받지 않는 중생이 없게 하려는 것임과 동시에 함부로 경솔하게 날뛰지 않게 함이다. 그러므로 여래 지진의 모든 몸의 업과 본래의 지혜는 모든 중생들을 다 유익하게 하면서도 줄어들지 않나니, 이것이 여래의 제27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여래의 위의·예절과
걸음걸이와 드나듦과
모든 상호와 정수리의 모습을
중생들의 눈으로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제도를 받게 되나니
도사의 그 광명 연출함에 따라
무수한 중생 억 년 동안 안온하여
그 빛나는 위신 보고 계율에 수순하므로
양족존은 언제나 이 업을 닦는다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그 입으로부터 연출하는 업이 다 지혜로 이루어진 부분이어서 환히 깨닫고 자재로우시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세존께서 경도(經道)를 연설하심은 다 그 시기에 알맞은 말씀이시므로 그릇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성실히 선설하시므로 속임이 없는 동시에 죄와 허물이 없어 그 거동이 편안하고도 무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거칠거나 성글거나 사납거나 남을 미혹시키지 않고 항상 곧고 소박하고 아첨하지 않으며, 아예 나쁜 말씨와 거친 말씨를 연출하지 않고 의지하거나 집착함이 없으므로 모든 말씀이 부드러우며, 나아가고 그침이 또한 법에 걸맞으며, 나약하지 않고 성품이 경박하거나 협렬(狹劣)하지 않다.
번잡한 일을 하지 않는 동시에 걸음걸이가 조용하며, 그 말씀이 온화하고 우아하며 음성이 부드럽고 울림이 향기롭고도 아름다우며, 필요한 말씀만 골라서 적당한 시기에 천천히 발언하므로 그 말씨가 흐뭇하고도 재미있고 조금도 무리와 병폐가 없이 다 깊은 생각에서 우러나며, 자기 몸을 보호하는 한편 그 행위가 다 절차에 어울리고, 또 수시로 그 심념(心念)을 가다듬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제거하고 모든 마군을 항복 받고 뭇 위해(危害)와 온갖 질병을 치료하며, 나아가서는 그 의리(義理)를 분별하여 슬기로운 자의 뜻을 즐겁게 하신다.
그러므로 그 음성이 때로는 슬퍼하는 난새[鸞] 같고 제석천 같기도 하며, 그 울림은 화합한 강물 같고 소리는 견고한 땅 같으며, 사나운 독수리[鸞]가 그 권속에게 호령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그 뜻이 편안하기란 마치 수미산 같으며, 또 때로는 발언하는 말씀이 붉은 부리 새[赤觜鳥] 같기도 하고, 그 자비한 음성이 서로 부르는 원앙새[鴛鴦] 같기도 하고, 기러기 왕[雁王]이 그 부하를 영도하는 것 같기도 하며, 혹은 사슴 왕[鹿王]이 제 권속을 부르는 것 같고, 공후(箜篌)·거문고·퉁소·비파 따위가 서로 음절을 맞추어 애달프고도 드맑은 갖가지 소리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는 부처님의 유연(柔軟)하고도 청화한 음향(音響)은 이들보다 백천억 배나 뛰어남으로써 그 심오하고 미묘한 소리가 조금도 더럽거나 흐림이 없어 듣는 사람의 귀에 들어가 마음을 기쁘게 하며, 많은 공덕을 쌓았으므로 그 다함 없는 장구(章句)를 선설하되 시기와 사리에 걸맞고 앞뒤가 일치하며 장구의 법과 이치를 잃지 않음은 물론 각각 방편을 따라 그 시절을 어기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 근기의 증감(增減)을 보아 설법하신다.
나아가서는 보시·계율을 항상 장엄 청정하게 하고, 인욕·정진을 모아 수특하게 성인의 업을 통달하고, 지혜와 인자한 마음을 뭉쳐 중생을 관찰하되 가엾이 여겨 그 광명 나타내기를 기뻐하며, 3승을 세우고 3보를 끊지 않고 3해탈문을 청정케 하기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닦아 지혜를 선포함으로써 현명한 이에겐 비방을 듣지 않고 성인들에겐 찬탄을 받으니, 이와 같이 여래의 뜻은 허공처럼 넓고 깨끗하여 모든 공훈을 완전하게 갖추게 된다.
족성자야, 여래의 발언은 그 말씀 자체가 교훈이고 예절이니, 이러한 거룩함은 다시 비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여래의 모든 말씀은 그 지혜와 음향의 수특함에 비추어 어떠한 언어 음성보다도 초월하고 3계에서는 그에 미칠 자가 없을 만큼 가장 높아서 그 명령에 순종하지 않을 이가 없으니, 이것이 여래의 제28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견줄 데 없는 그 말씀
더러움 없이 모든 공덕에 초월하므로
한 가지 음향 뭇 소리에 들어가
삼천세계에 두루 들리네.
그러므로 성문도 그 교훈 듣고
연각들 또한 그러하고
혹은 듣고 나서 그 뜻 넓히는가 하면
곧 발심하여 불도를 구하게 되며
인자한 말씀 듣는 그대로
각각 통달하여 어지럽지 않고
또 수승한 설법 들음에 따라
그 마음 물러나지 않나니
마치 산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그 음향에 따른 보응이 오므로
사람 중 높은 이의 연설은
중생들의 마음을 다 기쁘게 하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생각하는 뜻을 다 아시어 그것을 모아 지혜 덩어리를 쌓으므로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으시나니,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애초부터 마음의 의식이 없고 아무런 상념도 없고 진퇴가 자유로우시며, 지혜로 광명을 비추어 뭇 어두움을 없애는 한편 그 지혜가 널리 중생들의 마음에 이르고 또 그들의 의식에 들어가 그 생각하는 의식을 초월하여 세간의 법을 소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래의 삼매는 의지하거나 우러르는 곳이 없으므로 쌓임[陰]과 덮개[蓋]를 벗어나고 12연기의 행을 여의며, 3세(世)의 온갖 더러움을 아주 버리는 한편 마군을 항복 받고 허위와 아첨하는 추태를 제거하며, 나[我]라는 생각을 떠나 무명의 어리석은 뿌리를 뽑고 깨끗이 도업(道業)을 닦아 아무런 상념 없이 마음이 허공 같아서 법계를 파괴하지 않는다.
족성자야, 여래 지진의 그 마음의 업과 지혜의 덩어리가 이같이도 거룩하니, 이것이 여래의 제29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가장 수승한 양족존의
그 성스러운 마음과 쌓은 공덕
도사로서의 청정한 업은
누구도 감히 당할 수 없네.
그러므로 그 편히 머무는 지혜
중생들 성품에 널리 들어가
두루하지 않음이 없고
모든 법계에 자연스러우며
선정을 닦음도 그와 같이
온갖 착함을 다 갖추고
마음의 의식을 관찰하되
아무런 상념이 없으며
이미 마군의 경계를 벗어나고
자신에게 해 끼치는 업을 초월하므로
허공처럼 자연스럽고
티끌 여의고 머묾도 없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과거를 아는 지혜가 거리낌 없으시고 그 보는 지혜가 또한 줄어들지 않으시나니, 왜냐 하면 그 과거의 모든 불국토에 대한 합하고 이루어진 그 수효의 많고 적음과 나아가고 물러남을 다 아시며, 그 국토의 산과 계곡, 약초와 숲까지도 다 분별하시는 한편 그 국토의 중생들 가운데 기어다니거나 헐떡이는 곤충들의 종류까지 다 기억하여 아시고, 인민들의 언어·음성과 그 밖의 날아다니거나 움직이는 벌레까지도 다 분명히 아신다. 그 국토에 출현하신 전후 부처님의 많고 적은 수효를 다 기억하시는 동시에 그 여러 부처님께서 선포하신 경전 권수의 수량과 나타내신 광명도 다 그대로 연출하시며, 그 한량없는 성문과 연각을 개화시켜 율승(律乘)에 들어가게 함도 다 기억하시고, 보살을 권유하여 더없는 바르고 참된 큰 승(乘)을 배워 구족케 함도 다 기억하신다.
심지어 그 국토의 좋고 더러움과 가르침과 행적과 보고 듣는 광명을 다 알고, 그 국토에 살고 있는 비구들의 언행과 거동과 위아래 간의 서로 순조로움과 진퇴(進退)의 올바름을 다 분별하는 한편, 그들의 수명에 대한 길고 짧음과 오래 살거나 중간에 죽을 것까지 다 분명히 보며, 다시 법이 세간에 서게 된 그 연세(年歲)를 알고 그 밖의 중생들의 수명의 길고 짧음과 생김새와 음식, 의복과 거처, 사업까지도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과거 중생들이 시종 돌아다니다가 어떤 곳에 왕생하게 되는지를 알고, 그 모든 근기와 소행의 같지 않음과 뜻의 각각 다름과 생각하는 마음을 비롯해 그 환경의 수특함을 알고, 또 그 마음이 끝까지 통달하거나 중간에 소홀해지는지를 분별하는 동시에 마음으로 생각하는 일의 많고 적고 더럽고 선하고 악함을 여래께서는 다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효의 한계를 눈으로 보되 두 가지 지혜를 쓰거나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으며, 여래 지진께서는 또한 그 마음에 어김없이 과거 일을 미루어 다 아시며, 그 슬기로운 눈으로 모든 사물을 미리 봄으로써 거듭 생각하지 않으니, 이와 같이 여래의 지혜는 높고도 한량없어 중생들 성품을 보고 중간에 그만두는 일 없이 계속 설법하시나니, 이것이 이른바 여래의 제30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부처님의 성스럽고 밝은 지혜는
한량없고도 거리낌 없으니
그 모든 불국토에 머무시면서
경전의 법을 널리 펼치시네.
그러므로 중생계를 권유하여
다 불도를 독실히 믿게 하고
그 불국토의 중생에 대한
소행의 진퇴를 분명히 아시며
또 인민들의 근원과
그 뜻·성품의 갈래와
모든 약초·초목·총림과
음향의 좋고 더러움도 아시며
과거 중생의 그 심정과 명칭을 비롯해
모든 소행의 하나하나까지
평등한 깨달음으로 다 아는 한편
사실 그대로를 눈으로 보신다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미래를 아는 지혜가 줄어들지 않고 또 거리낌 없이 다 통달하시나니, 어떤 것을 안다고 하는가. 미래세에 일어나고 무너질 것과 또는 합하고 흩어질 것을 여래께서는 다 아시며, 겁(劫)이 사라질 때에 물·불이 어떠한 모양과 종류로 일어날 것인지, 그리고 그 불국토가 다시 회복될 경우 그 땅의 크기와 넓이와 티끌의 숫자와 또는 그 낱낱 불국토에 얼마나 많은 부처님께서 출현하여 중생을 교화하실 것인지, 그 성문·연각·보살들의 음식·의복·거처에 대한 상황과 드나들고 숨쉬고 걸어다니고 거동하고 노닐 때의 위의·예절을 아시는 것이다.
또는 그 낱낱 여래께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에 누구는 성문·연각의 승(乘)에 세우고 누구는 대승(大乘)을 배우게 해야 하는지를 여래께서는 다 아시며, 그 낱낱 불국토의 중생들이 다시 어떤 곳에 왕생하여 생각을 자라게 하거나 생각을 없애는 그 갖가지 마음의 종류까지를 여래께서는 다 아신다. 이미 이러한 것을 다 통달하셨으므로 여래께서는 다시 생각을 거듭하지 않으시고서도 마음으로 미래를 관찰하여 항상 모든 것을 보시고 중생들에게 널리 경도(經道)를 설하시나니, 이것이 여래의 제31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미래세에 대한
그 이루어지고 무너질 것과
합하고 다시 흩어질 것을
여래께서는 이미 다 아시며
그 낱낱 찰토의 중생 수와
출현하실 부처님의 수까지도
바르게 깨달은 여래께선
그 마음에 언제나 잊지 않으시네.
그러므로 마음의 관찰에서
미래를 널리 통달하사
중생들에게 때맞추어 설법하시니
이 바로 양족존께서 행하시는 업이라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현재를 보는 그 지혜가 또 줄어들지 않고 거리낌이 없으시나니, 어떤 것을 본다고 하는가. 현재 시방세계 모든 국토의 많고 적은 수와 현재의 여러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보살·성문·연각의 많고 적은 수와 성수(星宿)의 모양 또는 진행 운전하는 처소의 수와 현재의 모든 수목·약초·산림·계곡과 시방 토지 경계의 멀고 가까움과 낱낱 국토에 있는 먼지의 숫자까지도 그 한계를 다 분명히 보고 계신다. 시방의 모든 물을 털 하나로 찍어내 보아 그 물의 양이 얼마인지를 아시고, 시방의 모든 불이 어떤 경계에 일어나 다시 어떻게 꺼지며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도 다 아시고, 시방의 모든 바람이 어떤 형색으로 어디에서 일어나 오가고 돌아다니고 더하고 덜하는지도 다 아시고, 시방 허공의 멀고도 아득한 그 거리의 그지없고 즈음 없음을 다 아시어 그 한 터럭 한 티끌의 조그마한 것까지도 부처님께서는 다 아신다.
또 현재 중생들의 3품(品)의 행과 진퇴(進退)의 어렵고 쉬움과 근본의 깊고 얕음과 가르침을 얼마나 빨리 받아들이는지를 다 아시고 현재 지옥의 중생들이 어떤 죄를 범하였기에 지옥에 떨어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함으로써 지옥을 벗어날 것인지, 미래에는 어떤 곳에 태어날 것인지를 아시는 한편 다시 어떤 방편을 써야만 그 재앙을 제거하게 될 것까지 아신다. 또 현재 중생들 중에 기어다니고 헐떡이고 굼실거리는 종류의 그 행하는 업을 따라 이 고난에 떨어짐과 어떤 방편을 다 해야만 죄앙을 제거하고서 다른 곳에 태어날 것인지를 아시고, 다시 현재의 아귀들이 인색하고 탐욕스런 결과 이 환란에 떨어진 것과 어떤 방편으로 죄를 벗어나 결정코 다른 곳에 태어날 것인지도 아시며, 나아가서는 현재 중생들이 그 생각하는 마음에 따라 번뇌와 애욕의 병에 허덕임을 아시고 또 현재의 모든 중생들이 어떠한 계율로써 개화를 받을 것인지, 어떤 사람은 그 계율조차 순종하지 않을 것이요, 어떤 중생은 인연에 따라 천상에 태어나거나 혹은 그 뜻이 물러나 다른 곳에 떨어질 것인지도 부처님께서는 다 아신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이러한 본말을 당초부터 일부러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거듭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그 둘 없는 지혜로써 중생을 위해 널리 경법(經法)을 설하시니, 이것이 이른바 여래의 제32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가장 수승한 여래의 지혜는
널리 두루하지 않음이 없고
한계 없고 한량도 없어
참으로 불가사의하여라.
그러므로 그 허공처럼 평등하고
허무하여 비유할 수 없으니
일체의 세간 사람으로선
누구도 따를 자 없으며
다시 여래께서는
시방 모든 중생들의
현재 행하는 업을 다 아시어
그 근원을 모두 펼쳐내시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사업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