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십팔불공법품(十八不共法品) ①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결함이 없으시므로 슬기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 아무도 여래께서 행하시는 바른 법에 대해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여래 지진께서는 몸의 행에 결함이 없어서 지진의 평등한 깨달음을 이룩하셨기 때문이니라.
여래께서는 위엄 있고 거룩하며 그 모습이 단정하고 빼어나시며, 위의(威儀)의 예절과 눈짓과 거동이 다 평등한 행에 걸맞으시므로 법복을 입고 발우를 들고서 온 나라의 도시·촌락 그 어떤 곳을 걸어다니거나 나아가 멈추거나 혹은 빙 돌거나 경행(經行)하거나 혹은 앉고 눕고 드나들 때마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천 폭(幅)의 무늬가 자연히 둥글게 나타나며, 또 부드럽고 미묘한 향내가 풍기는 연꽃이 땅 위에 저절로 나타나면 여래의 발은 그 위를 밟으신다. 어떤 벌레나 개미 따위의 작은 곤충들도 여래의 발과 닿으면 밤낮 7일을 편안하게 지내며 수명이 끝난 뒤엔 천상에 태어난다. 여래께서 입으신 법복은 그 몸에서 저절로 네 치[寸] 정도 떨어져 있지만 아무리 거센 바람이라도 옷을 움직이지 못하므로, 그 옆에 있는 중생들이 다 안온하게 되나니, 그러므로 여래의 몸에는 결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족성자야, 여래 지진께서는 어떤 연설을 하셔도 단점을 드러낸 적이 없으시므로 슬기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여래의 연설에 대해 그 단점을 지적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여래 지진의 말씀은 그 시기에 알맞고 지극히 성실하여 헛되지 않으며, 이치에 걸맞고 법에 적합하고 계율에 수순하여 말씀이 평등한 동시에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며, 또 그 말씀이 어긋나거나 잃어버림이 없기때문이다. 언제 어디에서도 입으로 하신 말씀은 언제나 중생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며, 말씀이 중복되지 않고 그 요지를 밝혀 장엄을 성취하시며, 입으로는 한 가지 음성이 펼쳐지나 중생들의 생각에는 낱낱이 응해 주시어 그들로 하여금 제각기 들어 알고는 기뻐하고 깨닫게 하시나니, 그러므로 여래 지진의 말씀에는 단점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또 족성자야, 여래 지진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일에도 잘못이 없으므로 슬기로운 자가 허점을 노려보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항상 선정에 들어 고요하지 않을 때가 없으므로 그 중생들 마음의 근본을 아시어 그들의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설법하시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15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그 존귀하신 대인은
아무런 결함이 없어
몸의 행과 입의 말씨와
마음의 생각이 다 훌륭하며
세간을 깨우치는 그 음성에도
단점이나 그릇됨이 없어
그 모든 중생들 속에 들어가
자비하게 평등을 나타내시므로
아무도 부처님의 잘못을 찾아내지 못하네.
이 경전의 법을
사람들에게 보여 고요하게 하고
모든 결함된 행을 버리게 하시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15의 사업이라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거친 가르침을 내리지 않으시니, 음성을 내어 법을 설하시면 모든 마왕을 비롯한 그의 관속과 외도·이학(異學) 들과 벌거벗은 몸으로 음부를 드러내는 괴상한 이술(異術)의 무리들까지도 다 방편을 얻게 되고, 또 여래께서는 말씀이 없고 음성도 없으면서 온갖 집착을 떠나 교훈하시므로 일체의 중생들이 다 받들어 듣고는 함이 있음[有爲]에 머물지도 않고 함이 없음에 머물지도 않는다. 여래의 몸의 행은 구창(究暢)하지 않는 것이 없고 말씀 또한 결함이 없어서 여래의 결함을 찾아보려는 사람들과 더불어 싸우지 않으시니,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아무런 음성이나 메아리도 없이 항상 공한 행을 따른다고 한다.
그리고 여래께서는 나[我] 없고 어떤 느낌[受]도 없고 탐하는 업이 없어 모든 갈래를 떠났으므로 싸우는 일이 없고 설령 음성을 내지 않더라도 이것을 말미암아 중생들의 음성을 깨끗이 제거하기 위함이며, 그런 뒤에 설법하시나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16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어떤 칭찬을 듣더라도
그 때문에 기뻐하지 않고
또 헐뜯음을 듣더라도
그 때문에 근심하지 않아야만
모든 집착을 제거하는 한편
의지하여 바라는 것도 없고
본래 수행한 선을 말미암아
그 행이 아무런 집착 없으리니
여래께서는 이 진리 닦아
항상 공한 행을 잘 따르므로
나[我] 없고 느낌도 없고
저 미워함과 사랑함도 없으며
그 머무시는 처소에 따라
경전의 법을 강설하니
이것이 바로 높은 업을 말씀하시는
여래의 지극한 정성이라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는 항상 기억하시어 조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또 어지러움이 없으며, 그 뜻이 어지럽거나 헤매어 법을 어기는 일이 없으시니,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항상 선정에 들어 온갖 지혜와 신통을 갖춤은 물론 해탈문으로써 모든 사물을 바로 받아들여 잊어버리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중생들 심행(心行)의 머무는 처소를 널리 보아 그 근본을 관찰하는 동시에 곧 이치에 맞추어 설법하되 법에 어기지 않고 변재(辯才)를 나타내 밝히며, 차례를 잘 따르며 어긋나지 않고, 과거·미래·현재를 다 잊지 않아 그 지혜가 거리낌 없음으로써 3세(世)를 환히 보고는 자기 몸을 인하여 스스로 그 마음에 잠시라도 잊지 않으며, 시방 중생을 자비하게 생각하심도 그와 같아서 정성껏 구제하기를 생각하고 그리하여 설법하시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17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도사께서 기억하심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고
법선(法禪)을 잘 따라서
해탈문으로 행을 삼으며
그 모든 중생들이
마음먹고 행하는 바대로
그에 다 응하여
법을 설하시되
분별하여 설법하셔도
잊어버린 적이 없으시고
3세를 통달하여
그에 응하여 범한 적이 없으시네.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설법하시니
이것이 바로 큰 성인께서 행하시는 업이라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마음이 항상 고요하여 선정에 들지 않을 때가 없으시므로 앉고 일어나고 걸어다니거나 눕고 잠자고 물 마시고 밥 먹고 말씀하시는 그 언제라도 한마음으로 고요하시며, 또 여래 지진께서는 미묘한 삼매로써 끝없이 제도하여 저 언덕을 초월하여 계시다. 그 한결같은 마음은 애초부터 쌓임[陰]과 가림[蔽]을 벗어나 널리 중생들의 온갖 모습들을 관찰하시며, 그러므로 여래처럼 신성(神聖)을 세우고 위령(威靈)를 일으켜 볼 수 있는 이를 제외하고는 선정을 행하거나 행하지 못하거나 간에 그 누구도 감히 여래의 생각과 소견과 마음을 보는 이가 아주 없으리라.
큰 성인께서 항상 삼매에 드심은, 그러하므로 그 설법을 함부로 논평할 수 없고 또 관찰할 수 없나니, 왜냐 하면 여래의 설법은 항상 모든 중생들의 그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가 이처럼 높고도 높아서 닿을 수도 미칠 수도 없고 허공처럼 안팎 없이 다 통달하였나니, 이것을 바로 여래의 제17의 사업이라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부처님께서는 나아감과 물러감 구분 없이
그 마음 항상 선정에 머무시며,
걸어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거나
자고 먹고 말씀하시는 어느 때라도
고요하여 어지러움 없으시며
또 여래께서 항상 드신 선정엔
누구도 감히 미혹시킬 수 없으므로
시방에 기회를 노릴 자 없고
감히 그 선정을 알 자도 없노라.
선정에 드신 그 마음 그대로
뭇 사람들 위해 설법하시되
항상 도의 이치를 연출하시니
이것이 가장 뛰어난 여래의 사업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