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사무외품(四無畏品)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 지진께서는 네 가지 두려움 없는 지혜의 힘이 있어서 그 용맹으로 모든 사업을 일으키시나니, 나는 지극히 진실하고 평등한 깨달음을 이루어 스스로가 이러한 것을 환히 깨우쳤기에 모든 천상·세간 사람이나 사문·범지·마왕·제석·범천 들이 여래 법을 막을 수 없으며, 여래에게 가장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노라.
왜 여래를 다 옳게 깨달은 이라고 일컫는가 하면, 일체의 법이 모두 평등하여 치우침이 없고 심지어 범부의 법과 부처님의 법도 다 평등한 것임을 요달하였기에 옳게 깨달은 이라 하며, 그 배워야 할 법이나 더 이상 배우지 않아도 되는 법이나 연각의 법, 보살의 법이나 모든 불법이 또한 다 평등한 것임을 요달하였기에 옳게 깨달은 이라 하며, 그 세속을 잘 헤아려서 세속을 초월하매 죄가 있고 죄가 없음과 번뇌가 있고 번뇌가 없음과 함이 있고 함이 없음과 수(數)가 있고 수가 없는 상대적인 모든 법이 모두 평등한 것임을 요달하였기에 옳게 깨달은 이라 하노라. 그리고 또 무엇 때문에 평등이라 하느냐 하면, 공하기 때문에 평등이라 하고 모든 견(見)이 자연스러우므로 평등이라 하고, 원(願)이 없어서 3계가 다 자연스러우므로 평등이라 하며, 그 자연을 행하므로 행 없는 평등이라 하고, 저절로 일어나므로 일어남이 없는 평등이라 하고, 그 자연에 의지하므로 의지함이 없는 평등이라 하고, 이 같은 평등으로 무명과 은애(恩愛)까지도 다 자연스러움을 깨달으므로 지혜의 평등이라 하고, 생사에 자연스러우므로 열반의 평등이라 하느니라.
다시 족성자야, 여래 지진께서는 이같이 평등하므로 바른 깨달음을 이룩하셨고 바른 깨달음을 이룩하셨기에 평등을 바르게 깨달은 이라 하지만, 여래께서는 이 모든 법을 요달하여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룩한 그대로 대비심을 일으켜 곧 중생들에게 온갖 방편을 다하고 갖가지 인연에 따라 각자가 응하는 대로 분별 해설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법에 귀명하여 곧 고뇌의 근원을 다 없애게 하시므로 여래께서는 도사가 아니면서 도사라 자칭하거나 세존이 아니면서 세존이라 자칭하거나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했으면서 바른 깨달음을 성취했다고 자칭하는 그러한 부류들보다 뛰어나심은 물론 홀로 두려움이 없으시어 그 누구도 짝할 이가 없나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11의 사업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법에 평등하사
이미 바른 깨달음을 이룩했으므로
그 평등한 깨달음에 따라
여래께서는 모든 것을 널리 나타내시노라.
그러므로 범부의 법이나
부처님 법이 다 평등하고
배워야 하거나 배울 것 없는 이의 법이나
모두 연각의 법이 또한 평등하며
그 밖의 세속의 법과
세속을 초월한 법과
착하고 착하지 않은 행과
열반의 법이 다 평등하며
공하고 또 상(相) 없고
원(願) 없음을 깨달아
그 생멸과 지어감이 없는
모든 일을 평등하게 보시는지라
이같이 평등한 업으로
말씀도 평등하게 하사
이 중생들을 제도하시니
그러므로 큰 성인의 법이라 하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는 스스로가 모든 번뇌를 이미 다하였음을 아시므로 저 천상과 세간의 하늘 사람으로서는 여래 지진을 함부로 비방하거나 감히 번뇌를 아직 다 없애지 못했다고 말할 자가 없나니, 이른바 여래께서 모든 번뇌를 다 없애셨다 함은, 여래께서 이미 애욕의 근원을 벗어나셨으므로 그 마음이 어떤 욕심에도 거리낌이 없음을 말하며, 또 부처님의 마음이란 모든 번뇌를 이미 건너 일체의 더러운 행을 깨끗이 제거하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므로 여래 지진이라 하는 것이다.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였으므로 세간에 출현하사 성현의 지혜인 제1의 진리를 나타내심에 있어서 그 누구도 감히 부처님 앞에서 법비[法雨]를 가로막을 자가 없음은 물론 그 더러운 행을 아주 제거하여 증득하게 하므로 다 됨[盡]이라 하며, 아예 나는[生] 것이 없으므로 이것을 다 됨이라 하며, 또 여래께서 다하신 바 다시 더할 것이 없나니, 이미 더할 것이 없다면 곧 함이 없고, 이미 함이 없다면 곧 느낌이 없는 한편, 있거나 있지 않은 것이 없어서 아무런 처소가 없는 것을 일으켜 세움[興立]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여래께서 제1의 진리를 일으켜 아무것도 없음에 머묾이니, 이 법계에 머무는 진리를 지혜에 응하게 하고, 이 지혜에 응함은 응하는 처소가 없음으로써 멸도(滅度)하는 것도 없고 성취하는 것도 없으며, 이러한 진리의 법은 어떤 번뇌의 형색(形色)조차 볼 수 없는 동시에 번뇌를 제거할 것 없는지라, 그러므로 여래의 대비는 권방편(權方便)에 머물러 모든 중생들을 위해 경전을 연설하여 그들에게 번뇌를 제거하게 하심이니, 이것이 곧 여래의 제12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가장 수승한 여래께선
이미 번뇌와 애욕을 다 없애셨으므로
어떠한 탐심과 거리낌도 있을 수 없고
사람 세계에 높은 이께선
모든 생사를 다 해탈하셨으므로
어떠한 더러움과 결함도 남김없이 끊으시며
편히 머물러 무명을 다 버리시며
애당초 어둠과 어리석음이 있을 수 없으니
사람 세계 사자의 모든 소견은
이 때문에 거리낌 없고 욕심도 없으시노라.
그 설법 또한 때를 따라
번뇌와 생사를 다 끊고서
모든 법이 아무것도 없음을 관찰하시거늘
어찌 없애 버린 것이 다시 자라날 수 있으랴.
그러므로 함이 있고 없는 두 가지도 없고
3계의 모양을 다 벗어나서
이 법계에 머물러 취하거나 지음도 없이
그 성스러운 지혜로 피안을 건너
중생을 따라 응하여 설법하시니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제12의 사업이네.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번뇌와 애욕에 덮이고 법에 의혹됨을 다 요달하시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므로 천상·세간의 모든 하늘과 인민들이 여래를 헐뜯거나 또는 법에 걸맞지 않는다고 말할 자가 없노라. 그들이 왜 법에서 물러서는가 하면, 한 가지 일이 있으니, 마음이 어지러워 한결같이 정진하지 못함이요, 다시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둘째는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조차 없음이 그것이요,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몸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둘째는 입으로 거친 말을 하고, 셋째는 마음으로 남을 해치며 생각 품는 것이요,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간탐하고, 둘째는 성내거나 미워하고, 셋째는 부딪치거나 시기하고, 넷째는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살생하고, 둘째는 남의 물건을 훔치고, 셋째는 음욕을 탐하고, 넷째는 거짓말하고, 다섯째는 술에 취하는 일이 그것이요,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둘째는 경전을 존중하지 않고, 셋째는 금계를 함부로 헐뜯고, 넷째는 차례대로 선정을 닦지 않고, 다섯째는 법에 대한 기억을 갖지 않고, 여섯째는 법사를 깔보는 것이 그것이요, 다시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스스로가 훌륭한 체하고, 둘째는 매우 거만하고, 셋째는 너무 지나치게 거만하고, 넷째는 이것은 나라고 생각하고, 다섯째는 그릇되게 거만하고, 여섯째는 지나치게 훌륭하다는 생각을 갖고, 일곱째는 아무도 자기를 따를 사람이 없으리란 생각을 가짐이 그것이다.
다시 여덟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그릇된 소견과 둘째는 그릇된 생각과 셋째는 그릇된 말씨와 넷째는 그릇된 사업과 다섯째는 그릇된 생활과 여섯째는 그릇된 방편과 일곱째는 그릇된 뜻과 여덟째는 그릇된 선정이 그것이요, 다시 아홉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침해와 고뇌를 당할 아홉 가지 일로서 첫째는 공경해야 할 자를 멸시했거나, 둘째는 지금 현재 멸시하거나, 셋째는 앞으로 침해할 생각을 가졌거나, 넷째는 자기에게 미운 자를 공경해야 하거나, 다섯째는 지금 현재 공경하거나, 여섯째는 앞으로 공경하는 일이요, 일곱째는 일찍이 자기를 침해했거나, 여덟째는 지금 현재 침해하거나, 아홉째는 앞으로도 침해할 염려가 있거나, 이러한 인연으로 고뇌와 침해의 마음을 일으킴이 그것이다.
다시 열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열 가지 나쁜 업으로서 첫째는 살생이요, 둘째는 도적질이고, 셋째는 음행이며, 넷째는 거짓말이고, 다섯째는 이간질하는 말이며, 여섯째는 욕이고, 일곱째는 꾸민 말이며, 여덟째는 무명이고, 아홉째는 투쟁이고, 열째는 그릇된 견해가 그것이다. 이러한 소행은 다 차례를 따르지 못한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므로 차례대로 따라야 할 법을 보고서도 그 법을 기뻐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뒤바뀐 견해에 떨어져 곧 쌓임[陰]과 덮개[蓋]에 휩쓸리며 그릇된 소견과 은애(恩愛)의 폐단에 치우쳐 바른 법을 잃고 헤매다가 마침내 몸과 입과 마음의 행이 나빠짐을 여래께서는 다 아시노라.
이러한 모든 가림과 거리낌을 아심으로써 그 사실대로 말씀하시고, 또 이러한 법이 가림과 거리낌을 이룩하기 때문에 이 법을 제거하기 위해 설법하사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쌓임과 덮개를 버리고서 초연히 벗어나게 하시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13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가장 수승한 여래께선
모든 법을 요달하셨건만
중생들은 그 습기로 해탈할 수 없어
집착된 마음 버리지 못하나니
이 바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이네.
몸·입·뜻도 그와 같이
처음부터 잘 기르지 못하면
탐욕·성냄·어리석음·두려움으로
살생과 도둑질을 저지르고
간음하고 거짓말하며 술에 취하고
모든 행을 잃고 교만하기 마련이네.
그러므로 여덟 해탈문을 설법하여
그 해탈의 자취를 깨우쳐 주시니
만약 그 뜻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열 가지 불선한 일을 범한다면
그 수순하지 못한 생각 버리지 못하므로
이들 마침내 해탈할 수 없고
뒤바뀜에 따라 집착되어
온갖 방일한 곳에 치우치리니
이러한 법 익히지 않아야만
세계에게 가장 높은 이가 되리라.
부처님께서는 다시 족성자에게 말씀하셨다.
“여래께서는 성현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요달함으로써 곧 평등에 나아가 뭇 고뇌를 다 없애는데, 중생들은 선업을 쌓으면 이로 말미암아 평등을 키울 수 있으리라. 만약 평등에 나아간다면 그들은 곧 근심과 해로움을 없앨 수 있으리니, 설령 그러므로 어떠한 천상·세간의 하늘과 사람일지라도 여래의 바른 법을 장애하거나 지존(至尊)께 뭇 성인의 으뜸[宗]이 될 수 없다거나 큰 도를 맡지 못하리라고 말할 자는 없으리라.
부처님께서는 그 으뜸 되는 것이 있어서 길이 두려움이 없으시나니, 어떤 것이 으뜸이냐 하면, 이른바 1승(乘)의 도로써 중생을 청정케 함이니라. 다시 두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고요[寂然]함이요, 둘째는 소원을 세움이 그것이다. 다시 세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공함이요, 둘째는 상(相) 없음이요, 셋째는 원(願) 없음이 그것이다. 다시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뜻에 대한 바른 노력으로서 첫째는 몸의 뜻을 바르게 하고, 둘째는 느낌의 뜻을 바르게 하고, 셋째는 생각하는 뜻을 바르게 하고, 넷째는 법의 뜻을 바르게 함이 그것이다.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믿음의 근기와 둘째는 정진의 근기와 셋째는 뜻의 근기와 넷째는 선정의 근기와 다섯째는 지혜의 근기가 그것이요, 다시 여섯 가지 법이 있으니, 첫째는 부처님을 생각함이요, 둘째는 법을 생각함이요, 셋째는 승가를 생각함이요, 넷째는 보시를 생각함이요, 다섯째는 계율을 생각함이요, 여섯째는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일곱 가지 걸맞는 법이 있으니, 첫째는 의식으로 깨닫는 뜻[意覺意]이요, 둘째는 법으로 깨닫는 뜻[法覺意]이요, 셋째는 정진으로 깨닫는 뜻[精進覺意]이요, 넷째는 기쁨으로 깨닫는 뜻[歡覺意]이요, 다섯째는 믿음으로 깨닫는 뜻[信覺意]이요, 여섯째는 선정으로 깨닫는 뜻[定覺意]이요, 일곱째는 청정함으로 깨닫는 뜻[護覺意]이 그것이다.
다시 여덟 가지 걸맞는 법이 있으니, 첫째는 바른 소견이요, 둘째는 바른 생각이요, 셋째는 바른 말씨요, 넷째는 바른 업이요, 다섯째는 바른 생활이요, 여섯째는 바른 방편이요, 일곱째는 바른 뜻이요, 여덟째는 바른 선정이 그것이다. 다시 아홉 가지 걸맞는 법이 있으니, 첫째는 제1의 선정이요, 둘째는 제2의 선정이요, 셋째는 제3의 선정이요, 넷째는 제4의 선정이요, 다섯째는 허공으로 가득 찬 지혜의 선정이요, 여섯째는 식별로 가득 찬 지혜의 선정이요, 일곱째는 지혜를 쓰지 않는 선정이요, 여덟째는 생각이 있지도 없지도 않은 선정이요, 아홉째는 모든 고통스러운 생각을 없애는 선정이 그것이다.
다시 열 가지 걸맞는 법이 있으니, 첫째는 살생을 여읨이요, 둘째는 도적질을 여읨이요, 셋째는 음욕을 여읨이요, 넷째는 거짓말을 여읨이요, 다섯째는 이간질하는 말을 여읨이요, 여섯째는 욕을 여읨이요, 일곱째는 모욕하는 말을 여읨이요, 여덟째는 꾸민 말을 여읨이요, 아홉째는 성내거나 미워함을 여읨이요, 열째는 삿된 소견을 없애고 바른 업에 머묾이 그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걸맞는 행으로서 번뇌와 애욕의 자라남을 여의고, 또 이것이 모든 선(善)을 위한 37품(品)이요, 계품(戒品)을 모은 것이고, 정품(定品)을 이루는 것이고, 혜품(慧品)을 합한 것이고, 해품(解品)을 완전히 다한 것으로서 바라밀을 통달하여 성현의 진리를 이룩해 그 자라나는 것을 여의게 되느니라.
다시 이른바 자라는 것을 여읜다 함은 그 평등한 성현의 일을 수행함이요, 성현의 일에 걸맞는다 함은 저 모든 법품(法品)에 있어 혹은 둘이고 둘이 아니거나 혹은 권(權)이 있고 권이 없거나 혹은 나아가고 물러나거나 혹은 자라나고 자라나지 않거나 간에 받음도 없고 버림도 없이 그 모든 것을 초월하며, 그 밖의 온갖 평등하지 않음과 두 가지 일의 행을 모조리 벗어나는 것이다. 모든 법은 둘이 없느니라. 이러한 진실의 지혜를 닦음에 있어 여래께서는 이 자라나는 것이 없는 행으로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며, 만약 이것을 행한다면 모든 중생들이 그에게 귀의하여 온갖 고뇌를 다 없애게 되리라. 이것이 바로 여래의 제14의 사업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또 게송을 읊으셨다.
이 청정하고도 한량없는
부처님께 친근한다면
번뇌와 애욕에 집착된 사람도
그 청정한 경지에 도달하리니
가장 수승한 부처님께선
그 모든 것을 널리 들어 아시고
이미 경전을 아시므로
감로를 즐겁게 말씀하시노라.
그러므로 뭇 착함을 모아
무수한 법을 다 깨닫고
도품(道品)이 청정하시어
불세존이 되시었네.
그럼에도 용맹스럽게
이것을 수습하여 해탈하고
시방에 두루 연설하시되
그 모든 처소를 벗어나며
수순한 생각 그대로
온갖 번뇌를 다 없애고
평등한 방편의 법에 따라
아무런 근심이 없으시며
법에 의지하지 않고
법 아닌 것에 치우침도 없이
평등한 해탈을 얻어
언제나 고루 정진하시며
마치 허공 같기도 하고
또 눈흘림 같기도 하고
꿈에 본 것 같기도 하여
어떠한 생각이 없으시며
저 언덕을 건너
생사의 갈래를 끊으시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열 가지 힘이네.
그러나 뭇 사람들
온갖 처소에 돌아다니므로
대비로써 구제하기 위해
항상 자비를 일으키시니
그 뛰어나심 비길 자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