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섭문대보적정법경 제3권

대가섭문대보적정법경 제3권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비유로 이 이치를 밝히셨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등불 빛이 일체의 어두움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 그 어두움은 어디로 가는가? 동방으로 가는 것도 아니요, 남방으로 가는 것도 아니며, 서방으로 가는 것도 아니요, 북방으로 가는 것도 아니며, 가도 가는 것이 아니요, 와도 오는 것도 아니다.

가섭아, 또 등불 빛은 나[我]도 아니면서 어두움을 잘 파괴한다. 또 만일 어두움이 아니라면 어찌 등불 빛을 나타내겠는가? 가섭아, 등불 빛과 어두움은 본래 자성(自性)이 없고, 이 둘은 다 공(空)이어서 얻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것이다. 가섭아, 이와 같이 지혜도 또한 그렇다. 지혜가 만일 생기면 무지는 곧 버린다. 그런데 그 무지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동방으로 가는 것도 아니요, 남방으로 가는 것도 아니며, 서방으로 가는 것도 아니요, 북방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가도 가는 것이 아니요, 와도 오는 것이 아니니라.

가섭아, 또 지혜가 만일 생기면 무지는 버린다. 그러나 그 지혜는 나[我]가 아니면서 무지를 잘 파괴한다. 또 만일 무지가 본래 없었다면 지혜가 어찌 나타나겠는가? 가섭아, 지혜와 무지는 모두 자성이 없는 것이다. 이 둘은 다 공이어서 얻을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등불 빛이
어두움을 파괴하는 것 같다.


그 어두움이 사라질 때도
아무 데로도 가는 곳 없다.



또 만일 이 등불 빛은
어두움이 아니면 나타날 수 없나니
그 둘은 모두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는 둘은 모두 공이다.



지혜도 그와 같아
지혜가 생길 때는
무지는 스스로 사라져
이 둘은 허공의 꽃과 같아

모두 자성이 없어
취하거나 버릴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빈 집에 창호가 없어 백천 년을 지내는 동안 사는 사람이 없고 그 방이 어두운데, 갑자기 어떤 하늘 사람이 그 집에 등불을 켜면, 가섭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런 어두움의 나[我]가 백천 년 동안 거기 살았는데, 나가 지금 가지 않겠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가섭이 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 어두움은 힘이 없어 만일 등불 빛이 생긴다면 그것은 반드시 가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업의 번뇌도 이와 같다. 백천 년 동안 저 식(識) 속에 있었는데, 만일 저 수행하는 사람이 하루 밤낮에 정관(正觀)과 상응하면 저 지혜의 등불이 생긴다. 가섭아, 이와 같이 만일 성자의 지혜의 뿌리가 생기면 이 업의 번뇌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백천 년 동안 그 집에
사람도 없고 창도 없었는데
갑자기 하늘이나 사람이
거기서 등불을 켰다.



그렇게 오래 있던 어두움이
찰나에 사라졌으되
그 집의 어두움은
내가 오래 살았다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떠나지 않고
업식의 번뇌가 모이는
이 이치도 이와 같나니

백천 겁 동안 머물더라도
본성이 진실하지 않아
수행하는 사람이 밤과 낮으로
여실한 관찰에 바로 들어가
지혜 등불의 빛이 생기면
저 번뇌의 모임은
찰나도 머물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허공에 종자가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이와 같이 만일 저 행자가 단견(斷見)에 굳게 집착하면 과거는 이미 멸했고, 미래는 있지 않은데 어떻게 불법의 종자가 머물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큰 허공이
가도 없고 한량도 없으나
사람이 그 공중 어디에
종자를 심으랴.


단견도 그와 같아
과거는 있지 않고
미래는 생기지 않았고
현재에는 불법의 종자가 없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똥거름이 대지에 가득 차면 일체 종자를 심을 수 있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업의 번뇌의 똥이 세간에 가득하면 일체 불법의 종자를 심을 수 있느니라.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대지가 똥거름이 가득하면
어디에나 종자를 심을 수 있는 것처럼
중생들 번뇌의 똥이
세간에 가득할 때
불자가 친근하면
불법 종자를 심을 수 있으리."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짠땅에는 연꽃을 심을 수 없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행성(行性)이 없는 자는 본래 없었고 미래에는 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리의 종자를 얻을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짠땅에는
연꽃이 나지 않고
저 진흙물에서
생겨나야 매우 향기롭다.



무성(無性)도 그와 같아
과거와 미래에 본래 없었거니
마침내 부처 종자 나지 않으리."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더러운 진흙땅에서 연꽃이 날 수 있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번뇌에 덮인 삿된 행(行)의 중생도 그 불법의 종지(種智)를 낼 수 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썩은 진흙땅에서
연꽃이 날 수 있는 것처럼
삿된 행업 중생도
불법 종자 낼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4대해(大海)의 물이 가득 차서 끝이 없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저 보살이 짓는 선근이 법계에 두루함을 본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4대해가
가득히 넓어 끝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이와 같아
선근이 법계를 두루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하늘 사람이 한 털끝의 백분의 1을 취하고, 저 털끝으로 조그만 물방울을 떨어뜨려 구지(俱胝)의 4대해를 이루려 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성문이 짓는 조그만 선으로 위없는 보리를 구함을 본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털끝의 백분의 1을 취해
그것으로 미세한 물을 떠서
구지의 바다를 이루려 하는 것과 같다.


성문도 그와 같아
자기의 조그만 지혜와
그 지은 선근으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려 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겨자 속의 벌레가 그 겨자를 먹을 때 그 겨자 속을 보고 허공 같다고 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성문이 닦는 조그만 지혜로 생(生)의 공함을 보는 것도 그와 같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겨자 속에
겨자를 먹는 벌레가 있는데
그 속의 걸림 없음을 보고
그것을 허공이라 하는 것과 같다.



성문이 닦는 지혜로
저 1분(分)의 공을 깨닫고
그 소견이 크지 못한
그 이치도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시방세계 허공의 끝없음을 보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보살의 걸림 없는 큰 지혜로 보는 법계도 또한 끝이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허공 세계는
시방에 가없어
일체 모든 세간이
그것을 의지해 장애가 없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아
일으킨 최상의 지혜로
비추어 보는 법계는 공이어서
끝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관정(灌頂)을 받은 찰제리왕(刹帝利王)의 그 왕후가 가만히 서인(庶人)과 사통하여 아들을 낳았다면, 가섭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낳은 아들을 관정왕의 아들이라 하겠는가?”

가섭은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저 무생(無生)을 얻은 법계 성문이 ‘나는 여래의 관정의 아들이다’ 하는 것도 이와 같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찰제리왕의 왕후가
서인과 사통하여
그가 낳은 그 아들은
관정의 아들이라 하지 않는다.



성문도 이와 같아
욕심 버리고 무생을 깨달았어도
오직 자리(自利)만을 행하나니
그는 여래의
관정의 법왕자가 아니다.

불자는 2리(利)를 행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관정을 받은 찰제리왕에게 친근한 사비(侍婢)가 있어 왕의 사랑을 받고 그 뒤에 아들을 낳았다면, 가섭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종에게서 난 아들을 왕자라 하겠는가?”

가섭은 말하였다.

“그는 왕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그와 같이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이 도력은 비록 미약하더라도 저 중생을 교화하면 윤회는 면하지 못하지마는 여래의 아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전륜왕의 여종이
왕의 사랑을 받아
그 뒤에 아들 낳으면
그도 찰제리의 아들이다.



보살도 그와 같아
처음으로 보리심 내고
덕행이 미약하나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면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하는 일이 부처님 마음에 맞아
참 불자라 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윤왕(輪王)이 그 아들 천 명을 두었는데 모두 힘이 세고 용감하며 변재가 있고 단정하며, 반드시 윤왕의 상을 갖추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 중에서 한 아들이라도 윤왕의 상을 갖추지 못했으면 그 전륜왕은 그를 자기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여래의 회하(會下)에 백천 구지의 성문이 호위하고 있지마는 만일 한 사람이라도 보살상이 없으면 여래께서는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느니라.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전륜왕이
천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만일 한 아이라도
윤왕의 상을 갖추지 못했으면
그는 왕의 자격 없고
왕도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불자도 이와 같아
천 구지 성문들이
호위하고 있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보살상이 없으면
선서(善逝)는 그 사람 보고
불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전륜성왕의 왕후가 임신하여 이렛날 밤에는 반드시 아이를 낳고 그 아들은 윤왕의 상을 갖출 것인데, 그가 태 안에 있을 때는 가라라(迦羅羅)1)의 크기로 아직 눈ㆍ귀ㆍ코 등 감관의 형상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나 형상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발심한 하늘 사람들이 애중히 여기는 것과 같으니, 그의 용맹과 큰 힘을 애중히 여겨서가 아니니라.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윤왕을 중히 여겨야 왕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느니라. 가섭아, 이것도 그러하나니, 처음 발심한 보살이 그 근기가 비록 미숙하여 윤회는 면하지 못하더라도 즐겨 불법을 행하면 과거 부처님이 그를 애중히 여기나 저 8해탈을 바로 본 아라한은 애중히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처음 발심한 보살의 부처의 종자가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전륜왕의
왕후가 임신하여
이레에 아직 형상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하늘 사람들이 애호하는 것과 같으니
용맹과 힘을 중히 여김 아니요
윤왕의 종자를 존중함이다.



보살도 그와 같이
보리심을 처음 내고
윤회를 벗어나고자 하기 때문에
과거의 모든 여래께서
그를 공경하나니
이 사람이 불사를 계승해서이다.



성문의 무리로서
8해탈을 바로 본 자에게는
경애한 마음 내지 않나니
그는 성불할 자격 없어서이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가짜 마니주(摩尼珠)와 유리주(瑠璃珠)를 묘고산(妙高山:수미산)처럼 쌓았더라도 그것은 참 마니보(摩尼寶)와 유리보(瑠璃寶)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설령 일체의 성문이나 벽지불이라 할지라도 처음으로 보리심을 낸 보살 한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가짜 유리주와
가짜 마니주를
수미산처럼 쌓았더라도
참 마니보와 유리보의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그와 같아
설령 성문 무리와
또 저 연각(緣覺) 무리의
그 수가 티끌같이 많더라도
처음으로 발심하여
저 보리를 구하는
보살 한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가릉빈가새[迦陵頻伽鳥]는 그 알 속에 있을 때부터 저 다른 새들과는 같지 않다. 가섭아, 왜냐하면 장차 일체 미묘한 소리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가섭아, 이와 같이 저 처음 발심한 보살은 비록 업의 번뇌의 무명장(無明藏) 속에 살더라도 일찍부터 일체 성문ㆍ벽지불과는 같지 않다. 가섭아, 왜냐하면 그에게는 회향할 선근과 설법할 방편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가릉빈가새가
그 알 속에 있을 때
비록 그 형상은 보이지 않으나
저 다른 새들과 다른 것과 같나니
장차 미묘한 소리 내어
항상 사람을 즐겁게 하겠기 때문이다.



불자도 그와 같아
보리심을 처음 낼 때는
번뇌장(煩惱藏)을 벗어나지 못하나
일체 벽지불과
성문 무리들과는
견줄 수 없나니

큰 안락을 회향하고
방편으로 유정을 이롭게 하려
번뇌 없는 자비의 마음으로
미묘한 소리로 연설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윤왕의 왕후가 낳은 왕자는 윤왕의 복상(福相)을 구족하였으므로 일체 국왕과 인민들이 다 귀복(歸伏)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처음 발심한 보살에게는 천상 인간의 일체 유정들이 다 귀복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전륜왕의
왕후가 낳은 아들은
비록 동자 몸이나
왕의 복상을 다 구족하여
국왕과 신민들이
모두 다 귀향하는 것과 같다.



보살도 이와 같아
보리심을 처음 낼 때
불자의 상을 구족하므로
일체 모든 세간과
천상의 중생들이
청정한 마음으로 귀향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대설산왕(大雪山王)은 아주 좋은 약초를 내어 일체 모든 병을 잘 고치는데, 그것을 약으로 만들어 먹으면 의심의 여지가 없이 병이 다 낫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보살이 가진 지혜의 약은 일체 중생의 번뇌의 모든 병을 잘 고친다. 보살이 평등한 마음으로 일체 유정들에게 보시하면 그것을 먹는 자는 다시는 의혹의 병이 없고 곧 낫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대설산이
아주 묘한 약을 내어
일체 병을 고치는데
그것을 먹는 자는 곧 낫는 것과 같나니
다시는 의심 말라.



불자도 그와 같아
묘한 지혜의 약을 내어
모든 사람들의 번뇌와
생로의 병을 잘 고친다.



평등하게 그것을 주면
그것을 먹는 사람은
의심 없이 꼭 낫는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초생달에는 귀의해도 그와 같이 보름달에는 귀의하지 않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나의 신력이 있는 아들이 보살에게는 귀명(歸命)하면서 여래에게는 귀명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 여래가 보살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니, 혹 성문이나 벽지불이 여래로부터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보살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이 유정이
초생달에는 귀명하면서
그와 같이 보름달에는
그는 귀의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내 아들도 그와 같아
보살에게는 귀의하면서
세존에게는 귀향하지 않나니
큰 지혜의 힘을 갖추기 위해서다.


여래의 몸에서 나왔더라도
저 성문 따위가 아니니
지혜가 미약하기 때문에
저 여래에 의해 생긴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문자(文字)의 어머니는 일체의 의론(議論) 등의 일을 잘 포함하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은 일체 모든 부처님을 다 갖추어 통괄하면서 위없는 지혜의 인(因)을 행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문자의 어머니는
인간과 천상의
의론과 변재가
다 그로 인해 건립되는 것과 같다.



보살도 그와 같아
보리심을 처음 내어
부처 자리 지혜와
온갖 방편행을 구족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세상 사람으로서 맑은 달을 버리고 별에 귀명하는 이가 없는 것처럼, 이와 같이 가섭아, 내 계율을 받은 자로서 보살을 버리고 성문에게 귀명하는 이는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세간 사람이
달을 버리고
별에 귀의하려는
그런 일은 일찍이 없었던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내 제자의
그 이치도 그러하여
내 계율을 받은 자라면
보살에게도 귀의하지 않고
성문으로 향하려는
그런 일은 더욱 드물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였다.

“비유하면 가짜 유리구슬은 저 천상이나 인간에 이용되지 않고, 만일 참 유리구슬과 마니보배라면 이 세간에서 크게 이용되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만일 저 성문이 계학(戒學)을 구족하고 일체의 두타행(頭陀行)과 삼마지(三摩地)의 문을 갖추었다면, 마침내 보리도량에 앉아 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가짜 유리는
그 몸이 청정하게 보이지만
천상과 인간에서는
이용할 일이 없는 것과 같다.



만일 그것이 참 유리거나
참 마니 보배라면
그 체성은 다르지마는
일을 위해서는 크게 쓰인다.



이와 같이 저 성문은
두타의 행과
지계(持戒)와 지식과
일체 삼마지를 갖추었으나
4마(魔)를 항복 받거나
그리고 보리좌(菩提座)에 앉아
선서(善逝)를 이룰 수 없나니
보살과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참 유리와 마니보배는 그것을 쓸 때는 그 가치가 백천 가리사파나(迦哩沙波拏)나 되는 것처럼, 가섭아, 이와 같이 저 보살이 심은 온갖 공덕을 쓸 때는 저 성문과 벽지불의 백천 가라사파나의 수보다 많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참 유리와
저 마니 보배는
그것을 일에 쓸 때
가치가 백천의 수(數)의
가리사파나인 것과 같다.



불자도 그와 같아
온갖 덕행을 심어
중생을 위해 쓰면
저 성문과
벽지불의
가리사파나보다 많나니
그 수가 이와 같다."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존자 대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국토에 패성(孛星)이 나타날 때 머리가 검고 비스듬히 누우면 그 국토에는 재난이 다투어 일어나 백성들이 괴로워한다. 그러나 가섭아, 그 국토에 만일 보살이 있으면 이런 재난이 사라져 아무 고뇌가 없다. 가섭아, 그러므로 보살의 행은 일체 선근을 두루 모아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이니라. 또 보살이 가진 지혜의 약은 사방에 흘러 퍼져 일체 중생의 번뇌 등의 병을 고치는데 이것은 진실하여 허망한 것이 아니니라.”

가섭이 아뢰었다.

“어떤 약으로 어떤 병을 고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중생들의 모든 탐욕ㆍ분노ㆍ우치의 병은 인연으로 생기는 것인데, 인연이 없는 자비로 저 일체의 혹업상(惑業相)을 관찰하되, 이치는 없는 것으로 본래도 생김이 없고 지금도 상(相)이 없어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가 적멸한 것도 또한 그렇다 한다.

또 일체의 전도(顚倒)를 멸하나니, 어떤 전도인가? 즉 4전도(顚倒)이니, 첫째는 저 유정들이 무상(無常)을 상(常)이라 헤아리기 때문에 일체가 다 무상이라 생각하게 함이요, 둘째는 그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헤아리기 때문에 일체가 다 괴로움이라 생각하게 함이요, 셋째는 무아(無我)를 유아(有我)라 헤아리기 때문에 일체 법이 다 무아라고 생각하게 함이요, 넷째는 더러움을 깨끗함이라 헤아리나 일체는 다 더러움이요, 오직 이 열반만이 이 4덕을 다 갖추었다 생각하게 함이니라.

또 4념처(念處)를 시설하여 저 유정들로 하여금 몸은 소유가 없다고 관찰하여 아견(我見)을 파괴하게 하고, 감정은 소득이 없다고 관찰하여 아견을 파괴하며, 마음은 얻을 수 없음을 관찰함이니, 아견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함이요, 법은 얻을 것이 없다고 관찰함이니, 그 법아(法我)의 집착을 파괴하기 위함이니라. 4정단(正斷)으로 끊는 일[斷事]을 닦는데 선을 닦되 부지런히 닦고, 악을 끊되 부지런히 끊는다. 4신족(神足)으로 신통력을 성취하고, 5근(根)과 5력(力)으로 저 믿지 않음과 게으름과 잃음과 산란과 우치 등을 다스린다. 7각지(覺支)로 일체의 우치를 다스리고, 8성도(聖道)로 저 일체의 무지(無知)와 8사(邪) 등의 허물을 다스린다.

가섭아, 이것을 진실한 고치는 법이라 한다. 가섭아, 이 보살을 보아라. 이 염부제(閻浮提) 안의 의사 중의 제일인 의사이니라. 가섭아, 모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중생들은 다 제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저 보살을 의왕(醫王)으로 보느니라.”

가섭이 아뢰었다.

“이런 사견(邪見)에 사는 자들은 어떤 약으로 고치나이까? 원컨대 해설하시어 저들을 알게 하소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저 보살이 중생을 구원하여 치료할 때는 세간의 약을 쓰지 않 고 세간을 벗어난 일체 선근의 무루(無漏)의 지혜의 약을 사방에 유통하여 저 일체 중생의 망상의 병을 고치는데 그것은 진실하여 허망한 것이 아니다.”

가섭이 아뢰었다.

“어떤 것을 출세간의 지혜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그 지혜는 인연이라는 종자에서 생겨 온갖 분별을 떠났으므로 나가 없고 사람이 없으며 중생이 없고 수명이 없는 것이니, 이런 지혜의 법은 공(空)에도 집착이 없느니라. 가섭아, 너희들은 바로 구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정진하는 마음을 내어라.

그는 어떻게 구하여 이렇게 마음을 쏟으며, 어떻게 마음을 쏟지 않는가?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어디에 마음을 쏟는가? 가섭아, 과거는 이미 없어졌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머물지 않는 것이다. 가섭아, 이 심법(心法)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가섭아, 또 이 심법은 온갖 색상을 떠나 머무는 곳이 없고 집착할 것도 없으며,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가섭아,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했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할 것이며, 현재의 모든 부처님도 보지 못하느니라.”

가섭이 아뢰었다.

“만일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일체 부처님이 보시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마음에 갖가지 행상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저 마음이란 실체가 없고, 망상에서 생기는 것이다. 비유하면 요술이나 허깨비와 같아서 갖가지로 생겨 허망한 소견이 되는 것이다.”

가섭이 아뢰었다.

“허망하여 진실하지 않다는 그 비유는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마음은 물에 뜬 거품과 같아서 생멸하여 머물지 않는 것이요, 마음은 부는 바람과 같아서 거두어 잡을 수가 없는 것이며, 마음은 등불과 같아서 인연이 화합한 것이요,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허망한 번뇌를 얻는 것이며, 마음은 번갯불과 같아서 찰나도 머물지 않는 것이요,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 경계를 반연(攀緣)하고, 마음은 환쟁이와 같아서 갖가지 형상을 그리며, 마음은 생각 생각에 머물지 않고 일체 번뇌를 내고, 마음의 행체(行體)는 하나이니 두 마음의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그 왕과 같나니 자재하게 일체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요, 마음은 나쁜 벗과 같나니 모든 고통을 내기 때문이며, 마음은 큰 바다와 같나니 일체 선근을 떠내려 보내기 때문이요, 마음은 고기 낚는 사람과 같나니 괴로움을 즐겁다 생각하기 때문이며, 마음은 꿈과 허깨비와 같나니 망령되게 나[我]를 헤아리기 때문이요, 마음은 파리와 같나니 더러운 것을 깨끗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요, 마음은 귀신과 같나니 갖가지 좋지 못한 일을 짓기 때문이요, 마음은 약차(藥叉)와 같나니 경계에 탐착하여 사람의 정기(精氣)를 빨기 때문이다.

또 마음은 원수와 같나니 항상 허물을 찾기 때문에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여 혹은 높고 혹은 낮아 진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요, 마음은 미친 도적과 같나니 일체 공덕과 좋은 재물을 파괴하기 때문이며, 마음은 나비의 눈과 같나니 항상 등불을 탐하기 때문이요, 마음은 소리에 집착하나니 전쟁의 북소리를 탐하는 것 같기 때문이며, 마음은 돼지나 개와 같나니 그 더러운 것에서 향기롭고 아름답다고 탐하기 때문이요, 마음은 천한 종과 같나니 먹다 남은 음식의 맛을 탐하기 때문이며, 마음은 접촉하기를 탐하나니 파리가 비린 그릇을 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가섭아, 마음은 구할 수 없고 구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과거는 있지 않고, 미래도 또한 없으며, 현재는 얻을 수 없다. 만일 과거 미래 현재를 얻을 수 없으면 3세가 끊어졌기 때문이요, 만일 3세가 끊어졌으면 그것은 없는 것이며, 만일 그것이 없는 것이면 그것은 곧 생기지 않는 것이요, 그것이 생기지 않으면 그것은 곧 성품이 없는 것이요, 성품이 없는 것이면 그것은 생멸이 없는 것이며, 생멸이 없으면 그것은 왕래가 없고, 만일 왕래가 없으면 주재(主宰)가 없으며, 만일 주재가 없으면 거짓도 진실도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성성(聖性)이니라.

가섭아, 만일 그것이 성성(聖性)이면 계율을 얻을 것도 없고 계율이 없는 것도 아니며, 깨끗한 행도 없고 더러운 행도 없으며, 인행(因行)도 없고 과행(果行)도 없으며, 또한 심의(心意)의 법도 없느니라. 만일 심의의 법이 없으면 그것은 업도 없고 업보도 없으며, 만일 업보가 없으면 또한고락(苦樂)도 없고, 만일 고락이 없으면 그것은 성자의 성품이며, 만일 그것이 성성(聖性)이면 그것은 상ㆍ하ㆍ중간도 없어 몸과 입과 뜻 등이 주착(住著)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품도 허공을 두루하여 평등해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이하는, 여기에는 원래 한 잎의 범문(梵文)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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