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섭문대보적정법경 제2권
부처님께서는 가섭파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모든 보살들이 32법을 구족한다면 이를 보살이라 하느니라.”
가섭이 아뢰었다.
“어떤 것이 32법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른바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 일체지지(一切智智)의 종자이며, 귀천을 헤아리지 않고 지혜를 얻게 하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마음을 낮추고, 나를 떠나며, 진실로 가엾이 여기는 그 뜻이 물러나지 않고, 착한 벗이나 나쁜 벗이나 그 마음이 평등하며, 비록 열반에 이르렀더라도 다정한 말을 생각하며, 먼저 문안하고 무거운 짐 진 이를 가엾게 보며, 모든 중생들에게 항상 슬퍼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항상 묘한 법을 구하되 권태를 내지 않고, 법을 들어도 만족함이 없으며, 항상 제 허물을 반성하고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으며, 온갖 위의(威儀)를 갖추고 항상 큰마음을 내며, 여러 훌륭한 업을 닦되 과보를 구하지 않으며, 내는바 계덕(戒德)으로 온갖 윤회를 멸하여 유정들의 도심(道心)을 증진시키며, 일체 선근을 모두 모아 행하면 인욕과 정진을 행하더라도 무색계의 선정에 드는 것 같으며, 지혜와 방편으로 총지(總持)를 잘 알며, 항상 4섭(攝)의 교묘한 방편으로 받아 행하며, 계율을 지키거나 범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은 둘이 아니며, 항상 숲속에 살면서 깊은 법을 즐겨 들으며, 세간의 모든 것을 다 싫어하여 떠나며, 세상을 뛰어넘은 무위(無爲)의 과덕(果德)을 좋아하며, 소승(小乘)을 멀리 떠나 큰 행을 바로 행하며, 악한 벗을 버리고 착한 벗을 친하며, 4무량(無量)과 5신통(神通)을 다 통달하고, 무지를 깨끗이 하며 삿됨에도 바름에도 집착하지 않고 여실히 스승에 의지하며, 보리심을 내 되 순일하여 난잡하지 않음이니, 가섭아, 이런 32법을 구족하면 그를 보살이라 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다시 게송으로 말하리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
청정한 행을 행하려 하며
일체지(一切智)를 나게 하되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여래의 지혜에 같이 들어가
진실로 중생을 가엾이 여기어
착한 벗이나 나쁜 벗에게
그 마음이 물러나지 않는다.
평등하게 그들을 보고
열반에 이르더라도
온화한 말로 먼저 문안하며
무거운 짐 진 이를 가엾이 여긴다.
또 저 모든 중생들에게
대비심을 끊지 않으며
법을 구하되 마음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뜻을 들어도 만족해하지 않는다.
항상 제 잘못을 반성하고
남의 허물을 비방하지 않으며
온갖 위의 온전히 닦고
대승(大乘)의 행을 일으킨다.
그러나 과보를 구하지 않고
가지는 계덕(戒德)으로
윤회를 끊어 없애고
저 모든 유정들로 하여금
해침을 버리고 보리심을 더하게 한다.
인욕으로 선근을 모으고
정진하여 모든 행을 닦으며
무색정(無色定)에 드는 것 같다.
지혜와 모든 방편으로
총지(總持)를 잘 알고
4섭(攝)을 항상 행하여
계율을 지키거나 범하거나 모두 가엾이 여긴다.
항상 숲속에 있으면서
즐겨 늘 깊은 법 듣고
세간을 싫어해 떠나고
최상의 결과를 사랑한다.
성문승(聲聞乘)을 멀리 떠나고
대승의 행을 닦으며
나쁜 벗을 버리고
착한 벗을 친한다.
5통(通)과 4무량(無量)과
지혜를 다 통달하고
청정하여 무지를 뛰어나며
사정(邪正)에 다 집착 않는다.
스승에 의해 진실을 연구하고
순일하고 난잡한 행 없으며
부처님께서는 관행법을 말씀하시되
먼저 보리심을 내라 하신다.
이 서른두 가지를
선서(善逝)께서는 연설하셨으니
보살이 구족히 행하면
부처님의 감로의 맛 얻으리."
부처님께서는 가섭파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보살을 위해 비유를 말하여 그의 지견(知見)을 보살의 덕이 되게 하리라.”
가섭이 아뢰었다.
“그 이치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비유하여 저 지대(地大)가 일체 중생을 위해 그 의지하는 곳이 되어 그들을 자라게 하면서도, 저 지대는 그들에 대해 구함도 없고, 애착도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처음으로 발심하고 바로 도량에 가서 앉아 보리를 이루기까지 그 중간에 일체 중생을 제도하면서도 애착이 없고 구함이 없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지대가
모든 중생들을 위해
의지가 되고 자라게 하되
저 중생에 대해
구함도 없고 애착도 없는 것과 같다.
보살도 그와 같아
처음으로 발심하고
바로 도량으로 가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어
유정을 제도한다.
그러나 구함도 없고 애착도 없으며
원수도 없고 친함도 없이
평등하게 섭수하여
보리를 얻게 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파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수계(水界)가 일체 약초와 수목을 적셔 주면서도 저 수계는 그 초목에 애착도 없고 구함도 없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청정한 자비심을 일체 중생에게 두루 행하여 유정의 백법(白法) 종자를 적셔 주어 자라게 하지마는 애착도 없고 구함도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수계(水界)가
저 일체의 약초와 수목을
적셔 주어
생장하게 하면서도
애착이 없고 구함이 없는 것과 같다.
보살도 그러하여
깨끗한 자비심으로
유정에 두루 미쳐
차츰 그 자비심에 젖게 하여
깨끗한 종자를 자라게 하고
큰 힘의 악마를 깨뜨리고
부처의 보리를 얻게 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저 화계(火界)가 일체 곡물을 성숙하게 하면서도 그 화계는 저들에 대해 애착이 없고 구함이 없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큰 지혜로 일체 중생의 선의 싹을 성숙시킨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화계(火界)가
저 일체의
곡물을 성숙시키면서도
저 화계는
그 곡물에 대해
구함도 애착도 없는 것과 같다.
보살도 그러하여
지혜의 불로
일체 중생의 선의 싹을
성숙시키면서도
보살은 그들에 대해
구함도 애착도 없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풍계(風界)가 일체 모든 부처님 국토에 두루 가득히 차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좋은 방편으로 중생 세계를 두루 채워 모두 불법을 알게 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풍계가
그 세력을 따라
부처님 국토를 두루 하는 것처럼
모든 보살들도
또한 이와 같이
좋은 방편으로
그 불자를 위해
최상의 법을 연설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악마가 4군병(軍兵)을 거느리면 5욕계(欲界)의 하늘이 그들을 항복시킬 수 없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뜻이 청정하면 일체의 마군이 호리지 못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악마가
4군병을 거느리면
욕계의 모든 하늘이
그들을 항복시키지 못한다.
보살도 그러하여
뜻이 청정하면
일체 악마가
호리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초생달이 차츰 커지면 둥글게 되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모든 법을 구하면 원만히 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초생달이
차츰 자라면
곧 둥글게 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깨끗한 마음으로 모든 선을 구해 닦아
차츰 불어나면
선한 법이 원만해진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뜨는 해가 큰 광명을 놓아 저 세간을 비추어 모두를 환하게 하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지혜의 광명을 놓아 모든 중생들을 비추어 모두 깨치게 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해가 떠서
저 세간을 비추면
일체의 물상이
모두 환해지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지혜의 광명을 놓아
모든 유정을 비추어
모두 깨우쳐 준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짐승의 왕인 사자는 큰 위덕이 있어서 어디로 가나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많이 들음과 계덕(戒德)에 안주하여 그와 같이 어디로 가나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짐승의 왕인 사자는
위덕이 있고 용맹스러워
어디로 가나
마음에 두려움 없다.
보살도 그러하여
많이 들음에 안주하면서
계율과 지혜 있어
저 세간에서
어디로 가나
아무 두려움 없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용상(龍象)이 큰 세력이 있어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도 피로가 없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일체 중생의 5온(蘊)의 모든 고통을 지고도 그 고통을 모른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용상은
큰 세력이 있어
무거운 짐을 지고도
괴로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저 중생들의
5온의 모든 고통을 지고도
역시 괴로워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연꽃이 물속에서 생장할 때 진흙의 탁한 물이 물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세간에 살더라도 세간의 더러움이 끝내 물들이지 못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연꽃은
물속에서 나서 자라나도
흐린 물과 진흙이
물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비록 세간에 살더라도
갖가지 두려움이
물들이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나무만 끊고 그 뿌리를 끊지 않으면 뒤에 다시
땅에서 나무가 나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방편의 힘으로 저 번뇌를 끊고 그 종자를 끊지 않으면 대비(大悲)의 선근으로 삼계(三界)에 다시 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그 방편으로
나무의 몸뚱이만 끊고
나무뿌리를 끊지 않으면
그것은 그 뒤에
다시 땅에서 나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좋은 방편으로
저 번뇌만 끊고
그 종자를 끊지 않아
대비에 의해
다시 삼계에 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여러 곳에서 흐르는 물이 다 저 바다로 돌아가면 다 같은 짠 맛인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그가 가진 일체의 선근과 갖가지 이익을 보리에 회향하면 그 열반과 더불어 다 같이 한맛으로 돌아간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다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일체의
여러 강물이
모두 다 큰 바다로 들어가면
다 같은 짠맛이 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그가 가진 일체의
선근과 이익을
보리 회향하고
저 진제(眞際)에 회향하면
다 같은 한맛으로 돌아간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사대천왕(四大天王)과 도리천(忉利天)들은 반드시 저 묘고산(妙高山)에 안주하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와 같아 일체지를 위해 닦는 선법은 반드시 보리의 큰마음에 안주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저 사왕(四王)과
또 제석(帝釋)의 무리는
반드시 저 묘고산에
안주해야 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일체지를 위하여
닦는바 선한 법은
보리에 안주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국왕이 정치를 행하려면 반드시 대신[宰臣]의 힘을 비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불사를 지으려면 반드시 지혜와 방편을 필요로 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국왕이
정치를 행하려면
반드시 대신을 의지해야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불사를 지으려면
방편과 지혜를 빌어야
결정코 성취하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맑은 하늘에 구름과 안개가 없으면 이 세간에 끝내 비가 내릴 상이 없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들음이 적고 지혜가 적으면 마침내 유정들에게 설법할 상이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허공이
맑아 구름과 안개 없으면
저 세간에
마침내 비가 내리지 않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들음과 지혜 적으면
그 유정에 대해
설법할 상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허공에 큰 구름과 천둥이 일면 반드시 비가 내려 곡물을 성숙시키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이 세간에서 자비의 구름을 일으키고 묘한 법비를 내려 중생을 성숙시킨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다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허공에
구름과 천둥이 갑자기 일면
반드시 단비가 내려
곡물을 성숙시키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자비의 구름을 두루 덮고
법비를 내리쏟아
유정을 성숙시킨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전륜성왕(轉輪聖王)에게는 7보(寶)가 있어 항상 왕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7각지(覺支)가 있어서 항상 보살을 따라다닌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세간의
전륜성왕에게
7보가 있어서
항상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7각지가 있어서
가는 곳마다
보살을 따라다닌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마니보주(摩尼寶珠)가 많은 부귀를 얻게 하되 가치가 가리사바나(迦哩沙波拏)의 백천 부귀와 같은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많은 부귀를 얻으면 가치가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백천 부귀와 같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마니보주는
많은 부귀를 얻게 하되
가리사바나의
백천도 그것에 견줄 수 없다.
보살도 그러하여
부귀는 몇 곱이 많아
연각과 성문의
백천도 견줄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도리천 무리가 만약 잡숲에 살면 그 수용하는 부귀가 평등하여 둘이 없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청정한 마음에 머무르면 일체 중생을 위한 정직한 방편이 평등하여 둘이 없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도리천이
저 잡숲에 살면
부귀를 수용함이
평등하여 둘이 없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면
정직하게 중생을 위하는
방편도 둘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주술(呪術)을 잘 알고 독약을 잘 알아 어떤 독약도 그를 해치지 못하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큰 지혜 갖추고 방편을 잘 행하면 일체의 번뇌가 그를 해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세간 사람
독약과 주술을 잘 알면
일체 독약 등이
그를 해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아
방편과 지혜를 갖추면
일체 번뇌의 독이
그를 해치지 못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세간의 비옥한 땅은 사탕수수를 내어 잘 자라게 하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번뇌의 더러운 땅에 있으면서 일체 지혜의 종자를 잘 낸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비옥한 땅은
사탕수수를 잘 내어
보통 때보다 배나 무성한 것처럼
보살이 번뇌 속에 있어서
일체 지혜를 내는 것도
그 이치가 그와 같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무예(武藝)를 배우지 않고 만약에 무기를 잡는다면 과연 시설(施設)할 줄 알겠는가?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일찍이 법을 듣지 못해 지식이 적고 근기가 약한데 지견(智見)에 집착한다면 어떻게 정사(正邪)를 분별할 수 있겠는가?”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옹기장이가 질그릇을 구우려 할 때는 큰 불을 쓰는 것처럼, 가섭아, 보살도 그러하여 우매한 중생들의 지혜를 개발하려면 반드시 불법 지혜의 불을 써야 한다. 가섭아, 그러므로 이 대보적정법(大寶積正法)은 보살들로 하여금 수학하고 수지하여 법행(法行)을 알게 하는 것이니라.”
가섭이 아뢰었다.
“보살이 어떻게 수지하면 바른 법행을 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내 몸에 나[我]가 없는 것처럼 사람이 없고 중생이 없으며 수명이 없고 이름이 없으며 모양이 없다고 관(觀)하는 것이니, 관행(觀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섭아, 이것을 영상(影像) 가운데의 법을 바로 관찰하는 것이라 한다.
또 가섭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바로 관찰한다 하는데, 가섭아, 어떤 것이 영상 가운데의 법인가? 몸[色]을 바로 관찰하는 것처럼, 그것이 상(常)이 없고 상이 없음도 아니라고 관찰하며, 이와 같이 느낌[受]ㆍ상상[想]ㆍ의지[行]ㆍ의식[識]의 상(常)과 무상(無常)과 정(定)이 없음과 정이 없음도 아님을 관찰하는 것이니,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영상 가운데의 법에 있는 지계(地界)의 상(常)과 무상과 정이 없음과 정이 없음도 아님을 여실히 관찰하며, 이와 같이 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도 그와 같아서 정이 없음과 정이 없음도 아님을 관찰하나니,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저 안처(眼處)는 상이요, 무상성(無常性)이며, 정도 없고 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도 상이요 무상성이며, 정도 없고 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이 정(定)은 한 법이요, 이 부정(不定)은 두 법이니, 만일 그 두 법을 이 색(色) 가운데서 보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숨기지도 않고 알음알이도 없으면 또한 상(相)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한다.
또 가섭아, 아견(我見)은 한 법이요, 무아(無我)는 두 법이다. 만일 이 두 법을 이 색 가운데서 보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숨기지도 않고 알음알이도 없으면 또한 상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가섭아, 이것을 영상(影像)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이 진실한 마음은 한 법이요, 이 진실하지 않은 마음은 두 법이니, 가섭아, 두 법이 있는 곳에는 마음도 없고 깨달음도 없으며, 뜻도 없고 알음알이도 없나니,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선(善)과 불선, 세간과 출세간, 유죄와 무죄, 유루(有漏)와 무루, 유위(有爲)와 무위, 번뇌 있음과 번뇌 없음 등 이런 모든 법에 있어서 가섭아, 이 생기는 법은 하나요 멸하는 법은 둘이니, 만약 이 두 법 가운데에 모임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면 구해서 얻을 수도 없다.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이 있는 법은 하나요, 이 없는 법은 둘이니, 만일 이 두 법이 이 색(色) 가운데서 보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며 거두지도 않고 알음알이도 없으면 또한 상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이 윤회는 한 법이요, 이 열반은 두 법이니, 만일 이 두 법이 이 색 가운데서 보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며 거두지도 않고 알음알이도 없으면,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즉 무명(無明)의 반연[緣]으로 행(行)이 생기고, 행의 반연으로 식(識)이 생기며, 식의 반연으로 명색(名色)이 생기고, 명색의 반연으로 6입(入)이 생기며, 6입의 반연으로 촉(觸)이 생기고, 촉의 반연으로 수(受)가 생기며, 수의 반연으로 애(愛)가 생기고, 애의 반연으로 취(取)가 생기며, 취의 반연으로 유(有)가 생기고, 유의 반연으로 노사(老死)가 생기며, 노사의 반연으로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생기나니, 가섭아, 이리하여 이 하나의 큰 고통의 무더기가 모이게 되느니라.
있는바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며,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6입이 멸하며, 6입이 멸하면 촉이 멸하고, 촉이 멸하면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 애가 멸하며, 애가 멸하면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면 유가 멸하며,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면 노사가 멸하며, 노사가 멸하면 우비고뇌가 멸하나니, 이리하여 이 하나의 큰 고통의 무더기가 멸하게 된다.
가섭아, 만일 지혜로 명과 무명 등 이 두 상이 없음을 관찰하면, 가섭아, 이것이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니라.
또 가섭아, 이와 같이 행과 행이 멸하고, 이와 같이 식과 식이 멸하며, 이와 같이 명색과 명색이 멸하고, 이와 같이 6입과 6입이 멸하며, 이와 같이 촉과 촉이 멸하고, 이와 같이 수와 수가 멸하며, 이와 같이 애와 애가 멸하고, 이와 같이 취와 취가 멸하며, 이와 같이 유와 유가 멸하고, 이와 같이 생과 생이 멸하며, 이와 같이 노사와 노사가 멸하고, 이와 같이 지관(智觀)과 생성(生性)이 멸하나니, 성품에 두 상이 없기 때문이다. 가섭아, 이 두 상을 떠나면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영상 가운데의 법을 마땅히 바르게 관찰해야 한다. 즉 그 법은 공도 아니요, 공이 아닌 것도 아니며, 이와 같이 공법은 법상(法相)이 없고, 법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법상은 곧 공상(空相)이요, 공상은 곧 무상(無相)이며, 무상은 곧 무원(無願)이다. 왜냐하면 소원을 짓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무상이 곧 공상이며, 이와 같이 행하는 자가 만일 법이 생기지 못했으면 생기지 않은 것이니, 법이 생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법이 생기는 것과 같이 그것은 생기지도 않는 것이니, 생김이 이미 떠났기 때문이요, 이와 같이 생김이 없나니, 생이 취(取)를 떠났기 때문이다. 법에는 자성이 없고 성(性)이 없음은 공이니, 이렇게 바로 관찰하는 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보특가라는 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요, 그 실체가 곧 공이니, 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공도 아니요, 미래의 공도 아니며, 현재가 곧 공이니라.”
가섭이 아뢰었다.
“나는 지금 저 보특가라(補特迦羅)가 바로 공임을 깨달았습니다. 나[我]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일체는 다 공이다. 이 법은 이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그대 말은 잘못이다. 가섭아, 그대는 과연 저 보특가라가 마치 수미산과 같음을 볼 수 있는가? 나[我]를 떠나서 저 공을 본다고 하지 말라. 왜냐하면 나를 파괴한 단공(斷空)은 일체의 공에 집착하는 것이니, 나를 큰 병(病)이라고 말하는 것은 구제할 수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병이 심중하여 좋은 약을 써서 그를 먹게 하였는데 약은 뱃속에 들어갔으나 병은 끝내 낫지 않은 것과 같다. 가섭아, 이 사람이 병을 면할 수 있겠는가?”
가섭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섭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병이 중하기 때문에 고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 공에 집착한 사람도 그와 같아서 어디서나 공견(空見)에 깊이 집착하기 때문에 나도 고치지 못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중한 병자
좋은 약을 먹이는데
약은 먹었으나 병이 낫지 않으면
그는 고칠 수 없는 것과 같다.
공에의 집착도 그와 같아서
어디에서나
공견에 깊이 집착하면
고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하리."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어리석은 사람이 저 허공을 보고 두려움을 내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허공이 땅에 떨어져 몸을 다칠까 두려워해서이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저 허공이 땅에 떨어지겠는가?”
가섭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저 우매한 사문과 바라문도 그와 같아서 저들은 공법(空法)을 듣고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만일 아대(我大)가 공이라면 마음은 무엇을 의지하여 작용하겠는가?’라고 해서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우매한 사람
허공을 보고 두려워하여
슬피 울면서 멀리 달아나는 것과 같나니
허공이 땅에 떨어질까 겁내서이다.
허공은 걸릴 데 없고
중생을 해치지 않는데
이 사람이 스스로 우매하여
망령되이 두려움 낸다.
사문과 바라문의
어리석은 소견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법이 공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두려움을 내나니 '만일 공이 나[我]를 부수면
무엇을 의지해 수용할까?'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환쟁이[畫師]가 자신이 추악한 야차(夜叉)를 그려 놓고는 그것을 보고 기절하여 쓰러진 것처럼, 가섭아, 저 범부 중생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 빛깔[色]ㆍ소리[聲]ㆍ냄새[香]ㆍ맛[味]ㆍ감촉[觸]ㆍ법(法)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미혹하여 윤회에 타락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익숙한 환쟁이가
저 사나운 야차를 그리고는
그것에 스스로 두려워하여
기절해 땅에 쓰러지는 것과 같다.
범부들도 그와 같아
스스로 소리와 빛깔에 집착하여
그것에 미혹해 깨닫지 못하고
윤회의 길에 떨어진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요술쟁이가 요술을 부리면 그 요술이 요술쟁이로 잘 변하는 것처럼, 가섭아, 상응행(相應行)의 비구도 발심하는 때로부터 일체는 다 공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저 허공이 실체가 없는 것도 그와 같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요술쟁이가
요술을 잘 부릴 때
그 요술에 나오는 사람도
요술쟁이를 잘 변화시키는 것과 같다.
상응행 비구의
발심도 그와 같아
그 일체는 공이라 말하는데
실체 없는 공도 또한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두 나무를 서로 비비고, 바람이 불면 불을 내며, 불이 나서는 그 두 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가섭아, 여실한 바른 관찰도 그와 같아서 바른 견도(見道)에서 저 지혜의 뿌리를 내고, 지혜의 뿌리가 나서는 그바른 관찰을 태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게송으로 말하리라.
비유하면 두 나무를 비벼
바람이 불면 그 불을 내며
불이 나면 찰나 사이에
다시 두 나무를 태우는 것과 같다.
바른 관찰도 그와 같아서
지혜의 뿌리를 잘 내고
그것이 생기면 한 찰나에
그바른 관찰을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