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문수보살을 다시 만나다
선재동자는 1백 10성을 돌아다니다가 소마나(蘇摩那)성에 이르러, 문 곁에 서서 문수사리보살을 생각하며, 따라서 기억하고 두루 관찰하면서 받들어 뵈오려 희망하고 있었다. 그 때에 문수사리동자가 1백 10성 밖에서 오른손을 멀리 펴서 소마나성에 이르러 선재동자의 정수리를 만지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장하도다, 선남자여. 만일 신근(信根)이 없었던들 고달픈 생각을 내고 뜻이 용렬하여져서 공행(功行)을 갖추지 못하고 꾸준히 나아가지 못하였을 것이며, 조그마한 선근에 만족한 생각을 내어 모든 행과 원을 잘 일으키지 못하고 선지식들을 가까이 모시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이러한 법의 성품과 이러한 이치와 이러한 법문과 이러한 경계와 이러한 머무는 곳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며, 두루 아는 일과 조금 아는 일과 깊이 아는 일과 근원까지 철저함과 관찰함과 증하여 들어감과 얻는 일을 모두 할 수가 없었으리라.”
이 때에 문수사리는 이러한 법을 말하여 보여 주고 가르치고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여, 선재동자로 하여금 무수한 법문을 구족히 원만하고, 끝없는 지혜 광명을 갖추고, 가지가지 부처님 생각하는 문과 끝없는 다라니문과 끝없는 변재문과 끝없는 삼매문과 끝없는 신통문과 끝없는 서원과 지혜의 문에 들게 하였으며, 보현보살의 행과 원력의 바퀴에 깊이 들어가서 문수사리의 본래 있는 세계의 낱낱 공교한 것을 찬탄케 하였다.
선재동자는 문수사리보살에게 이렇게 여쭈었다.
“거룩하신 이께서는 어떻게 거룩하신 이의 세계의 공교함을 성취하였나이까?”
문수사리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게 가득 채우면 나의 세계가 공교 하게 성취함을 얻으리라.” “어떤 것이 열 가지입니까?” “선남자여, 하나는 나지 않는 법을 증득하여 구족히 원만하고, 둘은 없어지지 않는 법이요, 셋은 잃어지지 않는 법이요, 넷은 오감이 없는 법이요, 다섯은 말씀의 경계를 초월한 법이요, 여섯은 말씀으로 할 길이 없는 법이요, 일곱은 희롱거리 말이 없는 법이요, 여덟은 말할 수 없는 법이요, 아홉은 고요한 법이요, 열은 성인의 법이다. 만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구족히 원만하면 나의 국토가 공교하게 성취함을 얻으리라.” “거룩하신 이여, 국토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모든 보살의 있는 데라는 뜻이니라.” “어떤 것이 모든 보살의 있는 데입니까?” “선남자여, 가장 으뜸인 첫째 이치[最勝第一義]가 보살이 있는 데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가장 으뜸인 첫째 이치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잃어지지도 않고 부수어지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이니, 이렇게 말함도 말로 할 경계가 아니므로, 말로도 미치지 못하고, 기억하여 분별할 수도 없으며, 희롱거리 말이나 생각으로 알 수도 없는 것이니, 본래 말이 없고 성품이 고요하여서 다만 성인들의 자기 속으로 증득하는 것일 따름이니라.
선남자여, 이 가장 으뜸인 첫째 이치로 인하여 부처님 여래들이 세상에 나타나거니와,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거나 간에 잃거나 부술 수도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보살이 첫째 이치를 증득하기 위하여서 큰 부귀와 젊음과 임금의 지위를 버리고, 행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괴로운 행을 행하며, 머리카락을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신심으로 출가하여 묘한 도리를 구하느라고 게으르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기를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첫째 이치[第一義]가 없었더라면 범행은 닦아서 무엇하며, 부처님이 세상에 나신들 무엇에 의지하겠느냐. 선남자여, 첫째 이치가 있음을 깊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살들로 하여금 이 열 가지 법을 구족히 원만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세계가 공교하게 성취한 것을 이렇게 알며 이렇게 말할 것이니라.” “거룩하신 이여, 무슨 법을 행하여야 거룩하신 이의 깨끗하고 묘한 국토를 얻겠나이까?” “만일 보살이 온갖 것에 대하여 교만한 마음이 없고,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을 내고, 여러 여래께 진실한 공양을 닦으면 나의 국토를 얻느니라.” “거룩하신 이여, 어떤 것을 교만한 마음이 없고, 평등한 마음을 내고, 진실한 공양을 닦는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자세히 살펴 생각하고 구족히 원만하면 교만이 없는 마음을 성취하느니라. 그 열 가지란, 하나는 몸[身界]이란 것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유하고 관찰하여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출가한 것이 죽은 사람과 다름없으니, 그것은 부모와 친애(親愛)하는 이와 친구와 권속의 온갖 것을 모두 버린 까닭이다’라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둘은 ‘나는 지금 가사를 입었고 나아가고 멈추는 위의가 세간과 같지 않다’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셋은 ‘이미 형상을 무너뜨리고 발우를 들고 남에게 먹을 것을 빈다’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넷은 ‘내가 지금 걸식하니 전다라와 같다’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여 마음을 낮게 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다섯은 ‘먹을 것을 빌어서 내 몸을 기르니 목숨은 완전히 남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여섯은 ‘걸식하는 음식은 사람이나 짐승이 남긴 것이니 제가 싫다고 버려야 내가 먹게 된다’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일곱은 ‘나는 지금 스승에게 공경하고 공양하여 기쁘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여덟은 ‘나는 지금 함께 수행하는 이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위의를 갖추고 법식(法式)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아홉은 ‘내가 지금 출가하였으나 부처님 법을 조금도 얻지 못하였다’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열은 ‘모든 중생들이 내게 성을 내어도 나는 항상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면 교만이 없어지리라.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생각하여 구족히 원만하면 교만이 없는 마음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히 원만하면 중생에게 대하여 평등한 마음을 얻게 되느니라. 그 열 가지란, 하나는 모든 중생에게 하는 일이 평등하고, 둘은 모든 중생에게 마음이 장애되지 않고, 셋은 모든 중생에게 마음이 피로하지 않고, 넷은 중생들을 이익하기 위하여 여섯 가지 바라밀을 갖추 닦고, 다섯은 중생들을 위하여 일체지를 모으며 또 둘이 없는 상(相)에도 의지하지 않고, 여섯은 중생들이 모두 진여와 같아서 분별이 없음을 관찰하고, 일곱은 중생들의 성품이 평등함을 분명히 알아 평등한 마음을 증득하고, 여덟은 중생들과 함께 나고 죽는 큰 불[大火]에서 뛰어나기를 원하고, 아홉은 자기가 이미 벗어나고는 또 모든 중생을 빼내고, 열은 모든 중생을 걱정 없는 곳에 평등하게 두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세간의 어떤 장자나 거사가 아들 다섯 형제를 기르면서 평등하게 사랑하여 생활도구들도 평등하게 주어 다르게 함이 없었으나, 그 아들들은 어리고 소견이 없어 온갖 것을 분별하지 못하였고, 또 그 때에 장자의 집에서 불이 일어났는데 그 아들들이 제각기 따로 있었다면, 선남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장자의 아들을 구해내려는 마음이 누구는 먼저 구하고 누구는 나중에 구하려 하겠는가?” “장자의 마음에는 평등하여 먼저나 나중이라는 분별이 없고, 가까이 만나는 대로 먼저 구제할 것입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이 나고 죽는 집에 있어서 삼독(三毒)의 치성한 불이 갑자기 일어났는데, 마음이 어리석어 아무 분별이 없고 제각기 업을 따라서 다섯 갈래에 태어나는 것을 보살이 평등한 마음으로 조복하여 성숙하되 가까이 있는 이부터 먼저 구제하여 성숙시켜 고요한 국토에 편안히 있게 하느니라.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히 원만하면 중생들에게 대하여 평등함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히 원만하면 모든 여래께 진실한 공양 닦음을 성취하느니라. 그 열 가지란, 하나는 법으로써 공양하고, 둘은 모든 행을 닦고, 셋은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이롭게 하고, 넷은 자비심으로 따라서 거두어 주고, 다섯은 여래의 힘으로 모든 것을 순종하고, 여섯은 모든 선한 법을 권하고 닦아서 버리지 말고, 일곱은 모든 보살의 사업을 버리지 말고, 여덟은 말과 같이 행하고 행과 같이 말하며, 아홉은 오래도록 두루 닦으면서 마음에 고달픔이 없고, 열은 큰 보리심을 항상 버리지 않는 것이니라.
만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갖추면 여래께 진실히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요, 재물이나 음식이나 의복으로써 하는 것을 진실한 공양이라 하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여래는 법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까닭이니, 마치 효자가 부모의 얼굴을 받들어 마음을 조금도 버리지 않는 것 같으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그 부모를 공경하면 아들은 몇 배나 그 사람을 존중하리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법에 공양하면 이것이 참으로 여래께 공양을 성취함이니, 여래들은 법을 존중하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행을 닦는 데서 오는 것이니, 만일 행을 닦으면 곧 여래께 공양함을 성취함이니라. 부처님들이 세상에 나시는 것은 본래 중생들을 이익케 하려는 연고며,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거두어 주려는 연고며, 이익과 즐거움을 따라 힘이 되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선한 법을 권하여 닦지 아니하면 중생들을 이익하고 즐겁게 하지 못하며, 보살의 닦는 일을 버리면 중생들을 이익하고 즐겁게 하지 못하며, 만일 말과 같이 행하지 못하고 행과 같이 말하지 못하면 중생들을 이익하고 즐겁게 하지 못하며, 마음이 용렬하여 고달픈 생각을 내면 중생들을 이익하고 즐겁게 하지 못하며, 잠깐이라도 보리심을 버리면 중생들을 이익하고 즐겁게 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보살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즐겁게 하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니, 만일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이렇게 법공양을 이해하면 여래께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니, 세간의 재물이나 음식으로써 하는 것을 공양이라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여래께 공양함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이 때에 문수사리는 이와 같이 한량없고 끝없는 미묘한 법과 뜻을 보여, 선재동자를 권면하여 닦아 익히게 하고는 신력을 도로 거두고 홀연히 나타나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