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최적정 바라문을 찾다

58. 최적정 바라문을 찾다

선재동자는 다함이 없는 모양 해탈문을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점점 앞으로 나아가 그 마을에 이르렀다. 최적정(最寂靜) 바라문 있는 데로 가서 바라문을 보고는 발에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공경하면서 합장하고 서서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사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의 도를 닦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듣사온즉, 거룩하신 이는 잘 가르쳐 주신다 하오니, 바라건대 저에게 말씀해 주소서.”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이 정성스런 서원의 말[誠願語]이다. 모든 보살들이 이 정성스런 서원의 진실한 말로 말미암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아니하였으니, 이미 물러간 이도 없고 지금 물러가는 이도 없고 장차 물러갈 이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이 진실하고 위덕 있고 정성스런 서원의 말에 머물렀으므로 세간법과 출세간법에 대하여 하는 일이 성취되지 아니함이 없으며, 원하는 것을 모두 만족하였노라.”

선재가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이 진실하고 위덕 있는 해탈을 정성스런 서원의 말이라고 이름한 뜻은 무엇입니까?” “선남자여, 정성스런 서원의 말이라 함은 진여와 같다는 뜻이며,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며, 두 가지 자체가 없다는 뜻이며, 훌륭한 뜻이며, 진실한 뜻이며, 삼세 여래의 법신 자체란 뜻이니라.” “모든 보살은 어떻게 닦아서 이 법신을 얻나이까?” “보살이 열 가지 법을 닦아서 구족히 원만하면 이 법신을 얻느니라. 그 열 가지란 평등한 몸, 깨끗한 몸, 끝없는 몸, 닦아 모은 몸, 법의 성품 몸, 살펴 생각함[尋伺]을 떠난 몸, 헤아릴 수 없는 몸, 고요한 몸, 허공 같은 몸, 묘한 지혜 몸이니, 보살이 만일 이 열 가지 몸을 갖추면 부처님의 청정한 법신을 얻느니라.” “보살들이 이 해탈에 머물면 어떠한 지위에서 이 열 가지 몸을 얻나이까?” “선남자여, 보살이 초지(初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평등한 몸을 얻나니, 그것은 법의 성품을 통달하여 잘못된 소견을 여의고 법의 평등함을 보는 까닭이며, 보살이 이지(二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청정한 몸을 얻나니, 그것은 계행을 범한 때를 여의고 온갖 계율에 성품이 항상 청정한 까닭이며, 보살이 삼지(三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끝없는 몸을 얻나니, 그것은 욕심과 성내는 일과 아끼고 미워함을 여의고 훌륭한 선정에 머무는 까닭이며, 보살이 사지(四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닦아 모으는 몸을 얻나니, 그것은 모든 부처님의 보리분법(菩提分法)을 항상 닦아 모으는 까닭이며, 보살이 오지(五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법의 성품 몸을 얻나니 그것은 온갖 참된 이치를 살펴보고 깨달아 법의 성품을 증득하는 까닭이며, 보살이 육지(六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살피고 생각함[尋伺]이 없는 몸을 얻나니, 그것은 인연으로 일어나는 법이 이해하기 어렵고 알기 어려워 살피고 생각한 경계가 아님을 관찰하는 까닭이며, 보살이 칠지(七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헤아릴 수 없는 몸을 얻나니, 그것은 부처님 법의 방편과 공교함을 모아서 지혜와 행이 만족한 까닭이며, 보살이 팔지(八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고요한 몸을 얻나니, 그것은 온갖 번뇌가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여 세간의 희롱거리 일을 떠난 까닭이며, 보살이 구지(九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허공 같은 몸을 얻나니, 그것은 몸의 모양이 가이없어 온갖 것에 가득한 까닭이며, 보살이 십지(十地)에서 이 해탈에 머물면 묘한 지혜를 얻나니, 그것은 일체종지(一切種智)의 미묘한 경계를 두루 모아 원만한 까닭이니라.” “부처님의 법신과 보살의 열 가지 법신과는 무슨 차별이 있나이까?” “선남자여, 법신의 성품은 다르지 않지만 공덕과 위력에 차별이 있느니라.” “그 이치는 어떠합니까?” “선남자여, 부처님과 보살의 가지신 법신은 평등하여 차별이 없느니라. 그 까닭은 온갖 법의 성품이 평등하여 자체가 하나인 까닭이니라. 이와 같이 범부와 성인, 미혹과 깨침, 물들고 깨끗한 것, 원인과 결과, 가는 것과 오는 것,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이 모두 같은 모양이니라. 공덕과 위력이 다르다는 것은 여래의 몸은 공덕이 원만하고 썩 좋은 위력을 갖추었으나, 보살은 그렇지 못한 까닭이니라. 내가 이제 비유를 들어 그 이치를 밝히리라.

선남자여, 마니보배 구슬이 옥장이의 손으로 다듬고 갈고 아로새기지 아니하였을 적에는 광채가 없어서 보는 사람이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지만, 만일 옥장이의 손을 거쳐 아름답게 마찰되면 광채가 찬란하여 세간 사람과 천상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기나니, 마니의 자체는 다르지 않지만 모양이 차별한 까닭이니라.

그와 같이 보살의 몸은 여래의 몸과 더불어 자체가 같아서 모두 법신이라 하지만, 헤아릴 수 없는 청정한 공덕 지혜의 신통과 위력이 여래와 같다고 말할 수 없다. 그 까닭을 말하면, 여래들은 수없는 오랜 세월에 미묘한 공덕을 깨끗이 닦아서, 끝까지 원만하여 가이없고 한량이 없으며, 허공과 같이 사방세계에 가득하며, 묘하고 아름답고 청정하여 번뇌의 때가 없으며, 엄청난 광명이 비치지 않는 데가 없으며, 훌륭한 위력으로 중생들을 널리 건지지만, 보살들은 비록 법신을 갖추었으나 공덕이 원만치 못하고 때가 남아 있는 까닭이니라.

또 보름 전 달이 초생부터 보름날까지, 이름과 자체는 같으나 광명이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인가. 뚜렷하고 뚜렷하지 못한 차별이 있는 까닭이다. 선남자여, 보살의 법신과 여래의 법신도 그와 같아서 뚜렷하고 뚜렷하지 못한 차별이 있는 까닭이니, 보살의 법신은 초생부터 열나흘까지 달의 광명이 원만하게 비치지 못함과 같거니와, 여래의 법신은 보름달이 모양이 뚜렷하고 광명이 널리 비치어 한정이 없는 것 같느니라.

보살의 열 가지 법신이나 부처님의 법신은 그 당체가 같아서 두 모양이 아니지만, 그 닦은 공덕이 다르므로 같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만일 보살이 이 해탈에 머물러서 열 가지 몸을 구족하면 공덕이 원만한 부처님의 법신을 증득하느니라.

보살이 또 열 가지 뜻으로 말미암아 금강처럼 깨뜨릴 수 없는 몸을 얻나니, 하나는 모든 번뇌와 탐욕·성냄·어리석음 삼독이 깨뜨리지 못함이요, 둘은 나[我]라는 교만과 아끼고 미워하고 뒤바뀐 잘못된 소견이 깨뜨리지 못함이요, 셋은 모든 나쁜 갈래의 번뇌와 고통의 핍박이 깨뜨리지 못함이요, 넷은 이롭고 쇠하고 헐뜯고 기리고 칭찬하고 기롱하고 괴롭고 즐거운 것이 깨뜨리지 못함이요, 다섯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수심하고 탄식하고 걱정하고 시끄러운 것이 깨뜨리지 못함이요, 여섯은 모든 야릇한 소견과 외도의 삿된 언론이 깨뜨리지 못함이요, 일곱은 번뇌 마군·오온 마군·죽음의 마군들이 깨뜨리지 못함이요, 여덟은 모든 하늘 마군과 마군의 권속들이 깨뜨리지 못함이요, 아홉은 모든 성문과 연각이 깨뜨리지 못함이요, 열은 세간의 애욕 경계가 깨뜨리지 못함이니, 보살이 이 열 가지 뜻을 갖추면 부처님의 금강처럼 깨뜨릴 수 없는 몸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또 열 가지 공교한 바른 도가 있어 잘못됨이 없는 말을 분명히 아나니, 하나는 만일 중생들을 대승(大乘)으로 조복할 만한 이에게는 가지가지 보살승의 도를 연설하고 성문승의 도를 말하지 아니하며, 둘은 만일 중생들을 성문승으로 조복할 만한 이에게는 가지가지 성문승의 도를 연설하고 보살승의 도를 말하지 아니하며, 셋은 만일 중생들을 불승(佛乘)으로 조복할 만한 이에게는 여래의 일체지의 도를 연설하고 독각승(獨覺乘)의 도를 말하지 아니하며, 넷은 만일 중생들을 독각승으로 조복할 만한 이에게는 가지가지 독각승의 도를 연설하고 일체지의 도를 말하지 아니하며, 다섯은 만일 중생들이 나와 법에 국집하거든 내가 없고[無我] 법이 공한 것[法空]을 연설하고, 나[我]·사람[人]·중생(衆生)·수명(壽命)·사대부·양육·보특가라 등의 나와 법을 의지하는 도를 말하지 아니하며, 여섯은 만일 중생이 있다 없다 하는 데 국집하거든 가운데 있어서 가[邊]를 떠난 법을 연설하고, 있다 없다 하는 가장자리에 떨어지는 법을 말하지 아니하며, 일곱은 만일 중생들의 마음이 산란하거든, 고요한 사마타(奢摩他)나 비발사나(毘鉢舍那)를 연설하고 가지가지 산란한 법을 말하지 아니하며, 여덟은 만일 중생들이 세간법을 좋아하거든 출세간의 진여와 같은 지혜[如如智]를 연설하고 어리석고 어린아이의 도를 말하지 아니하며, 아홉은 중생들이 나고 죽는 데 있기를 좋아하거든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열반의 도를 연설하고 세상에 있으면서 중생 교화하는 도를 말하지 아니하며, 열은 만일 중생들이 법이 공하다는 따위에 고집하고 바른 도를 행하지 않거든, 정직하고 가시가 없는 법을 연설하고 가시가 있는 나쁘고 험한 도를 말하지 않는 것이니라.

만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갖추면 바른 도에 들어가 잘못됨이 없는 말을 잘 알아서 말하는 것이 진실하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보살의 정성스런 서원의 말에 머문 위덕이 다함이 없는 해탈을 알 뿐이니, 저 보살마하살들이 정성스런 서원의 말로 더불어 행동에 어기지 아니하며, 마음이 항상 순종하여 물러가지 아니하며, 본래의 위력인 견고한 갑주를 입고 크게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버리지 아니하며, 복과 지혜를 늘게 하는 데 만족한 마음이 없으며, 공교한 방편이 계속하여 앞에 나타나며, 더욱 광명한 지위의 지혜[地智]를 닦으며, 오온·십이처·십팔계를 깨달으며, 중생이 바른 도를 잘 아는 보살의 지혜에 깊이 들어가서, 지나간 세상 부처님의 법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오는 세상 부처님의 법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지금 세상 부처님의 법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계율의 성품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마음의 성품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보는 성품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자기와 남의 의심을 끊는 성품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모든 바른 도와 잘못된 도를 아는 지혜의 성품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도를 닦고 번뇌를 없애는 지혜의 성품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모든 보리분법(菩提分法)을 늘게 닦음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며, 중생들을 조복하여 대비(大悲)로 교화함이 평등하고 깨끗한 마음에 머물러 말이 진실하고 허망하지 아니하며, 한량없는 공덕 지혜의 문을 내는 일이야, 내가 어떻게 알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여기서 남쪽에 한 성이 있으니 이름이 묘한 뜻 꽃 문이요, 거기 동자가 있으니 이름은 덕생(德生)이요, 또 동녀가 있으니 이름은 유덕(有德)이다. 그대는 그들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느냐고 물으라.”

선재동자는 이 큰 법문에 존중하는 마음을 내고, 바라문의 발에 절하고 수없이 돌고, 공손히 우러러보면서 일심으로 사모하며 하직하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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