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무승군 장자를 찾다
선재동자는 때 없는 지혜 광명 해탈문을 생각하면서, 차츰차츰 남쪽으로 나아가 그 성에 이르렀다. 무승군(無勝軍) 장자에게 가서 발에 절하고 오른쪽으로 돌고, 합장하고 공경하면서 한쪽에 서서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사오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어떻게 보살이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듣사온즉 거룩하신 이는 잘 일러 주신다 하오니 바라건대 저에게 말씀하소서.”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이 다하지 않는 모양이라, 나는 이 해탈문을 증득하였으므로 한량없는 부처님을 뵈옵고 다함이 없는 노다지를 얻노라.” “보살이 어찌하오면 이 해탈문을 얻나이까?” “선남자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닦으면 이런 해탈문을 증득하나니 그 열 가지란, 하나는 한가한 곳에 있어 오욕(五欲)을 살펴보는 것이니 모든 선정을 닦으려 함이요, 둘은 부지런한 방편으로 삼매에 드는 것이니 색신을 널리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함이요, 셋은 지혜로써 평등하게 관찰함이니 나고 죽는 일과 열반이 한 모양인 까닭이요, 넷은 견고한 생각을 부지런히 닦는 것이니 선하고 선하지 못함을 알아 잊지 아니함이요, 다섯은 보살의 공덕을 부지런히 쌓는 것이니 바라밀에 만족함이 없는 까닭이요, 여섯은 계율의 숲을 부지런히 심는 것이니 바른 법 동산에서 늘 유희하는 까닭이요, 일곱은 나쁜 소견 중생을 항상 구호하는 것이니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바른 소견에 머물게 함이요, 여덟은 가지각색 법약을 널리 보시하는 것이니 중생들의 번뇌병을 다스리는 까닭이요, 아홉은 부지런히 삼세의 법을 관찰하는 것이니 꿈과 환술과 같아서 물들지 않는 까닭이요, 열은 외도들의 삿된 언론을 꺾는 것이니 잘못된 소견으로 중생을 해롭히지 말게 함이니라. 보살이 만일 부지런히 닦아서 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이러한 해탈문에 들어가며, 수없는 백천 법문에 자재하게 들고 나고 하리라.
선남자여, 보살이 또 열 가지 법을 멀리 여의면 이 해탈을 얻을 것이니, 하나는 계율을 범한 모든 보특가라(補特伽羅)들을 멀리 여의는 것이요, 둘은 바른 소견을 파괴한 보특가라들을 멀리 여의는 것이요, 셋은 바른 위의를 깨뜨린 보특가라들을 멀리 여의는 것이요, 넷은 바르게 사는 생명을 깨뜨린 보특가라들을 멀리 여의는 것이요, 다섯은 잡된 것이나 세간 학설을 말하기 좋아하는 보특가라들을 멀리 여의는 것이요, 여섯은 게으른 보특가라들을 멀리 여의는 것이요, 일곱은 모든 욕락에 탐착하는 보특가라들을 멀리 여의는 것이요, 여덟은 흰 옷 입은 이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는 보특가라들을 멀리 여의는 것이요, 아홉은 출가하였거나 집에 살거나 간에 삿된 복을 닦기를 좋아하고 바른 행에 머물지 않는 보특가라들을 멀리 여의는 것이요, 열은 번뇌가 많고 몸이 게을러서 권고하여도 고칠 수 없는 보특가라들은 멀리 여의는 것이니라.
보살이 언제나 이 열 가지 선하지 못한 사람을 멀리 여의고도, 그들에게 버릴 생각을 품지도 아니하며 못난 이라는 생각을 가지지도 아니하고 다만 자비한 생각으로 거두어 조복하며, 보살이 또 생각하기를, ‘중생들이 나고 죽는 데서 헤매는 것은 이런 착하지 못한 중생들을 가까이 하는 탓으로 선근을 파괴하고 나쁜 갈래에 떨어진 것이니, 마땅히 온갖 나쁜 사람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보살이 열 가지 법을 멀리 여의면 이 해탈을 증득한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다함이 없는 모양 해탈문을 알았을 뿐이니, 저 보살마하살들이 대비심이 으뜸이 되어 여러 가지 행을 일으키며, 지난 세상의 원력이 모두 눈앞에 나타나며, 일체지지(一切智智)를 부지런히 구하며, 가지가지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며, 온갖 법을 깊이 관찰하며 온갖 것의 자체와 성품을 부지런히 구하며, 여래의 십력(十力)과 무소외(無所畏)와 불공법[不共佛法]과 어른다운 몸매[相]와 잘생긴 모양[隨好]과 원만한 음성과 모든 공덕을 모두 증득하고, 여래의 깊고 깊은 해탈을 능히 순종하여 알며, 좋은 방편으로 모두 깨달아 들어가며, 중생이란 집착, 나라는 집착, 사람이란 집착, 오래 산다는 집착, 사대부란 집착, 길러 냈다는 집착, 보특가라라는 집착을 잘 알며, 오온·십이처·십팔계 따위의 성품이 공한 줄을 알아 집착하지 아니하며, 모든 세간을 항상 이익케 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편안케 하며, 일체지지를 항상 좋아하며, 모든 중생을 부지런히 구호하며, 모든 바른 법을 항상 존중히 여기며, 법문을 듣고는 좋아하여 따라 행하며, 바른 말로써 중생들을 이익케 하고 쾌락케 하며, 세간 갈래에 들지 않고 좋은 정진에 머물러 계속하여 끊이지 아니하며, 물러가지 아니하고 잡된 행이 없으며 넓고 크고 평등한 지혜를 구족하여 중생들을 제도하며, 제어할 수 없는 그러한 보살의 공덕과 지혜와 행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어떻게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이 성의 남쪽에 한 마을이 있으니 이름은 달마(達磨)요, 거기 한 바라문이 있으니 이름은 최적정(最寂靜)이다. 그대는 그이에게 가서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느냐고 물으라.”
선재동자는 무승군 장자의 발에 절하고 수없이 돌고, 공손히 우러러 사모하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