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4 장
01. 여러 가지 정신작용의 협동(여러 가지 정신작용)
왕은 물었다.
나아세나존자여, 모든 사상(諸法)이 혼합되어 있을때, 그것들을 하나 하나 분리시켜 `이것은 접촉(觸)이요, 이것은 감수(受)요, 이것은 표상(態)이오, 이것은 의사(思)요, 이것은 식별(識)이오, 이것은 성찰(尋)이오, 이것은 고찰(伺)이다,’고 구별을 명백하게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따로 따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궁정의 요리사가 시럽이나 소스를 만든다고 합시다. 그는 거기에다 굳기름과 소금과 생강과 마늘과 후추와 그 밖의 조미료를 넣었습니다. 그때, 왕은 요리사에게 `나에게 굳기름 양념을 갖다 다오, 소금 양념을 갖다 다오, 생강 양념을 갖다 다오, 마늘 양념을 갖다 다오, 후추 양념을 갖다 다오, 모든 조미료가 든 맛있는 양념을 갖다 다오’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그 혼합해서 만든 소스를 일일이 분해하여 `이것은 시고, 이것은 짜고, 이것은 맵고, 이것은 떫고, 이것은 답니다’고 양념을 따로 따로 분해해서 가져 올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양념은 하나 하나 특징에 의하여 나타나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꼭 같습니다. 모든 사상이 한데 혼합되어 있는 것을 하나 하나 떼어서 `이것은 접촉이다.
이것은 감수다. 이것은 표상이다. 이것은 의사다. 이것은 식별이다. 이것은 성찰이다. 이것은 고찰이다’고 구별지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상을 하나 하나의 특징에 의하여 논의할 수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장로가 왕에게 말했다.
대왕이여, 소금은 눈으로 알(識別)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대왕이여, 주의해 주십시오. 눈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소금이 갖고 있는 흰 빛에 지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면 혀로 알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모든 종류의 소금은 혀로써만 식별합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만일 소금을 혀로만 식별할 수 있다면, 황소는 왜 전체를 짐차로 실어 나릅니까. 짠 맛만을 나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대왕이여, 그것은 짠 맛만을 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짠 맛과 무게라는 두 가지 성질(二法)은 실제 소금에서는 하나로 되어 있으나, 원래 영역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대체 소금은 저울로 달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달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대왕이여, 소금은 저울로 달 수 없습니다.
그 무게를 저울로 달 수 있을 뿐입니다.
잘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여기서 밀린다 왕에 대한 나아가세나 존자의 질문은 끝난다.)
02. 통각작용과 자연법칙의 문제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5개의 영역(眼,耳,鼻,舌,身,5개 감각 기관의 대상에 대한 대응 관계)은 각기 다른여러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깁니까. 아니면, 한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깁니까.
대왕이여, 한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고 각기 다른 여러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깁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 뙤기 밭에 다섯 가지 씨알을 뿌린다면, 여러 가지 씨알에서는 각기 다른 여러 가지 열매가 맺어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5개의 영역은 각기 다른 여러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깁니다. 한 가지 행위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3. 인격의 평등과 불평등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모든 사람은 어찌하여 똑같지 않습니까. 즉, 어떤 사람은 단명하고, 어떤 사람은 장수하며, 어떤 사람은 잘 앓고, 어떤 사람은 잘 앓지 않으며, 어떤 사람은 밉상이고, 어떤 사람은 미인이며, 어떤 사람은 힘이 약하고, 어떤 사람은 힘이 세며,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부자이며, 어떤 사람은 비천하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고귀하게 태어나며, 어떤 사람은 우둔하고, 어떤 사람은 영리합니까.
나아가세나 존자는 왕에게 반문했다.
모든 식물은 왜 똑같지 않습니까. 어떤 것은 신 맛이 나고, 어떤 것은 짠 맛이 나고, 어떤 것은 쓰고, 어떤 것은 맵고, 어떤 것은 떫은맛이 나고, 어떤 것은 단맛이 납니까.
존자여, 그것들은 각기 다른 종자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전생의 행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같지 않습니다. 즉, 전생 행위의 결과로 수요(壽夭),빈부,귀천,미추,현우 등 차이가 있습니다. 대왕이여, 이것은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라문 학도들아, 생존은 제 각기 자기의 업(業)을 가지고 있고, 그 업을 이어 받으며, 그 업을 모태(母胎)로 하고 친척으로 하며, 또 그 업에 의존하는 것이다. 업은 생존을 비천한 것과 존귀한 것으로 차별짓는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4. 수행의 시기(時機)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이 출가 수행하는 목적은 괴로움이 사라지고 다시 다른 괴로움이 생기지 않도록 함이라고 그대는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출가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출가 수행은 미리부터 노력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아니면, 때가 왔을 때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때가 왔을 때 비로소 노력한다 함은 실은 해야 할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리부터 노력함이야 말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왕은 목이 말랐을 때 비로소 물이 마시고 싶다고 우물이나 저수지를 파게 합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때에 닥쳐 비로소 노력함은, 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오, 미리 노력함이 바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왕은 배가 고팠을때 비로소 음식을 먹고 싶다고 밭을 갈아 곡식을 심고 가꾸어 거둬들이게 합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때에 닥쳐 비로소 노력함은, 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오, 때에 앞서서 노력함이 바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왕은 전쟁이 터졌을 때 비로소 참호를 파고, 성문을 만들고, 망탑(望塔)을 세우고, 보루(堡壘)를 쌓게 하며, 식량을 실어 들이게 합니까. 그때야 비로소 상술(象術)과 마술(馬術)과 전차술과 궁술과 검술 등 전술을 익히게 합니까.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때에 닥쳐 비로소 노력함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이오, 때에 앞서서 미리 노력함이야말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것을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자기에게 복되는 일을 미리부터 해 치울 것,
마부와 같은 생각을 하지 말고,
슬기로운 사람은 깊이 생각하며 매진할지어다.
마부가 탄탄한 대로를 버리고,
울퉁불퉁한 지름길을 가다가,
마차 축을 부러뜨리고 낙담하는 것처럼,
정법(正法)을 등지고 잘못된 길을 따라 가다가,
사마(死魔)의 입에 떨어져 비탄에 잠긴다.
바닥 난 노름꾼이 파경에 처할 때처럼.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5. 업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따라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佛子)은 지옥불은 자연불(自然火)보다도 훨씬 더 강열하다. 자연불 속에 던져진 조약돌은 하루 동안 태워도 녹지 않지만, 큰 집채 만한 바위도 지옥불 속에 들어가면 순식간에 녹아 버린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또, 한편 그대들은
지옥에 태어난 생명체(有情)는 수십만년 동안 지옥불 속에서 타더라도 녹아 없어지는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런 말도 믿지 않습니다.
장로는 대답했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암상어와 암악어와 암거북과 암공작과 암비둘기들은 단단한 돌이나 자갈이나 모래를 먹습니까.
존자여,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돌이나 자갈이나 모래는 뱃속에 들어가면 녹아 버립니까.
그렇습니다. 녹아 버립니다.
그렇다면, 뱃속에 든 그들의 태아(胎兒)도 녹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녹지 않습니까.
존자여, 업의 제약(制約)에 의하여 녹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지옥에 태어나는 생명체는 수천년 동안 지옥(의 불)속에 있어도 숙업의 제약에 의하여 녹지 않습니다. 지옥에 있는 생명체는 거기서 태어나 거기서 성장하고 또 거기서 죽습니다. 대왕이여,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그는 악업(惡業)이 소멸될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암사자와 암호랑이와 암표범과 암캐들은 단단한 뼈나 고기를 먹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을 먹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뱃속에 들어가면 녹아버립니까.
그렇습니다. 녹아버립니다.
그들의 뱃속에 든 태아도 녹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녹지 않습니까.
존자여, 숙업(宿業)의 제약에 의하여 녹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지옥에 태어난 생명체는 수천년 동안 거기 있어도 숙업의 제약에 의하여 녹지 않습니다.
또 한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요나카 인의 부녀자와 크샤트리야의 부녀자와 바라문의 부녀자와 궁성의 부녀자들은 단단한 과자와 고기를 먹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단단한 것을 먹습니다.
단단한 것들이 뱃속에 들어 있을 때 녹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녹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뱃속에 든 어린애도 녹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녹지 않습니까.
존자여, 숙업의 제약에 의하여 녹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지옥에 있는 생명체는 수천년동안 태우더라도 숙업의 제약 때문에 녹지 않습니다.
만일, 지옥에 태어나면 그들은 거기서 성장하고 거기서 죽습니다. 대왕이여,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는 악업이 소멸되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6. 불교의 우주 구조설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그대들은 `이 세계(大地)는 물(水)위에 있고 물은 바람(風) 위에 있고 공기는 허공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때 장로는 법병(法甁)에 물을 담아다가 밀린다 왕에게 보이고 말했다.
이 물이 대기(風)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처럼 세계의 물도 공기(風)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7. 이상의 경지, 열반(涅槃)은 지멸 (止滅)인가
왕은 물었다.
열반이란 제지해 없어짐(止滅)입니까.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어찌하여 열반이 지멸입니까.
대왕이여, 모든 어리석은 개체들은 내외 6개의 영역(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을 즐겨하고 반겨하고 집착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욕정의 흐름에 끌려, 나고 늙고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쓰라림과 절망으로 부터 벗어나지(解脫) 못합니다. 즉, 괴로움(苦)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슬기로운 제자들은 내외 6개의 영역을 즐겨하지 않고 반겨하지도 않고 또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을 환희, 환영, 집착하지 않는 만큼 그에게는 애착(愛執)이 지멸(止滅)하고, 애착이 지멸하므로 집착(執着)이 지멸하고, 집착이 지멸하므로 생존 일반(生存一般)이 지멸하고, 생존 일반이 지멸하므로 태어남(生)이 없고, 태어남이 없으므로, 늙고 죽음(老, 死)과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쓰라림과 절망이 없어집니다. 이리하여 모든, 고통의 덩어리가 지멸합니다. 그러므로 열반은 지멸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8. 누구나 열반을 얻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모든 사람이 열반을 얻습니까.
대왕이여, 누구나 열반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른 길을 걷고, 잘 알아야 할 법을 잘 알고, 완전하게 알아야 할 법을 완전하게 알며, 끊어야 할 법을 끊고, 닦아야 할 법을 닦으며, 실현(現證)해야 할 법을 실현하는 사람은 열반을 얻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09. 열반이 즐거움(安樂)이란 것을 어떻게 아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아직 열반을 얻지 못한 사람이 열반이 얼마나 행복한 상태인가를 압니까.
그렇습니다. 알다 뿐입니까.
아직 열반은 얻지도 않고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손발을 잘린 적이 없는 사람들이 손발을 잘린 이가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압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그런 줄을 압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압니까.
손발을 잘린 사람들이 비통해 하는 소리를 듣고서 슬픈 일인 줄을 압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아직 열반을 얻지 못한 사람들도 열반을 체득한 사람들의 즐거운 말을 듣고 열반이 얼마나 행복한 상태인 줄을 압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