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본수능엄경(正本首楞嚴經) 09券
그때에 세존께서 이렇게 경전의 이름을 말씀하시니 그 즉시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여래께서 열어 보이신 밀인(密印)인 반다라의 이치를 들었사오며 아울러 이 경의 이치에 알맞은 이름을 듣고 선나로 성인의 지위를 닦아 가는데 차츰 더해가야 할 오묘한 이치를 확실하게 깨달아서 마음이 비어 엉기게 되었으며 삼계에서 마음을 닦는 여섯 단계의 미세한 번뇌를 끊게 되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대어 절하고 합장하여 공경하면서 부처님께 아뢰기를 “큰 위엄과 덕을 갖추신 세존이시여! 자비하신 말씀이 막힘이 없어서 중생들의 미세하게 잠긴 의혹을 잘 열어 보이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오늘에 몸과 마음이 쾌활해져서 크게 요익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오묘하고 밝고 참되고 청정한 맑은 마음이 본래 두루두루 원만한 것이라면 이와 같이 큰 땅덩어리의 풀, 나무와 꿈틀거리는 함령(含靈)들이 본래 근본인 진여이므로 이는 곧 여래께서 부처가 된 참다운 실체로서 부처님의 본체가 진실하거늘 어째서 또다시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하늘 등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이 도는 본래 저절로 생긴 것입니까? 아니면 중생의 허망한 습기로 생긴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보현향 비구니 같은 이는 보살계를 지키다가 사사로이 음행을 저지르고 거짓으로 말하기를 음란한 짓을 하는 것이 살생도 아니고 훔치는 것도 아니므로 업보가 있을 수 없다고 했더니 그 말을 하자마자 먼저 여인의 음근에서 맹렬한 불길이 일어나더니 그 다음에 사지의 마디마디 맹렬한 불이 붙었으며, 유리는 구담족성을 죽여 없애고 선성은 부처도 없고 불법도 없고 열반도 없다고 망령되게 말하다가 산 몸뚱이 그대로 모두 아비지옥에 빠졌습니다. 그러한 지옥은 정해진 곳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연히 저마다 업보를 일으켜 각각 스스로 받는 것입니까?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어리고 어두운 자들을 일깨워 주셔서 계를 지키는 중생들로 하여금 결정한 이치를 듣자옵고 기뻐서 이마로 받들어 조심하고 정결하여 변함이 없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통쾌하다 그 물음이여!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사특한 소견에 빠지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이니 너는 지금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해 주겠다. 아난아! 일체 중생이 사실은 본래 참되고 청정한 것이건만 허망한 소견으로 인하여 허망한 습기가 생기나니 그것으로 인하여 내분과 외분으로 갈라지나니라.
아난아! 내분이라고 함은 곧 중생의 분내(分內)이니 모든 애욕의 생각으로 인하여 허망한 정이 일어나나니 그 정이 쌓여서 그치지 않으면 능히 애욕의 몸이 생긴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마음에 좋은 음식을 생각하면 입 속에서 침이 생기고 마음으로 앞에 만났던 사람을 생각하여 가엾게 여기거나 원한을 품으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며, 재물과 보배를 탐내거나 구하면 마음에 침을 흘려서 온 몸이 빛나고 윤택해지며 마음에 집착하여 음욕을 향하면 남자와 여자의 음근에 자연히 액체가 흐르나니라.
아난아! 모든 애욕이 비록 서로 다르지만 흐르고 맺힘은 같으니 윤택하고 촉촉한 습기는 올라가지 못하므로 자연히 아래로 떨어지게 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내분’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외분(外分)이라 함은 곧 중생의 분외(分外)이니 모두가 목마르게 우러르므로 인하여 허망한 생각이 발생하게 된다. 그 허망한 생각이 쌓여서 그치지 아니하면 능히 수승한 기운이 생기게 되나니, 그러므로 중생이 마음에 금하는 계율을 가지면 온 몸이 가볍고 맑아지며 마음에 주문이나 보인(印)을 가지면 돌아봄이 웅장하고 굳세어서 마음이 하늘에 나고자 하면 꿈속에서나 상상 속에 늘 날아다니고 마음속에 부처님 나라에 살고자 하면 성인의 경지가 아득히 나타나며 선지식을 잘 섬기면 스스로 몸과 목숨을 가벼이 하나니라.
아난아! 모든 생각이 비록 다르지만 가볍게 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날아 움직이는 것은 잠기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 뛰어넘게 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외분’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일체 세간에 나고 죽는 것이 서로 계속되어서 나는 것은 습기에 순종함을 따르고 죽음은 변해 흐름을 따르나니 목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에 아직 따뜻한 감촉이 남아 있을 적에 일생의 선과 악이 한꺼번에 나타나서 죽음을 거역하고 삶을 따르는 두 가지 습기가 서로 어울리나니라.
순전한 생각은 위로 날아서 반드시 천상에 나게 되나니 만약 날으는 마음 가운데 복과 지혜를 겸하고 청정한 서원까지 겸하였으면 자연히 마음은 열리어 시방의 부처를 볼 수 있게 되어서 모든 정토에 서원을 따라 왕생하나니라.
정이 적고 생각이 많으면 가볍게 들리는 것이 멀지 못하여 곧 날아다니는 신선이나 큰 힘을 지닌 귀왕이나 날아다니는 야차나 걸어 다니는 나찰이 되어서 사방 하늘에 노닐되 가는 곳마다 걸림이 없나니라.
그 가운데 만약 착한 서원과 착한 마음이 있어서 나의 법을 잘 보호하고 지키며 혹은 금하는 계율을 잘 지켜서 계를 지키는 사람을 따르거나 혹 신주를 보호하여 신주를 가진 사람을 따르며, 혹은 선정을 보호하여 법인을 편안히 보전하면 그러한 사람은 친히 여래의 자리 아래에 머물게 되나니라.
감정과 생각이 균등하면 날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인간에 나게 되는데 생각이 밝으면 총명하고 감정이 어두우면 우둔하게 되나니라.
정이 六할에 생각이 四할이면 가로된 중생에 흘러 들어가게 되어서 무거운 것은 털 달린 무리가 되고 가벼운 것은 깃 달린 족속이 되나니라.
정이 七할에 생각이 三할이면 수륜(水輪)에 잠겨 내려가서 갖가지 고초를 받나니라. 정이 八할에 생각이 二할이면 화륜(火輪)의 경계에 태어나서 맹렬한 불을 받아 몸이 아귀가 되어서 항상 불에 타게 되며 물도 몸을 해하여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면서 百 千겁(劫)을 지내나니라.
정이 九할이고 생각이 一할이면 밑으로 화륜을 뚫고 내려가서 몸이 바람과 불, 이 둘로 서로 어울려 지나는 것에 들어가서 가벼우면 유간지옥에 태어나고 무거우면 무간지옥에 태어나는 두 가지의 지옥이 있나니라.
순수한 정은 곧 잠겨서 가장 큰 아비지옥에 떨어지나니 만약 잠기는 마음 가운데 대승을 비방하거나 부처님께서 금하시는 계율을 헐뜯으며 허망하게 거짓 법을 말하거나 헛되이 시주님의 보시를 탐내거나 외람되게 공경을 받거나 오역죄나 십중죄를 지으면 다시 시방의 아비지옥에 떨어지나니라.
지은대로 따르는 악업이 비록 스스로 부른 것이나 모든 같은 분수 가운데 함께 받는 원래의 경지가 있나니라.
아난아! 그러한 것들은 모두 저 중생들 스스로가 지은 업보대로 감응된 것이니 열 가지 익힌 버릇이 씨앗이 되어 여섯 가지의 교보(交報)를 받나니라.
무엇을 열 가지 원인이라고 하는가 하면 아난아!
첫째는 음란한 버릇을 접촉함이 서로가 비비는 데서 생겨나나니 서로 비비기를 그치지 않으므로 목숨이 마치려 할 적에 맹렬한 불길이 그 가운데서 일어남을 느끼나니 마치 사람이 손을 서로 비비면 뜨거운 현상이 생기는 것과 같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타오르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무쇠 평상과 구리 기둥 등으로 가하는 고통을 받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음란하고 방탕함을 지목하여 ‘애욕의 불’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의 음욕 보기를 마치 불구덩이를 피하듯이 하나니라.
둘째는 탐욕의 버릇으로 서로 계량함이 서로를 빨아들이는데서 생기나니 빨아들이는 일이 그치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질 때에 추위가 쌓이고 단단한 얼음이 그 가운데서 얼어붙는 듯함을 느끼나니, 이는 마치 사람이 입으로 바람을 들이마시면 찬 감촉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로서 두 가지 버릇이 서로 업신여기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타타, 파파, 라라 등 벌벌 떨면서 푸르고 붉고 흰 연꽃 등의 얼음 지옥에서 추위에 떠는 고초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탐내어 구하는 것을 명목하여 ‘독한 물’이라고 똑같이 이름하였고 보살이 탐욕 보기를 마치 장해를 피하듯이 하나니라.
셋째는 거만한 버릇으로 서로 업신여김이 서로가 뽐내는 테서 생기나니 뽐내는 마음이 치달려서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허공에 날고 파도에 달려가서 그 파도가 쌓여 물이 되는 듯함을 느끼나니 이는 마치 사람이 입술에 혀를 대고 빨아 맛을 보면 그로 인하여 물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고동(鼓動)하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핏물, 잿물, 뜨거운 모래, 독기 있는 바다와 구리 녹인 물을 마시는 등의 고통을 받나니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거만한 것을 명목하여 ‘바보가 된다는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거만함을 보면 큰물을 피하듯이 하나니라.
넷째는 성내는 버릇으로 서로 충돌함이 서로를 거슬리는 데서 생기나니 거슬림이 맺혀서 그치지 않으면 마음의 열이 불길을 발하여 기운을 녹여서 쇠가 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칼, 산, 쇠곤장, 세워진 칼, 칼수레, 도끼, 작두, 창, 톱 등으로 가하는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사람이 원한을 품으면 살기가 날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공격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거세당하고[宮] 짤리우고[割] 목을 베고[斬] 도끼로 찍히고[斫] 톱으로 썰리고 찔리고[刺] 몽둥이로 때리고[槌] 치는[擊] 등의 고통을 받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성내고 분해하는 것을 명목하여 ‘예리한 칼날이다’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성내는 것 보기를 죽임을 당하는 것을 피하듯이 하나니라.
다섯째는 간사한 버릇으로 서로가 유인함이 서로 아첨하는 데서 생기나니 그렇게 아첨하여 끌어들이기를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밧줄과 나무로 목을 조르거나 비트는 듯함을 느끼나니 이는 마치 밭에 물을 대면 풀과 나무가 나서 자라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뻗어나므로 지옥에 들어가 쇠고랑과 수갑과 항쇄, 족쇄와 채찍과 곤장 등의 형구로 가하는 고초를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간사함을 명목하여 ‘참소하여 해치는 것’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간사한 것 보기를 승냥이나 이리처럼 두려워하나니라.
여섯째는 속이는 버릇으로 서로 속임이 서로를 무고하는 데서 생기나니 속이는 것이 그치지 않아서 마음을 날려 간사함을 지으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티끌과 흙과 똥, 오줌의 더럽고 깨끗하지 않음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티끌이 바람에 날려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더해지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빠지거나 차올리는 것과 날았다 떨어졌다 하는 것과 뜨고 가라앉는 것 등의 고통을 받게 되나니 그러므로 시바의 모든 여래가 속이는 것을 명목하여 ‘겁살’이라고 이름하고 보살이 속이는 것 보기를 뱀을 밟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일곱째는 원망하는 버릇으로 서로 미워함이 서로가 원한을 품은 데서 생기나니 원한이 쌓여 그치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돌을 날리고 바위를 던지고 뒤주에 가두고 함거에 싣고 독 속에 넣고 부대에 넣어 메치는 등의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음흉하고 독한 사람이 가슴에 악독함을 품어 쌓아두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한을 머금고 있으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던지고 차고 얽어매고 때리고 쏘고 당기고 움켜쥐는 등의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원한 품은 집을 명목하여 ‘위해귀(違害鬼)’라고 하고 보살이 원한 있는 이를 보기를 마치 독 술을 마시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여덟째는 송사하는 버릇으로 서로 밝힘이 서로가 어기는 데서 생기나니 어겨 배반함이 쉬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왕사와 관리가 문서로 증명하고 집행관이 문서를 가지고 고문하고 신문하고 추국하여 파헤치고 밝혀내어 사사롭고 왜곡된 것을 판단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마치 길 가는 사람이 오가면서 서로 마주 보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어우러지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가슴을 치거나 혀를 뽑거나 불로 지지거나 회초리로 때리거나 말로 변명하는 등의 고초를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송사하여 해치는 일을 명목하여 ‘사악한 소견의 구덩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송사의 허망하고 편협한 고집장이 보기를 마치 독한 구렁에 빠지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아홉째는 모함하는 버릇으로 서로 모함을 가함이 서로를 비방하는데서 생기나니 비방하여 해치는 일이 그치지 아니하기 때문에 목숨이 끊어질 적에 산과 합하고 돌과 합하여 연자와 맷돌로 갈고 부수는 등의 고통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남을 모함하여 해치는 사람이 선량한 사람을 핍박하는 것과 같다. 두 가지 버릇이 서로 배척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가서 누르고 비틀고 때리고 뭉개고 치고 쥐어짜고 거꾸로 매다는 등의 고통을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을 명목하여 ‘모함하는 범’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바르지 못한 것 보기를 마치 번개를 만난 것처럼 여기나니라.
열째는 덮어씌우는 버릇으로 서로 시끄러움이 서로를 가리고 숨기는 데서 생기나니 숨기고 피하는 것이 그치지 아니하므로 목숨이 끊어질 적에 거울로 비춰보고 촛불로 비춤을 느끼게 되나니 이는 마치 햇볕에 그림자를 숨길 수가 없는 것과 같나니라. 두 가지 버릇이 서로 고발하므로 지옥에 들어가서 악한 벗, 업보의 거울, 불구슬로 묵은 업보를 파헤쳐서 대질해서 징험하는 모든 괴로움을 받나니라. 그러므로 시방의 모든 여래가 덮어 감추는 것을 명목하여 ‘음흉한 도적’이라고 이름하였고 보살이 덮는 것 보기를 마치 높은 산을 머리에 이고 큰 바다를 밟는 것처럼 여기나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것을 여섯 가지 과보라고 하는가? 아난아! 일체 중생이 여섯 가지 의식으로 업보를 짓고 불러들이는 악한 과보는 여섯 개의 감각기관을 따라 나오나니라.
어찌하여 악한 과보가 육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느냐?
첫째는 보는 업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오나니 이 보는 업보가 어울리면 곧 죽으려 할 때에 먼저 맹렬한 불길이 시방세계에 가득함을 보게 되고 죽는 자의 영혼이 날아가 떨어져 연기를 타고서 무간지옥에 들어가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게 되나니 하나는 밝게 보이는 것이니 갖가지 흉악한 사물들만 두루 볼 수 있게 되어서 한량없는 두려움이 생기게 되고 다른 하나는 어둡게 보이는 것이니 깜깜하여 보이지 않아서 한량없는 공포증이 생기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보는 불이 보는 것을 태우면 뜨거운 모래나 재가 되고 듣는 것을 태우면 끓는 물과 이글거리는 구리 녹은 물[洋銅]이 되며, 숨을 태우면 검은 연기와 붉은 불꽃이 되고 맛을 태우면 볶은 철환과 쇳물 죽이 되며, 접촉을 태우면 뜨거운 재와 숯이 되고 마음을 태우면 별똥 같은 불이 쏟아져서 허공세계에 타오르게 되나니라.
둘째는 듣는 과보가 나쁜 결과를 불러들이나니 이 듣는 업보가 어울리면 죽으려 할 적에 먼저 파도가 천지를 삼키는 것을 보게 되나니 죽은 자의 영혼이 내려 쏟아져 흐름을 타고 무간 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게 되나니 하나는 귀가 열려서 갖가지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서 정신이 혼란해지는 것이고 둘은 귀가 막혀서 고요하여 듣는 것이 없어서 넋이 빠져 들어가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듣는 파도가 들음에 쏟아 부으면 꾸짖고 따지는 것이 되고 보는 것에 쏟아 부으면 우뢰가 되거나 성난 소리가 되며 악독한 기운이 되고 숨 쉬는데 쏟아 부으면 비가 되고 안개가 되며 갖가지 독충을 뿌려서 몸에 두루 하게 되고 맛보는데 쏟아 부우면 고름이 되고 피가 되며 갖가지 더러운 것이 되고 접촉에 쏟아 부으면 짐승이 되거나 귀신이 되며 똥이 되거나 오줌이 되고 뜻에 쏟아 부으면 번개가 되고 우박이 되어서 마음과 혼이 부서지나니라.
셋째는 냄새 맡는 업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니 이 맡는 업보가 어울리면 죽으려 할 적에 먼저 독한 기운이 멀고 가까운데 꽉 차는 것을 보게 되나니 죽은 자의 영혼이 땅으로부터 솟아나서 무간지옥에 들어가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게 되나니 하나는 코가 열려서 모든 악한 기운을 맡고 숨이 막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고 둘은 코가 막혀서 기운이 막혀 숨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하여 땅에 기절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맡는 기운이 숨쉬는 것과 충돌하면 막힘(質)이 되고 통함(履)이 되며 보는 것과 충돌하면 불이 되고 횃불이 되며, 듣는 것과 충돌하면 빠지는 것이 되거나 넘치는 것이 되고 끓는 것이 되며, 맛과 충돌하면 썩거나 쉬게 되고 감촉과 충돌하면 터지거나 끈적거림이 되며 큰 살덩어리 산이 되어서 百, 千의 눈이 있거든 한량없는 것들이 빨아 먹으며 생각에 충돌하면 재나 유행성 질병이 되거나 날으는 모래가 되어서 몸을 부수나니라.
넷째는 맛의 업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내는 것이니 이 맛의 업보가 어울리면 죽으려 할 적에 먼저 철망(鐵網)에 맹렬한 불꽃이 사납게 치솟아서 세계를 뒤덮는 것을 보게 되나니 죽은 자의 영혼이 아래로 떨어져 그물에 걸려서 그 머리가 거꾸로 매달려 무간 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나니 하나는 들이 쉬는 기운으로 찬 얼음이 맺히어 살이 얼어터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뿜는 기운으로서 맹렬한 불길이 날리어 골수를 태우나니라.
이와 같이 맛을 보는 것이 맛보는데 닿으면 받들어 모시거나 참게 되고 보는 것에 닿으면 타는 쇠나 돌이 되며, 듣는 것에 닿으면 예리한 무기나 칼이 되고 숨 쉬는 것에 닿으면 큰 철장이 되어 국토를 가득 덮으며, 감촉에 닿으면 활이나 화살이 되고 탄알이나 쏘는 것이 되고 생각에 닿으면 날으는 뜨거운 쇠가 되어, 공중에서 비 오듯 쏟아지나니라.
다섯째는 감촉의 과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냄이다. 이 감촉의 업보가 어우러지면 임종할 적에 먼저 큰 산이 사면으로 와서 서로 합해서 다시 나갈 길이 없음을 느끼나니 죽은 자의 영혼이 큰 철성에 불 뱀, 불 개, 호랑이와 이리, 사자와 소머리를 한 옥졸과 말머리를 한 나찰이 손에 창을 잡고서 성문으로 몰 고가는 것을 보게 되어 무간 지옥에 들어가 두 가지 모양이 발하여 밝혀지나니 하나는 접촉과 합하는 것이니 산이 합해져서 몸을 핍박하여 뼈와 살과 피가 무너져 터지고 다른 하나는 접촉을 여의는 것이니 칼이 몸에 닿아 심장과 간장이 찢어지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접촉과 합함이 접촉에 닿으면 길이나 옥문을 지키거나 관청이나 문초하는 곳이 되고 보는 것에 닿으면 태우거나 사르게 되며, 듣는 것에 닿으면 때리거나 치거나 찌르거나 쏘게 되고 숨 쉬는 것에 닿으면 긁거나 조르거나 고문하거나 얽어 매게 되며, 맛보는 것에 닿으면 갈거나 목에 사슬을 씌우거나 베이거나 잘리게 되고 생각하는 것에 닿으면 떨어뜨리거나 날거나 삶거나 굽게 되나니라.
여섯째는 생각의 과보가 악한 결과를 불러들이나니 이 생각의 업보에 어울리면 임종할 적에 먼저 사나운 바람이 국토에 불어 무너뜨림을 보게 되는데 죽은 영혼이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돌아 떨어지며 바람을 타고 무간 지옥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을 발하여 밝히게 되나니 하나는 깨닫지 못함이니 미혹함이 지극해지면 거칠어져서 분주하게 달려 쉬지 않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미혹하지 않음이니 깨달으면 괴로와서 한량없이 삶거나 태우는 고통을 참기 어려우니라.
이와 같이 사특한 생각이 생각에 맺히면 방향이나 장소가 되고 보는 것에 맺히면 밝게 증명하는 것이 되며, 듣는 데에 맺히면 크게 합하는 돌이 되고 얼음이나 서리가 되고 흙이나 안개가 되며, 호흡에 맺히면 큰 불 수레와 불 배와 불 함거가 되고 맛봄에 맺히면 크게 울부짖고 후회하게 되고 울게 되며, 접촉에 맺히면 크게도 되고 작게도 되어 하루 가운데 한 번 나고 만 번 죽으며 엎치락뒤치락하게 되나니라.
아난아! 이것을 이름하여 지옥의 열 가지 원인과 여섯 가지 결과라고 하나니 모두가 중생들의 미망으로 지어진 것이니라.
만약 모든 중생들이 여섯 개의 감각기관에서 악한 업보를 한꺼번에 지으면 이 사람은 즉시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끝없는 세월을 지내게 되나니라.
여섯 개의 감각기관이 각각 지었거나 그 지은 것이 대상과 감각기관을 겸했으면 이 사람은 즉시 八무간지옥에 들어가나니라.
몸과 입 그리고 뜻, 이 세 가지로 음행, 살생, 도적질을 행하면 이 사람은 즉시 十八지옥에 들어가나니라.
세 가지 업보를 겸하지 않고 중간에 혹 한 가지 살생하거나 다른 한 가지 도적질을 하였으면 이 사람은 즉시 三十六지옥에 들어가나니라.
드러나고 드러나서 어느 한 감각기관이 단순하게 하나의 업보만 범하면 이 사람은 즉시 백팔지옥에 들어가나니라.
이로 말미암아서 중생이 따로따로 지었으나 세계에서는 분수가 같은 지옥에 들어가나니 이는 허망한 생각으로 발생한 것이지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니라.”
아난이 듣고 나서 매우 슬프고 민망한 생각이 들어서 머리를 조아리며 부처님께 아뢰기를 “크게 자비하신 세존이시여! 말세의 중생들이 착한 근기가 없어서 가르친 법을 따르지 않으면 과보를 믿지 않아서 악한 업인을 많이 짓고 지옥에 떨어지리니 바라옵건데 큰 자비를 내리시어 널리 방편을 베푸시어 착한 근기를 심어 이러한 고통을 해탈할 수 있게 해주소서.”
그때에 세존께서 손으로 땅을 가리키시니 팔한지옥과 팔열 지옥과 크고 작은 모든 지옥들이 환하게 앞에 나타나고 고통을 받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이 각각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근본 업인에서 이와 같은 악업을 짓고 지금 이러한 고통을 받습니다.”라고 하니 이 모임의 사부 대중들이 말을 듣고 그 현상을 보고서 슬프고 민망한 생각이 들어 모골이 오싹하게 두려워하며 지옥의 중생들도 부처님을 뵈옵고 설법을 듣고서 공경하고 흠모하는 마음이 생겨서 모두 귀의하여 마침내 해탈을 얻게 되었다.
또다시 아난아! 이 모든 중생들이 계율을 그르다 하여 지키지 아니하였거나 보살계를 범하였거나 부처님의 열반을 헐뜯었거나 그 밖에 여러 가지 업보로 오랜 세월동안 불에 타는 과보를 받다가 뒤에 다시 죄가 끝나게 되면 모든 귀신의 형체를 받나니라.
만약 본래의 업인에서 여색을 탐하여 죄가 된 이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바람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이름이 ‘발귀’이고 재물을 탐하여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물질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이름이 ‘괴귀’이며 거만함을 탐하여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기운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아귀’이고 성냄을 탐하여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쇠한 곳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이름이 ‘여귀’이다.
간사하게 유혹하기를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축생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이매귀’이고 속이기를 탐하다가 죄가 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어두움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몽염귀’며 원한을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벌레를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고독귀’이고 송사를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정령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망양귀’이며 남을 억울하게 하기를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밝음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역사귀’이고 덮어 감추기를 탐하다가 죄가 된 그러한 사람은 죄가 끝나면 사람을 만나 형체를 이루나니 그 이름이 ‘전송귀’이다.
아난아! 이 사람들은 모두 순수한 감정으로 추락하였다가 업보의 불이 타서 말라지면 위로 올라가서 귀신이 되나니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허망한 업보가 불러들인 것이다. 그러니 만약 보리를 깨달으면 오묘한 성품이 원만하게 밝아져서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니라.
또다시 아난아! 귀신의 업보가 이미 다 끝나면 정과 생각이 모두 다 공허하게 되어 비로소 세상에서 빚졌던 사람이나 원수끼리 서로 만나게 되나니 그 몸은 축생이 되어서 묵은 빚을 같게 되나니라.
바람과 가뭄 귀신이 바람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흉한 것을 상징하는 일체의 다른 종류가 되고 물건에 붙었던 괴상한 귀신이 물건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올빼미 같은 종류가 되며 기운이 부족했던 아귀가 그 기운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식품이 되는 종류가 되고 쇠퇴한 운을 만났던 여귀가 쇠퇴한 운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회충같은 종류가 되나니라.
축생에게 붙었던 매귀가 축생이 죽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여우같은 종류가 되고 어두움에 붙었던 염귀가 어두움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의복의 원료를 만드는 곤충의 종류가 되나니라.
벌레에 붙었던 고독귀는 벌레가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독을 가진 종류가 되고 정령(精靈)과 어울렸던 귀신은 정령이 사라지고 업보가 다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계절을 따라다니는 종류가 되며 밝음과 어울렸던 귀신은 밝음이 사라지고 업보가 끝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일체의 좋은 일을 알리는 여러 가지 종류가 되고 사람에게 의지하였던 귀신은 사람이 죽고 업보가 끝나면 세상에 생겨나서 흔히 사람을 따르는 종류가 되나니라.
아난아! 이들은 모두가 업보의 불길이 말라버렸으므로 저 묵은 빚을 갚고 다시 축생이 되었으니 그런 것들도 모두가 허망한 업보로 불러들인 것이다. 만약 보리를 깨달으면 곧 이 허망한 인연이 본래 있었던 것이 아니니 네가 말한 것과 같이 보연향 등과 유리왕과 선성비구의 이와 같은 악업은 본래 스스로 불러일으킨 것이지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며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니며 사람이 준 것도 아니니라. 자신의 허망한 생각으로 불러들인 것이므로 스스로 돌려 받는 것이니 보리의 마음 속에서는 모두 부질없이 허망한 생각으로 엉켜 맺혀진 것이다.
또다시 아난아! 이러한 축생이 묵은 빚을 갚을 적에 만약 그 갚는 자가 갚을 것보다 더 갚았으면 그러한 중생들은 다시 사람이 되어서 지난날 더 갚았던 것을 도로 찾게 되나니 만약 그 사람이 힘이 있고 겸하여 복덕이 있으면 인간 세상에서 사람의 몸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능력껏 갚아 주겠지만 만약 복이 없는 자라면 다시 축생이 되어서 더 받은 것을 갚나니라.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만약 돈이나 재물을 쓰거나 혹 그 힘을 부릴 적에 보상이 충분하면 그만두어야 하거늘 만약 그 중간에 상대의 목숨을 죽이거나 그 고기를 먹으면 그러한 것은 티끌 같이 오랜 세월을 지냈다 하더라도 서로 잡아먹고 서로 죽이는 것이 마치 굴러가는 바퀴가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과 같아서 끊임이 없으리니 사마타를 닦거나 부처가 세상에 출현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치게 할 수가 없나니라.
너는 지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흉한 것을 알리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어리석은 무리에 참여하고 저 올빼미의 종류는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고집 센 무리에 참여하며, 저 잡혀 먹히던 무리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미천한 무리에 참여하며, 저 여우의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사나운 무리에 참여하고 저 의복의 원료를 만드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노동하는 무리에 참여하며, 저 독한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용렬한 무리에 참여하고 저 아름다운 일을 알리던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총명한 무리에 참여하며, 저 순종하는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통달한 무리에 참여하고 저 계절을 따르던 종류가 갚을 만큼 갚고 형상을 회복하여 사람으로 태어나면 글하는 무리에 참여 하나니라.
아난아! 그들은 다 묵은 빚을 갚았기 때문에 다시 사람의 길을 회복하였으니 모두 시작 없는 과거로부터 업보에 얽혀서 뒤바뀌어 서로 낳고 서로 죽이고 하나니라. 여래를 만나지 못하거나 바른 법을 듣지 못하여 번뇌 속에서 법이 그렇게 윤전하도록 되어 있나니 그러한 무리를 ‘가련한 자’라고 이름하나니라.
아난아! 또다시 어떤 사람이 바른 깨달음을 의지해서 삼마지를 닦지 아니하고 따로 허망한 생각을 닦아 생각을 보존하고 형체를 견고하게 하여 인적이 미치지 않는 산림으로만 다니는 열 가지 신선이 있나니라.
아난아! 저 모든 중생들이 약을 먹어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먹는 도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지행선’이라 하고 풀과 나무를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약의 도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비행선’이라고 하며 금석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변화하는 도가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유행선’이라 하며 진액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덕을 윤택하게 하여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천행선’이라고 하고 정색(精色)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순수한 기운을 마셔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통행선’이라고 하며 주문과 금계를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술법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도행선’이라고 하고 생각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해서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조행선’이라 하며 사귀어 어울림을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감응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정행선’이라고 하고 변화를 견고하게 하기를 쉬지 아니하여 깨달음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이는 ‘절행선’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러한 사람은 모두가 사람들 중에서 마음을 단련하되 바른 깨달음을 닦지 아니하고 따로 장생하는 이치를 터득하여 수명이 천만 세를 사는데 깊은 산 속이나 혹은 큰 바닷가 등에 인적이 이르지 않는 곳에서 산다. 그들도 윤회하는 허망한 생각의 유전이라서 삼매를 닦지 아니하였으므로 과보가 다 하면 흩어져서 여러 갈래의 부류에 들어가나니라.
아난아! 모든 세상 사람들이 항상 머물기를 구하지 아니하여서 아내나 첩의 은애를 버리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사특한 음욕에는 마음이 흘러 빠져들지 아니하여 맑고 고요하여 빛나는 이는 죽은 뒤에 해와 달을 이웃하게 되나니 이와 같은 한 무리는 그 이름을 ‘사천왕천’이라고 하나니라. 자기의 아내에게도 음욕과 애욕이 더욱 얇아져서 청정하게 지낼 적에 온전한 맛을 얻지 못한 이는 죽은 뒤에 해와 달의 밝은 경계를 초월하여 인간의 정상에 살게 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그 이름이 ‘도리천’이니라. 만나면 애욕이 잠깐 어울리나 떠나면 생각이 없어져서 인간 세상의 일에 동요함은 적고 고요함이 많은 이는 죽은 뒤에 허공 중에서 밝게 편안히 머물러서 해와 달의 광명이 위를 비추어도 미치지 못하거든 이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광명이 있나니 그러한 한 무리는 ‘수염마천’이라고 한다. 모든 시간에는 언제든지 고요했다가도 꼭 접촉해야 할 대상이 오면 이를 거절하지 못하는 이는 죽은 뒤에 위로 올라가 정미해져서 아래 세계의 사람이나 하늘의 경계에 접하지 아니하며 이 세계가 다하기에 이르더라도 삼재가 미치지 못하는 이러한 한 무리는 ‘도솔타천’이라고 하나니라. 나는 애욕의 마음이 없으되 상대방의 요청에 따라서 행동하므로 무심하게 행동할 적에 맛이 밀을 씹는 듯한 이는 죽은 뒤에 초월하여 변화하는 곳에 나는 이러한 한 무리는 ‘낙변화천’이라고 하나니라. 세상에 마음이 없으면서도 세상과 같이 일을 행하여서 일을 행하는 어울림에 있어 분명히 초월한 이는 죽은 뒤에 변화가 있고 변화가 없는 데에 두루 뛰어넘어 벗어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타화자재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여섯 하늘이 형상은 비록 동요하는 데서 벗어났으나 마음의 자취가 아직은 서로 어울리니 처음부터 여기까지는 ‘욕계’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세상에 모든 마음을 닦는 사람이 선나에 의지하지 못하여 지혜는 없으나 다만 능히 몸을 단속하여 음욕을 행하지 않아서 다니거나 않거나 간에 생각이 모두 없어져서 애욕의 더러움이 생기지 아니하여 욕계에 머물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즉시 그 몸이 범천의 무리가 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범중천’이라고 하나니라. 애욕의 습기가 이미 없어져서 애욕을 여읜 마음이 나타나고 모든 계율에 대해 좋아하여 순하게 따르면 이 사람은 즉시 범덕(梵德)을 행할 수 있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범보천’이라고 하나니라. 몸과 마음이 오묘하고 원만해서 위의(威儀)에 결함이 없고 금하는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고 밝게 깨닫기까지 하면 이 사람은 때를 따라 응하여 범중을 통솔하게 되어서 대범왕이 되나니 이러한 한 무리는 ‘대범천’이라고 이름하나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무리는 모든 고뇌가 핍박하지 못한다.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올바로 닦지 못했으나 청정한 마음 속에 모든 정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에 동요하지 아니하므로 ‘초선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그 다음은 범천이 범천 사람을 통솔하고 범행이 원만하게 되어서 맑은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여 고요하고 맑아서 빛을 내는 그러한 한 무리는 ‘소광천’이라고 하나니라. 빛과 빛이 서로 어울려서 밝게 비침이 끝이 없으며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 유리와 같이 된 이러한 한 무리는 ‘무량광천’이라고 하나니라. 원만한 광명을 흡수해 지켜서 교화의 실체를 성취하여 청정한 교화를 발휘하여 응용이 다함이 없는 이러한 한 무리는 ‘광음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흐름은 모든 근심 걱정이 핍박할 수가 없을지니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올바로 닦은 것은 아니나 청정한 마음속에 거친 번뇌가 이미 항복받았으므로 ‘이선’이라고 이름하나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하늘 사람들이 원만한 광명으로 음성을 이루고 그 소리로 묘한 이치를 나타내서 정밀한 행동을 이루고 적멸의 즐거움에 통한 그러한 한 무리는 ‘소정천’이라고 하나니라. 청정한 허공이 앞에 나타나 한계가 없이 펼쳐져서 몸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하여 적멸의 즐거움을 이룬 그러한 한 무리는 ‘무량정천’이라고 하나니라.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원만하게 청정해지고 청정한 덕이 이룩되어 수승하게 의탁할 곳이 앞에 나타나서 적멸의 즐거움으로 돌아가면 이러한 한 무리는 ‘변정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세 가지 수승한 흐름은 크게 순하게 따름을 갖추어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한량없는 즐거움을 얻나니 비록 참다운 삼마지를 올바르게 닦은 것은 아니나 편안한 마음속에 기쁨이 다 갖추어졌으므로 ‘삼선’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또 다음 하늘 사람은 몸과 마음을 핍박하지 아니하여 괴로움의 원인이 이미 다하였으나 즐거움도 항상 머무르지 않는지라 오래되면 반드시 무너지리니 그 괴롭고 즐거운 두 마음을 한꺼번에 다 버려서 거칠고 무거운 현상이 없어지고 청정한 복의 성품이 생긴 그러한 한 무리는 ‘복생천’이라고 하나니라. 버리는 마음이 원융해져서 수승한 이해가 청정해지고 복이 막힘이 없는 가운데 오묘함을 얻어 순하게 따라서 미래제를 다한 이와 같은 한 무리는 ‘복애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하늘에서부터 두 갈래 길이 있으니 만약 앞에 마음에서 한량없는 청정한 광명에서 복덕이 원만하게 밝아서 닦아 증득하여 머문 그러한 한 무리는 ‘광과천’이라고 하나니라. 만약 앞에 마음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싫어해서 버리는 마음을 정밀하게 연마하되 끊임없이 계속하여 버리는 길을 원만하게 궁리하면 몸과 마음이 다 없어지며 마음이 불 꺼진 재처럼 엉겨서 오백 겁을 지나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이미 나고 없어지는 것으로 원인을 삼고 나고 없어지지 않는 성품은 발명할 수 없어서 처음 반 겁은 멸하여 없어지며 뒤의 반 겁은 생기는 그러한 한 무리는 ‘무상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네 가지 수승한 흐름은 모든 세상의 여러 가지 괴롭고 즐거운 대상들이 움직이게 할 수 없는 것이니 비록 움직임이 없는 참다운 경지는 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얻은 바가 있는 마음에 공부의 작용이 순수하게 익숙해졌으므로 ‘사선’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가운데 또다시 다섯 가지 돌아오지 않는 하늘이 있으니 아래 세계 가운데 九품의 습기를 한꺼번에 끊어버리고 괴롭고 즐거움을 모두 잊어서 아래 세계에서는 있을 데가 없으므로 버리는 마음이 같은 분수 중에서 있을 곳을 정립한 것이니라.
아난아! 괴롭고 즐거움이 둘 다 없어져서 다투는 마음이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한 무리는 ‘무번천’이라고 하나니라. 기(機)와 괄(括)이 따로따로 행하여서 서로 상대하는 경지가 없는 그러한 한 무리는 ‘무열천’이라고 하나니라. 시방 세계에 오묘하게 보는 것이 원만하게 맑아서 다시 티끌의 형상과 모든 잠겨진 때가 없어진 그러한 한 무리는 ‘선견천’이라고 하나니라. 정밀하게 보는 것이 앞에 나타나서 무엇을 하든지 걸림이 없는 그러한 한 무리는 ‘선현천’이라고 하나니라. 모든 기(幾)를 끝까지 궁리하고 색성의 성품까지 궁리해서 변두리의 경계가 없는 경지에 들어간 그러한 한 무리는 ‘색구경천’이라고 하나니라.
아난아! 이 불환천은 저 모든 사선천의 네 천왕(天王)들도 유독 공경히 듣기만 하고 알거나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지금의 세상에 넓은 들과 깊은 산에 있는 성스러운 도량의 터는 모두가 아라한들이 머물러 있는 것이므로 세상의 추악한 사람들로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난아! 이 열 여덟 하늘은 홀로 행하고 어울림이 없으나 형상의 더러움을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여기까지를 ‘색계’라고 하나니라,
또다시 아난아! 그 유정천(有頂天)인 색변제(色邊際)로부터 그 사이에 다시 두 갈래 갈림길이 있으니, 만약 마음을 버려서 지혜를 발명하여 그 지혜의 빛이 원만하게 통하면 곧 티끌 세계에서 벗어나 아라한을 이루어 보살승(菩薩乘)에 들어가나니, 그와 같은 한 무리는 ‘마음을 돌이킨 큰 아라한’이라고 하나니라. 가령 마음을 놓아버리는데 있어서 싫은 것을 버리는 것을 성취하여 몸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서 그 장애를 없애고 허공에 들어간 그와 같은 한 무리는 ‘공처’라고 하나니라. 모든 장애가 이미 사라지고 장애가 없어진 그 없는 것 마저도 없어져서 그 가운데 오직 아뢰야식만 남고 말나의 반분 미세한 것만 온전한 그와 같은 한 무리는 ‘식처’라고 하나니라. 공과 색이 이미 없어지고 의식하는 마음마저 다 없어져서 시방이 고요해져서 아득히 갈 데가 없는 그와 같은 한 무리는 ‘무소유처’라고 하나니라. 식성이 움직이지 않거늘 없어지는 것을 끝까지 연구하여 다함이 없는 가운데서 다하는 성품을 발하여 펴서 있는 듯하면서도 있는 것이 아니며 다한 듯하면서도 다한 것이 아닌 그와 같은 한 무리는 ‘비상비비상처’라고 하나니라. 이들은 공함을 궁구하였으되 공한 이치를 다하지 못하였나니라. 불환천으로부터 성인의 도가 다한 그와 같은 한 무리는 마음을 돌리지 못한 ‘둔한 아라한’이고 만약 무상천의 모든 외도천으로부터 공함을 궁구하고 돌아오지 못하여 정기가 몸 밖으로 새는 것이 있는 데에 미혹하고 들은 것이 없으면 문득 윤회에 들어가나니라.
아난아! 이 모든 천상에 여러 하늘 사람들은 곧 범부의 업과를 받은 것이므로 그 업보가 끝나면 다시 윤회에 들어가거니와 저 천왕들은 곧 보살이 삼마지에 노닐면서 점차로 증진하여 성인의 무리로 회향하여 수행하는 길이니라.
아난아! 이 네 가지 공한 하늘은 몸과 마음이 다 없어지고 선정의 성품이 앞에 나타나서 업과의 색이 없어진 것이니 여기서부터 끝까지를 ‘무색계’라고 하나니라. 이것은 모두가 오묘한 깨달음의 밝은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허망함을 쌓아 그것이 발생하여 허망하게 삼계가 생긴 것이거늘 중간에서 허망하게 칠취를 따라 빠져 들어가는 보특가라가 제각기 그 무리를 따르나니라.
또다시 아난아! 이 삼계 가운데 다시 네 가지 아수라의 무리가 있으니 만약 귀신의 길에서 법을 보호한 힘으로 신통을 힘입어 공한 경지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아수라는 알에서 생겨나니 귀신의 길에 간섭 받는 것이고, 만약 하늘 가운데에서 덕이 모자라 아래로 떨어져서 그가 거처하는 곳이 해나 달을 이웃하나니 이러한 아수라는 태에서 생겨나니 사람의 길에 간섭 받는 것이며, 어떤 수라왕이 세계를 집착하여 지켜서 힘이 세고 두려움이 없어서 범왕과 제석천과 사천왕과 권세를 다투나니 이러한 아수라는 변화로 인하여 생겼으니 하늘의 길에 간섭 받고 그 밖에 따로 한 등급 낮은 아수라가 있으니 큰 바다 속에서 생겨나 수혈구(水穴口)에 잠겨 있으면서 아침에는 허공에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물에 돌아와서 자나니 이러한 아수라는 습기로 인해 생겨나서 축생의 길에 간섭 받나니라.
아난아! 이와 같이 지옥, 아귀, 축생, 신선, 하늘, 아수라 등 일곱 갈래의 길을 정밀하게 연구하면 모두가 어둡고 잠긴 작용이 있는 현상들이다. 허망한 생각으로 생을 받고 허망한 생각으로 업보를 따르거니와 오묘하고 원만하게 밝은 작용이 없는 본래 마음에는 모두가 허공의 헛꽃과 같아서 원래 집착하는 것이 없고 다만 하나의 허망함뿐이어서 다시 어떠한 근거나 실마리가 없나니라.
아난아! 이 모든 중생들이 본래의 마음을 알지 못하여 이렇게 윤회를 하면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도록 참되고 청정함을 증득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사음과 살생과 훔치는 일을 따르기 때문이니 이 세 가지를 범하지 아니하면 또 사음이나 살생 훔치는 것이 없는 데에 태어난다. 그것이 있는 데는 ‘귀신의 무리’라고 하고 없는 데는 ‘하늘’이라고 하니 있는 데 없는 데가 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윤회하는 성품을 일으키나니 만약 삼마지를 묘하게 발명할 수 있게 되면 오묘한 성품이 항상 고요해서 있는 데나 없는 데가 모두 없어지고 나아가 없어졌다고 그것마저도 없어지고, 오히려 사음하지 않고 살생하지 않고 훔치지 않는 것까지도 없어질 것이거늘 어찌하여 또다시 사음이나 살생이나 훔치는 것을 따르는 일이 있으리요.
아난아! 세 가지 업인을 끊지 못하는 것은 제각기 사사로운 생각이 있기 때문이니 제각기 사사로운 마음이 있음으로 인하여 모든 사사로움이 같은 분한에 정해진 곳이 없지 아니하니라. 부질없는 생각으로부터 발생하나니 부질없는 생각이 생기는 원인이 없으므로 찾아서 궁구할 수도 없나니라. 네가 힘써 수행하여 보리를 얻고자 할진댄 세 가지 미혹을 끊어야 할지니 세 가지 미혹을 다 끊지 못하면 비록 신통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모두가 세상의 작용이 있는 공용(功用)이다. 습기를 없애지 못하면 마구니의 길에 떨어져서 비록 그 허망함을 제거하고자 하더라도 허위만 더하게 되나니 여래께서 가엾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너의 허망한 것은 네 자신이 지은 것이지 보리의 허물이 아니니라.
이와 같은 말은 바른 말이라 할 것이요 만약 이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곧 마왕의 말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