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바사닉왕의 딸 선광(善光)의 인연
옛날 바사닉왕에게 선광(善光)이라는 딸이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단정하여 부모들은 사랑하고 온 궁중에서 모두 존경하였다.
그 아버지는 딸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힘으로 말미암아 온 궁중이 모두 사랑하고 존경한다.”
딸은 대답하였다.
“저에게 업의 힘이 있기 때문이요, 아버지의 힘이 아닙니다.”
이렇게 세 번 말하였으나 딸의 대답은 여전하였다.
아버지는 화를 내어
“과연 너에게 업의 힘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리라.”
하고, 좌우에 명령하였다.
“이 성안에서 가장 빈궁한 거지 한 사람을 데리고 오너라.”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고, 가장 빈궁한 거지 한 사람을 찾아, 왕에게 데리고 왔다. 왕은 곧 그 딸 선광을 거지에게 아내로 주면서 딸에게 말하였다.
“만일 너에게만 업의 힘이 있고 내 힘은 없다면, 지금부터 앞의 일을 징험해 알 것이다.”
그러나 딸은 여전히
“저에게 업의 힘이 있습니다.”
하고, 그 거지를 데리고 집을 떠났다. 그는 그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부모님이 계십니까?”
거지는 대답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전에 이 왕사성 안에서 첫째 가는 장자였었는데,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나는 거지가 되었소.”
선광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지금 옛날의 그 집터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 터는 알지만 지금은 집도 담도 다 허물어지고 빈 땅만 남아 있습니다.”
선광이 남편을 데리고 옛 집터로 가서 돌아다니자 가는 곳마다 땅이 저절로 꺼지고, 땅 속에 묻혔던 보물광이 스스로 나타났다.
그는 그 보물로 사람을 부려 집을 지었는데, 한 달이 차지 못해 집이 모두 이루어지고, 궁인(宮人)과 기녀들은 그 안에 가득 차며 종과 하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 때 왕은 문득 생각이 났다.
“내 딸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이 대답하였다.
“궁실과 재물이 왕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부처님 말씀은 진실이다. 자기가 선악을 짓고 자기가 그 갚음을 받는 것이다.”
딸은 그 날로 남편을 보내어 왕을 청하였다. 왕이 청을 받고 딸 집에 가보니, 털자리와 담요와 집의 장엄이 왕궁보다 더 훌륭하였다. 왕은 그것을 보고 처음 보는 일이라 찬탄하면서, 그 딸의 말이 옳은 줄 알고 이렇게 말하였다.
“자기가 업을 짓고 스스로 그 갚음을 받는 것이다.”
왕은 부처님께 가서 여쭈었다.
“이 딸은 전생에 무슨 복업을 지었기 때문에 왕가에 태어나 몸에 광명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거 91겁 전에 비파시(毘婆尸)라는 부처님이 계셨고, 그 때 반두(盤頭)라는 왕이 있었으며, 그 왕에게는 첫째 부인이 있었다.
비바시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에 반두왕은 그 부처님 사리로 칠보탑(七寶塔)을 일으켰고, 왕의 첫째 부인은 하늘관[天冠]을 잘 털어 비파시부처님 동상 머리에 씌우고 하늘관 안의 여의주를 내어 문설주 위에 달매, 그 광명이 세상을 비추었다. 그는 이내 발원하였다.
‘장래에 내 몸에는 자마금빛의 광명이 있고, 영화롭고 부귀하여 삼악 팔난(三惡八難)의 곳에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왕이여, 그 때 왕의 첫째 부인이 바로 지금의 저 선광이오.
그가 가섭부처님 때에 가섭여래와 네 큰 성문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하였을 때 남편이 그것을 만류하자 그녀는 남편에게 청하였소.
‘나를 만류하지 마십시오. 내가 저분들을 청하여 충분히 공양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남편의 허락을 받고 공양을 마치게 되었소.
왕이여, 그 때의 그 남편이 바로 오늘의 저 남편이고, 그 아내는 오늘의 저 아내요. 남편은 그 아내의 공양을 만류하였기 때문에 항상 빈궁하였다가 다시 아내의 공양을 허락하였기 때문에 아내의 덕으로 지금 크게 부귀하여졌지만 뒤에 아내가 없어지면 그는 도로 빈궁하게 될 것이요. 이와 같이 선악의 업이 따라 다니는 것은 일찍 어긋나는 일이 없었소.”
왕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행업을 깊이 통달하여 스스로 잘난 체하지 않고, 깊이 믿고 깨달아 기뻐하면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