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바사닉왕의 추한 딸 뇌제(賴提)의 인연
옛날 바사닉왕에게 뇌제(賴提)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열여덟 가지 추한 꼴을 하고 있어 도무지 사람같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그 때 바사닉왕은 나라에 영을 내려 사람을 구하였다.
“어떤 양민의 아들로서 빈궁하고 고독한 이가 있으면 데리고 오라.”
그 때 시장 주변에 어떤 장자의 아들이 홀로 외로이 구걸하면서 살아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왕에게 데리고 갔다. 왕은 그 사람을 데리고 후원으로 들어가 약속하면서 분부하였다.
“내게 딸이 있는데, 얼굴이 추하여 남에게 보일 수가 없다. 지금 그대의 아내로 주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자의 아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왕의 분부시라면 가령 개를 준다 해도 사양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공주 이온데 어떻게 싫다 하겠습니까?”
왕은 곧 그에게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하고, 궁실을 지어 주고는 분부하였다.
“이 여자는 얼굴이 추하니, 부디 남에게 보이지 말라. 나갈 때에는 문을 밖으로 걸고, 들어와서는 문을 안으로 닫는 것을 하나의 법식으로 하라.”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그와 친한 벗이 되어 잔치를 베풀고 놀게 되었는데, 모이는 날에 다른 장자의 아들들은 그 부인과 함께 와서 모였으나, 이 왕의 딸만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은 “이후의 모임에는 모두 그 부인을 데리고 오되, 만일 오지 않으면 많은 재물로 벌을 매기자”라고 서로 약속하였다.
그 뒤에 다시 모임이 있었으나 이 가난한 장자의 아들은 여전히 그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았기에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중한 벌을 주었으나, 그는 그 벌을 공손히 받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약속하였다.
“내일 다시 모일 때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더욱 중한 벌을 주리라.”
그리하여 그는 두번 세번 벌을 받았지만 그 모임에 부인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 뒤에 그는 집에 들어가자 부인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 때문에 여러 번 벌을 받았소.”
부인이 물었다
“왜 그랬습니까?”
“여러 사람들의 약속이 있었소. 모여서 노는 날에는 모두 부인을 데리고 모임에 나오도록 했는데, 나는 당신을 데리고 나가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라는 왕의 분부를 받았기 때문에 여러 번 벌을 받은 것이요.”
부인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부끄러워하고 못내 슬퍼하여, 밤낮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였다.
뒷날 다시 연회가 있어서 남편이 또 혼자 나가자, 부인은 방에서 혼자 더욱 간절히 발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많은 이익을 주십니다만 저는 지금 무슨 죄로 홀로 그 은혜를 입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그 마음에 감동되어 땅에서 솟아 올랐다. 그녀가 처음으로 부처님 머리털을 뵙고 존경하고 기뻐하자, 그녀의 머리털은 곧 변하여 아름다운 머리털이 되었다.
다음에는 부처님 이마를 뵙고 또 다음에는 눈썹·눈·귀·코·몸·입을 뵙자, 뵐 때마다 기쁨은 더욱 더하여 그 몸에 변화가 일어나 추한 것은 아주 없어지고 얼굴이 저 천녀와 같이 되었다.
그때 여러 장자 아들들은 가만히 서로 의논하였다.
“저 왕의 딸이 우리 모임에 나오지 않는 것은 반드시 보통 사람보다 미인이거나, 혹은 아주 못났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저 남편에게 술을 먹여 정신 없이 만들어 놓고, 그 열쇠를 가지고 가서 문을 열어 보자.”
그리하여 그를 술에 취하게 한 뒤에, 그가 차고 있는 열쇠를 가지고 여럿이 가서 문을 열어 보았다. 거기서 그들은 왕의 딸이 너무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 문을 닫고 돌아왔다.
그 때 그 남편은 아직도 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므로 그 열쇠를 도로 그 허리 밑에 채워 두었다.
남편은 잠을 깨어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열고, 그 부인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괴상히 여겨 물었다.
“당신은 어떤 처녀이기에 내 방에 와서 있습니까?”
부인이 말하였다.
“당신 아내 뇌제입니다.”
남편은 이상히 여겨 다시 물었다.
“어떻게 갑자기 그런 모습이 되었습니까?”
부인이 대답하였다.
“당신이 저 때문에 여러 번 벌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몹시 부끄러워하여, 부처님을 간절히 생각하자 부처님이 땅에서 솟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더니 제 몸이 이렇게 아름답게 변하였습니다.”
그는 매우 기뻐하여 곧 왕에게 들어가 아뢰었다.
“공주가 저절로 아름답게 변하였습니다. 이제 왕은 와서 보소서.”
왕은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딸을 불러 보고 못내 기뻐하면서도 이상히 여겨 딸을 데리고 부처님께 나아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딸은 무슨 인연으로 깊은 궁중에 태어났으나 몸이 추하여, 사람들이 보고는 놀라고 괴상히 여기며, 또 무슨 인연으로 지금 갑자기 아름답게 변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에 어떤 벽지불이 날마다 걸식하면서 어떤 장자집 문 앞에 이르렀을 때, 그 장자의 딸이 밥을 가지고 나와 벽지불에게 주었소. 그 때 그녀는 벽지불의 몸이 추한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소.
‘이 사람은 매우 추하다. 얼굴은 고기 껍질 같고 머리털은 말 꼬리 같구나.’ 그 때 장자의 딸은 바로 지금의 이 왕의 딸이오. 그 벽지불에게 밥을 준 인연으로 궁중에 태어났고, 그 부처를 비방하였기 때문에 몸이 추하며, 부끄러워하고 간절한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나를 보게 되었고, 기뻐하였기 때문에 몸이 아름답게 변한 것이오.”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공손히 예배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