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천송반야경 12. 공의 의미에 대하여
사리불 장로가 물었다.
“그러면 장로 수보리여, 모든 것을 아는 부처님의 지혜 본성도 공이고, 또 대자대비하신 보살대사도 공이고, 또 번뇌 많은 중생의 업도 공이고 이렇게 모든 것이 다 공이라면, 그 어떤 누구라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도 이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까?”
또 중생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도 자신의 번뇌 업장을 모두 소멸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수보리 장로는 사리불 장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리불 장로여, 나는 공에 대해서조차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조차도 실체적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공이 실체적 대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여 그것을 타인에게 내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은 실체적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거기에 도달하여 그것을 타인에게 내보일 수 없습니다.”
사리불 장로가 물었다.
“그렇다면 도데체 공이란 무엇입니까?”
수보리 장로가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공은 결코 공이 아닙니다.왜냐하면 공이라고 하는 언어가 곧 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리불 장로가 말했다.
“참으로 수보리 장로는 설법제일의 자리에 서 있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수보리 장로는 그 누구에게 그 어떤 질문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즉시 여법한 말씀을 설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수보리 장로가 말했다.
“사리불 장로여,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입장을 가지지 않는 일)을 드러내는 불제자들의 성품일 뿐입니다.”
사리불 장로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수보리 장로여, 그러면 어제 보살대사의 참된 도란 어떠한 것입니까?”
수보리 장로가 말했다.
“그것은 반야바라밀입니다. 왜냐하면, 반야바라밀이야말로 모든 것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야바라밀은 무집착의 삶을 낳고, 또 무집착의 삶은, 아름다운 평화를 맛보게 합니다.”
팔천송반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