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의 소리없는 소리를 들으라
-법상스님-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혹은 이 세상이 발전해 나가는 방식의 가장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생각’이요, ‘관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내곤 한다.
머릿 속에서 생각해 낸 것, 혹은 머릿속에 주입해 왔던 수많은 관념들이 이 세상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일체유심조.
마음 낸 대로 이루어진다는 그 한 가지 이치는 언제까지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명제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렇듯 세상을 창조해 내는 생각이라는 것, 관념이라는 것의 본질이 어떤 것이냐의 문제다.
생각이 관념이 본질적이고 지혜로운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그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극락의 천상의 뜨락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은, 관념은 본질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다.
생각해 낸 것, 고안해 낸 것들 속에서 지혜로운 진리의 향기를 듣기란 어렵다.
지혜로운 삶, 본질적인 삶의 부분들은 생각과는 무관하다.
생각이나 관념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와 관련된 것들이기 쉽다.
아상, 아만, 아집들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은 끊임없이 ‘어떻게 하면 나에게 이익이 될까’를 궁구한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그 어떤 생각도 하지 말란 말인가? 말로 표현하기가 부족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더 의미있는 단어를 찾아 본다면 직관 혹은 느낌이라는 표현을 들고 싶다 직관은 생각보다 더 깊다.
가슴이 머리보다 더 깊다.
더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나온다.
그것은 때때로 내 안에 있는 신의 소리를, 붓다의 메시지를 품고 온다.
그렇기에 예민하게 깨어있는 존재일 수록 그 소식을 더 온전하게 들을 수 있다.
생각이 많고, 번뇌가 많고, 욕심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은 이들에게는 언제나 직관보다는 자신의 지식과 생각이 우선이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가슴보다는 머리를 중시한다.
우리의 생각은 전체적이지 않고, 우주적이지 않으며, 연기적이지 않다.
한 가지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 한 가지 문제에 한정하여 생각을 짜낸다.
그러나 본질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면 그 문제는 그 한 사람만이 가지는 그 한 순간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라 온 우주적이고도 연기적인 사건으로써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문제는 결코 단편적일 수가 없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그것은 우주적이다.
전 법계의 연기적인 그물코가 정교하게 씨줄날줄처럼 이어져 그 연관선 상에 존재하는 상의상관적인 사건이다.
그러니 생각이, 머리가 어찌 그것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전 우주적인 광대무변한 소식을 어찌 우리의 머리가 생각으로 짜맞출 수 있단 말인가 밥을 굶고 있거나,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를 만나면 누구나 그 순간 돕고싶은 마음, 자비심이 저절로 생겨난다.
그것은 직관이요 느낌이다.
그러한 자비심은 생각으로 짜 낸 것이 아니다.
그 직관을 따르면, 가슴을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생각은 끊임없이 속삭일 것이다.
‘네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된다고 저 사람을 도와?’ ‘저 사람에게 주고 나면 너는 뭘 먹고 살려고…
?’ 순간 생각은 직관을 무시하고 만다.
나아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온갖 생각과 교묘한 관념으로 무장한다.
이제 자신의 행동은 타당한 것이 되고, 논리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정당성을 보장받는다.
그런 것들이 생각이 하는 일이다.
언제나 생각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쪽으로 방향을 튼다.
온갖 나에게 도움되는 논리를 총동원한 채.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생각을 굴려 온갖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하여 결론을 도출해 내려고 애쓰지 말라.
차라리 생각과 논리를 잠시 옆으로 비켜 놓은 채 마음을 관함으로써 텅 빈 가운데 충만하게 피어나는 직관의 소식에 귀를 기울여 보라 직관은 옳거나 그르다고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이 일을 선택하거나, 저 일을 선택하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생각처럼 내 안에서 직관의 대답이 분명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직관의 소리없는 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열린 가슴으로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 꽃이 피는 소리처럼, 나뭇잎이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리는 듯 마는 듯 연꽃향기같은 소식이 들려 올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나를 놓아버리고, 내 생각을 놓아버리고, 내면의 소리없는 소리에 내 존재를 내맡기고 따를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본 흐름을 타기 시작할 것이다.
생각을 따르지 말고 직관을 이해하라.
자연스럽게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직관의 소리를 들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