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불교의 뿌리 / 보조 지눌스님 <3>
.bbs_contents p{margin:0px;} 3년 뒤 하가산 보문사에서는 선과 교가 계합하는 것을 찾기 위하여 3년에 걸쳐 대장경을 열람하였다.
여기서도 우리는 구가 선교의 융회를 위하여 얼마나 진지하게 탐구하였는가를 잘 볼 수 있다.
마침내 그는 李通玄의 화엄론<華嚴論> 에서 선교가 둘이 아님을 확신하고 “세존의 입으로 설한 것이 교요, 조사가 마음으로 전한 것이 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수행과 탐구를 통한 체험과 확신을 바탕으로 명종 20년(33세)에는 팔공산 거조사로 옮겨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실천에 옮겼다.
이는 당시의 불교를 일선하려는 큰 혁신운동이었다.
그의 깨침을 향한 피나는 정진은 드디어 41세 때 완성되었다.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대혜어록<大慧語錄> 을 읽다가 “선정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또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반연에 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먼저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이나 날마다 반연에 응하는 곳이나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구하지도 말아야 한다.
만일 갑자기 눈이 열리면 비로소 그것이 집안일임을 알 것이다”하는 구절에서 크게 깨친 것이다.
**대혜어록은 서장<書狀>으로 정리되어 강원의 기초입문서로 쓰이고 있음. 이제 남은 일은 그 깨침을 기본으로 한 세찬 이익중생의 자비행이었다.
그는 선종 3년(1200)에 전남 순천 송광사로 옮겨 남은 생을 그곳에서 교화 하는데 진력하였다.
거조사에 있던 정혜결사도 그곳에 옮겨 修禪社로 개칭 한국불교 유신의 노력을 계속하였다.
수선사의 선풍은 定과 慧를 고루 닦으며 선과 교를 함께하는 독특한 것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은 수심결<修心訣> 근수정혜결사문<勤修定慧結社文>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진심직설<眞心直說> 법집별행록절요<法集別行錄 節要>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화엄론절요<華嚴論 節要>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법집별행록절요>와 <계초심학인문>은 현재까지도 한국불교 승려 교육의 필수 교재로 쓰이고 있으며 <수심결> <진심직설>은 한국불교에서도 가장 널리 읽히는 저술로, 일찍부터 중국과 일본에 소개되어 애독되고 있다.
근래 미국의 하와이대학에서 그의 저술을 영역, 출판하였음은 반가운 일이다.
(Robert Buswell; The Approach to Zen, University ofHawaii Press, 1983). 이제 그의 영향력은 세계 사상계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근래 지눌사상을 주제로 한 박사학위 논문이 미국에서 3편 일본과 대만에서 각각 1편이 나오고 있음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