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광스님─스스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길러라

스스로 기도할 수 있는 힘을 길러라

지광스님

여러 불자들에게 이런 하소연을 종종 듣는다.

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도 문제투성이인 아들은 전혀 개과천선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수록 더 속을 썩이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한탄을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은 내가 아들딸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아들딸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아이들은 변하지 않는다.

겉으로만 드리는 정성으로는 일시적인 효과밖에 거둘 수 없다.

기도의 중요한 의의 가운데 하나는 무엇보다도본인들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처님도 “소를 물가까지는 끌고 갈 수 있지만 소에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라고 말씀하셨다.

(지장경)을 보면 후손들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조상천도를 하면 그 공덕의 칠분의 일은 영가(靈駕)들 것이 되고, 나머지 칠분의 육이 기도하는 후손들에게 돌아간다는 말이 나온다.

기도의 가장 큰 공덕은 기도하는 사람의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어머니는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기도를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더라도 참회를 통해 뉘우칠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갖춰 있지 않으면 기도를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참회에는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이 있다.

마음과 몸으로 참회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음 깊숙이 진심으로 참회해야만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진다.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절을 삼천 번 한다 해도 그것은 다만 극기 훈련, 즉 몸뚱이를 이기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참회를 통해 마음을 고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뉘우치는 것은 과거에 내가 했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 한쪽에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기를 꺼리는마음이 자리 잡고 있어서 자기 부정에 대해 강한 저항을 느낀다.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하는 그릇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의 삶은 발전이 없고 그 삶이 고통스러울 뿐이다.

참회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자기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세상만사 다 변해 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한다.

변화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 가는 것조차 싫어한다.

참회는 내 잘못을 시인하고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만 잘났고 상대방은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남을 인정하는 마음이 이렇게 약하므로 마음이 성숙되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다 힘든 것이다.

많은 분들이 자식을 위해 절에 가서 불사를 하고 기도를 올렸는데도 자식이 여전히 문제를 일으키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한숨을 쉰다.

부모가 슬기롭고 지혜로워야 한다.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라는 말이 있다.

“백 년 동안 탐착해 모은 것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되지만삼 일만 마음을 닦아도 그것은 영원한 보배가 된다.” 라는 뜻이다.

한 생각 잘 닦으면 무량겁 동안의 공덕이 된다.

자식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 주기보다는 기도를 통해 마음을 닦고 진정으로 참회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자.

기도하고 정진하며 참회의 삶을 산다는 것은 내가 나를 이기는 작업이다.

참회를 하면 참회하는 만큼 밝아지고 현명해질 것이다.

참회를 통해 자기를 개선해 갈 때 행복한 미래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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