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광스님─해탈 길로 나아가는 이에게 가피도 따른다

해탈 길로 나아가는 이에게 가피도 따른다

-지광스님-

무지한 사람일수록 잘못된 선택을 한다.

부족한 사람일수록 고통의 늪이 깊어진다.

마음공부가 부족해 병마에 시달리고 수행이 부족해 실패하기 쉽다.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 유전공학자 자크 모노는 유전자를 연구하면서 “탁월한 지혜(Uncommon Wisdom)가 유전자의 움직임을 좌우하는 듯 여겨진다.

우연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이 모든 창조의 근원이며 혁신의 원천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탁원한 지혜 거룩한 힘, 불가사의한 힘이라 불리는 존재는 무엇일까? 부처님 신 밖에 더 있는가? 부처는 마음이요, 마음의 흐름인 생각은 기의 흐름이다.

기는 전자로 원자로 분자로 질량으로 응집된다.

기는 살기 활기 생기 등등해서 어떤 정보를 지닌 에너지라 할 수 있다.

결국 기로 만들어진 질량은 수많은 정보를 머금고 있다.

좋은 정보는 좋은 길로 나쁜 정보는 나쁜 길로 나아간다.

좋은 마음은 좋은 기운을 만들어 좋은 길로, 나쁜 마음은 나쁜 기운을 만들어 나쁜 길을 열어간다.

마음 따라, 생각 따라 유전자가 만들어지고 우량유전자는 건강으로 좋은 길로, 열등 유전자는 질병으로 나쁜 길로 전개된다.

왜 수행이 필요할까는 유전자의 흐름만 봐도 알 수 있다.

수행은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만상을 살라는 종교라 하는 이유는 수행을 통해 유전자를 아름답게 만들어 부처님 나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부처님과 함께 하는 자, 진리와 함께 걷는 자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새로운 생명을 산다.

항상 사람들은 자신에게 기회가 부족했음을 탓한다.

부처님께서는 결코 그 같은 자세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기회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행이 부족하고 기도가 부족함을 탓하라는 것이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유전자의 질이 바뀐다.

수행을 계속하면 업장을 녹여내며 좋은 선택의 길이 열리는 이유를 알라.

연습이 대가를 만드는 이유를 알라.

그에게 우주는 행운의 바다다.

흔히 “길을 들인다”라고 얘기한다.

길을 들이는 것은 길을 내는 것이요 도를 닦는 것에 다른 말이 아니다.

수행은 끊임없이 부처님과 나 사이를 좁혀가는 것이요 부처님의 거룩한 능력이 함께 하는 자리인 것이다.

얼마나 부처님과 가까운가? 부처님과 나 사이가 가깝다는 것은 그만큼 영광이요 안락이요 평안이다.

열심히 기도하는 길, 참선하는 길, 수행하는 길은 부처님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혀가기에 얼마나 아름다운 길인가? 부처님과 거리가 크다는 사실은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부처님과 하나 되면 지고의 아름다움이 열리고 무한창조와 무한성취가 열린다.

부처님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지극히 자기를 사랑하는 행위다.

우리의 마음이 부처님과 떨어져 있으면 악마가 득세하고, 부처님과 하나 되면 무한 평안이 있기에 우리 마음의 변덕이란 마음 가운데 부처와 악마의 변곡점이다.

부처님 마음이다가도 이내 번뇌가 끓어 악마가 득세하면 내 마음이 이내 교란상태가 되고 변덕스러워진다.

수행이 왜 필요한가? 항상 부처님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만상이 모두 교란됐다가도 다시 안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유도 부처님을 향해 나가고자 하는 영원의 의지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는 분명 부처를 향해 나가는 원력이 있다.

부처님 말씀대로 해탈의 향해 끝없이 나아가려는 투지가 있다.

그래서 수행하는 자는 끝없는 해탈 속에 사는 자이다.

무지에 빠져 미망 속에 헤매고 있는 중생들은 이 고통에서 저 고통으로 분주히 돌아다닐 뿐 고통의 진정한 원인도, 고통에서 헤어날 길도, 해탈의 길도 모르고 있다.

끝없는 수행을 통해 오분법신향의 가르침인 ‘계향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에서와 같이 자신의 기를 바꾸라.

부처님을 향해 끝없는 해탈의 길을 나아가는 자에게 부처님의 무량가피가 함께하신다.

그는 무한한 부처님의 가피 속에 산다.

부처님께로 끝없이 가까이 가라.

가피는 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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