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회
지광스님
1.
돌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2.
윤회는 완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3.
카르마(업)의 법칙 4.
우리는 윤회를 거듭하며 진화해 나간다.
5.
이 우주는 카르마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6.
참회는 카르마가 녹아져 내리는 과정이다.
1).
돌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일체 만물들은 모두가 다 회전을 하고 있습니다.
원자의 세계로부터 광대무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돌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극소 미립자의 세계로부터 그 모든 내용들을 확장해서 광대무변한 우주를 살펴보면 혹성도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고 또 달이라고 하는 존재도 지구 주위를 돌고 있으며 태양도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 우주를 돌고 있습니다.
또 이 거대한 은하계 우주도 화엄경에 따르면 또다른 커다란 초대형 은하계 우주를 돌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돌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돌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만유인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떨어질 수밖에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립자로부터 광대무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다 돌아야 됩니다.
우리의 몸 속에 있는 많고 많은 세포들도 전부가 다 돌고 있습니다.
피돌기를 하지 않으면 생명 현상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물체만 도는 것이 아니라 나라도 주기적으로 돕니다.예를 들면 한 나라의 흥망성쇠 뒤에는 또다른 나라의 태동의 기운이 일어나서 먼저 나라를 대신하여 새로운 나라가 섭니다.
그래서 토인비 같은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문명들은 전부 다 생성,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하여 나라도 하나의 유기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라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창 젊은 시절을 왕성하게 보내고 나이가 들어 점점 머리에 하얀 백발을 쓰고 살다가 미구(未久)에는 생명이 끝나 버립니다.
삼라만상이 다 돌고 있습니다.
이 지구위의 문명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문명, 그 다음에 황하문명, 나일강 문명 등등해서 현대 문명이 전개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 이전에도 많은 문명이 명멸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문명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탁월한 영적인 능력이 있어서 자기의 기억을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까지 돌릴 수 있었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1945년에 타계한 에드가.케이시라는 사람인데 ‘잠자는 현자’라고 해서 문명의 흔적들에 대해 얘기한 서류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만약 이 지상에 있는 현존 문명이 부서지는 날에는 아틀란티스 문명이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우리의 다음 세대나 다음 문명은 아마 알 것입니다만 그것이 아틀란티스인지는 모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도 많고 많은 전 문명의 흔적이 있습니다.
케이시가 말한 대로 아틀란티스 이전의 문명을 루미네이리언 피리어드라고 하여 아틀란티스 이전에도 문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에 의하면 영국의 스톤핸즈나 이스터섬의 거석들은 같은 맥락의 문명이 형성해 놓은 것이며 그것은 아틀란티스 이전의 문명의 소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루미네이리언 피리어드의 문화 유산들, 문명 유산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폴리네시안 랭귀지 그룹이라 해서 이스터 섬에서 발굴된 석판에 있는 문자들은 현대 인류가 도저히 해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가 우리 인류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스 앞바다의 미케네 문명을 발굴한 현장에서 이상한 부속들이 나왔습니다.
면밀히 관찰해도 그 부속이 주는 의미를 몰랐었는데 1980년대에 들어와서야 그것이 컴퓨터에 쓰이는 부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문명 이전에도 컴퓨터를 썼던 것입니다.
2.) 윤회는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이 우주에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무(無)에서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돌고 도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돌고 돌아서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삶을 마감 지으면 또 돕니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날지 알 수는 없지만 지은 바에 따라 어딘가 에서 또 태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윤회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교의 거대한 줄거리 가운데 하나가 윤회라는 가르침인데 다 그렇게 움직입니다.
일체 만상들이 다 움직이고 운동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처님 경전에 따르면 구경 열반을 향해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완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합니다.
문명도 마찬가지이고 문화도 마찬 가지이며 심지어는 여인들의 의상조차도 유행의 흐름에는 한 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라고 하는 것도 하나의 주기가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돌고 돌아서 완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때 우리가 진정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성자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절대로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스카와일드의 말처럼 우리 인간들은 많이 가지려고 하지만 가져 봐도 고통이고 가지지 못해도 역시 고통입니다.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지 못해서 고통스럽고 가져 본 자는 가져 본 것으로 또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태양계 지구 학교를 졸업하기 이한 전 단계 작업입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대우주적인 법칙을 우리의 삶에다 비견해 보면 우리는 정말 끊임없이 지구학교의 모든 그런 먹고 마시고 즐기고 사랑하는데 탐착하여 여기에서 헤어 날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더 이상 나의 마음 가운데서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 탐착의 대상이 되지 않는 그런 때가 옵니다.
왜냐하면 이 지상에서 삶을 살아가다 보면 모든 만상들이 지겨울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루 세기를 먹고살면서도 어떤때는 먹는 것조차도 지겨울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생과 생을 거듭해 나가다 보면 자연적으로 먹고 마시고 즐기고 사랑하는 모든 물질이 주는 허탈감이 나의 마음 가운데 가득히 스며 들어와서 저절로 도(道) 닦고자 하는 마음이 나오게 됩니다.
3.) 카르마(업)의 법칙 우리가 지구 학교에 살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 하면 먹고 마시고 즐기고 사랑하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입니다.
그래서 남이 가진 것을 탐심을 내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화를 내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남들을 괴롭히고 대우주의 진리에 따라 사는 근본적인 정도를 잃어버린 그러한 곳에서 쌓이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카르마(Karma)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카르마의 법칙(업의 법칙)이 거대한 우주를 관통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업의 법칙 처럼 대 우주를 철두철미하게 규율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케이시가 쓴 책에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만, 우리 법당에 나오는 어느 보살의 친척 분이 화장품 회사의 매니큐어를 선전하는 손 모델이 있습니다.
스님들 가운데는 그런 능력을 가진 분들이 많고 저도 단편적으로 느낍니다만 영사라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영혼을 검사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무엇을 알려고 해서 아는 게 아니라 순간적으로 그냥 흘끗 지나가는 것으로 한 장의 필름처럼 흘끗 느꼈는데 뭔가 더럽고 탁한 것을 만지는 허드렛일을 하며 수도원에서 괴로운 삶을 사는 그런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이 사람은 전생에 남이 하지 않는 일, 더럽고 추하고 탁한 일을 하다 보니 아름다운 손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카르마의 법칙입니다.
카르마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흐름 따라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혀서만이 카르마가 오는게 아닙니다.
음식을 함부로 대하게 되면 그 음식에 의한 재앙을 받게 됩니다.
만약 음식을 함부로 대하게 되면 그것이 그 다음 생에 와서는 전생에서 음식을 함부로 하고 함부로 먹었기 때문에 음식을 조금씩만 치할 수밖에 없는 그런 카르마를 지니고 살아야 됩니다.
가만히 한 번 자기 자신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비판해 보면 전생에 자신이 지었던 카르마가 다 현실의 삶 속에 스며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카르마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섭습니다.
이것은 사랑을 괴롭히거나 혹은 무슨 대상아 문제가 아니고 자기 마음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혹은 머리가 똑똑하다 해서 머리가 모자란 사람을 혹은 돈이 없는 사람을 자기보다 하열한 사람을 우리가 경멸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비웃습니다만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모든 존재들이 그 상황에 처한 것은 다 카르마의 법칙에 따라서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전생에 뭔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 때문에 머리가 모자라고 공부를 못하는 두뇌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올 수밖에 없었고 멍청한 머리와 지혜롭지 못한 마음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어렵고 힘겹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그의 삶이지만 모두가 다 카르마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비웃는다면 우리는 거대한 대 우주의 법칙을 위반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거대한 대 우주의 철칙을 모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남을 비웃는 것은 가장 저열한 마음을 지닌 자의 다른 사람을 대우하는 법칙이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함부로 비웃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카르마를 소멸시켜 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남들에게 대해서 교만한 마음을 갖거나 그들이 어리석다고 해서 손가락질하거나 그들이 여유가 없다고 바보라고 놀리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카르마가 됩니다.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은 다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가 어리석고 머리가 나쁘면 그를 궁휼한 마음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그를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랑해야 되는 것이 부처님의 법칙입니다.
이 우주에는 어느 누구도,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네가 상대방을 심판하면 네가 심판 받을 날이 올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교만한 마음을 지닐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가 뭔가 가지고 있고 알고 있고 누리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사람을 경멸하고 하대한다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짓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그들 나름대로 굉장히 어렵고 괴로운 카르마를 탕감시키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4.)우리는 윤회를 거듭하며 진화해 나간다 .
모든 것은 다 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도는 것이 매끄럽게 돌 수도 있고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바퀴에 불순물이 끼어 있다면 떨어내어야만 하므로 업의 법칙은 이렇게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고통과 부자유는 지구 학교에서의 교육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교과서적인 내용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스러운 것은 지구 학교에서의 수업을 받고 있는 과정 가운데서 우리가 치러야만 되는 수업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지 못해서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모든 고통들은 하나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도 우연이 없습니다.
철두철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과연 거대한 우주 성을 파악하고 살아가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주성이란 바로 ‘우주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다(自他不二)라는 마음을 통해서 나오지 않는 말과 행동과 생각은 모두가 다 업을 쌓습니다.
내가 어쩌다 그를 경멸하거나 멸시하거나 그에게 욕을 했다면 그것은 곧바로 카르마로 작용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삶을 살아가면서 어디에서나 이 우주의 법칙은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해야 되고 서로가 서로를 자비한 마음으로 완전 자가 될 때까지 구경 열반의 세계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사랑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질병이나 고통 같은 것들도 전부 다 전생의 카르마입니다.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어떠한 고통도 카르마로부터 해방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부가 다 긍정적이지 못한 마음의 카르마로부터 업의 흐름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은, 윤회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돌고 돌면서 진화해 갑니다.
그러나 만약 돌고 도는 거대한 과정에서도 발전을 지향해 나가지 않고 이 거대한 우주의 하나 됨을 파악하지 못하고 함부로 살아가는 인간들은 이 세상에 왔어도 퇴보적인 인생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존재들은 또 아주 격하되고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어떤 세계를 통해서 다시 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의식이 맑아져서 우리들의 선친들이 어느 곳에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꿈을 꾸다가 선친을 만났는데 꿈에서 깨어난 다음에 그 선친이 계시던 꿈 속 장면의 주변 환경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어디에 게신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변 상황이 어렵고 곤란하고 괴로운 것이 있다면 그 선친은 좋지 못한 상황에 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이 거대한 대 우주는 완전한 진화 상태에 갈 때까지 끊임없이 그와 같은 양태로 발전해 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업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살아 있을 때는 부처님 말씀을 통해서 오염된 부분을 지구 학교에서 제거하고 또 돌아가신 많은 영가들의 영혼을 제도하고 그들을 세척하고,세척진로원제해(洗滌塵勞願濟海)라고 천수경에 나오지만 그렇게 하는 작업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제를 베풀고 지장재를 베풀고 우란분재를 베풀고 하는 것도 모두 그와 같은 맥락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5.)이 우주는 카르마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들 삶 속의 모든 고통은 우리들의 영혼을 승화시키고 진화시키기 위한 교육적인 목표에 따른 거대한 대우주를 관통하는 카르마의 법칙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내가 고통스럽거나 마음이 아프고 쓰라리고 한 이 모든 것들은 철두철미하게 카르마의 법칙으로부터 나옵니다.
이 카르마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거대한 대우주성을 저버렸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전부가 다 우리의 지은 바대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괴로움은 지혜와 완성을 향하여 나가는 인간이 다녀야만 하는 이 지구 학교 수업 연한을 점점 길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업을 지으면 지을수록 지구 학교의 수업 연한이 길어지고 동시에 더욱 더 못된 업을 짓게 되면 지구 학교 뿐만 아니라 지옥의 학교에 가야 되고 축생의 학교에 가야 되고 이렇게 그 회전과 소용돌이가 무섭고 힘겹고 두려운 단계를 건너가야 됩니다.
이 철두철미한 업의 법칙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 모두가 다 씻어 내야만 될 업의 흐름이란 사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그리고 왜 내가 이 땅에 와서 살고 있으며 왜 이렇게 나에게 고통이 중첩되고 힘겨운 것들이 자꾸만 오는가 하는 이와 같은 대의 명제를 분명히 파악하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방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방황하고 혼란에 처해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거대한 대우주 성과 이 지구 학교 근본적인 이유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명예와 재물과 재산과 모든 능력들을 함부로 쓴다면 그것은 또 도저히 걷어 낼 수 없는 카르마로 작용해 버립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재산과 명예와 두뇌 능력의 모든 것이 다 합리적으로 합목적으로 우주의 거대한 번영과 번창을 위해서 발휘되지 않고 나만을 위해서 나의 이익만을 위해서 쓰여지게 되면 비록 전생의 복보로 인해서 금생에 잘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은 또 다른 거대한 카르마의 원천이 되어 씻어낼때까지의 시간이 대단히 많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짧은 삶을 살아가면서 짓게 되는 이 업이 흐름이라고 하는 카르마의 법칙을 진지하게 항상 심사숙고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꾸고 있는 꿈과 매일같이 생활하고 있는 근본적인 생활 양상, 그리고 질병에 시달리는 모든 제반 양상들, 고통과 아픔과 쓰라림 등 모든 것들은 전부 카르마가 부서져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면서 또다시 업을 짓습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자승자박, 자업자득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업자득의 삶을 살지 마십시오.
참회하는 마음으로 기도 정진하고 마음을 바꾸면 마음의 법칙이 모든 몸에 작용되므로 마음을 잘 쓰게 되면 몸도 변한다고 했으니 차츰 나아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업이 부서져 내리는 과정입니다.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이 지구의 밑도 끝도 없는 삶을 자꾸만 받게 되고, 거기서 격하되어 지옥으로 축생으로 아귀로 끊임없이 소용돌이치는 삶을 돌고 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진상을 꿰뚫어 알 때 삶을 함부로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케이시의 글에 보면 47세된 여인이 결혼에 세 번이나 실패를 했는데 그 여인을 영사해 보니 로마 시대 네로왕의 후궁 가운데 한 사람이었답니다.
그 당시에 그 여인은 남자들을 헌신짝 취급을 하고 함부로 대하다가 그 과보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마음 자리를 변모시키기 전까지는 남자들로부터 항상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우리가 이 세상을 향유하게 된 어떠한 것에 대해서라도 자만심과 자랑하는 마음과 자기만을 이익되게하는 주장의 재료로서 이용하고 있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해 업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과실과 시련과 유혹을 만날 때에는 그것이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을 수반해야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가 향유하게 된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부처님의 기운을 불어넣지 않으면 안됩니다.
부처님이시여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항상 그 모든 것을 한 번 질문을 해보고 써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욕심대로 함부로 써서는 카르마의 쿵치를 끊임없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어떠한 것도 부처님의 광명으로 비추어서 써야 합니다.
우리가 활용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부처님의 광명으로 비추어져 활용되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은 카르마의 재료밖에 되지 않습니다.
6.)참회는 카르마가 녹아져 내리는 과정이다.
병마에 시달리거나 고통받고 있을 때 우리는 참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참회는 카르마가 녹아져 내리는 과정이므로 그 고통을 일생 내내 솔선 수범해서 그 카르마를 치유하지 않으면 그는 일생과 내생과 내내생을 가면서 끊임없이 고통스러워야만 합니다.
금강경에 보면 우리가 힘겹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욕을 한다면 우리는 카르마를 짓게 되고 그는 오히려 그 카르마를 탕감하게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더욱 더 무거운 짐을 금생에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것을 슬기롭게 참는다면 그것으로 인해 많고 많은 업장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하라 하셨습니다.
윗자리에 올라가면 갈수록,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갈수록, 내가 여유가 있으면 있을수록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에도 남을 비웃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반드시 우리가 짊어져야만 되는 카르마로 작용합니다.
부처님 말씀 그대로 우리는 지금 영원으로 이어지는 계단 위에 있습니다.
과거의 계단도 저 밑으로 끝없고 앞으로의 계단도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계단을 올라오는 일을 쉴 수가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남을 실망시키면 자기 자신이 실망할 일이 옵니다.
또 남을 즐겁게 하면 내 자신이 즐거워 할 일이 옵니다.
이 또한 철두철미한 카르마의 법칙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항상 흥겹고 즐겁게 하는 것만이 나의 삶을 구경열반으로 이끌어 가는 길입니다.
에머슨의 말처럼 성격은 운명이고 운명은 바로 성격입니다.
마음을 바꾸지 않고서는 카르마의 법칙에 저촉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스카와일드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도 비극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것도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가진 게 없다고 괴로워 할 것도 없고 또 있다고 너무 교만해 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도 다 전생이 카르마입니다.
다만 내가 내 자신을 흥겹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흥겹게 하고 대우주는 하나다라고 하는 진리성 속에서 움직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윤회로부터 해방되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과정 그것이 바로 해탈이고 우리의 의무입니다.
만상은 다 돌고 있습니다.
삶의 영원한 진화를 위해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카르마를 짓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