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에, 그대의 마음 가운데 연등을 밝혀라
-지광스님-
그대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 오신날은 언제인가 온 누리에 법신의 탄생을 기리는 연등을 밝혀라 그대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 태어나시게 하라 우리는 지금 사바세계 남섬부주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부처님 나라의 주민이다.
이 껍데기 몸뚱아리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 존재하지만 부처님 나라, 마음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다.
육신의 세계와 법신의 세계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인식하는가.
시간과 공간을 떠난 세계는 문자 그대로 하나인 세계이다.
하나이기에 무한이요 영원이다.
우리들이 항상 ‘부처님께서 우리들 마음 가운데 계시다’입버릇처럼 되뇌이지만 참된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듯하다.
‘진정으로 부처님께서는 우리들 마음 가운데 계시는가’ 갸우뚱하며 되묻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어떤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우리들 마음 가운데 계심을 확인시켜 달라고 말한다.
부처님을 마음 가운데에서 모셔내 와서 보여 줄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만 진지하게 설명을 하면 충분히 이해 하실수 있으리라.
우리들 모두의 마음 가운데 항상 우리들이 그릇된 행동이나 말, 생각들을 할 때 질타하는 존재가 있다.
“너 어째서 남편에게 그렇게 모진 말을 하니” “너 왜 그렇게 친구에게 못되게 구니”등등 나의 그릇됨을, 잘못됨을 나무라는 존재가 있다.
물론 그 같은 질타의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할 수도 있다.
부처님 육성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면 어찌되는가 그러나 나의 그릇됨에 채찍을 날리는 그 존재의 말을 듣는다면 우리들은 결코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을 수가 있고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적어진다.
세속에서 흔히 양심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 그 같은 영원한 참의 존재가 과연 누구라 생각하시는가.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 할 때 어떤 뜻으로 받아들이는가.
참된 사랑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천수천안 관자재보살이라 부르듯, 그 분은 무한의 눈과 목소리와 손으로 우리 모두를 지켜보시고 우리들 모두를 어루만져주시고 계시다.
눈의 기능은 카메라와 같아 그분께서는 우리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찍어대고 계시다.
우리들의 눈 역시 모든 만상을 찍어대고 있지 않은가.
모두를 듣고 보고 계시며 우리의 앞날을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분!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는 아버지, 어머니,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면 성공적으로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들 모두 영원한 사랑의 목소리의 주인공이신 부처님 말씀을 잘 들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들의 앞길은 영원한 참의 나라, 부처님의 나라에 살게 될것이다.
부처님 말씀,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의 미래가 불을 보듯 명약관화한 것처럼 부처님 말씀을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
고통의 바다를 헤엄쳐야하고 악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들 마음 가운데 계시며 항상 사랑의 목소리로 우리를 지켜주시는 그분이 바로 부처님이신데 우리들은 항상 그 분께 실망을 시켜드리는 일들만 골라서 한다.
모두가 성적순이다 부처님께서 계속 점수를 매기고 계시다.
세상에서는 성적순대로 우리들의 앞날이 전개되듯 부처님께서도 엄정하게 우리들의 성적을 매기고 계심을 명심해야만 한다.
부처님은 너무도 철저하셔서 이 세상의 성적표는 어쩌면 얼렁뚱땅 할 수 있는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부처님 나라의 성적표는 천만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부처님께서 우리들 마음 가운데 계시다면 정말 나는 열심히 기도 했는데 왜 잘 안되는거야” 또 “부처님 정말 제 소원을 들어 주십시오” 이렇게 부탁을 드리면 부처님은 과연 뭐라고 하실까.
부처님께서는 “그래 알았다” 말씀을 하시고는 그 사람의 성적표를 펼쳐보지 않으실 수 없으시다.
“ 아 참 안타깝구나.
모두가 열심히 뛰고 있고 치열한 경쟁인데 어떻게 하나.
지금 잘 안되더라도 열심히 기도해라.
때가 되면 분명히 될 날이 있을 테니 말이야” 이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으시리라.
부처님께서 우리모두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싶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공덕 성적표따라 판정을 내리 실 수 밖에 없으시니 얼마나 안타까우시겠는가.
부처님의 유언이 들리는가.
“게으르지말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 법화경에 보면 우주의 무량중생들이 하나 같이 성불을 향해 열심히 뛰고 있다 말씀하지 않으셨던가.
우리 아들딸들의 각종 시험합격과 남편의 승진, 각종 입찰의 성취등등 우리들이 원하는 그 무엇도 경쟁이 아닌게 없다.
평상시 부처님 말씀따라 열심히 정진한 자들만이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게 아닌가.
부처님 나라의 주인으로 태어나라 연등으로 태어나라 기도는 그래서 우리들의 의구심을 신심으로 채우는 작업이다.
기도를 하면서도 얼마나 의심이 많이 드는가.
‘정말로 될것인가 아닌가’ 그 누구도 일을 벌이고 기도하면서 이 같은 의구심, 의심이 들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스님인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대로 계속 가는 것이다.
기도정진한 공덕은 사라지지 않는 법!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는 되는 것이고 다음에 안 되면 또 그 다음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면 다른 것이 될 것 아닌가.
금생에 안 되면 내생에 되면 될 것 아닌가.
“지은바 공덕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말씀하신 분이 부처님 아니신가.
내 마음 가운데 계신 부처님께서 모든 것을 듣고 보며 점수를 매기고 계신데 그를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을 무명이라 부른다.
부처님은 진정 언제 어디에든 계시며 지금 여기에도 계시며 내 마음 가운데 항상 함께 계신다.
그 같은 의미가 바로 시공을 초월하신 부처님의 참뜻이 아니겠는가.
제1의 탄생을 육신의 탄생이라하고 제2의 탄생을 性의 탄생이라 부른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무명에 감싸여 제3의 탄생을 모른다.
법신의 탄생, 부처님 나라의 주인으로서 탄생을 모른다.
부처님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눈이 열리지 않은 것이다.
나와 남이 없는 탄생, 시공이 없는 세계의 존재로서의 탄생을 모른다.
우리의 몸뚱아리는 원자들의 잠시동안의 쉼터.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위대한부처님 나라 위대한 보살이 가득한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탄생을 깨달으라.
그날이 바로 그대의 마음 가운데 부처님 오신날이다.
그대의 마음 가운데 그리고 온 누리에 연등을 밝히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