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부처님입니다 ─ 금강경
-무비스님-
우리 삶이 순간적인 선택 여하에 따라서 어떻게 달리 전개되는가 하는 것을 잘 알려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육조혜능대사께서 나무를 팔려고 시장에 나왔다가 주막에서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몰록 마음이 환하게 열려서 나뭇짐을 영원히 벗어던지고 불도의 길로 들어선 것이 그것입니다.
여기는 조계산의 총림이고 우리는 중국 조계산에 계셨던 육조스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는 종도입니다.
저희들이 전에 송광사에 살 때는 이렇게 신도들과 함께하는 법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 송광사 대중들이 불자들을 위해 금강산림 법석을 마련해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소중한 금강산림 법석에 동참하시는 것만으로도 육조혜능대사처럼 나뭇짐을 영원히 벗어던지고 황금지게를 지고 집에 돌아가는 공덕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은 송광사 금강산림법회를 회향하는 날이므로 금강경의 가르침을 전체적으로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경에서는 깨달음을 얻으려면 네 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이르고 있습니다.
첫째는 훌륭한 선지식을 가까이 해야 한다.
둘째는 정법을 공부해야 한다.
셋째는 올바르고 깊게 사유해야 한다.
넷째는 여법하게 수행해야 한다.
여러분은 부처님을 만나고 여러 좋은 선지식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강경』이라는 정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삿된 법을 만나면 차라리 종교를 갖지 않음만 못합니다.
부처님과 선지식들이 설하는 정법을 듣고 이를 가슴 깊이 새겨서 어떻게 현실생활에 실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이제 여러분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금강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입니다.
종도 모두가 숙지해야 할 교과서라는 말입니다.
불자라면 다른 경은 차치하더라도 『금강경』만큼은 독송하고 쓰고 외우고 이해해야 합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은 금강석처럼 소중하고 값지고 빛나고 견고하고 날카롭고 굳센 지혜로 모든 고통을 해결해 행복에 이르게 하는 말씀입니다.
『금강경』의 대의(大義)는 ‘파이집현삼공(破二執現三空)’이라 해서 집착을 없애고 공한 이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집은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을 말하고 삼공은 아공(我空) 법공(法空) 보살공(菩薩空)을 말합니다.
모든 고통의 근원은 집착입니다.
작금 우리 사회의 현실이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앞날이 어찌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고 그래서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데 불확실성과 불안과 고통은 무엇엔가 집착하고 그것을 가지려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있고 무엇인가 이루려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아집(我執)이고 법집(法執)입니다.
그러나 그 집착하는 바 무언가의 존재는 실은 헛된 것이다 하는 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금강경』이 제시하는 공(空)의 도리를 잘 새겨서 집착을 뛰어넘어 이 불안한 시대에 의연하고 꿋꿋하게 매사에 대처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금강경』은 무상(無相)을 그 종(宗)으로 삼는다고 혜능대사가 말씀하셨습니다.
무상은 상을 없앤다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모든 고통의 원인이 집착이라고 했는데 이 집착은 상이 있기에 생깁니다.
우리는 다 나름대로의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젊다는 상, 늙은이는 늙다는 상, 부자는 부자라는 상, 가난한 이는 가난하다는 상, 누구나 서로를 달리 보는 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상을 기준으로 삼아 사람을 판단하고 세상을 분별하고 갖은 감정을 일으킵니다.
스스로 모델을 만들어 집착하고 분별함으로써 갈등을 야기하고 갖은 감정을 일으킵니다.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면 하등 상으로 내세울 것이 없는데도 스스로 상을 구축하여 번뇌를 자초합니다.
『금강경』에서는 중생들의 가장 몹쓸 병이 바로 상병(相病)이라고 진단합니다.
이 상병만 깨뜨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답을 제시합니다.
상을 여윈 경지를 파상(破相) 무상(無想) 비상(非相)이라고 부르지요.
『금강경』에 이 무상의 증득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그 이름이 중생일 뿐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아니라 그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일 뿐이다 라는 구절입니다.
교학에서는 이를 ‘즉비(卽非)의 원리(原理)’라 표현합니다만, 『금강경』에 이를 언급한 게 30여회나 됩니다.
이제 우리가 무상을 실제로 생활에 어떻게 실천해 갈 것인가 하는데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무상의 실천은 흔히 하는 말로 ‘시침떼기’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은 시침떼기의 명수였습니다.
부처님은 거짓말을 하는 분이 아닙니다.
나는 진실을 말한다고 강조한 것도 『금강경』에서만 다섯 차례나 됩니다.
그런 분이 나는 평생 단 한마디도 법을 설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년의 고행 끝에 정각을 이루시고 이후 45년 동안 중생을 위해 법 바퀴를 굴리시고도 설법을 하지 않았다고 시침을 떼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또한 한 사람의 중생도 제도한 적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부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법상이며 중생상의 공함을 드러낸 것이지만 여하튼 참으로 천연덕스럽게도 시종 시침을 떼고 계십니다.
이 모습이야 말로 무상의 전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를 했거든 마음에 두지 말고 잊어야 합니다.
보시를 한 생각이 마음에 남아 있으면 아직 보시를 하지 않은 진정한 보시인 것입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처음 와 양무제와 나눈 대화를 잘 알고 계시지요? 달마대사는 불교의 발전을 위해 많은 절을 짓고 많은 스님을 양성했다며 자랑을 하는 무제에게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하지요.
바로 상을 갖고 있는 보시는 보시가 아니라는 걸 일깨운 것입니다.
『금강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간관계를 해치는 가장 큰 병통인 상병(相病)을 치유하는 최고의 양약입니다.
우리 인생의 지침이 되는 금강경을 늘 수지독송 해 영원한 지혜를 얻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