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스님─흔들리는 마음

흔들리는 마음

-지명스님-

나는 지금까지 어떤 경우에든지 화내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오래 접해 보면 한 번쯤은 가볍게라도 흔들리는 마음을 들키는 듯했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 속이 뒤집히고, 언성이 높아지고, 얼굴 색깔이 변하고 일그러진 상태를 화내는 것으로 규정해야 할지, 일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내가 접한 사람이 모두 화내는 이들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스님으로부터 “20년 이상을 같이 살거나 교류했지만, 종법 스님이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자리를 같이한 다른 분들도 동의했다.

나는 ‘절대로 화내지 않는 스님’이 보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한 신도의 49재에서 화내지 않는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다짜고짜 물었다.

“스님은 정말로 화내는 일이 없습니까?” 그 스님은 “수행자가 화를 낸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

언제부터 화를 내지 않게 되었느냐고 다시 물었다.

종법스님이 선방에서 공부하던 젊은 시절에, 경북 감포에서 시골의 버스를 타게 되었다.

당시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에서 버스가 갑자기 급커브를 틀며 정지하게 됐다.

그러자 버스 선반에 올려놓았던 젖은 생선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사람들의 머리, 얼굴, 옷을 더럽히게 됐다.

많은 이들이 화를 내면서, 그 생선의 주인을 찾았다.

그러한 와중에 한 40대의 신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수건을 꺼내어 머리와 얼굴을 닦고, 옷을 대충 털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버스의 창밖만 바라봤다.

종법스님은 그 신사를 아주 멋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종법스님에게 다시 물었다.

“겉으로는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으로까지 화나는 일이 없습니까?” “왜 없겠어요.

경계를 만날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지만, 금생에는 형상으로 나마 분노를 발산하는 흉한 몰골을 보이지 않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한결같은 평상심을 지키려면 세세생생 닦아야겠지요.” 우리에게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즉 “평상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 바로 참다운 삶의 길이다”라는 화두가 있다.

화를 내고 싶어도 아무도 받아 줄 사람이 없던 예전에는, 저 화두를 따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확실하게 깨닫지 못했다.

내가 수행이 잘 되어서가 아니라, 상황에 의해서 화를 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주변에서는 내가 마음씨 고운 사람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느새 내가 남 앞에서 길을 안내해야 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원한다면 화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어리광과 같은 큰소리를 받아 줄 사람도 몇 명쯤은 되리라고 혼자서 김칫국을 마시게 되었다.

가끔 호통을 치면서 화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나와 절친하고 나를 좋아하고 나를 밀어주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외롭게 되었다.

절에서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는 한 신도가 있다.

부엌일, 농사일, 도량청소, 신도들의 애경사 방문 등의 일에 몸을 사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신도와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 많지 않다.

나는 유심히 관찰했다.

그가 편안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 같지 않았다.

“나만 힘든 일을 하는데, 다른 이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있고, 그럴 때면 화산이 폭발하듯이 주변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다.

외형적으로 아주 착실하게 봉사하며 수행하는데도 불구하고, 평상심을 지키지 못하고 가끔 불편한 내심을 드러내기 때문에, 그도 외톨이가 된 것이다.

본래가 “무(無)”라는 것을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현실에 만족하면 참 좋다.

평상심을 가지면 참 좋다.

그러나 보통사람으로서 불평불만이 전혀 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이 화가 되어 폭발하지 않게라도 해야 한다.

화는 전염병이나 불길과 같다.

이쪽에서 일어나면 저쪽에서도 따라 일어난다.

당하는 이에게는 큰 상처를 준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금까지 누차 실패했더라도, “화내지 않는 수행”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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