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고통 이기는 법
-진각스님-
중생피곤액衆生被困厄 하야, 무량고핍신無量苦逼身 이라도, 관음묘지력觀音妙智力 이, 능구세간고能救世間苦 니라.
중생들이 곤궁한 액난을 당하여 무량한 고통이 몸을 핍박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신묘한 지혜의 힘이 능히 세간의 고통을 구제하느니라.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오늘은 소승이 생활의 고통을 이기는 법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의 한 구절을 소개해 드리고 생활의 고통을 불자로서 어떻게 이겨 나가야 할것인가를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생활하는 가운데 극심한 고통과 어려움을 격을때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그 모든 고통과 액난이 벗어나는 길을 얻게 되리라 이는 관세음보살이 위대한 자비의 신통력이 있어 세상 사람들의 고통소리를 관찰하여 구제하기 때문이니라 !” “중생들이 곤궁한 액난을 당하여 헤아릴수 없는 고통을 겪더라도관세음보살 의 신묘한 지혜의 힘이 능히 세간의 고통을 구제하느니라.” 이말씀은 고통에 빠져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는 우리 중생들에게 참으로 기쁜 소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쁜 소식을 듣고도 잘 믿어지지가 않아 믿으려조차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실히 알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관세음보살”님은 누구이며, 어떤 분이라고 생각들 하고 계십니까 ? 그저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알수없는 어떤 곳으로부터 우리의 소식을 듣고 나타나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의 고통을 없애주고 가시는 분이라 생각들 하고 계십니까 ?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관세음보살”은 그런 존재의 분이 아니십니다.
“관세음보살”은 부처님께서 중생의 고통을 구원해 주시는 자비실천의 힘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시는 것은 중생들에게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시고 중생들로 하여금 고통의 원인을 끊고 평안과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은 우리 중생들의 세계와 전혀 다른 저 멀리 신비의 세계에서 오시는 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중생들 자신 속에서 솟아 오르는 깨우침을 지혜와 자비 실천의 힘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법화경 보문품]에서 말씀하시길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라.
그리하면 곧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얻게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심이란 어떤 마음이라 생각 하십니까? 모든 번뇌를 버리고 망상을 버리고, 오로지 “관세음보살”만을 생각하고 지성을 다하여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럼 왜 일심으로 불러여만 하겠습니까? 현재 우리네 중생들의 마음은 여러가지 욕망과 어리석음에 싸여 제자리, 제모습을 지키지 못하고 한없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생활하는데 있어서 행복과 즐거움보다 불행과 고통이 더 많이 생기는 것 입니다.
한번 돌이켜 생가들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 가면서 정말로 행복하고 즐거웠던 일이 몇 시간이나 있었습니까 ? 온종일 행복하고 즐거운 일만 있었다면 그 분은 참으로 하루를 멋지고 훌륭하게 보내신 분입니다.
그러나 온종일 짜증스럽게 보내고 불편하게 보냈다면 그것은 결코 하루의 생활을 잘 보낸 것이라고 말할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루가 잘못 되었다면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 그날 하루의 운명, 혹은’ 내 팔자가 그렇지 뭐’ 라고 넘겨 버리시는 것 입니까 ? 여러분의 하루 생활이 잘못된 이유는, 바로 그 원인을 자기 자신 속에서 찾지 않고 자신 이외의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지는 않았나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반성 보다는 원망을 먼저 앞세워 생각하며 화를 내고 있지는 않았나를 돌이켜 봐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의 생활 속에 고통은 어디에 있습니까 ? 라고 물었을 때 인과응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말씀은 모든 고통의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중생들의 생활에 고통과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운명의 장난도 아니요, 신의 뜻도 아니며, 조상의 탓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간곡하게 가르침인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일로 하루를 망쳤을때를 생각해 봅시다.
그 망친 원인이 어디에서 부터 찾아야 하는지를…….
그 원인은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어렵고도 기묘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소중하고 고귀한 삶인 것입니다.
결코 될되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는 하여서도 안되며, 그런 생각 자체를 하여서는 더더구나 안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살이 입니다.
자기 자신이 매우 어리석으면서도 어리석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면 생활 속에서의 고통과 힘겨움과 불행의 나날은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하루 속히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이 누구라 하였습니까 ? 우리들 자신 속에서 솟아 오르는 지혜와 자비심의 실천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 지혜란 밝은 마음을 말하며, 자비심의 실천력이란 차별심을 떠나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서 자기 몸처럼, 자기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며, 고통은 자기가 소화시키고 즐거움은 남에게 선사하는 것 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님을 부를수 있을것 같습니까 ? 현재 우리네 마음은 온갖 잡념에 쌓여 있으니 좀처럼 여러분들은 일심이 잘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므로 일심으로 부르는 일은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철저한 계획과 큰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생활에서 언제나 “관세음보살”의 뜻과 힘을 생각해서 매사에 합장하고 염불하는 자세로 임해야 하며, 가볍고 밝은 마음을 지키는 노력으로 항시 웃음을 잃지 말고, 아무리 힘들고 짜증스러워도 결코 성질을 부려서는 안되며,그럴때마다 합장하고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며 그 뜻과 힘을 되새겨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러십니다.
“마음은 있는데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소승이 보건데 그것은 게으른 사람들의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만사를 제쳐두고 안방에 박혀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라는 얘기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명호를 부르는 일에는 시간과 장소가 따로 없습니다.
설겆이를 하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근무를 하면서도 때로는 화장실에 앉아서도, 심지어는 잠을 자면서도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촌에 아주 가난하게 혼자 살고 있는 노총각이 있었습니다.
그 총각이 하루는 밭에 나가 일을 하는데 밭 가운데서 큰 돌을 하나 캐내고 보니 돌의 모양이 마치 사람처럼 생겨서 집에 들고와 흙을 털고 보니 “관세음보살”상이더랍니다.
너무도 신기하고 좋아서 그 불상을 자기 방에 모셔 놓고 조석으로 예배하며 식사때면 자기가 먹는 음식이라야 꽁보리밥 아니면 나물죽이지만 그것을 부처님께 올리고 그리고 난 뒤 노총각이 밥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밖에 나갈때나, 일을 마치고 들어 왔을때는 언제나 부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색시이름 부르듯 열심히 부르면서 즐거워 했습니다.
얼마의 세월이 흘러간 어느날, 그 총각이 사는 집에 산적들이 쳐들어와 그 총각을 산 속에 끌고 들어가 마침내 죽이려고 칼로 총각의 목을 쳤답니다.
그렇게 일심으로 염불하던 총각의 목은 여지없이 날라갔겠지요 ? 그런데 말입니다.
한참 후에 총각이 염라대왕 앞인줄 알고 눈을 떠보니 자기가 자고 있던 방안의 부처님 모셔진 방이더랍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 부처님을 살펴 보니부처님 목에 커다란 칼자국이 생겼더랍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 총각은 부처님 앞에 엎드려 한없이 울었답니다.
생활 환경이 그리도 어려운 총각이 여러분 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그 노총각처럼 믿음이 왜 부족하고 왜 일심으로 정진하지 못하는 것 입니까 ? 부처님을 한번 믿겠다고 했으면 정말 철썩같이 믿어 보시면 될 것을 진각이가 그렇게 일념으로 기도해 보라고 하면 해 보시면 되는데 어찌 그리도 ‘마음은 있는데 몸이 영~’ 하면서 허숭 세월만 보내야 합니까 ?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겁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을 생각 조차 꿈에도 꾸면 안됩니다.
사실 우리가 이 한몸 가꾸느랴 얼마나 많은 날에 애를 먹였습니까 ? 하지만 그렇게 잘 가꾸고 보존했다고 해서 어디 그 몸이 영원토록 잘 보존이 된답니까 ? 순간 순간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휴지와 같은게 바로 우리네 몸뚱아리 입니다.
그것을 알고 정신을 차리고 세상 하나 하나를 쳐다 보면 굳이 싫어하고 애착하고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해서 한 가지라도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되는 것이 또한 삶입니다.
다 나름대로 필요한 인연과 필요한 필요성과 소중한 것들입니다.
이제 끝으로 아래의 글을 읽으시면서 새롭게 마음을 다져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열심히 부르고 일심으로 참회하여 봅시다.
괴롭고 즐거운 일 어디에서 생겼는가 ? 모두가 마음으로 만들어 나타난 일 한 번 웃고 넘어가니 흔적도 없어진다.
알알이 익은 열매 한 려음 지낸 덕분 지금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기에 제멋대로의 인식과 착각에 빠져서 있어서는 안될 생존경쟁의 고통을 만들고 있는 것 입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하루 속히 치료해야 할 크나큰 병인 것 입니다.
무엇으로 이 무서운 병을 고칠수 있겠습니까 ? 오직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지혜의 힘(관음묘지력)만이 능히 이 병을 고칠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