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구나보살 겠지보살 감사보살

구나보살, 겠지보살, 감사보살 -무비 큰스님- 우리 불자들은 가나오나 부처님의 인연으로 이렇게 많은 불자님들을 뵙게돼서 반갑습니다.

또 우리 불자들의 마음속에는 어디에가든 모두 한 가족이고 한 식구라고 하는 그런 의식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어디가더라도 마음이 편안하고 여기가 바로 우리신도 우리절이구나 하는 그런 느낌을 받는데, 일찍이 월호스님께서 매스컴을 통해서 포교활동을 아주 왕성하게 다시말해서 법륜을 왕성하게 굴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 인류와 더불어 함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이렇게 또 인연이 돼서 이렇게 이제 왔습니다.

아마도 월호스님의 법을 따르는 이들은 무수히 많을 줄 믿는데,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주축이 되는 분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아까 말씀있었듯이 이천도량 지금 여기서 한 50분되는 거리에 이천도량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도량을 지금 계획중에 이렇게 있습니다.

계획정도가 아니라 거의 시작을 했고 또 시작은 벌써 반했죠.

그 다음에 또 그 가운데 건물을, 법당을 지금 한 채 다 지어가는 그런 입장이니까 거의 70% 완공된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도량은 저도 뭐 그 전부터 듣고 있었고 알고 있었습니다만은 정말 우리 불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 아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그곳에서 누릴 수 있는 그야말로 ‘원스톱시스템’ 그런 그 수행처를 지금 건립중에 있습니다.

이제 ‘웰-다잉, 웰-빙’ 이 모든 것들이 스님 말씀대로 다 거기서 해결되고 즐기는 것 뭐 기도, 참선 무슨 불교공부 그건 더 말할 나위없고 일체것이 다 해결될 수 있는 그런 도량을 건립하고 있는 중인데, 참 반가운 소식이고 힘이 생기는 소식입니다.

그러지않아도 불교포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하다라고 하는 것을 늘 생각해오던 참인데, 이렇게 왕성하게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는데 대해서 정말 가슴 사무치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특히 이 행불선원은 어느 불교 신행단체보다도 앞서가는 또 현대화 된 가장 현대화 된 그 앞서가는 불교로 우리 신행활동을 하고 전법교화를 하고 있다는 이 사실은 무엇보다도 자랑스럽습니다.

승가라고 할 때 우리 스님을 뜻하기도 하지만은 그 속에는 우리 사부대중이 다 포함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스님은 뭡니까? 남보다 한 걸음 앞서간다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스님은 남보다 한 걸음 앞서가는 아주 초현대화된 그런 불교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

불교를 완전히, 뭐라고 할까요? 걸러서 새롭게 탄생시킨다.

자신이 소화해서 새로운 에너지로 방출해내는 그런 데서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는, 그런 그 불교로 다시 태어나는 그런 어떤 모습을 늘 보아왔고 그런 표현들이 책속에도 많고 또 라디오법회할 때 늘 잘 들어왔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생각을 평소에도 하고 있는데, 아~ 이렇게 앞서가는 불교, 현대화된 불교, 개혁된 불교를 하고 있는 이 도량에 와서 어떤 앞서가는 소리를, 최신식 불교를 이야기해야 이게 먹혀들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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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쩌면 좋나? 하고 사실은 격려차 왔습니다만은 그래도 아주 걱정이 적지 않았습니다.

너무 신식불교를 하고 계셔가지고 (하하하) 좋습니다.

우리 불교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무궁무진합니다.

뭐 무진장(無盡藏)이라는 불교말이 있습니다만은,무궁무진 얼마나 잘씁니까? 우리가, 정말 무궁무진한 그 보고가 우리 불교안에는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무슨 안목으로 잘 찾고 그것을 개발해서 우리 삶으로 또 세상의 어떤 그 좋은 빛으로 회향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게 우리들의 과제고 숙제요.

그래서 근래 저는 불교의 우수성 다시 말해서 불교가 무엇이 좋은가? 세상에는 종교도 많고 주의, 주장도 많습니다.

철학도 많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무엇이 그런 기타 종교들보다 우수한가? 이런 점을 우리가 우리 불자들이 저부터라도 불자들이 잘 이해했을 때, 우리가 불교를 선택하지 마라 하더라도 그것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물건을 하나 구입한다 하더라도 집에서 계산을 합니다.

어떤 가게로 가는게 우수한 물건을 우수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을까? 심지어 10000원짜리 물건 하나도 그렇게 하는데, 정말 평생의 삶의 양식이 되고 세세생생 내 의지처가 될 종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야 정말 그 우수성을 잘 가려내고 알아서 우리가 의지하고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 던질 수 있도록 그렇게 이제 해야 한다는 것.

이거는 당연한 귀결입니다.

당연한 일이에요.

그래야 합니다.

우리 불교는 뭐 꼽아보면은 좋은 점, 우수한 점이 무수히 많습니다.

무수히 많은데 늘 어떤 그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것.

뭐『금강경』을 여기서 공부를 많이 하시죠.

거기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란 말 있잖습니까? ‘응무소주’ 기존의 가치관, 기존의 어떤 그 관념에서 벗어나라! ‘무주’ ‘무소주’ 머물지 마란 말이야.

자유로워라.

기존의 의식에서 자유로워라! 기존의 사람에서도 자유로워라! 까짓껏, 그 그렇게 매달릴 필요 없어요.

이게 뭐 어떻게 들으면 저 스님이 불안하게 뭘 부추기는 것같이 들릴는지는 모르지만은, 그렇다고 집안을 버리고 떠나라는 뜻이 아니고 불교에서 자유로워라! 집착하지 말라! 머물지 말라! ‘무소주’ ‘응무소’ 반드시 꼭 이라고 하는 것 배웠잖아요.

‘응(應)’ 그거 무서운 소리입니다.

응자가, 꼭 그렇게 하란 말이야! 머물지 말라! 자유로워라! 꼭 자유로워야 된다.

그말이거든요.

그리고 자유롭게 자유롭게 살아라! ‘이생기심’ 생자 아닙니까? 살아라 그말요.

내 삶을 펼쳐가라! 자유롭게 삶을 펼쳐가라!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어떤 가치관 어떤 고정관념에도 내 목 매달지말고 마음대로 자유롭게 날개를 펼쳐라 하는 그런 그 삶의 지침이다.

그 한 마디만해도요.

세상의 어떤 철학, 어떤 종교에도 그런 말 없습니다.

심지어 ‘살불살조(殺佛殺祖)’ 뭔 말입니까?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여라! ‘살불살모(殺父殺母)’ 부모를 죽여라! 스승을 죽여라! 그 죽이라고 하는 말은 집착하지 말라! 자유로워라! 거기서 내 어떤 그 고정된 의식에서 벗어나라라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지 세속에서 표현하는 죽여라고 하는 그런 죽임이 아니에요.

불교에서 말하는 죽임은, 죽이라고 하니까 정말 제대로 벗어나라 하는 거요.

정말 제대로 자유로워라 이 뜻입니다.

부모로부터 자유롭고 불자는 우리가 하늘처럼 떠 받드는 부처님으로부터도 자유로워라.

또 부처님이후 얼마나 훌륭한 조사스님들이 많았습니까? 그 많은 조사스님들 우리의 스승들 그런 분들덕에 우리가 불교정신을 구축하게 됐고 비로소 불교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위대한 가르침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지만은 그러나 궁극에 가서는 그러한 조사스님으로부터도 자유로워라.

이게 ‘살불살조’여.

세상의 어느 종교 어느 가르침에서 그런 말을 볼 수 있습니까? 그런 말은 불교이외에는 들을 수 없는 거요.

불교, 불교하면 불교를 죽여라.

부처를 죽여라 라고 이렇게 가르친데가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이것은 물론 어떤 의미에서 보면 좀 위험성을 갖고 있는 그런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불교가 대승불교, 소승불교, 선불교 뭐 위파사나, 간화선 할 것 없이 그야말로 종합적으로 다~ 공부해서 다 알고 있습니다.

뭐 어디가 허구고 어디가 고급이고 할 것없이 모든 매체를 통해서 한꺼번에 다 알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소리 뭐 처음 듣는것도 아닐꺼요.

처음 듣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믿고 드린 말씀입니다.

그와같이 참 불교는 우리의 삶을 궁극적으로 가장 가치있는 우리들 자신, 궁극적 차원의 우리들 자신을 두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라.

부처로부터도 자유로워라.

부모로부터도 자유로워라 라고 하는 ‘살불살조 살부살모’라고 하는 이런 엄청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는 정말 그 삶의 지침으로, 삶의 교훈으로 볼 때도 이렇게 우수한 가르침을 던지고 있다고 하는 거 또 불교는 우수하고 다른 종교에서 볼 수 없는 그런 그 가르침들이 무수히 많은데 오늘은 좀 신식불교를 제가 염두해두고 왔기 때문에 그동안 여러분들이 들어보지 못한 보살, 들어보지 못한 참선을 한 번 소개할까 합니다.

이것도 역시 그동안 따지고보면 내 발상이 아니고 모두 과거 선배들의 가르침 또 위로는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그 모든 가르침을 압축하고 거기서 짜낸 엑기스일뿐이죠.

결코 어디 다르거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무슨 보살, 무슨 참선인고 하면은? 참선이라해도 좋고 보살이라해도, 보살염불이라해도 좋고 염불이라해도 좋고 상관없습니다.

뭔고 하면은? 우리가 자유로워라 하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또 사실은 우리 개개인 그 인간을 어떤 그 궁극적 차원을 제대로 수용하고 살려면은 정말 자유로워야 되요.

물론 뭐 여기에 끄달리고 저기에 끄달리고 누구를 위하고 거기에 목을 달고 뭐 그것이 대상, 경계 이것이 나의 전부다라고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그런 착한 시민생활도 좋아요.

어떻게 보면, 도덕적으로 아주 필요하고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은 부처님은 일찍이 부모도 버리고 자식도 버린 사람이에요.

그런데 부모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그 나라의 지위도, 당신이 가진 그 태자 앞으로 왕의 소임을 물려받아야 할 그 책임이 얼마나 막중합니까? 그 소임마저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난 사람이라.

아주 파격적 인생을 산 사람이야.

그리고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는 누구도 할 수 있는거요.

그렇게 출가할 필요도 없습니다.

부모, 처자 버릴 필요도 없이 그런 이야기는 다 할 수 있어요.

하지만은 부처님께서도 그런 상식적인 말씀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궁극에 가서는 개개인의 그 궁극적 차원을, 자신을 만날 수 있어야 되고 그 궁극적 차원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거.

대단히 ‘응무소주이생기심’ 모든 것으로부터 집착하지 말고 벗어나고 그리고 내 삶을 한껏 펼쳐라.

그 뭐 조사스님들은 또 ‘수처작주(隨處作主)’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같은 뜻이에요.

어디있든지 주인공으로 살아라! 그래서 우리는 일찍이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어디서 들어본 소리같죠? (하하하) 그 말이 그렇습니다.

정말 궁극적으로 내 인생, 내 삶의 그~ 궁극적 차원을 만나서 그것으로써 내 삶을 펼치는, 그런 이야기에요.

당신이 주인공이지 나 이외 다른 것도 주인공이 사실은 없어요.

사실은 없어요.

내 인생을 대신할 사람은 내 부모도 아니요.

내 자식도 아니요.

부처님도 아니요.

스님도 아니요.

도반도 아니요.

아내도 아니요.

남편도 아니야.

내 인생을 대신할 사람은, 그 우리는, 불교는 정말 우수한 종교고 차원높은 종교이기 때문에 그러한 차원을 우리는 마음속에 평소에 이해하고 거기에 눈을 좀 떠야 됩니다.

그랬을때 불교를 만난 가치를 거기서 아는거요.

불교만난 보람이 거기에 있습니다.

보통 뭐 모든 일반 종교인들이 다 행하는 그런 정도 가지고는 불교인으로써 성이 안 차지요.

사실은, ‘아 이 불교가 그것 뿐인가?’ 싶죠.

그렇다면 그런 불교야 어디 시내 나가면 얼마든지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것 아니겠습니까? 불교는 무엇인가 달라야 되는 거죠.

그래서 내가 불교의 우수성을 말씀을 드리면서 ‘살불살조’라고 하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그럼으로해서 그야말로 참 불교의 가르침 우리가 그것이 가슴에 와닿고 내 살림살이가 못 되더라도 그냥 귀로 스친다고 하는 그 사실만으로도 참으로 우수하다.

그랬어요.

그런 것을 우리는 긍지와 자부로 삼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 지금 소개할려고 하는 소위 새로운 참선 뭔가? 자유로워지고 진정한 내 주인공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서부터 해탈해야 되요.

작은 것으로부터 해탈해야 되.

한꺼번에 뭐 일확천금하듯이 생사해탈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디 하루아침에 벼락부자 된 사람 누가 있습니까? 10원, 20원 모아서 부자가 된 것이죠.

저 수십조, 수백조 대기업도 만원, 이만원서부터 대기업이 된 거에요.

마찬가지로 우리 궁극의 목표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자유로워져야 되요.

일상에서부터 해탈이 이루어져야 그게 결국에 궁극적 해탈에 이른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데, 그러한 첫 단계로써 무슨 참선이 있는가 하면은 ‘구나보살’ 또는 ‘구나참선’이요.

들어보셨어요? (아니요.

) 구나보살이라고 못 들어봤어요? ‘구나’ 하니까 무슨 범어같지요? 아주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비가 오는구나.

(하하하) 이게 ‘비가 오는구나.

’ 말하면은 말로 하면 그냥 염불에 불과한 것이고 그것이 관행으로 그게 생활화 돼야돼요.

관법으로 이루어져야 되.

관행이 되야 되.

그리되면 그건 참선이야.

비오는 거 예를 들어서 뭐 날이 드는 것 무슨 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하는 것 이건 너무나도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저 전생부터 익히 우리가 보아왔고 더불어 살아왔기 때문에 이건 이미 해탈돼있습니다.

비 와도 비에 대해서 화낸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 비오는 데 끌릴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비오는 사실에 대해서는 뭐 우산쓰면 되고 안 나가면 되고 전화 한 통해서 끝내면 되고 뭐 오늘 일 못하면 내일하면 되는거고 참선이 돼있어.

그 정도, 그 정도는 해탈이 돼있다구요.

그런데 그런데 우리 아이가 우리 아이가 아 이거 최소한 80점은 맞아야 되는데 60점 맞았어.

그건 구나참선이 안돼.

구나보살이 안된다고 “아! 60점 맞았구나~.”

하면 될텐데 그만 화가 치밀기 시작하는 거야.

화가 치밀기 시작해서 나는 벌써 도망가버렸어.

‘당신이 주인공이다.

’ 아나 여?다.

천만에 어림도 없어.

당신이 주인공 없어요.

아들이 주인공이고 60점 맞은게 주인공이야.

그때부터는 그만 거기에 엎어져가지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고 ‘어 이거 어떻게 해야할까?’ 하고 그냥 공연히 일 잘하고 있는 거사님께 전화를 해가지고 “참 이렇게 됐다고 이거 어떻게 해야되냐고 지금 일이 손에 들어오냐고?” 하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거요.

그때부터 그럴때 “아! 60점 맞았구나~” 구나 그때 구나보살을 넣야되.

이 최신식 보살입니다.

관세음보살 능력가지고는 안 되요.

이때는, 아 죄송하지만 관세음보살님 지장보살님 죄송합니다만은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가지고는 좀 어려워.

구나보살이라야 통해.

이게 아주 교재를 쉬운 교재를 써야되요.

처음부터 처음부터 어려운 교재 쓰면 안 됩니다.

‘구나보살’ 그 80점 맞아야 할 애가 60점 맞아온 거 이것도 상당히 정말 어떻게 보면 어려운 교재요.

그러나 비가 오는구나 하는 것은 벌써 우리가 졸업한 교재라.

그거는 저기 유치원생들이 볼 수 있는 교재기 때문에 그건 아주 교재로 취급도 안해.

그런데 한 가족사이에 정말 있을 수 없는 어떤 상황을 보았다 들었다.

소문을 통해서든지 뭐 어떤 상황이 벌어졌다.

이거는 아주 어려운 교재야.

그렇죠? 그 여러분들 구나염불 가지고 되겠어요? “아! 남편이 바람피우고 왔구나.”

되겠어요? “저 거사님이 저 물건을 떨어뜨렸구나.”

이건 간단해.

이런 교재는 간단해요.

그냥 주워 올리면 되는거야 .

“그 잘못하다가 이조백자 하나 깼구나.”

고건 조금 어려운 교재야.

그래도 그 정도 교재는 괜찮아.

하지만은 인간관계에서 우정 뭐가 깨졌다하면 이건 아주 어려운 교재야.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것마저도 우리가 해탈할 수 있어야 되.

이것도 해탈할 수 있어야 되.

이것도 해탈할 수 있어야 된다고 야~ 우리 참 과제가 엄청납니다.

불교과제는 이렇게 엄청난 거요.

그리고 그 교재는 수천만가지가 있는데 작은 교재들부터 우리가 하나하나 해탈해 나가야 되.

하나하나 해탈 아 이건 뭐 간단하다고 다 던져버리고 던져버리고 넘겨버리고 넘겨버리고 하나 여러분들 일상생활에서 겪는 수많은 그런 그 교재들 그것은 이제 구나보살로서, 그건 참선까지 갈 것 없어.

쉬운교재는, 이거 염불 한마디로도 구나보살로서 그렇게 해탈해버리고 그 다음에 어렵다 싶은 건 명상으로 들어가야 되.

그 구나참선이라고 그러는데 (하하하) 너무 신식불교라서 좀 어렵나요? 구나참선으로 들어가야 돼요.

딱 앉아서 명상하는 거요.

‘아 그렇구나.

그럴 수 있겠지.

’ 그 다음에 이제 두 번째 보살은 ‘겠지보살’이야.

(하하) 겠지보살 알아듣겠죠? (네) 네라고 했다.

아이 그러면 남편이 바람피우고 들어와도 바람피울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할 수 있어요? (네) 야~ 네 하네 하하하하 하하 네라고 그냥 하는데, 아니오 하잖아.

저기는, 그 교재 어려운 교재요.

여러분들은 할 수 있어도 나는 못해.

(하하하) 아 나는 못해.

그 정도 교재는, 솔직하게.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거기에서부터 더 해탈할려면은 궁극적으로 그것마저도 해탈해야 되.

그것마저 해탈할려면은 이게 내가 오늘 언제 또 볼지 모르니까 어려운 교재가지고 자꾸 이야기 하는거요.

낮은 교재가지고 이야기하면, 그것마저 해탈해야 되는데 대단히 어려운 거요.

그래서 그 해탈할려면은 명상으로 들어가야 되는 데, 최소한도 하루에 한 시간정도는 ‘겠지참선’을 해야 되.

겠지보살가지고 어려워.

그때는 겠지보살가지고 어렵다고 겠지보살은 염불차원이고 이제 그것을 명상으로 들어가는 것은 참선차원이여.

가만히 앉아가지고 ‘이유가 있겠지.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이유가 있겠지.

이유가 있겠지.

뭔가 이유가 있겠지.

아니면 내가 몰랄겠지.

내가 제대로 몰랐겠지.

’ 이렇게 자기 마음속에서 그걸 분해해 가.

하나하나 분해해가는 거요.

분해해가면은 뭐라고? 나중에, 공(空)이 되는 거지.

분해하면 공이야.

우리 전부 우리 종성이, 존재가 우리 모두가 공성으로, 공의 원리로 이루어졌다라는 사실 들어서 잘 아시죠? (네) 뭐『반야심경』 한 편만 제대로 외워도, 모든 존재는 공성이 본질이다 라고 하는 사실.

공성이 본질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들어서 아는 거지.

그저, 들어서 아는 거지만은 아뭏튼 들어서 알거나 뭘로 알거나 일단 이론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명상을 통해서 참선을 통해서 ‘겠지’라고 하는 참선을 통해서 우리가 분해해 들어가는 거지.

분해해 들어가면 그게 멀리 안갑니다.

곧 사라져요.

그 속에서 끓어오르던 그런 분노와 배신감과 고통, 고뇌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거요.

정말 그게 사라져야 되요.

그게 사라져서 내 인격이 돼야 되.

‘이유가 있겠지.

이유가 있겠지.

’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유가 있었겠지.

피치못할 이유가 있겠지.

나도 그럴 수가 있겠지.

’ 하하하하하 ‘나도 그럴 수가 있겠지’하고 마음속에서 그 고뇌의 덩어리를 분해해 가는거요.

분해해 가는 거 이게 그동안 경전 팔만대장경의 어려운 불교용어로, 어려운 참 그 한문으로 막 그냥 해놓은 거 그냥 이것은 정말 엑기스만 뽑아서 말씀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문자 듣고 싶다면 내 문자로 설명해줄게.

(하하하하) 그래봐야 먼 메아리처럼 들릴테니까 그렇게 하면은 가슴에 와 닿지가 안아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상황들 우리가 너, 나 할것없이 승속, 너나, 남녀노소, 동서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다~ 겪는 일이야.

다 겪는 일이라고 이게, 그 대상이 무엇이 됐든지간에 누구든지 늘 겪는 일이야.

일생을 통해서 여러번 겪는 일이야.

그런 어려운 교재들 일생을 통해서 여러번 겪는 일.

그랬을 때 이 불교가 어떤 그 특효약으로써 효과를 발휘하느냐 하는것 이게 중요한 것 아닙니까? 불교중에, 좋을때야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까짓것 ??? 아무렇지도 안해.

상관없어.

그런데 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을 때 이럴 때 정말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분해해 낼 것인가? 소화해 낼 것인가? 그 소화할 수 있는 그런 가르침은 불교안에 너무 많아.

아침, 저녁으로 외우는『반야심경』한 편이면 뭐 천 번, 만 번 분해하고도 남는 가르침이야.

그게, 그 주사는 아무리 놓아도 놓아도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꼭 맞는 주사야.

이게, 그래서 아무리 놓아도 괜찮아.

그러한 훌륭한 가르침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래서 겠지보살, 겠지참선 구나보살에서 한 차원 높은 거죠.

‘구나’에서 그 다음 단계 그 다음 단계가 ‘겠지’야.

겠지보살 그 다음은 이제 최고의 보살, 최고 참선이 뭔고 하니? 감사보살이야.

감사보살, 감사보살, 감사보살 근데 그것도 말이 쉽지 쉽지가 않습니다.

그게 내 자신속에서 정말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기까지는 관행을 많이 해야되요.

명상을 많이 해야되.

참선을 많이 해야되.

그게 진짜 참선이에요.

‘아! 그동안도 이 못난 나를 아내로 맞아줘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 감사할꺼리 그 동안 찾아보면요.

수 백가지도 넘습니다.

그때 내가 아플때 나를 업고가가지고 병원에 입원시켜준거.

크~ 그거 하나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저 훌륭한 아이들 낳아서 그동안 먹여준것도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동안 감사한 일이 너무너무 많은 거야.

생각해보면, 그래 하나하나 감사의 항목을 적어나가는 거야.

감사항목을 적어나가다보면은 노트 한 권 가지고 부족해요.

그게 말하자면은 참선이야.

결정적으로 감사항목을 적어나가는 거야.

마음에 안 내키지.

물론 안 내키지.

그런 상황에 누가 마음에 내키겠어.

하지만은 그걸 견디고 견디고 감사항목을 적어 나가는 거요.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 감사가 내 가슴속에 젖어들고 그 감사항목 하나하나 내가 적어놓은것이 사실로 와 닿고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지금까지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어떻게 하더라도 나는 궁극적으로는 감사하게 생각할꺼요.

이것이 결국은 내가 사는 길이고 당신이 사는 길이고 가족이 다 사는 길이야.

이게 사는 길이라고 그렇지 않고 그 반대로 나가가면은 그대로 가는 인생이고 막가는 가족이고 완전 파탄의 길로 가는거지.

그 파탄의 길로 가기 위해서 이제 거기서 이제 선언하고 목소리 높이고 이제 하는거요.

그럼 해결 끝장을 봐야 될 것 아니야? 끝장 보는 일 밖에 없어요.

그 다음부터는, 뭐 이렇게 너무 극단적인 교재를 이야기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만은, 예를 들어 그런 교재가 나에게 닥칠 수도 있는거요.

주변에 얼마든지 그런 상황들이 많지 않습니까? 많을 때 이것은 우리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들에게만 지금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웃에 모두 친지들, 형제자매들, 이웃들, 동창들 뭐 도반들, 다른 종교믿는 친구들 뭐 얼마나 많습니까? 그 인간관계를 우리가 연결고리를 찾아보면은 곳곳에 가서 다 걸리는 거야.

그래서 누구든지 그런 상황이 있을 수도 있는거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다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좀 극단적인 교재를 써도 하나의 그 일단은 쉬운 예니까, 쉬운 예니까 그런 그 어려운 아주 어려운 교재를 선택을 해서 제대로 마스터를 했다면은, 그 다음에 뭐 다른 일상에서 생기는 다른 그 소소한 일들이야 해탈하기 너무 쉽지 뭐.

‘구나’ (하하하하하) ‘겠지’ 그래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친구사이에도 마찬가지여.

친구가 예를 들어서 생일파티를 열면서 다른 친구는 다 초대했는데 알고보니 자기만 빠졌거든, 이랬을 때 아 정말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자기만 빠진거야.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많죠? 그런 것.

그런데 그걸 우리가 어떻게 해탈할거야? 그 문제로부터 어떻게 해탈할거야? 아 ‘겠지’부터 나가네.

하하하하 구나참선부터 안하고는 ‘겠지’부터 나가버려.

아주 속도가 빨라서 좋아요.

아주 빨리빨리 해치워야 되.

그래 ‘구나’ 그래 ‘뭐 생일잔치 나만 빼놓고 했구나.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전화했는데, 내가 없었거나 못 받았거나 그 사람이 깜빡 내 전화를 까먹었거나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 그렇지만 그동안 그 사람이 나를 대해준 이런저런 행복했던 그런 그 서로 좋았던 그런 그 감사의 항목을 적어보자.

지금부터, 노트 한 페이지는 적을 수 있는거야.

이것보고 이것 저것 그 사람이 이렇게 내 생일에 와줬고, 내 아플때 병원에 와줬고 뭐 학교 같이 다닐때 그 뭐야 숙제노트도 한 번 빌려준 적이 있고 뭐 등등 감사항목을 적어나가면 끝도 없어.

그래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렇게 해 버리면 그 친구가 그 순간부터는 전부 고맙게 생각되는 거야.

근데 내가 아는 도반들도 생일날 초대 안 해가지고 지금도, 한 3년전 일인지, 지금도 (하하하하) 지금도 틀어져 있는 사람이 있어.

구체적 실명을 들었으면 꼭 좋겠지만은 이게 인터넷에 다 나가가지고 조선사람 다 들을 수 있으니 차마 그럴 수 없고, 정말 가끔 만나는 사람이라.

그걸 내가 이야기해 줄 수도 없고 (하하하하하) 이야기해주면 이게 또, 또 이제 약간 잠자고 있던 게 들추고 일어나니까.

그 참 사람감정이라는 게 희한해.

‘야! 그거 잊어버려라.

그럴 수 있겠지.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거야.

뭔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니냐.

그러니까 잊어버려라!’ 이렇게 하면은 또 잠자고 있던 감정이 도로 일어나 버린다고, 나처럼 이렇게 생각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특효약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도로 이게 긁어서 부스럼이 되는 수가 있다고, 함부로 위로하지 마세요.

(하하하하하) 위로하다가 그거 부추기는 일이 되버려.

그래서 내가 이제 할까 말까 고민중이라.

그래 안할라고 생각을 하는데 자꾸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나.

참아야 되.

이렇게 어떤 우리가 일상을 통해서 그 많고 많은 인생사중에서 일어나는 온갖 장애물들, 온갖 병통들, 온갖 고뇌들, 온갖 번뇌들이 이렇게 끝없이 끝없이 여름날 저 먹구름 일어나듯이 계속 일어나는 데, 이것으로부터 해탈하는 길 이걸 이제 ‘이고득락(離苦得樂)’ 어려운 낱말 한 번 씁시다.

그래 ‘이고득락’이라고 하는 거 아니요.

불교의 목적이 뭐요? 이고득락이지.

고(苦)로부터 해탈하는 것.

어떤 고가 됐든지간에 해탈하는 길은 뭐 여러방법이 있겠습니다만은 이렇게 삼대보살, 삼대참선 삼대 그것은 아주 신식보살이고 신식참선이야.

그렇지만 이거는 정말 옛것입니다.

2700년전 부처님께서 개발하신 치료법이요.

그걸 경전에 한문으로 써놓니까 아나? 아는 사람이 있나? 그걸 고뇌하고 고민하고 해서 이렇게 현대적으로 이렇게 풀어서 우리가 이해해야 되는 거지요.

그리고 또 한가지 이제 시간이 다 됐는데, 불교의 좋은 점 하나가 뭐 수만가지가 있습니다.

여기 뭐 잔뜩 적어왔는데 이거 뭐 백분의 일도 다 이야기 못하고 가네.

오늘 이렇게 며칠간 장마 때문에 궂은 날씨입니다.

궂은 날씨인데도 이렇게 여러분들이 일요일날 뭐 친구들 놀러가자는 전화도 많았을테고 여러 가지 장애요소가 있었습니다만은 그것들 다 물리치고 이겨내고 행불선원에 와서 법문들어야 되겠다하는 이 원력 하나로 이 꿈, 희망하나로 여기에 모였어요.

뭐 친구의 저기 놀러가자고 하는 알량한 전화가 아직은 문제도 안되.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고 싶어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안되.

“야! 오늘 시간없다.

그만 끊자.

다음에 내가 전화할게.”

탁 끊어요.

그렇게 강한 의지가 생기는 거야.

신심이 있을 때, 원력이 있을 때 이제 행불선원은 정말 5000평이라는 거대한 이천도량을 마련하고 있어.

이것은 무엇이 가능합니까? 아까 주지스님 자랑했습니다만은, 정말 여기온지 기껏해야 일년 삼개월 됐어요.

그런데 벌써 교육도량했다가 이천도량 생겨가지고 교육도량은 접고 이천도량에 아주 거기 완전한 도량을 그 교육하기 위해서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말씀인즉슨 자연스럽게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꼭 말해야 아나.

말해야 아나.

오로지 원력하나로 밀고 나갑니다.

원력하나로 밀고 나가니까 지금 머 아시는데로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은 우리 불교계 최고 스타스님아닙니까? 그것은 다른 뜻이 아니라 나는 인기좋다고 하는 세속적인 표현이 아니라 ‘검증받은 사람이다.

’ 이 뜻입니다.

불교를 아는 사람으로서, 수행자로서, 승려로서 검증받은 사람이다.

그 검증받는 사람으로서 정말 한 번 원력을 가지고 한 나이라도 더 젊을 때,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불교가 만든 그런 아주 바람직한 그런 그 인간상을 지금 구축하고 있어요.

그런 입장에서 원력을 가지고 한 번 근사한 그런 그 전법도량 내지 수행도량, 기도도량, 명상도량 뭐든지 필요하면은 다 거기서 해결되는 원스톱시스템도량을 한 번 여법하게 만들어 보자.

거기에 이제 층수가 문제이겠습니까만은 층수를 38층으로 하고 이름을 했는데, 층수가 3층이 됐든 8층이 됐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 불자들이 거기서 할 수 있는 모든 수행과 공부와 기도와 이런 여러분들의 꿈과 이런 모든 것들을 다 펼칠 수 있는 그런 그 완전한 도량 이런 뜻이죠.

완전한 도량, 완전한 도량을 이룩하는 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오늘 비오는 날 온갖 집안의 일, 친구의 유혹 다 물리치고 법석에 온 그 마음, 그 꿈, 그 원력을 좀 더 강력하게 여기에 힘을 가하면은 그 꿈이 궁극적으로 그러한 도량을 이룩합니다.

바로 그 맘이 그 맘이에요.

오늘 법회 이거 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아주 쉬운 교재에요.

그러나 저기 이천도량을 완성하는 데는 어려운 교재요.

하지만 그 쉬운교재가 어려운 교재라.

아까 내가 3대 21세기 새로운 보살, 새로운 참선을 신식불교를 말씀을 드렸는데, 바로 그렇습니다.

작은 교재로에서부터 큰 교재로 나가야 되는 것이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돼 있어요.

이제 불교는 나이 무시합니다.

수자상(壽者相)이란 무엇입니까? 나이 무시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내가 월호스님보다 나이 많지만은 죽어서 나중에 오면 내가 젊은 사람이 되는 거야.

그때는 저 스님이 나이 많은 사람이 되고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불교는 나이를 무시합니다.

나이 인정하지 안해요.

끊임없이 원력 하나만 가지고 밀어붙이라고 하는 그런 인생, 그런 삶을 가르치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래서 불교에 한 번 이렇게 맛을 들이고 불교에 한 번 재미를 느끼고 불교의 이치가 참 훌륭하구나 그 불교의 우수성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은 나이들면 들수록 할 일이 너무 많아.

할 공부가 너무 많아.

경전공부 해야지.

뭐 교리 해야지.

참선 해야지.

염불 해야지.

할 것이 너무 많아.

어디 노인당 갈 시간이 없어.

어디 노인당가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요.

시간 많아가지고 그 괴로워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참 많습니다.

근데 불교인은요.

그런게 없어요.

왜냐? 원력을 배웠기 때문에, 다음생도 내가 끊임없이 성장해야 되고 발전해야 되.

내 인격은 날로날로 발전해서 궁극적으로 저 석가세존과 같은 그런 인물이 돼야 하는게 우리의 목표기 때문에, 그렇게 할려면 지금 끊임없이 공부해야 되는거요.

그것을 가르치는 게 불교야.

그 나이 무시한다니까.

나이 들었다고 공부안하거나 젊은 사람만 공부하거나 이런 것은 불교에선 없어요.

나이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원력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공부하도록 이렇게 가르치는 게 이게 이제 불교입니다.

『천수경』만 하더라도 뭡니까? 원이 상당히 많잖아요.

뭐 여래십대발원문있고 사대서원이 있고 발원이니 축원이니 서원이니 또 하는 것이 그 원(願)자가요.

전부 인생의 바람직한 길을 제시해주는 낱말입니다.

그게, 사람은 꿈으로 살지.

희망감으로 살지.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원력으로 살지.

결코 밥으로 사는 게 아니다 이거요.

꿈으로 사는 겁니다.

정말 그래요.

살아보면은, 사람이 뭔가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아이 뭐 다른 집안에 무슨 다른 꿈이 없으면은 이 행불선원 하나 잘 해나가는 거 이걸 거기다 내 꿈으로 같이 편승을 해도 좋습니다.

아 좋지요.

거기서 편승하고 내 꿈을 거기다 싣는거야.

그러면 나와 더불어 사찰, 사찰과 더불어 내가 날로날로 성장하고 발전해갈것이고 거기에 따르는 많은 신도님들의 혜택이 또 얼마나 큽니까? 신도들에게 돌아가는 그 회향이 얼마나 큽니까? 이게 이제 말하자면 법륜(法輪)굴리는데 원력을 세워야 이런 일을 할 수가 있는거지.

그 원력이 없으면은 뭐 스님들 살기 편한게 천하에 살기 편한게 대한불교 조계종 비구야.

천하에 편한 팔자야.

개 팔자보다 더 좋은 팔자가 비구중 팔자라니까.

가서 하루종일 눈감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식사대접 받는거야.

그리고 해제하면 두둑하게 거마비도 나와.

어디가도 공부잘한 스님이라고 대접받고 그런데 뭐할라고 땀 흘리고 이짓하고 있는가 이거지.

오로지 그것은 원력이라고 하는 거.

꿈이라고 하는 거.

그 꿈속에는 많은 불자들의 꿈이 그 속에 편승이 돼 있어.

혼자가는 꿈이 아니야 이게.

이제 월호스님은 죽으나 사나 세세생생 많은 사람의 꿈을 이끌고 앞으로 앞으로 “나를 따르라!” 하고 나아가야 하는 그런 그 (짝짝짝짝) 그런 그 중차대한 책임을 지고 있고 원력을 갖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꿈이 잘 이루어져서 또 우리의 꿈, 우리의 삶도 늘 생기넘치고 희망이 넘치는 그런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출처 : 염화실행불선원 선지식 초청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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