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부처님같이/
법장스님
◐ 우리의 산하(山河)가 고운 꽃으로 장엄(藏嚴)되어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이룬 아름다운 계절에 석가모니 부처님(釋迦牟尼佛)께서 만중생(萬衆生)의 어버이로 오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과거세(過去世)에 이미 성불(成佛)하시어 생사가 없으신데 무명(無明; 어리석음)을 삶의 주춧돌로 삼고 고통 속에서 끝없이 허덕이는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가엾은 우리들을 구제하여 주시고자 자비방편(慈悲方便)으로 인상(人相)을 택하시어 오신 것입니다.법화경(法華經)에 이르시기를, “나는 모든 성인(聖人) 중에서 가장 높으며 세간(世間)의 아버지이다.
이 세상은 다 나의 소유며 세상의 중생은 다 나의 아들이거늘 지금 이 세상은 고통이 많다.
오직 나 한 사람만이 그 고통을 구제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실로 부처님의 몸은 진리 자체로서 영원한 생명이신 법신불(法身佛)과 무한한 공덕, 온전한 능력을 지니신 보신불(報身佛)과 끝없는 자비, 한없는 자애로서의 화신불(化身佛)을 함께 지니고 계시기 때문에 당연히 성인 중의 성인이요, 인천(人天)의 스승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스스로 불자(佛子)라 칭(稱)할 수 있는 것은 온 우주에 충만하신 진리의 아버지, 세상의 아버지, 중생의 아버지이신 부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를 연민(憐愍)하시어 늘 우리에게 밝은 태양처럼 지혜와 복덕의 가피를 차별없이 베푸시는데 우리가 업(業)에 눈먼 장님인지라 태양 아래서도 어둠에 헤매이듯 부처님의 자비 안에서도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두려움에 떨며 답답하고 가엾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전생부터 쌓아온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믿음은 적고 의심은 많고, 지혜는 적고 어리석음은 많으며, 순진하지도 정직하지도 못하니 부처님께서 평생을 그토록 간절하게 우리들에게 해탈(解脫)의 길, 진리의 길, 행복의 길을 보여주셨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설사 나서도 꾸준히 가지 못하고, 지혜의 약, 지족(知足)의 약, 안심(安心)의 약을 주셔도 선뜻 먹지 못하고, 설사 먹어도 꾸준히 먹지 못하고, 금강(金剛)의 옷, 자비의 옷, 왕생(往生; 극락왕생)의 옷을 주셔도 선뜻 입지 못하고, 설사 입어도 꾸준히 입지 못하고, 여우처럼 이리저리 의심을 품고 원숭이처럼 경망스럽게 움직이다 경계(境界)에 부딪치면 욕심내고 성내고 어리석음만 키워서 생사심(生死心)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끝없는 생사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생사의 굴레에서 지난날을 참회하며 오늘‘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 모두 새롭게 부처님의 품에서 반듯한 아들 딸로 거듭 태어나야 겠습니다.
화엄경(華嚴經)에, “부처님께서는 온 우주 법계(法界)에 충만(充滿)하시어 모든 중생 앞에 나타나 계시도다.
인연에 따라 감응하지 않는 곳이 없으시나 항상 본래의 자리(菩提座)에 계시도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몸은 생(生)이 없으시되 능히 중생들을 위하여 출생함을 보이시나 그 법성(法性)은 허공과 같으시니 늘 그 자리에 머무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여실(如實)히 진리 속에서 오셔서 정각(正覺)을 이루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우리에게 해탈의 희망을 주신 부처님의 뜻에 따라 참으로 불자다운 서원(誓願)을 세우고 실천하는 수행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에 우리와 함께 사는 축생(畜生)들도 보면, 제비는 알에서 깨어나면 창공을 날려고 날개짓을 배워서 날고, 숭어는 알에서 깨어나면 큰 물에 나가려고 물살을 헤치는데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다행히 창공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은 불법(佛法)을 만났는데 한갓 미물(微物)보다도 못하게 목적 없는 인생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말할 때나 침묵할 때나 가나 쉬나 여럿이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나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향해 정진(精進)하여야겠습니다.
우리가 오색의 마니보주(摩尼寶珠)를 구하려면 거센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왕(龍王)이 사는 큰 바다로 들어가야 하듯이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수행문(修行門)으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이 고행문(苦行門)일지라도….
제가 출가(出家) 후에 살아온 세상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 노력한 만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얻어지는 것은 도(道)밖에 없고 닦는 만큼 없어지는 것은 업장(業障)밖에 없다는 확신이 섭니다.
마음 밭에 뿌린 씨앗만이 영원한 보물로 영혼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인생살이에 있어서 부귀영화(富貴榮華)가 도를 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라면 부처님께서도 부모님과 처자와 나라를 저버리고 출가하시어 고행을 하시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불자는 모름지기 부처님의 거룩하신 언행(言行)을 따라해야 하니 어린아이가 어른을 흉내내며 자라다 마침내 어른이 되듯 부처님의 삶을 흉내라도 내다보면 어느덧 정도(正道)에 들어 바른 불제자(佛弟子)로 성숙될 것입니다.
영명지각 선사(永明智覺禪師)의 가르침에 보면, “예불(禮佛)이란 부처님의 덕을 공경함이요, 염불(念佛)이란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함이요, 지계(持戒)란 부처님의 행을 실행함이요, 간경(看經)이란 부처님의 이치(理)를 밝힘이요, 좌선(坐禪)이란 부처님의 경계(境)에 도달함이요, 참선(參禪)이란 부처님의 마음에 계합(契合)함이요, 득오(得悟)란 부처님의 도를 증득(證得)함이요, 설법(說法)이란 부처님의 원(願)을 증득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수행의 풍토(風土)를 분석해 보면 수행의 방법에는 거짓과 진실이 없으나 사람에게 그 허물이 있고, 법에는 높고 낮음이 없으나 사람에게 분별이 있는 것이며, 도는 항상하나 사람이 멀리 했다 가까이 했다 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마음 공부는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같이 뜻깊은 날, 부디 ‘석가모니 부처님 오신날’로만 봉축(奉祝)하는 데 만족하지 마시고 내 마음의 부처님도 찾아 맞이해야 하며 밤을 밝히는 등을 다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마시고 진실로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우주에 충만하시길 기원하며 중생의 마음마다 무명을 제할 지혜의 등을 밝혀야겠습니다.
바람 앞에서 꺼지지 않았던 빈녀(貧女)의 일등(一燈)처럼 온 법계(法界)와 중생을 밝히는 서원으로 등을 켜서 무량한 공덕을 지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큰 서원으로 ‘부처님 오신날’을 찬탄한 인연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 부처님 나라에 태어나서 부처님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불(成佛)합시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 열반에 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