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반야심경(般若心經) – 색즉시공 공즉시색

존재의 실상 파헤치는 空사상 설파
당나라 현장스님 譯 가장 널리 애용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 가운데 가장 간결한 경전인 동시에 우리 불자님들이 제일 많이 독송하는 경전이 바로 《반야심경》입니다. 《반야심경》은 여러 가지 반야계 경전의 요지를 줄이고 줄여서 핵심만을 농축시켜 놓은 경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자님들의 삶의 태도와 생활방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방향제시까지 가르쳐 주고 있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이 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는 긴 경명(經名)을 가지고 있지만 보통 《반야심경》 혹은 《심경》이라고 줄여서 부르고 있습니다. 범본의 원전은 광본(廣本)과 약본(略本)의 두 종류가 있는데 내용상으로 큰 차이점은 없지만 전자에는 서론·본론·결론이 다 갖추어져 있는 반면에, 약본은 명칭 그대로 본론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역은 여러 번 시도되었으나 현존하고 있는 것은 7종류이고 그 중에서 우리가 독송하고 있는 《반야심경》은 바로 현장법사가 번역(650년경)한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구성체계는 예를 들자면 아주 정교한 구조물을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즉 1층에 해당하는 입의분(入義分)은 전체 내용의 뜻을 밝히는 부분인데,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오온(五蘊)이 다 공한 것임을 터득하면 일체 모든 고통을 해소할 수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야의 실천은 바로 고(苦)를 해소하는 힘이 있다는 뜻이지요. 2층에 해당하는 파사분(破邪分)은 잘못된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반야의 공관(空觀)으로 비춰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모든 물질현상이 공이고 공이 또한 일체의 현상이 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3층에 해당하는 공능분(功能分)은 지혜의 눈으로서 일체의 현상이 공한 것임을 봄으로써 나타나는 경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4층에 해당하는 총결분(總結分)은 전체의 결론 부분인데 지혜로써 저 언덕을 건너가는 이치가 그대로 진리의 참모습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크게 이분(二分)하여 설명하는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 즉 현설(顯說)은 내용이 드러난 부분이고, 밀설(密說)은 비밀스럽게 전하는 내용으로 맨 마지막의 주문(呪文)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주문 이외는 모두가 현설인 셈입니다.

이렇게 《반야심경》의 중심사상은 바로 존재의 실체를 파헤치는 공사상입니다. 따라서 삼라만상의 실체란 본래가 공한 것으로서 인연에 따라 잠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모든 현상을 텅 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존재의 실상을 실상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온갖 괴로움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에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텅 빈 것으로 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실체는 텅 빈 것이므로 그 텅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의 행로가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실체가 없다고 하여 사물을 온전히 부정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물의 무상(無常)함, 즉 변해가는 성질과 상태를 바로 보고 이해하자는 말입니다.

즉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므로 무엇인가를 알려고 한다든가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관념조차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알고 싶고, 얻고 싶은 것이 본래부터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반야바라밀에 안주시키는 것을 ‘지혜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완성이라고 해서 극한적인 완성이 아니라 지속되어 가는 완성으로써 종착역이 없는 완성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전거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처음엔 서툴지만 나중에 잘 탈 수 있게 되더라도(완성) 페달을 밟는 일(수행)을 멈춘다면 넘어져 버리기 때문에 결코 끝남의 완성이 아니라 지속되는 완성의 의미를 말합니다.

‘반야바라밀’에 대해서는 《대품반야경》과 《소품반야경》에서 설명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약칭인 ‘심경’에 대한 설명만 드리겠습니다. 마음(心)에 해당하는 범어인 흐리다야(hrdaya)는 심장(心臟)을 의미하는데, 다시 말하자면 수많은 경전 가운데서 심장에 해당하는 경전이 바로 《반야심경》이라는 것입니다.

대승불교 가르침의 본질적인 요소가 응축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보면 심(心)은 중심, 본질, 진수(眞髓)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즉 육체적인 심장을 정신적인 마음으로 비유한 것은 불교에서 육체와 마음을 구별하지 않고, 양자일여(兩者一如)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때문이지요.

인도에서는 옛날부터 생명은 심장에 있다고 생각하였고, 중국어의 심장이라는 말도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하는 생각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반야바라밀다에 안주하는 사람은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미혹에 빠지는 일이 없고, 마음에 미혹이 없기 때문에 사물을 거꾸로 본다는 일도 없게 되는데, 즉 착각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영원한 편안함에 안주하게 된다고 경전은 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야심경》에는 공(空)이라는 글자 이상으로 무(無)라는 글자도 많이 나옵니다. 이 무(無)의 뜻은 그 뒤에 나오는 구절의 의미를 부정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그 어떠한 대상과 사물에도 걸림이 없을 때의 상태를 가르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하는 입장에서의 부정적 표현으로 이해하셔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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