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조차 그대로 절대적 세계(진여)에 뒷받침된 진실
불교에서 금기시하는 욕망이라든가 탐욕심에 대한 특이한 해석
스승에게 한 제자가 새롭다는 뜻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사랑의 대상이 될 때다” 즉 새로워진다는 것은 날마다 매순간마다 사랑의 대상을 구체화시키는 일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우리들의 현실적인 욕망조차 그대로 절대적 세계(진여)에 뒷받침된 진실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청정하다고 보는 경전이 있는데, 바로 밀교계 경전인《반야이취경》입니다.
불교에서 금기시하는 욕망이라든가 탐욕심에 대한 특이한 해석으로 인해 이 경전은 객관적으로 설명하기가 조금 난해하고 또한 잘못하면 오해를 살 수 있는 소지도 다분히 있는 경전입니다.
《반야이취경》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독송되고 있지 않는 편이나, 일본 진언종(眞言宗)에서는 조석예불 때나 법요식 때마다 독송하고 있는 경전입니다. 현재 다섯 종류의 번역본이 있는데 불공삼장(不空三藏)이 번역한《대락금강불공진실삼마야경반야바라밀다이취품(大樂金剛不空眞實三摩耶經般若波羅蜜多理趣品)》을 주로 독송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역(異譯)으로서는 현장이 번역한 《대품반야》에도 실려 있고, 보리유지의 《실상반야바라밀경(實相般若波羅蜜經)》과 금강지의 《금강정유가이취반야경(金剛頂瑜伽理趣般若經)》, 그리고 시호의 《변조반야바라밀경(遍照般若波羅蜜經)》과 법현의 《최상근본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最上根本金剛不空三昧大敎王經)》에 각기 한 품으로서 실려 있습니다.
이 경전의 전체 대의는 지법신(智法身)인 대일여래(大日如來)가 금강살타(金剛薩타)를 위하여 반야이취(般若理趣)의 입장에서 일체의 제법은 본래부터 자성청정(自性淸淨)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언을 행하는 자가 입단(入壇) 입법(入法)하여 삼밀(三密)의 묘행을 닦으면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정보리심(淨菩提心)을 각성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정보리심을 일으키는 사람은 모두 금강살타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즉 금강살타의 삼매를 17단으로 나누어서 밝히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경전의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경전은 1권 17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제1 대락불공금강살타초집회품(大樂不空金剛薩타初集會品)을 살펴보면 비로자나여래가 금강살타 등 팔대(八大)보살을 상대로 설하는 십칠청정구(十七淸淨句)의 대락(大樂)사상이 골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여기에서는 인간의 일체 욕망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심지어는 성욕(性慾)조차도 청정한 보살위(菩薩位)라고 대담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단순하게 악(惡)으로서 부정하지 않고 반야의 지혜를 통하여 가치를 전환시킴으로써 절대화한다는 점에서 바로 《반야이취경》의 현실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욕망도 그대로 절대적 세계(진여)에 뒷받침된 진실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청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현실적 존재인 우리들과 최고 진실로서의 부처님과의 일치융합을 양성(兩性)의 교섭에서 생겨나는 열락(悅樂)에다 비유하고, 불범일체(佛凡一體)의 불이(不二)의 경지라고 하여 대락(大樂) 또는 적열(適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현실긍정의 가르침은 대승불교의 ‘번뇌 즉 보리’, ‘생사 즉 열반’의 사상을 좀더 발전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현실성을 가지게끔 하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밀교학계의 다음과 같은 설명도 이 경전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승경전 가운데서도 금강과 같은 것, 즉 가장 최종적이고 가장 궁극적인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하는 경전으로서 종래에 없는 솔직한 표현을 가지고 인간존재, 특히 그 존재형식의 기본인 남녀간의 애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경전”이라는 해석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애욕이라는 것은 넓게는 탐욕심에 포함된다고 할 것입니다. 바로 《이취경》에서는 이러한 탐욕심까지도 본래부터 청정하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취경》에서는 현재 자기의 ‘탐욕심’을 냉정하게 관찰하여, 이 탐욕심을 타인에 대한 자비심에 바탕을 둔 실천행으로 전환시켜 한 단계 한 단계씩 정화시켜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취경》에는 ‘백자게(百字偈)’가 나오는데 글자 그대로 백개의 글자로 경전 전체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게송입니다. 이 백자게는 법요식 등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될 때 ‘권청구(勸請句)’에서 곧바로 ‘백자게’로 옮겨서 독송되고 있는 편리한 게송입니다. 그 가운데서 한 구절만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연화의 체는 본래부터 더러움을 싫어하여
더러움에 물 드는 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욕(諸欲)의 본성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