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는 화두는 단연코 미영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공격에 나섰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의 명분에 쉽게 동조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미국이 진짜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정규뉴스 시간의 절반에다 이라크전쟁특보까지 TV와 라디오, 신문은 온통 전쟁뉴스로 도배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전쟁이 발발 초기에는 속전속결로 쉽게 끝날 것 같았는데 시간이 경과할수록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영연합군의 공세는 육지와 공중에서 점점 도를 더해 가고, 이에 후세인의 이라크도 결사항전의 결의를 다지는가 하면, 세계인의 반전 여론도 또한 기세를 더해간다. 이렇게 가열되어 가는 전쟁분위기에서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전쟁을 하는 당사자들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제재나 중재를 해야 할 UN은 그 권위와 능력을 상실하였으니 이제 최후의 승자와 패자를 가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분위기로는 모두가 패자가 될 가능성이 한층 짙어졌다. 전쟁이 끝난 뒤를 예상해 보건대 승리할 것으로 예측되는 미국도 주변 국가들의 반대에 대처해야 함은 물론 자국내의 반전여론 등을 무마하는 등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파괴된 이라크의 재건과 걸프전 이후 십여년간의 경제제재로 인해 피폐된 이라크 민중들의 민심을 되돌리는 일이나,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기까지는 천문적인 투자와 시간이 필요 할 것이다.
인류역사상 평화보다 전쟁을 선호하는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오지 않았는가. 이 전쟁의 역사를 통해 얻은 결론은 전쟁의 당위성이나 정당성은 결코 그것의 필요성보다 우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미국이 전 세계인의 반전여론을 뒤로 한 채 사담 후세인의 사냥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들의 국익을 위한 필요성 때문이지 결코 합리성과 정당성의 논리로는 설득이 불가능하다. 1992년 걸프전 때에는 거의 모든 서방국가들이 미국을 지원하여 명분과 실리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한 입장에서 싸웠지만 이번 전쟁은 UN의 결의를 얻는데 실패하였다. 그 뜻은 국제사회에서의 명분보다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에 급급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프랑스나 독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국익차원에서 그동안 이라크내의 석유 유통권을 쥐고 있다가 전쟁을 통해 미국에게 넘겨줘야 할 운명이니 결사 반대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삼십여년 전 월남전이 한창일 때 우리나라도 영국의 작가 럿셀 등 세계의 반전주의자들의 따가운 여론보다 국익을 위해 파병을 하지 않았던가. 오늘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파병의 찬반논쟁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찬성론자들은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는 필요성이고, 반대론자들은 ‘정당성이나 명분의 결여’로 귀결된다.
이제는 사담 후세인을 사냥하고, 이라크를 민주화시킨 뒤에 중동을 리모델링 하여 이곳에서 패권을 장악하여 자국의 경제불황을 극복하고 세계의 보안관 자리를 영속화하겠다는 부시 독트린의 전개과정을 지켜볼 뿐이다.
역시 전쟁은 정당성보다는 필요성이 우선한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김형춘 글. 월간반야 2003년 4월 제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