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주위의 권유로 자그만 텃밭을 마련한지 10년이나 되었다. 처음엔 그저 심심풀이로 한번씩 놀러 다녔지만, 노모께 들키고 나서는 어쩔 수없이 주말이면 끌려 다니다시피 몇 년을 다녔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우리 내외가 실제로 좋아서 텃밭을 찾곤 한다. 때로는 힘에 겨워 짜증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꽤나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심어놓은 작물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싹이 텄는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옛 어른들의 말씀대로 ‘곡식이나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릴 듣고 자란다’고 했는데, 우리는 아직 주말이나 휴일이 아니면 가지 못하니까 때로는 과일이나 채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지난 여름의 가뭄 때에는 작물이 타 들어가지나 않나 염려되어 주중에 잠깐 들를 때도 있었다.
우리 텃밭 옆에는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텃밭을 가꾸는 동창생 내외가 있다. 며칠 전 환담하는 자리에서 그 댁의 아들딸이 부모 더러 ‘자연중독증’에 걸렸다고 하더란다. 흙이 좋고 나무가 싱그럽고 공기가 맑은 데다, 자라나는 푸성귀를 보면 텃밭을 떠나기가 싫다는 것이다. 틈만 나면 텃밭에 와서 시간을 보내니 가히 자연중독증 환자라 할 만하다.
‘인간’이란 영어단어 ‘human’이 흙을 뜻하는 라틴어의 ‘humus’에서 왔다고 하니 사람이 흙을 떠나서는 온전한 삶을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삶의 흔적인 ’문화‘라는 말의 영어단어 ’culture’도 ‘땅을 경작하다’는 뜻이 아닌가. 물론 인류 역사가 오랜 세월에 걸친 농경시대를 거치면서 땅을 경작하고 그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왔고, 생을 다하면 흙으로 돌아갔으니 흙과의 관계는 더 말해 무엇할까.
그러나 근대 산업사회는 인간을 흙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고, 농부는 고향을 떠나야 돈도 벌고 심지어 결혼까지도 할 수 있었다. 농부의 육체노동은 가장 부끄러운 것이 되었고, 그나마 농촌을 떠나 기업이 바라는 값싼 노동자가 되어도 고향을 지키고 흙을 파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지식 전문가나 정치가의 언어노동은 가장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생명을 길러내는 흙은 천시되고 탐욕을 길러내는 돈은 숭상되었다. 농업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농촌에 남아서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하는 ‘1차 산업’이 되고, 금융과 서비스업은 선진국을 상징하는 ‘3차 산업’으로 추앙 받고 있다.
사람이건 자연이건 모두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되고, 돈을 좇아 뿌리도 없이 떠도는 자본의 뜨내기들에 의해 자연은 도처에서 신음소리를 내고 문명도 급기야 병에 걸리고 말았다. 자연의 저항인가 생명의 반란인가. 광우병으로, 조류인플루엔자로 인간에게 선전포고를 해 왔다.
어쩔 수 없이 설익은 도회인은 다시 흙을 찾았다. 고향에 돌아온 듯, 엄마 품에 안긴 듯이 안온한 마음으로 흙에 다가가니 가히 중독이 될 만도 하지 않은가. 삶의 지혜와 기술은 사람이 땅에 뿌리를 박고 흙을 만지면서 자연을 책임 있게 돌볼 때에 다시 평화를 주고 우리 후대에 온전히 전승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땅을 돌보고 가꾸는 농사야말로 어쩌면 가장 고결하고 책임 있게 사는 삶의 방식이 아닐까. 이즈음 농촌에는 순수하게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지만, 하도 푸대접받고 소외당하는데 대한 앙갚음으로 농민운동을 직업처럼 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참으로 가슴아픈 현실이다. 경제논리로 따진다면 우리네 농촌과 농업이 설자리가 있을까.
매스컴에서는 단 하루도 먹거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 않는 날이 없다. 가능하다면 육식이나 화학식품보단 이 땅에서 얻어지는 농작물을 섭취하고 살 때에 우리의 육신과 정신은 가장 깨끗하고 온순하며 활기 있고 밝아질 것이라 믿는다.
香岩 김형춘 (반야거사회 회장·창원전문대 교수) 글. 월간반야 2008년 10월 제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