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인사

일이 있어 다니다 보면 낯선 사람을 만나 우연히 인사를 받는 수가 있다. 인간관계는 참으로 미묘한 면이 있어 나는 모르지만 상대는 나를 아는 수도 있고 반대로 나는 아는데 상대는 나를 몰라보는 수도 흔히 있다. 아마 연예계에 종사하는 유명한 스타나 탤런트, 이런 분들은 영화나 TV드라마 혹은 언론 매체를 통해서 얼굴이 많이 알려지고, 또 유명한 정치인이나 예술인, 작가 등도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처음 만나는 사람을 자신은 모르지만 상대방은 알아보는 수가 꽤 많을 것 같다.

특정한 모임이 아니더라도 낯선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아무래도 이것이 인간의 예의범절뿐만 아니라 인격적 수양이 앞선 사람의 처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무어니 해도 사람 사는 사회의 분위기는 사람끼리의 친화력이 높을수록 더 좋은 사회가 아닐까 한다.

구조주의를 주창한 프랑스의 석학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박사는 인간사회를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면서 뜨거운 사회와 차가운 사회라는 말을 썼다. 뜨거운 사회란 사람의 가슴이 뜨겁다는 뜻이고 차가운 사회란 사람의 가슴이 차갑다는 뜻이다.

그는 원시사회가 뜨거운 사회였다 하고 현대문명의 사회를 차가운 사회라고 말한다. 그것은 문명이 발달된 사회일수록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사람이 사람을 신뢰하는 믿음이 부족해지며 남에 대한 배려도 없어져 냉정한 비판은 잘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체온을 나눠주지 못하는 가슴의 온도가 차가워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문명사회에 들어와서는 사람과 사람의 유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으며 상호 협력이 어려워지는 시대라 하였다. 이러한 말을 통해 생각해 보면 사람 사이에 친밀감이 나눠질 수 있는 인간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가슴의 온도를 높이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가벼운 인사말 한 마디가 사람을 친하게 만들 수도 있고 웃는 낯으로 부드러운 표정 하나 지어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할 수도 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보시할 수 있는 길이 일곱 가지가있다는 [잡보장경]에 설해져 있는 부처님 말씀도 있다.

온화한 얼굴로 남을 대해 주는 것을 화안시(和顔施), 부드러운 말 한 마디를 해 주는 것을 언사시(言辭施), 고운 눈매로 상대방을 보아주는 것을 안시(眼施),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은 지시(指施), 남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을 좌상시(座床施), 무거운 짐을 들어주거나 가파른 길에서 수레를 잠시 밀어주는 일은 신시(身施), 그리고 남의 일에 우호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거나 성원해 주는 것을 마음으로 베푸는 심시(心施)라 하였다. 이러한 칠시(七施)의 가벼운 이타행에서 사람 사이가 친해지고 사회가 밝아지는 것이다.

지난 주 KTX 기차를 타고 서울서 내려오던 중, 뜻밖으로 기차 안에서 커피 한 잔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얻어 마신 적이 있다. 졸다 깨어보니 기차는 김천구미역을 지나 대구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때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옆 자리에 앉아 있던 40대로 보이는 여성분이 마침 지나던 판매 승무원으로부터 커피를 한 잔 사서 자기는 먹지 않고 나에게 드리라 하면서 한 잔을 사 주는 것이었다. 우선 나는 고마워하면서 그 분이 불교신자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내가 고맙다고 했더니 그분은 역시 내게 합장을 하였다. 커피 한 잔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때 감동스런 고마움을 느꼈다. 그 신도님은 동대구역에서 내리면서도 내게 합장을 하고 “안녕히 가십시오.” 인사도 하였다.

이날 나는 커피 한 잔의 인사 때문에 하루 종일 고마움을 느꼈다. 이 경우는 물론 나는 그 분을 몰랐지만 혹 그분은 나를 알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불자이기 때문에 내가 스님이라 단순한 호의를 베풀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든 어떤 인연의 계기가 있었던 간에 그분은 내게 친절을 베풀었고 나는 친절의 호의를 받은 셈이다. 이러한 단순한 인사의 공간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질 때 감사의 마음이 되면서 순수한 감동이 은연중 일어날 수 있는 것이리라.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인사와 안부는 사람 사이를 가깝게 만들며 아무리 자주 하여도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분명 인사와 안부를 자주 나누면 사람 사이가 더 가까워져 친해 질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2년 3월 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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