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이스탄불의 추억을 생각하며

언제부터인가 곡조도 모르면서 “추억의 이스탄불”이라는 노래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오래 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음악 같은 곡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때 곡 이름이 “추억의 이스탄불”이라고 진행자가 설명해 주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에 내리니 밤 9시였다. 공항이 무척 크다. 짐 찾는 데까지 한참 걸어가야 했다. 공항을 빠져 나와 시내로 들어오면서 내 머리에는 여기가 이스탄불인가 하는 지명확인이 아니라 여기가 “추억의 이스탄불” 이라는 노래의 도시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일어났다.

예약해 둔 호텔을 찾아가는데 도중에 교통순경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차를 잡아 세워놓고 10여분을 택시기사와 실랑이를 하는 것을 보고 약간의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지만 뇌리에 입력된 추억의 이스탄불이라는 말 때문에 좋게 이해하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3박 4일을 이곳에 머물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이 가슴 속에 매우 우호적으로 남는 것은 노래 이름 탓만은 아니었다. 물론 노래 이름 때문에 이스탄불이 반갑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그 노래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면서도 그러나 이스탄불에서 누군가가 추억할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 하는 생각만으로도 이스탄불이 반갑게 느껴진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도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정이 많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내 승복이 특이해서인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악수를 청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전차 안에서는 기꺼이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한국 사람입니까 하고 묻더니 한국 사람들이 지금 왜 그리 우느냐고 우는 시늉을 하면서 묻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북한의 김정일 사명 뉴스에 오열을 토하는 북한 사람들의 우는 모습을 본 모양이다. 일요일 새벽 아테네에서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좀 놀랐다. CNN 뉴스에 계속 사망 소식이 나오는 걸 보았다.

탁심 광장에 갔을 때는 청년 한 명과 장년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걸어 자기네 가게구경을 가지고 하였다. 일종의 호객행위라고 생각 되어 거절을 하였는데 막무가내로 자기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하며 가게에 가서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혜석’이 가보자 하여 따라 갔더니 큰 카펫 가게였다. 형제의 나라에서 온 것을 환영한다는 말도 하기에 100m가 넘는 거리를 따라가 가게 안에 들어가니 소파에 앉게 하고 차를 내어 주고는 카펫 상품을 여러 개 꺼내 놓고 설명을 어떻게나 열심히 장황하게 하는지 지루하여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다. 중간에 말을 막아 우리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카펫을 사 줄 수 없어 대단히 미안하다 하였더니 이내 괜찮다하면서 잘 가라 하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다정다감하고 다혈질적인 기질이 있는 것 같았다.

택시, 버스, 전차, 지하철을 타고 사흘을 돌아다니며 본 이스탄불 사람들은 우선 인종 전시장처럼 얼굴이 하얀 백인, 시커먼 흑인, 거머티티한 얼굴, 황색 얼굴, 백발 머리, 금발 머리, 시커먼 곱슬머리 등 다인종 사회임을 알 수 있었다. 99%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하였는데 불교를 아는 사람들도 있는지 나를 보고 합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발달한 도시로 두 대륙을 잇는 긴 다리가 두 개나 놓여 있다. 로만 시대부터 비잔틴, 오토만 시대를 거쳐 내려와 1923년에 터키공화국으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7천만 인구에 이스탄불이 2천만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다 하였다. 인구로 치면 세계 제1의 도시다.

지금은 박물관 구실을 하고 있는 과거의 소피아 성당을 둘러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 하는 놀라움과 건축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하루에 몇 번씩 이슬람 사원의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찬송의 노래 같은 긴 소리가 이방인의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허공에 퍼져 울리는 그 소리가 내게는 사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빗속에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보기도 한 추억의 이스탄불. 내게 이스탄불 여행의 인상이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2년 1월 134호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