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쉬 빌리지를 둘러보고

지난 주 미국을 다녀왔다. 이민 가 있는 옛 친구가 비행기표를 보내주면서 꼭 한번 들어오라고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죽마고우였던 그 친구는 10여 년간 경찰관 생활을 하다가 81년도엔가 이민을 갔었다. 내가 출가를 하기 전에 시골에 있던 그의 집에서 한 달 동안 같이 지내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도와준 것을 그는 못내 고맙게 생각했다. 그는 옛날의 우정도 생각나고, 또 나이가 드니 향수도 일어나 내가 보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가 경찰관 시험에 합격하여 경찰학교에 들어갈 때 나를 만나 기쁜 표정을 지으며 “네 덕분에 시험에 합격해 정말 고맙다”고 하였다. 나는 “훌륭한 경찰관이 되거래이”라고 말해 주면서 그의 입교를 축하해 주고 헤어진 다음 얼마 후 산사를 찾았다가 출가를 결심하고 스님이 되었다.

그 후 그가 서울시경에서 아주 유능한 형사가 되어 범죄 수사나 범인 체포에 남다른 수완을 발휘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고, 어느 해 휴가 때엔 그가 나를 만나기 위해 절로 찾아온 적도 있었다. 지난 봄에는 그가 자서전을 펴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놓은 것을 보고 잠시 옛 추억에 잠기기도 하였다.

이번 친구 방문에서 우리는 자연히 옛날의 이야기들을 많이 나눴다. 기억나는 옛 친구들의 근황이 어떤가 하고 서로 안부를 물어 보기도 하였다. 개중에는 이미 타계한 이도 있었고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불행한 소문이 난 친구들도 있었다. 오랜만에 우리는 40여 년 전의 1960년대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친구가 사는 곳은 미국의 중부 지역에 있는 캔사스 시티(Kansas City)라는 곳이었다. 시카고에서 미국 국내선 비행기로 1시간 반을 더 날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캔사스 시티는 큰 도시가 아니고 곡창지대의 한쪽에 있었는데 도시가 날로 발전하며 외지에서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 친구 집에서 나는 1주일을 머물렀다. 친구의 집은 전원주택처럼 크고 아담하였다. 다운타운을 벗어난 외곽지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초원 같은 언덕에 집 뒤로는 숲이 있었고 야생 사슴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었다. 친구는 다운타운에 큰 도장을 열어 태권도를 가르치는 관장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9단이라는 태권도의 명인이 되어 2천 개가 넘는 미국 전역의 도장 가운데 10대 도장에 드는 훌륭한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도장 안에 태극기와 미국 국기를 좌우에 걸어 놓고 드나드는 수련생들이 출입 시에 반드시 경례를 하게 하는 이색적인 풍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친구는 농담으로 미국인을 위시한 외국인들을 태극기 앞에 절을 하게 하는 애국과 외교의 선봉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하였다.

하루는 친구가 드라이버를 가자고 했다. 어디 좋은 곳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문명을 거부하고 사는 이색적인 곳이 있다고 하였다. 차를 운전하여 두어 시간을 달렸더니 세계 최고로 도로망이 잘 되어 있는 미국인데도 비포장 길이 나타나는 곳이 었다. 산이 없어 벽촌이라 할 수 없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운치가 넘치는 지역에 아미쉬 빌리지라는 곳이 있었다. 이곳은 주민들이 농사나 목축을 하면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을 바탕으로 자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특이한 풍습이 남아 있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고 우리나라 마을로 말하면 한 마을에 한 집이 있을 정도였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곳 사람들은 자동차 이용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며, 전기 공급을 받지 않고 밤에 촛불을 켜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갔을 때 아이들을 두어 명씩 태우고 말이 끄는 마차를 몰고 가는 여인들을 볼 수 있었다. 또 한 곳에 가니 농산물 경매를 하는지 수박 감자 등과 각종 채소류를 모아 놓고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 웅성웅성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도 보였다. 도시의 문명을 벗어나 시골의 넓은 땅에 삶의 터전을 만들어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양식에 삶의 훌륭한 정신이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찍이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외쳤지만 문명에 중독된 도시 문화는 어쩌면 자연을 잃고 사는지도 모른다. 기계 문명이 들려주는 온갖 혼음 속에 언제 자연을 관조할 여유나 있었던가? 쌓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오늘도 유흥의 거리를 기웃거리며 관능적인 자극을 바라며 호기심의 눈을 번뜩이는 오늘의 문명에 중독된 현대인들에게 아미쉬 빌리지의 사람들은 말없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삶이란 무엇인가?’ 가 꼭 철학자의 사변적인 질문만은 될 수 없음에도 우리는 스스로의 삶에서 이 질문을 회피하고 남 따라 장에 가는 식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나 역시 죽어 가는 존재이고 사랑받는 너 역시 죽어 가는 존재임을 의식할 때 삶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삶의 의미와 죽음의 의미가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인 것은 길가는 행인의 첫걸음의 발자국이나 마지막 걸음의 발자국이 똑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9월 제82호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