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스님이 되어 공양주를 하던 시절이었다. 대중이 먹을 밥을 짓는 소임이공양주이므로 가마솥에 매일 100여명이 먹을 수 있는 밥을 지어 공양 때마다 큰방에 들여 놓고 후원대중이 먹을 수 있도록 후원에도 큰 함지박에 가득히 밥을 갖다 주어야 하였다. 초하루나 관음재일 등 신도들이 기도하러 오는 날은 200여명분의 밥을 지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한 번은 밥을 짓기 위하여 수곽(우물)가에서 쌀을 씻어 큰 소쿠리에 담아 공양간 솥으로 옮겼다. 그때 후원을 둘러보시며 지나가시던 나의 은사였던 벽자 안자 스님께서 수곽가에서 ‘공양주 이리 오너라’고 부르시었다. 얼른 뛰어갔더니 아까 내가 앉아 쌀을 씻던 자리에 소쿠리를 들 때 쌀이 서너 알 수곽 옆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걸 가리키며 스님께서 왜 쌀알을 흘렸느냐고 호되게 꾸짖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이렇게 쌀알을 버려
감복(感福)을 하면 다음 생에 가난한 집에 태어나 끼니를 제대로 못 얻어먹는다고 하였다. 쌀알 몇 개를 흘린 것이 내생에 밥을 굶게 되는 과보를 가져 온다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스물 서넛 살 되던 나이였는데 이 말씀이 너무 혹독하다고 생각되었다. 쌀을 씻다가 쌀알 몇 개 흘린 것이 다음 생에 밥을 굶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은 너무 비약적이고 극단적인 논리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님의 꾸중을 달게 받으며 부주의를 반성하면서 조심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이때의 꾸중을 계기로 나는 자주 감복(感福)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가 많았다. 내복을 내 스스로 줄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말에 숨겨진 의미를 여러 각도로 생각해 보았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로부터도 ‘복 나가지 않게 해라’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이 말은 특히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을 때 자주 들려주던 말씀이다. 음식 투정을 하지 말고, 감사하게 먹으라는 뜻인 것 같았으며, 또 행동을 조심하여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으로 이해되는 말이었다. 강원의 교과서 중의 하나인 『치문(緇門)』을 보다가 쌀 한 톨에 시은(施恩)의 무게가 7근이 나간다(感割之重 一米七斤)는 말도 배웠다.
그러다가 중년에 5공화국 때, 한번은 종교지도자 연수교육을 정부의 공무원 교육원에서 받은 적이 있었다. 3박 4일 동안을 천주교 신부 10여 명, 기독교 목사 150여명, 그리고 불교의 스님들 50여명이 함께 연수교육을 받았는데 교육담당 주최측에서 분임토의 시간을 배당해 새 생활 국민운동에 제안할 안건을 토의 대표자가 발표하게 하였다. 그때 나는 쌀알 흘렸다고 꾸중들은 일이 생각나 밥을 먹을 때 밥그릇에 밥알이 붙어 낭비되지 않도록 하여 식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도 새생활 국민운동의 한 모범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발표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밥알을 남기지 않을 때는 낭비되는 쌀이 줄어 국민 전체적으로 계산해 본다면 엄청난 양의 식량이 절감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연수교육 지도 담당관이 이 말을 듣고 나중에 감명을 받았다며 우수발표자로 내게 상장을 주는 것이었다.
복을 감한다는 말은 잘못된 생활 습관이 내가 타고난 복을 빼앗아 간다는 말이다. 내가 타고난 복을 뺏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낭비하지 말고 근검절약하여 저축을 하듯이 복을 지어 모아가라는 말이다. 물질적 고급품으로 소유욕을 만족시키려는 현대인들의 생활 사고방식에는 스스로 복을 감하는 감복의 요인들이 많이 들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과소비를 미덕으로 알고 그것이 생활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아, 경제적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태도야 말로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다. 내 복을 내가 지키기 위해서는 허영심 따위를 가져서는 결코 안 된다. 하찮은 것이라도 소중이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시래기가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건지기 위하여 시냇물을 따라 내려오다가, 마침 절을 향해 올라오던 젊은 스님에게 소리를 쳐 ‘거기 떠내려가는 시래기 좀 건져주시오’하고 외친 노스님이 있었다는 옛날이야기도 있다. 10여 년 전에 입적하신 어느 큰 스님은 살아생전에 감기가 걸려 코를 푼 휴지를 햇볕에 말려 두었다가 화장실에 갈 때 다시 사용하였다는 설화도 있다. 깨진 그릇에 물이 새듯이 음식을 함부로 버리거나 물건을 함부로 버리는 사람은 자기 복 그릇에 복이 새고 있다고 생각하라고 가르친 것이 감복의 교훈이며, 이것이 바로 선인(先人)들의 지혜였다.
요산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8년 10월 제9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