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척사륜직하수 千尺絲綸直下垂
일파재동만파수 一波 動萬波隨
야정수한어불식 夜靜水寒魚不食
만선공재월명귀 滿船空載月明歸
낚싯줄 길게 바다 속에 드리우니
파도는 일파 만파 일렁이는데
고요가 겨운 밤 물만 차가울 뿐 고기는 물지 않아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고 말았네
인생이란 어떤 면에서 빈배와 같은 것이다. 욕구충족을 위해 아무리 배에 짐을 싣듯 실어 보아도 부질없는 것임을 나중에 가서야 알게되는 것이다. 야보도천(冶父道川)선사의 이 게송은 읽는 이의 마음을 비우게 해 주는 매력이 있다.
가을 달밤에 어떤 이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러 갔다. 간 곳이 바다라 해도 좋고 큰 호수라 해도 상관없는 곳이다. 물 속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고기가 물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차가운 수면에 파도가 일고 달빛은 교교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웬일인지 고기가 물지 않는다. 밤은 이슥한데 고기는 낚아질 기척이 없어 할 수 없이 낚싯대를 거두고 빈배로 돌아온다. 만선의 꿈은 사라지고 뱃전에 달빛만 부서질 뿐이었다.
흔히 도(道)는 비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노자 도덕경에도 나오는 말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 실체가 없는 것으로 우리들의 의식에 의해 분별되어지는 환영일 뿐이다. 그런데 이 환영이 사람을 그렇게도 애타게 만들며 못 잊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의 파도 속에서 산다. 생각 그것은 사실 번뇌인데 한 생각이 일어나면 천 가지 만가지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다. 연쇄반응으로 서로 서로 관계하면서 희비의 쌍곡선을 이루다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는 존재들! 그 본 바탕에는 아무 것도 없는 공(空)한 것이다. 카알 붓세는 “산너머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하기에 찾아갔다가 눈물만 흘리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하지 않았던가? 물론 메틸 링크의 파랑새 이야기도 있다. 어떻거나 우리는 자신이 비워질 때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자아관념의 상(相)을 떠나 아무 것도 없는 무(無)로 돌아가면 모든 것은 이미 해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이미 갖추어져 있을 것이다.
야보 도천선사는 당나라 때 스님이나 생몰연대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금강경오가해에 수록된 야보(冶父 아버지 ‘부’자가 사람이름으로 쓰일 때 보로 읽는다.)의 송(頌)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야말로 읽는 이로 하여금 삼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게 하는 시원함이 있다. 이송도 오가해에 나오는 하나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1년 11월 (제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