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김해에 사시던 어느 노거사님이 평생 재배해 오던 분재를 200여분 반야암에 기증을 한 적이 있었다. 혹 소용이 된다면 절에서 재배해 보고 아니면 팔아서 불사에 보태 쓰라는 뜻에서였다. 나이가 많아 일하기가 어렵고 또 분재하던 농원이 경마장 조성지에 들어가 부득이 분재 나무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 분재를 반야거사회에서 불사보조금 충당을 위해 얼마씩 돈을 내고 일부를 가져가고 나머지는 절 주위의 산비탈 맨땅에다 심어 버렸다. 분재의 수종은 모과나무와 느티나무가 대부분이었다. 해가 지나면서 이 나무들 가운데 잘 자란 모과나무에 작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모과가 한 두 개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아직 꽃을 피워보지 못한 나무도 많이 있지만 100여 그루되는 반야 모과단지가 생겨 앞으로 해마다 모과잔치를 하게 생겼다. 분재가 아닌 특별히 사다 심은 큰 모과나무도 몇 그루 있는데 영축산 산등성이에 들어서 있는 소나무와 함께 나는 이 모과나무를 사시사철 즐기고 있다.
내가 모과나무 옆에 자주 가는 이유는 법당 우측에 심어져 있는 가장 큰 모과나무의 모양이 좋아서 이기도 하지만 모과나무에서 느끼는 특이한 이미지가 있어서 이다. 모과나무는 자라면서부터 울퉁불퉁한 목질 덩어리가 생겨 밋밋하게 자라는 다른 나무들과는 우선 둥치의 생김새가 다르다. 색깔도 군인들이 입는 군복의 얼룩무늬처럼 반점 같은 것이 생긴다. 결코 예쁘거나 고상한 나무는 아니다. 옛날에는 못생긴 사람의 얼굴을 모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모과나무는 뭔지 모를 매력이 있다. 게다가 사계에 따라서 다른 나무들이 하지 못하는 멋을 풍기기도 한다.
봄에 새잎이 피어날 때 연초록 잎이 햇빛에 반짝이며 자라다가 이내 꽃을 피운다. 옅은 주홍색 꽃잎이 피워 어떤 꽃들은 나뭇잎 뒤에 숨어 있기를 좋아한다. 꽃이 뽐내지 않고 조용히 뒤에 숨어 있기를 좋아하는 것은 모과 꽃이 제일이다. 그러다가 손가락만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서 과일 나무의 위세를 과시하기 시작한다. 나누 밑에 가서 열매가 얼마나 열렸는지 궁금하여 살펴보면 처음에는 손가락 굵기만한 것들이 잎보다 작아 잎 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가끔 모과나무 밑에 다가가 숨은 그림을 찾는 것처럼 모과 열매를 세어 보기도 한다.
여름에는 열매가 제법 굵어져 나무를 보면 이제는 열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열매의 색깔이 진초록이 되었다가 차츰차츰 노란 색을 첨가해 간다.
가을이 되면 노오란 열매가 멀리서 보아도 사람의 눈을 끌며 잎은 서서히 단풍이 들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때의 모과나무 모습이 일품이다.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모과의 모습이 열매마다 크기와 모양이 달라 관상의 매력이 느껴진다.
겨울이 되면 잎 떨어진 나무가 울퉁불퉁한 나신을 드러내며 서 있는 모습이 꼭 오래된 골동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모과나무는 사시사철 뚜렷한 제 모습을 보여주면서 은은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매력이 있는 나무다. 소나무를 군자의 나무라 하였고 대나무를 절개의 나무라 하였다면 모과나무는 서민의 심덕을 상징하는 나무로 보면 어떨까 싶다. 은은히 남모르는 덕을 간직하고 언제나 유용한 가치를 선물해 주는 겸손하기 짝이 없는 나무라 느껴져 사람도 이 모과나무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과일나무 중에 모과가 단연 한방의 약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처럼 사람도 누구에게 약으로 쓰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져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업을 잘못 지으면 악의 뿌리가 내려 선근을 파괴하고 남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병을 유발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수가 있다. 남이 나로 인해 병을 얻는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있을 수 없다. 남이 병을 앓을 때 내가 약이 되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모과나무로부터 배우는 하나의 교훈일 수 있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9년 6월 제10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