化身佛(화신불)의 不思意(부사의)한 恩德(사덕) 2

부처님은 말씀이 달변이라 하십니다. 웅변이라 하십니다.

그 목소리가 맑고 조리가 정연하고 누구에게나 당신을 위해서 말하시는 것처럼 들리고 말씀을 잘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혀와 관계가 있습니다. 혀가 발제 즉, 머리카락이 난 자리까지도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 말은 부처님이 입으로 지은 공덕이 한량없고 진실하고 원만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딘가 기록에서 보았습니다마는 부처님의 말씀이 진실이라고 하는 표현으로 부처님이 입을 열어 혀를 내어서 당신의 얼굴을 덮었다고 “나의 말이 몇 생을 진실을 말한 것을 증명한 것이다.”하셨습니다.

하여튼 혀가 자기 코에 닿으면 삼생에 한번도 거짓말 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한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아마 혀가 코에 닿는 사람이 적은 것을 보면 조금씩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았는가 합니다.

그렇게 수행을 통해서 형상이 바뀌어지는 것이지 돈을 들여서 수술이나 하고 고가의 화장품으로 치장했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바뀔 때 형상이 바뀝니다. 그것을 여기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저는 경에서 여러 가지를 보았습니다마는 그 가운데서도 부처님의 상호의 특징적인 것이 미간 백호이지요. 눈썹 사이에 흰 터럭이 났다고 합니다. 그 흰 터럭이 감겨서 동그랗게 자리를 차지하고 거기서 광명을 놓는다고 백호상, 백호광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원래로 흰 터럭으로 그 길이가 한길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평소에는 바른쪽으로 또르르 말려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어떤 때는 광명을 놓아서 동방 만팔천으로 비쳤다는 것이 『법화경』에 나옵니다마는 거기서, 광명을 놓고 여러 가지 상서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옥호, 미간에서 나오는 호(터럭)는 부처님의 특유의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우리들이 부처님을 조성할 때에는 터럭을 갖다 놓는 것이 아니라 광채나는 보석을 해서 모십니다. 안 되면 수정이라도 갈아서 미간 백호를 만듭니다마는 이 미간백호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냐. 제일 중요한 것은 계, 정, 혜 삼학(三學)을 배우는 것을 보고, 또 착한 행을 하는 것을 보고 칭찬하며 결코 비방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헐뜯지 않는다. 그리고 불법을 지키고 전하며, 불교를 훼방하고 파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물리쳐서 불법을 수호하는 정법호지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법을 찬탄하고 정법을 닦으며 정법을 수호했을 때 그 공덕으로써 미간 백호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32상 모두가 그와같이 마음을 닦고 덕성을 닦으므로 갖추어지는 것이지 겉을 수술하거나 화장술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소에 마음을 먹는다고 하는 것. 이것은 미세한 감정이 우리 얼굴의 표정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얼굴을 환하고 밝게도 하고, 혹은 어둡게 하고, 혹은 거칠게도 하고, 혹은 분노 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전부 마음에서 만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감정이 오락가락하고 감정이 오락가락해서 미세한 상황의 특징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려면 밝은 화장술보다 밝은 마음 쓰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 무량공덕 광명이 내 생명과 함께 있다하는 반야바라밀을 끊임없이 염하는 것도 화장 미용법에 비교할 수 없는 밝아지는 기술입니다.

그 80종호라는 것은 32상호의 골격의 미세한 부분입니다. 그 이마가 넓고 평평하다든가 눈썹이 초승달처럼 둥글고 가늘다든가 그것이 다 80종호에 드는 것입니다마는 그렇게 미세한 상호들이 다 어우러져서 부처님과 같이 완전무결한, 누가 보든지 바로 성스러운 덕에 감복되는 그런 거룩한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그와 같이 32상과 80종호라는 모습을 갖추고 보살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십니다.
경전 말씀에는 모든 보살들과 이승 범부들을 위해서 마땅한 바를 따라서 삼승을 설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삼승은 세 가지 수레라는 뜻입니다. 수레란 무엇인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 이르는, 번뇌의 언덕에서 청정의 언덕으로 이르는, 고난의 언덕에서 즐거움의 언덕에 이르는, 이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게 하는 수레입니다.

부처님의 법이 바로 수레입니다. 수레를 타고 이 언덕에서 저 언덕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수레입니다. 세 가지 수레, 즉 성불하게 하는 보살도, 그리고 성문도에 이르게 하는 성문도, 또 벽지불에 이르게 하는 연각도, 그래서 연각승, 성문승, 보살승입니다. 이 세 가지 수레를 삼승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설법은 삼승이십니다.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이분들을 위해서 교화하시는 부처님의 설법이 기본적으로 세 가지입니다.

그 외에 여기 나옵니다마는 인천교(人天敎)가 있습니다. 성문, 연각, 보살 아닌 이 세간 사람으로 인간으로 태어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하는 가르침이라 해서 인천교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이승 범부들을 위해서는 마땅함을 따라서 삼승 묘법을 설합니다. 그리고 모든 보살들을 위해서는 육바라밀을 설합니다. 육바라밀은 보살의 길이지요. 그리고 이 육바라밀에 제일이 보시이고 끝이 반야바라밀입니다. 보시와 반야바라밀, 이것은 둘이 아닙니다. 반야바라밀이 보시고 보시가 반야바라밀이고 그 가운데 육바라밀이 다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하나 지성을 다해서 행할 때 육바라밀이 다 행해지는 것이지요. 반야바라밀이 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살들은 육바라밀을 통해서 성불을 구하고, 벽지불은 필경 깨닫기는 깨닫는다 하더라도 대비심을 버린 장애가 있다고 합니다.

성문 연각은 모두가 자기 수행만을 앞세웁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승이라고 합니다마는 성문 연각도 마음을 돌이키면 대승이 됩니다. 그래서 성문 연각이 성문도에 떨어지거나 독각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마침내 성불한다 해서 아무도 빠지지 않고 성불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벽지불을 구하는 자에게는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을 설하고, 성문을 구하는 자에게는 사제법(四諦法)을 설합니다. 아침 예불 때 법당에서 무상게를 하고 있으니까 우리 형제들은 십이인연법을 다 아실 것입니다. 사제법을 설해서 생로병사를 벗어나 열반을 얻게 하시며, 그밖의 중생을 위해서는 인천교를 설하십니다. 인천교라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서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는 가르침입니다.
성불보다는 우선 인간으로서의 자리를 보장해야겠다. 어떤 법인가. 오계다. 오계를 지키는 사람. 최로 태어나려고 하면 오계를 지켜야 합니다. 오계를 지키자면 오계를 받아야 되지요. 오계를 받으면 적어도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그 다음에 십선을 행하되 십선을 행한 상을 내지 않고 행하면 천상에 태어납니다. 십선을 행하더라도 자기가 했다고 자랑스럽게 뽑내고 하는 것은 자기의 착한 행을 좀먹게 됩니다.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십선을 행하더라도 스스로 행했다고 하는 자긍심을 두지 않는 그러한 행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십선을 행했을 때 천상에 태어납니다.

제가 항상 하는 말이고 항상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드립니다마는 형제 여러분들과 뜻을 한번 맞춰봤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다. 내생이 있다는 말을 믿으시는가. 또 내생에 천상에 태어난다. 지금도 천상에 태어난 사람이 있다. 하늘나라가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저는 금생이 있는 것과 다름없이 전생도 있었고 내생도 있다고 하는 것을 확신합니다. 또 인간이 여기 현존하는 것만큼 천상이 있고, 천상도 또한 무수한 차별이 있다 하는 부처님 말씀처럼 역시 무수한 차별이 있는 천상이 있습니다. 천상의 28차별이 경에 말씀되어 있는데 그것이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형제 여러분은 천상과 인간과 내생을 받아들이십니까. 마음이 바탕입니다. 마음이 다를 때 바뀝니다. 우리의 마음이 기쁜 일이 생기면 금방 얼굴이 밝아졌다가도 걱정스런 일이 생기거나 하면 당장 겁나는 생각에 얼굴이 바뀝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 정도에 따라서 태어나는 곳도 다릅니다. 금생에 인간으로 태어날 때는 인간 몸을 받을 수 있는 마음 상태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인간이 사는 동안에 그 마음을 관리를 해서 잘 키워서 더 착하고 더 빛나고 더 덕스럽고 더 아름답게 그 마음을 닦아가면 이 몸을 벗어버렸을 때 다음은 아름다움만 납습니다. 그 마음이 자기에게 알맞는 곳을 선택합니다. 자기가 골라잡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이것이다 하고 골라잡지 않아도 그렇게 길이 열리고 그렇게 통해버립니다.

사람의 마음을 예를 들어서 500에서부터 600사이가 인간이라고 하면 500에서 근근히 턱걸이해서 인간이 되었다가 거칠게 살고 폭음폭식하고 인간 이하의 행을 해서 500이하의 마음 상태가 되어 버리면 이 몸을 벗어났을 때는 500이라는 인간이 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이하로 떨어집니다.

490이 아귀라면 아귀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것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가지고,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았다고 하는 자기 점수 가지고 자기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점수에 따라서 그 세계에 와 버립니다. 그 후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벌써 자기 마음에 상응하는 세계가 나타납니다.

또 500에서 근근이 턱걸이가 되었다 하더라도 금생에 불법을 만났다거나, 착한 스승님 만나서 열심히 수행하고 닦아서 어려움을 이기고 노력해서 그 마음이 빛나고 안정되고 착하고 덕스러운 행을 닦아서 마음이 590이 아니라 600이 됐다면 그분도 그 다음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인간보다 더 높은 데 와 있습니다. 천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상의 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 다시 와야겠다는 원을 세웠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마음의 정도에 따라서 국토에 나타납니다. 수기심정국토정(隨機心淨國土淨), 마음의 청정함에 따라서 국토가 청정해진다. 마음의 청정함의 정도에 따라서 그 사람 태어날 곳도 선택되는 것입니다.

光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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