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二五四五년 부처님 오신날이다.
부처님은 어디에서 오셔서 어디로 가셨나? 그 부처님이 오신 곳과 가신 곳을 알려하면 눈을 떠야 한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본성을 바로 보는 날 그날이 바로 부처님 오신날이다.
도솔삼관(兜率三關)
- 번뇌의 풀을 헤치고 도의 깊은 뜻을 참구함은 오직 본성을 보기 위함인데 지금 그대의 본성품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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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성을 알았으니 이제 생사를 벗어나야 할텐데, 죽을 때 어떻게 다시 태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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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벗어났으니 갈 곳을 알 것인데,. 지수화풍 4대가 분리되면 어느곳을 향해 갈 것인가?
도솔삼관이란 1천여 년 전 중국의 승려였던 도솔선사가 내놓은 세 가지 화두이다.
위에 적은 첫 번째 관문인 ‘번뇌의 풀을 헤치고 도의 깊은 뜻을 참구하여 단지 자성을 보라.
지금 그대의 본성품은 어느 곳에 있는가?’라는 말은 ‘당신의 본바탕은 어디에 있소?’라는 질문이다.
도의 깊은 뜻을 참구한다는 것은 진여. 맑고 깨끗한 마음의 궁전으로 들어가는 것, 즉 참선하는 것을 말한다. 참선하는 것은 견성. 우리 본래의 마음 바탕을 보자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두 번째 관문은 ‘자성을 알았으니 이제 생사를 벗어나야 할 텐데, 눈빛이 떨어질 때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생사탈출의 방법을 묻는 것이다.
자성이란 자기 불성이란 말이다. 자기 불성을 알고 나면 바야흐로 생사를 벗어나게 될 것이니, 생사 따위에 걸리지 않게 될 때, 눈빛이 없어졌을 때, 즉 사람이 죽을 때 그때 어떻게 해탈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집에 도착하면 당신은 차에서 내린다. 다음날 아침 다시 타고 사무실까지 간다. 일을 마치고 다시 집에 들어간다. 또 다음날 아침 다시 차를 끌고 사무실로 간다. 여기저기 앞으로 뒤로 오고 간다.
그러다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났다. 다행히 몸은 다치지 않았지만 차가 박살났다. 그러나 사고 전에 미리 보험에 들어놓았으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 이제 새차를 갖게 될 것이다.
이 자동차란 것은 우리의 몸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산, 미국산일 수도 있고 다음 번에 타게 될 차는 러시아, 중국산, 독일산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차의 기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차가 어떤 종류인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차가 부서지고 없어지고 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사가 누구인가. 그것을 아는가.
그것을 똑바로 이해할 때에만 비로소 우주와 당신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세 번째 관문인 ‘생사를 벗어났으니 갈 곳을 알 것인데. 4대가 분리되면 어느 곳을 향해 갈 것인가?’하는 것은 갈 곳을 묻는 것이다.
‘생사를 벗어나 완전히 죽었다면, 깨달은 것이므로 어디로 가는지도 알 것이 아닌가. 그러면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四大)로 되어 있던 이 몸이 다시 지수화풍으로 각각 흩어져 사라질 때 어디로 가는 것이오?’ 하는 것이다.
모두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이 도솔삼관은 무문관 48칙 가운데 47칙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화두이자 문답이다.
죽을 때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의 몸에는 삶과 죽음이 있지만 우리의 본성에는 삶과 죽음, 가고 옴이 없다. 우리 몸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 땅, 공기, 불, 물이다. 몸이 죽을 때 이 네 가지 요소도 함께 사라진다.
그러면 당신의 주인 ― 몸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어디로 가는가?
기억하라. 가고 오는 것도, 머무는 것도 없다. 우주적 실체와 우리의 실체가 하나가 된다. 말과 단어도 이 점을 설명할 수 없다. 오직 보여주는 것만이 표현할 수 있다.
이 점을 깨달으면 이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적어도 하루에 10분씩이라도 매일 참선 수행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모를 뿐…”
“나의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모를 뿐.”
“어떻게 내가 다시 태어날까…모를 뿐…”
우리 몸을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地水火風)이 사라지면 나는 어디로 가는가? 모를 뿐… 이것에 맑게 대답한다면, 당신은 도솔선사의 세 가지 관문 중 마지막 문을 통해 무애의 경지로 들어가면 참 부처님 오신 날을 맞는다.
崇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