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의 인생고를 없애는 여섯 가지 관법

대승불교에서는 인생고를 없애는 방법을 여섯 가지 관법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법체유공관(法體有空觀)이니, 이는 모든 존재는 인연 속에 존재한다고 관찰하여 보는 관이다.

둘째는 무상개공관(無相皆空觀)이니, 인연에 의하여 나타난 모든 것은 그 모습이 모두 비어 있다고 관하는 것이다.

셋째는 유공중도관(有空中道觀)으로 있다(有), 없다(空)고 하는 관념에 빠지지 말고 오직 인연이다 하는 바른 견해(中道)를 가지는 것이다.

넷째는 제법실상관(諸法實相觀), 그것이 인연이라면 인연 속에 나타난 모든 것은 결국 일심(一心)의 소관이므로 있는 그대로가 진리라고 관찰하는 것이다. 돌이면 돌, 나무면 나무, 사람이면 사람이 모두 한 진리의 표현이요, 사상(事像)임을 일깨우는 관이다.

다섯째는 사사무애관(事事無碍觀)이니, 일과 일들이 모두 한 진리의 표현이라면 그 일에 대하여 겁낼 것이 없이 자세히 그 이치를 관하면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물과 얼음, 수증기는 각기 다른 것이지만 그 근본원리는 H2O이므로 이 도리를 아는 이는 얼음이 없으면 물을 냉장고에 넣고, 물이 필요하면 얼음을 녹이면 되고, 수증기를 보고 싶으면 물에 열을 가하면 된다.

몰라서 그렇지 이미 다 안 이상 겁낼 것도 없고 걸릴 것도 없다. 자기를 확실하게 깨달은 사람은 사람이지만 때에 따라 돌도 되고, 사람도 되고, 나무도 되고, 짐승도 되고, 물도 되고, 산도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불성현(諸佛聖賢)이 신통변화로써 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기대용(大機大用)이다. 큰 마음을 깨달은 사람은 그의 작용에 걸릴 것이 없다는 말이다.

마지막 여섯째는 즉사이진관(卽事而眞觀)으로 마음을 이미 일에 붙여 작용을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내일이나 모레 그리고 어저께 그저께 일은 생각하지 않고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꼭 맞추어 그대로 이치를 나타낸다는 말이니 그렇게 관하는 것이 즉사이진관이다.

부처님 당시에 광액도아가 있었다.

인도의 풍습에 4성계급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라문과 왕족, 평민, 노예가 그것이다. 각자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노예 가운데 이 광액도아는 매일 소를 잡는 도완이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변경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는 매일 소를 잡으면서 늘 생각하였다.

‘소를 잡는 이 놈이 누구인가?’

이렇게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을 해 나가다가 하루는 소를 앞에 놓고 도끼로 그의 머리를 콱 치니 소가 크게 ‘음매’하고 쓰러졌다.

순간 그는 다생의 의심을 한꺼번에 털어버리고,

“나도 천불(千佛)의 일수(一首)다”고 하였다.

‘나는 언제나 세세에 도완 노릇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그 방면으로 썼기 때문에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도 옛날에는 석가모니와 같은 똑같은 부처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 도리를 모르고 소가 되어 죽는 모든 소들에게 윤리의 도리를 일깨워주고, 이왕에 죽으면서 원망하며 죽을 것이 아니라 보살심을 가지고 죽어서 모든 중생의 피와 살이 되도록 깨우쳐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는 선이니 악이니, 좋은 것이니 나쁜 것이니 그러한 관념까지도 다 털어버리고 오직 그 업에 충실하여, 만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부처다.

이와 같이 직업의 귀천이나 성쇠에 관계없이 세상의 이치를 자기가 하는 일 가운데서 훤히 나타내면 이것이 곧 즉사이진인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을 관하여 가면서 걸림없는 생활을 실천해 가는 것이 대승불교이다.

崇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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