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절대로 범하지 말아야 할 대망어를 제외하면, 인생살이에서 꼭 지킬 수만은 없는 것이 불망어계이다.
실로 한세상을 살면서 거짓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주 가벼운 거짓말, 불가피한 거짓말, 이를테면 상대방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거짓말은 오히려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반드시 거짓말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도리어 허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그 증세를 일일이 말해 준다면 공포심을 일으키는 환자의 경우에는 그 수명을 더욱 단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의사나 가족 또는 친지들은 환자를 안심시키고 자신감을 가지고 투병에 임할 수 있도록 적당한 위로의 말과 함께 주의사항을 잘 인식시켜야 한다. 이 경우의 거짓말이 어찌 죄가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갑이라는 사람이 을에 대한 험담을 하였을 경우, 만일 을을 찾아가서 갑이 말한 험담을 그대로 전달한다면, 갑과을 두 사람 사이에는 불화가 생기고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이럴 때는 사실과 다를지라도 부득이 두사람을 화합시키는 쪽으로 거짓말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만일 바른 말을 함으로써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이나 수많은 생명이 살생을 당하게 되는 경우에 처하게 된다면 반드시 거짓말을 하여 저들을 구해 주어야만 한다.
우리 불교에서는 이상과 같은 경우의 거짓말을 여망어(餘妄語)라고 한다. 여망어는 대망어도 소망어도 아닌 여유있는 망어이다. 방편으로 거짓말을 살짝 함으로써 더 좋은 일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여망어이며, 이와 같은 여망어는 작지계(作止戒)의 정신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지계(止持戒)와 작지계(作止戒). 계율을 지키는 방법은 크게 지지계와 작지계로 나뉘어진다. 이 둘 중 지지계는 단순히 나쁜 짓을 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계이다. 곧 ‘어떠어떠한 행위는 계율에 어긋나므로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영역을 한정시키는 소극적인 계이다. 이에 비해 작지계는 악을 그치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에만 한정시킨 것이 지지계라면, 상대에게 유익한 말, 바른 길로 갈 수 있는 교훈되는 말, 자비로운 말 등을 해 주는 것이 작지계이다. 소극적으로 도둑질을 하지 않는 데 그치는 것은 지지계요, 남에게 내 것을 베풀어 보시행을 하는 것은 작지계인 것이다.
이 두 계를 대승과 소승에 비유하면 지지계는 소승계요, 작지계는 대승계에 해당한다. 따라서 나쁜 행위를 스스로 끊는 소승의 지지계는 자리계(自利戒)가 되고, 선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작지계는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계(利他戒)가 된다.
이러한 뜻에서 흔히 지지계를 지악(止惡), 작지계를 행선(行善)이라고 한다. 불교의 계율 가운데 5계·10계·250계 등은 지악의 지지계에 해당하고, 십선행(十善行)·육도만행(六度萬行) 등은 행선의 작지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승의 불자들은 단순히 거짓말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지지계에 그칠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말, 진실한 말, 부처님의 법문 등을 해주어야 하며,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문제이거나 중대한 분쟁이 발생할 염려가 있을 때에는 이런 일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작은 거짓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지지계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계를 범한 것이 되지만, 작지계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결코 계를 범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큰 공덕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우리 불자들은 불망어계를 지킴에 있어 살리고 깨우치는 불법의 참뜻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정어(正語) 속에 살면서 인연있는 중생들에게 정어를 베풀어 불법을 닦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물론 어떤 이는 이야기할 것이다.
“나의 눈도 올바로 떠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남에게 불법을 설할 수 있나?”
그러나 꼭 내가 불법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불법을 알려줄 방법은 많다. 가령 아주 쉽고 감명깊은 불서를 법보시하거나, 좋은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면 능히 큰 선행을 쌓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불망어계는 ‘거짓없이 진실되게 살면서 중생들에게 정법을 심어주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정녕 불자의 언어는 정법(正法)에 입각한 정어(正語)이다.
모름지기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망어계를 제정하신 뜻을 분명히 알고, 정법에 입각한 정어로써 뭇 중생을 일깨워 원만·성취·진실이 가득한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의 길로 나아가야 하리라
日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