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공 같으면 그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공부하나마나 한 것이지요.
그러나 공의 알맹이, 공의 당체(當體)는 공이 아니라 진공(眞空)이라. 묘유(妙有)라. 진공묘유란 말입니다. 진공묘유란 것은 더 쉽게 말하면 그 자리가 바로 불성(佛性)자리입니다.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바로 불성자리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자성이라. 스스로 자(自)자 성품 성(性)자, 자성입니다.
저같은 사람은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 되어서 한가하니까 무료해서 심심풀이로 종교서적을 이것저것 보고 헤아려도 봅니다마는 육조단경(六祖壇經)에는 자성(自性)이라는 말이 몇 군데나 있는 것인가 한번 헤아려보니까 백(百)군데가 넘어요. 지성이란 말을 백번도 더 말했습니다. 얼마나 육조혜능慧能스님이 자성, 아까 말한바와 같이 불성을 역설하고자 하셨으면 조그만한 한 권 책속에 백번이상이나 말씀을 되풀이해서 하셨겠습니까.
왜 그렇게 했는가. 우리 중생들이 모두가 다 자성에 귀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자성(自性)은 바로 불성인데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우리 인간의 마음, 우리 인간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바로 자성이고 자성청정심입니다. 또한 우주의 본래 성품이 바로 자성입니다. 김씨 박씨 이씨나 모두가 다 자성차원에서는 하나란 말입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일체존재 모두가 다 본래성품이 자성이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성은 바로 불성(佛性)을 의미합니다. 또한 동시에 진여불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육조단경은 즉 말하자면 참선의 교과서(敎科書)같은 것입니다.
부처님이 그러하신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달마(達摩)스님을 거쳐서 육조혜능스님때에 와서 거의 완벽하게 다 체계화되었단 말입니다. 따라서 육조단경은 참선의 교과서 같은 것입니다. 그 책에서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자성이란 말이 백 군데가 넘는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중생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고 하면 자기의 본래면목을 몰라 가지고서 함부로 망동(妄動)하지 말고 본래의 자리 곧 자성자리로 귀향(歸鄕)해야 합니다. 염불(念佛)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염불은 부처를 생각한단 말입니다. 부처가 무엇인가. 부처가 바로 자기 자성입니다. 화두(話頭)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무엇을 의심하는 것인가?
내 자성이 무엇인가? 내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무엇인가.
내 본분소식(本分消息)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 자리를 의심도 하고 참구해서 그 자리와 하나가 된단 말입니다. 세상에 쉽다고 하면 가장 쉬운 것이 불법이고 불법가운데서도 가장 쉽고 간단명료한 것이, 분명명석(分明明晳)한 것이 참선법(參禪法)입니다. 보통 공부하는 법은 뱅뱅 돌아가서 점차로 올라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참선법이란 것은 아주 대승법이란 말입니다. 대승법(大乘法)이라는 것은 그렇게 뱅뱅돌아서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직통(直通)으로 바로 간단 말입니다. 검으면 검다하고 희면 희다하고 천지우주가 다 부처님 진여불성(眞如佛性)법인 것이고 그 외는 다른 것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과거 숙세(宿世)부터 많이 닦여져 업장이 가볍고 금생에도 좋은 인연만나서 바로 공부한 분들은 정말로 공부하기가 제일 쉬운 것입니다.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본래로 갖추고 있는 것을 못 느끼고 있다가 바로 본 사람이 그대로 말만 해주면 그것이 직통으로 통한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당하(當下)에 활연대오(豁然大悟)라. 말 한마디에 그 자리에서 바로 크게 깨달아버린단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가 다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리가 분별시비하는 눈에 보이는 그런 것들은 허망하고 있지도 않는 것이란 말입니다.
있지도 않은 것 때문에 봉사하다가 자기 생을 그야말로 취생몽사(醉生夢死)한단 말입니다. 이것이 참 억울한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인간성의 본래면목, 우주의 근본자리, 영원히 죽지 않는 자리, 불생불멸한 그 자리, 영원한 해탈자리, 그 자리로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 가운데서 가장 최상의 제일의 적(第一義的)인 법입니다. 그러기에 참선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젊은 청춘을 다 그만두고 평생동안 걸망지고 오락가락하면서 공부를 하지 않습니까. 그마만치 중요시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나 인연따라서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되고 그런 것이지 종단에 가서는 누구나 다 참다운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생에서 생을 받고 금생에 산 보람이 무엇인가 하면 오직 본래 자기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란 말입니다.
淸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