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로 꿈을 깨는 법
序
사람마다 나름대로 나란 멋에 살건만
이 몸은 언젠가 한줌 재가 아니리
몯노라 주인공아 어느 것이 참나인고
‘나’라고 하는 定義와 限界와 價値와 義務를 알고 올바른 길을 택하여 환상의 굴레를 벗고 진실한 희망의 길로 나아갑시다. 그 길은 곧 생활불교의 길인데, 칠바라밀을 칠요일에 누어 다음과 같이 소개하는 바입니다.
波羅蜜이란 梵語인데 한문으로는 到彼岸, 즉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환상과 생사와 허망한 꿈으로 된 이곳에서 벗어나 실상과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사의 강을 건너는 저 언덕이란 마음깨침을 가리킵니다. 그 방법이 곧 七波羅蜜입니다.
7바라밀을 해석하기 앞서 산승이 올바른 길을 제창하는 까닭은 오늘날 세계인구 49억이 自我상실 속에서 헤매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일이며 또 우리나라 5천만 민족이 신라, 고려 때의 민족성을 잃고 後進이니 未開國이니 弱小民族이라는 부끄러움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있는 현실을 통감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갈길을 잃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절대로 후진국이 아닌 半萬年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문화민족으로서 고려 때의 만족성을 되찾자는 것이 7바라밀을 제창하게 된 직접 동기입니다.
그럼 ‘나’라고 하니 어떤 것이 진정한 나입니까? 만약 육체 위로 또 물질과 식과 색 본위로 살아간다면 잠잘 때만이 꿈속이 아니라 눈뜨고도 꿈속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환경에 사로잡혀 물질 존위로 살기 때문에 참나는 잊어버리고 환경의 지배를 받아 뒤바뀐 생활을 하니 동물세계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육체를 여의고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자기의 주인공인 마음을 망각하고 환상에 속는 것은 바로 자아를 상실한 때문이요, 마음을 깨쳐서 모든 행동을 하는 것은 완성된 인격인 동시에 人天의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치고 올바로 사는 길이 곧 인간의 최고가치를 실현하는 길입니다.
또 나의 한계란 육체만이 나인 줄 아는 것은 소아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이요, 마음을 깨쳐서 모든 물질을 응용할 줄 아는 사람은 우주 전체와 세계 인류 40억이 곧 자기의 분신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라고 하는 주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주라는 환경과 남이라는 객체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或者는 이 세계는 造物主가 있어 건설했다고 하나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인식할 주체도 없기 때문에 이 세계는 곧 나의 마음으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주인공은 곧 나 자신이며 이것을 가리켜 大我라고 합니다. 나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 여러분에게 물으면 간단히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비유해서 말하면 송광사 뒷산은 조계산이요, 높이는 887미터이며, 둘레는 대략 3백여 리입니다. 이만한 순금덩이가 있엇어 어떤 재인이 관리한다고 할 때 세상의 어떤 부귀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 어떤 사람이 이 순금덩이와 자기 몸을 바꾸자고 한다면 바꿀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 순금덩이는 차치하고 우주 전체가 금덩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과 바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알았다고 하면 언제 어디서나 가치 있는 행동을 실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누리 금이라도 나의 보배 아니며
모든 성현 거룩한들 나에게 무엇 되리
조계산 밝은 저 달빛 내 마음의 빛이로세
그 다음 나의 義務란 저 허공의 日月인들 내 마음을 떠나서 있는 일월은 아닐 것입니다. 저 일월이 우정 무정에게 주는 혜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산이 높다고 더 비춰주거니 물이 깊다고 덜 비춰주거나 꽃이 곱다고 더 비춰주거나 똥이 더럽다고 덜 비춰 주는 것이 아니고 절대평등하게 비춰줄 것입니다. 그러면 그 혜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은혜를 우리들 능력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내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 그 일월이라면 내 마음을 닦아 일월과 같은 인간이 되어서 어둠에 헤매는 중생들을 비춰준다면 이보다 더 쾌활한 樂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여러분은 일월과 같은 인간이 되어 주기 바랍니다. 이것이 곧 나의 신성한 義務입니다.
- 布施 … 베푸는 날(月)
자비심으로 사람뿐 아니라 목숨 있는 일체 중생을 널리 사랑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아낌 없이 거저 줍시다. 보시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습니다.
1)法布施 : 내 마음을 줍시다. ‘我空하여 마음을 보시하면 萬法이 唯心所有입니다.’
2)財布施 : 물건을 아낌 없이 줍시다. ‘着相하면 萬漏福이요, 無住相하면 無漏福이니 냉수와 걸레처럼 주저말 고 선뜻 줍시다.’
3)無畏施 : 마음과 육신까지도 아낌없이 보시하면 절대의 福과 慧로 너와 나의 차별이 없는 大慈大悲가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남에게 두려움없게 해주는 것돠 또 자기가 두려움이 없이 모든 것을 남에게 주자는 말입니다.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아난존자를 데리고 길을 가시는데, 한 바라문이 나타나 부처님을 보고 말하기를
“세존이시어, 당신께서는 보시를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제게 한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님이 병이 났는데 그 약은 산 사람의 눈을 먹아야 낫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부처님 눈 하나를 제에게 보시하시지요.”
부처님은 이 말을 들으시고
“응 그래? 자 이 눈을 가져다 약에 써라.”
하고 한 쪽 눈을 바라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라문은 눈알을 받자마자 땅에 내 던져놓고 발길로 밟아 싹싹 비벼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아난존자는 그 바라문에게
“이보시오. 애지중지한 눈을 약에 쓰라고 빼주었는데 발길로 밟아 비벼버리다니 그럴 수가 있소.”
하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아난아, 아난아. 그만두어라. 내가 한번 주었는데 그 사람이 약에 쓰건 내던져 밟아 버리건 무슨 상관이 있느냐. 보시는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하건 상관할 게 없느니라. 그만 길이나 가자.”
하고 아난 존자를 데리고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보시란 내가 한번 주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받은 쪽에서 어떻게 쓰건 그것은 베푼 사람으로서는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는 남에게 돈 천 원이나 만 언을 빌려주었다가 떼이고 나면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몸뚱이조차 내어주는 그 마음이 어떻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한테서 가장 소중한 뭄뚱이를 보시함으로써 그보다 몇 갑절 뛰어난 몸을 받게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이와 같이 無住相布施를 함으로써 큰 果報를 받게 되었으니 욕심이라면 큰 욕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三界에서 獨尊이 되신 것입니다.
福을 지을 때는 아낌없고 두려움 없이 물건만 주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도 보시하시고 그 마음까지도 보시한 까닭에 大聖人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제자가 된 우리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아낌없이 남에게 주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 持戒 … 올바른 날(火)
올이란 말은 법이란 뜻이니 올바르다는 것은 법을 바르게 하자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依食住 생활 전반에 걸쳐 질서와 예의범절을 지키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합시다. 이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우리나라가 신라나 고려시대처럼 문화민족으로서 긍지를 되찾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先進諸國으로부터 後進 소리를 듣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悠久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전통을 지닌 우리 민족이 무엇때문에 이렇게 되었는사를 반성해 봐야 합니다.
그 까닭은 한마디로 무질서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말은 공중도덕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쁜 습관이 제2의 天性을 이룬다는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소한 일일지라도 무의식 중에 저질러 그런 일이 쌓이고 쌓여서 오늘의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질서와 예의범절을 지키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자는 것입니다. 남을 속5일 때는 자기 양심을 먼저 속이지 않고는 안되는 법입니다. 그러니 자기 양심부터 속이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戒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며, 바다를 건너는 배이며, 병자에게는 좋은 약이며, 진리의 양식이며, 성현이 되는 사다리이며, 비오는 날의 우산이며, 自性을 깨치는 길이며, 자신의 七寶莊嚴이며, 生死解脫의 길잡이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곧 중생심을 제거하는 持季波羅蜜입니다. 계라는 말은 경계한다는 뜻인데, 나쁜 일을 하지 말도록 경계하는 것입니다.
계는 5계가 근본인데, 그 내용은
첫째, 殺生을 하지 말라
둘째, 도둑질하지 말라
셋째, 邪淫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
다섯째, 술마시지 말라
이 다섯 가지입니다.
살생하지 말라는 것은 살생은 결국 제2의 자살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를 죽이면 이 다음에 그가 나를 죽이게 됩니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은 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둑놈이 흉기로 위협하여 물질은 빼앗아 갈 수 있지만 복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복을 지어서 잘 사는 것이지 돈으로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복을 감하게 되니 훔치지 말아야 합니다.
사음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정한 부인이나 남편 이외애 음행해서는 안되다는 말입니다. 사음을 하게 되면 안락한 가정을 이룰 수 없고 마음이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남을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信義를 잃어 남이 나를 믿어주지 않습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술을 마시면 智慧種子가 끊어져 미친 사람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다섯 가지 계는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며 자다를 건너는 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 忍辱 … 참는 날(水)
욕됨과 온갖 억울함과 번뇌를 참되 모든 사람을 부처님과 같이 대합시다. 번뇌란 본래 있는 것이 아니고 허공의 구름과 같고 물 위의 거품과 같으며 풀끝의 이슬과 같아서, 그때그때 환경에 따라 일어나는 識心, 곧 알음알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