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길에서 진실한 믿음을 일으켜 순일하게 정진하지 못하고 중도에 단념하거나 이곳 저곳의 수행법에 기웃거리며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은 스스로 믿고 성취해야 할 부처님의 지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깨달음 이전에 부처님의 지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수행문마다 다르게 말하고, 다시 수행의 단계를 오를 때마다 차원 높은 이해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원효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뇌하다가 팔만사천 법문으로 펴 보이신 부처님의 지혜를 간단하고 알기 쉽게 요약하는 작업이 필요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원효는 자신의 이론에 반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의 지혜는 성소작지(成所作智), 묘관찰지(妙觀察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이며, 이 네 가지 지혜의 궁극은 “일체 경계는 일심인 지혜”를 증득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는 일심의 바다에서 솟아나는 불가사의한 작용입니다. 그러므로 전체를 불지(佛智)라 하고 네 가지 지혜를 구별하여 이해하기 쉽도록 보여준 것입니다.
원효는 유식(唯識)학파에서 세운 전식득지(轉識得智)설을 수용하여 네 가지 지혜를 해설합니다. 유식에서 말하는 식(識)이란 진망(眞妄)이 화합되어 청정하지 않은 분별식입니다. 8식 가운데 제8아뢰야식을 근본식이라 하며 나머지 7식은 이 근본식을 원인으로 해서 나타납니다. 분별하는 마음들로부터 무분별지로 전환하여 지혜를 얻는 것을 전식득지(轉識得智)라 합니다. 또, 전의(轉依)라고도 하는데 생사의 법으로부터 열반으로 전환하여 진여(眞如)에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원효는 유식설, 즉 마음 법에 의거해 부처님의 지혜와 정토의 경계를 해설하기 때문에 서방정토와 유심정토를 포용하여 다 함께 일심의 바다로 향할 수 있도록 회통하는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서방정토는 범부의 분별하는 마음, 물든 의식 밖에 있는 깨달음의 세계입니다. 유심정토는 분별하는 마음을 지혜로 전환하여 바라보는 경계입니다. 서방정토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깨달음의 세계가 실재함을 밝히는 것이며, 유심정토를 말하는 것은 예리한 근기는 이 땅에서 깨달음으로 정토의 경계를 감득할 수 있음을 밝힌 것입니다. 원효는 근기와 업력에 따라 의혹하는 경계가 다르므로 그에 따라 구별하여 소상히 밝히고 믿음을 일으키도록 권했습니다. 그 가운데 “믿음을 성취하여 발심했는가?”라는 물음을 핵심으로 칭명염불과 관상염불을 권합니다.
만약 정토의 존재를 믿되 연기의 도리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성소작지를 진실로 믿고 칭명염불을 행하면 정토에 왕생하여 윤회를 벗어납니다. 근기가 예리한 자는 묘관찰지를 믿고 관상염불을 행하면 이 땅에서 정토의 경계를 감득합니다. 이것이 원효가 역설하는 염불수행법이며, 중국이나 일본의 정토가들과 다른 독창적인 정토사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소작지는 믿음만 일으키면 남녀노소, 유식과 무식을 불문하고 모두가 알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칭명염불 하는 사람이 성소작지에 대한 믿음은 일으키지 않고 “왜 유심정토를 말하여 서방정토를 부정하는 식으로 말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할 따름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서방정토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안심하고 염불하시기 바랍니다.
양산/정토원 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