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집] 제2편 1장 불생불멸(不生不滅) 04. 물심불이(物心不二)의 세계

그러면 너르디 너르고 변함이 없는 광대무변한 우주가 있으며 그 내용은 또한 불생불멸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물질로된 것인지 정신으로 된 것인지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흔히 불교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여 불교가 유심론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라고하는 것은 정신과 물질을 떠난, 곧 양변-물질과 정신-을 떠나서 양변이 융합한 중도적인 유심을 말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유물론이나 유심론이 결코 아닙니다. ‘일체유심조’라고 하지만, 그것은 철학에서 흔히 말하는 유심론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 것은 변견(邊見)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교는 변견으로서는 설 수가 없습니다. 완전한 중도적 입장에서라야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보면 유심(唯心)도 아니고 유물(唯物)도 아닙니다. 유심도 아니어서 유심과 유물을 완恍?부정하면서 동시에 유심과 유물이통하는 세계입니다. 곧 물심불이(物心不二)인 것입니다. 유심도 아니고 유물도 아니면, 결국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서로 융합해서 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심적으로도 증명이 되어야 하고, 유물적으로도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 두가지로 증명이 안 되면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생물학에서는 인간의 육체나 또는 동물, 식물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들은 아주 미세한 세포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학계에서 이들 세포를 연구한 결과, 동물의 세포나 식물의 세포가 똑같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또 근래에 와서 어느 세포나 각 세포 가운데에는 핵산이라는 것이 들어 있음을 알아냈습니다. 영문 약자로 흔히 ‘디엔에이 DNA’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핵산은 순전히 정신적인 역할을 맡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동적으로 모든 것을 기억해서 서로서로 연락하고 명령을 전달하고 신경을 지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핵산은 결코 신경계통의 기관은 아닙니다. 각 세포 가운데에는 세포핵이 있는데, 핵산은 그 세포핵 가운데에 존재하여 기억력과 활동력을 가진 정신체라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조금 더 연구를 깊이 한 생물학자들은 식물과 동물의 세포는 모두 정신 작용을 하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 활동을 떠난 물체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물학 연구도 물질과 정신이 실지로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움직이지도 않고 그나마 생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 광물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광물이 동물, 식물처럼 성장하지도않으니 아예 죽어 있는 무생물로 취급한다든
지 운동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대인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물질의 근본 질량으로 소립자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늘 스핀 Spin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스핀 운동이란 모든 소립자가 일정하게 타원형을 그리며 활동하고 있는 성질을 말합니다. 어떤 소립자든지 늘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만 인간의 눈으로는 그것을 볼 수 없으므로 운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지, 이 세상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실제에 있어서 어떤 광물이든지 또는 무생물이든지 그것들은 모두 활동을 하고 있으며 살아 있습니다. 어떤 물체든지 죽어 있거나 활동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물리학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 입니다.

어떤 입자든지 스핀운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물질에서 그치는 것이지 정신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러나 요즘 이론 물리학에서는 “소립자도 자유의사를 갖고 있다”고들 많이 주장합니다.
자유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결국 정신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동, 식물을 이루고 있는 각 세포마다 그 속의 세포핵에 핵산이 있어서 정신활동을 하고 있듯이, 광물이나 무생물도 그것을 이루고 있는 각 입자 안에서는 스핀운동을 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자유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불생불멸을 말하면서 이렇게 현대물리학을 도입하여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고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가 아니라 시간을 백억분의 일 초로 나누고 공간을 다시 백억분의 일 밀리미터로 나누어서 극 미세한 상황까지 설정하여 이야기를 펼친 것은, 결국 동물이든 식물이든 광물이든 그 모든 것은 물질이라고도 할 수 없고 정신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그와 동시에 그것은 또 물질이라고도 할 수 있고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음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바로 양변(兩邊)을 떠나고 또 양변을 포함하는 불교의 중도공식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은 발달을 거듭하면서 자꾸 불교 쪽으로 가깝게 오고 있습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불교는 과학이 발달될수록 그 내세우는 바가 좀 더 확실히 증명이 되고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높이찬탄합니다.

이렇게 해서 3,000년 전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현대과학의 이론으로 입증됨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부처님 말씀은 누구든지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의 세계이기에 영원불변하는 것입니다. 설령 원자
탄이 천 개, 만 개의 우주를 다 부순다 하더라도 불교의 중도사상, 연기사상의 원리는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性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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